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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호] 2020.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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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코로나19 이후 에너지정책… 유류세 개편부터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코로나19 여파로 국제유가가 계속 내리면서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도 12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21일 경기 화성시 한 주유소에서휘발유가 리터당 1175원, 경유가 995원에 판매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서부 텍사스유(WTI) 5월 인도분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기름을 유조선에 싣기만 하면 돈을 내기는커녕 거꾸로 배럴당 37달러를 받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시작한 무모한 치킨게임과 코로나19에 의한 세계적인 수요 격감이 고약하게 맞물리면서 시작된 전무후무한 일이다. 공짜 기름에 기뻐할 상황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수요 격감으로 흔들리는 정유 산업을 걱정해야 한다. 최대 수출 산업인 정유·화학이 휘청거리면 국가경제와 안보, 국민 안전도 온전할 수 없다. 탈원전과 코로나19가 지난 60년 동안 애써 쌓아놓은 에너지 산업을 무너뜨리고 있다.
   
   정유사의 1분기 영업손실이 2조5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사상 최악이었던 2014년 4분기 영업손실 1조1500억원의 2배가 넘는 끔찍한 규모다. 항공기의 90%가 운항을 포기하고, 내수와 세계 경제가 멈춰 서면서 항공유를 비롯한 석유 제품의 수요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결과다. 코로나19가 물러간다고 곧바로 석유 제품의 수요가 당장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미국처럼 값싼 원유를 비축해둘 시설도 없고, 생산해놓은 휘발유·경유·항공유를 저장해둘 시설도 없다. 준비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석유사업법에 따라 원유 28일분과 석유 제품 30일분을 넣어두는 비축시설이 이미 가득 채워져 있다.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을 제주도 남쪽 바다에 기약 없이 세워두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자칫하면 정유공장의 가동을 통째로 중단하게 될 수도 있다.
   
   
   휘발유 공짜 출고해도 소비자는 1000원 내야
   
   거대 기간사업인 정유 업계의 어려움은 차원이 다르다. 항공 산업처럼 정부가 마중물을 쏟아붓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국가기간산업 육성이라는 본분을 망각해버린 산업부의 무차별적인 압박에 바닥을 드러낸 정유 산업의 기초체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정유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국민생활과 국가경제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정유 산업이 무너지면 국제통상 관행도 따르지 않는 중국·일본의 저품질 기름을 수입해서 써야 한다.
   
   정유사가 비싼 휘발유·경유를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엉터리 인식도 바로잡아야 한다. 산업부와 일부 시민단체들의 무책임한 억지에 더이상 흔들려서는 안 된다. 싱가포르 국제 석유시장 연동제가 정착된 덕분에 내수시장에서는 수입산 휘발유·경유를 찾아볼 수 없다. 싱가포르 국제 석유시장에서는 원유가 아니라 정제된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을 판다. 이 시장에서 우리 정유사들이 파는 석유 제품보다 더 싼 제품을 사올 수는 없다. 반면 원유가격 연동제가 시행되던 1990년대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내수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틈새에서 휘발유·경유 수입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유업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에너지 세제부터 획기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원유에 부과하는 3%의 관세는 당장 철폐해야 한다. 전 국민의 필수품이 된 원유에 수입 물량 조절용 관세를 부과할 이유가 없다. 리터당 16원에 이르는 수입·판매 부과금도 당장 폐지해야 한다. 석유가격 안정의 명분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연간 1조원의 부과금이 산업부의 쌈짓돈으로 낭비되고 있다. 고도화 설비에 사용하는 중간 원료인 벙커C유(중유)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것도 과세 당국의 황당한 횡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비롯한 ‘유류세’의 개편이다. 휘발유의 리터당 공장도가격은 불과 310원에 지나지 않는다. 생수보다 싼 가격이다. 그런데 세금이 무려 850원이나 한다.(주유소의 판매비용이 리터당 147원이다.) 정유사가 휘발유를 공짜로 출고해도 소비자는 리터당 1000원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생활필수품이 돼버린 휘발유에 공장도가격의 2.74배나 되는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만행이다. 공장도가격이 휘발유보다 76원이나 비싼 경유가 오히려 소비자에게는 190원이나 싼 것도 불합리한 유류세 때문이다. 우리보다 휘발유값이 싼 나라들은 정유사의 마진이 적어서가 아니라 우리처럼 과도한 세금이 없어서 싼 것이다.
   
   정유사가 국세청의 유류세 징수 업무를 대행하도록 규정한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제3조도 개정해야 한다.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발급받는 영수증에 유류세를 표시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기재부의 꼼수다. 소비자도 유류세가 얼마나 과도하고 불합리한지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정유사가 국세청 업무를 대행해줄 이유도 없다. 수많은 환급금·보조금·면세제도만 정리해도 유류세를 30% 이상 인하할 수 있다.
   
   유류세 개편은 기름값이 충분히 낮고, 코로나19로 국민 생활과 국가경제가 어려운 지금 당장 정부가 반드시 해내야 하는 막중한 일이다. 일본 정유사가 만들어내는 경유에 관세까지 깎아주면서 억지로 만든 알뜰주유소도 국민 기만적이고, 상표법을 위반한 엉터리 제도다.
   
   코로나19로 전기요금 인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한전의 적자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국민이나 기업이 한전의 적자 보존을 위한 요금 인상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져버렸다. 발전 원료의 국제적 가격 변동에 자동으로 전기요금을 맞추는 ‘연료비 연동제’는 한전이 산업부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한전이 산업부에서 독립해 발전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제도다.
   
   
   경부하요금제 폐지는 한전의 제 발등 찍기
   
   이런 상황에서 한전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경부하요금제 폐지는 한전이 제 발등을 찍고,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끔찍한 악수(惡手)다. 경부하요금제는 전력 수요가 줄어든 심야에 기저 전원인 원전·석탄화력의 전력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심야요금 제도다. 기업은 값싼 전기요금으로 생산원가를 줄이고, 한전은 남아서 버려야 하는 전기를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윈윈 전략이다. 경부하요금제를 폐지하면 기업은 굳이 야간작업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생산을 포기해버리거나, 비싸진 전기요금으로 인한 생산원가 상승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한전은 피크타임에 발전원가가 높고 온실가스와 초미세먼지를 쏟아내는 LNG발전소를 돌려야 한다. 주간의 전력소비가 늘어나면 LNG발전소를 증설하는 추가 부담도 생기게 된다. 기업이 내는 전기요금은 기업주가 아니라 소비자가 부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자의 늪에 빠져버린 전력 산업을 회생시키는 길은 어렵지 않다. 부당하게 세워놓은 월성1호기와 신한울3·4호기의 가동을 즉시 재개하면 한전 적자의 상당 부분이 메워진다. 신규 원전 6기의 건설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죽어가는 창원의 원전 산업을 되살리고, 애써 가꾼 자연환경도 지키는 길이다. 한전에 대학 설립을 강요하고, 에너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방사광가속기까지 떠넘기겠다는 발상은 에너지 산업의 공멸(共滅)을 재촉하는 길이다. 장부가액이 72조원에 이르는 한전의 주식 가치를 12조원으로 토막내버린 탈원전은 이제 폐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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