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생명공학 기업 ‘플란타’ 등이 개발한 발광식물. ⓒphoto 사르키샨 트위터
러시아 생명공학 기업 ‘플란타’ 등이 개발한 발광식물. ⓒphoto 사르키샨 트위터

평생 동안 스스로 빛을 내는 독특한 발광식물이 개발되어 화제다. 곤충인 반딧불이가 밤에 빛을 발하듯, 식물이 어둠 속에서 녹색의 환한 빛을 낸다. 낮에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밝다. 녹색 형광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빛나는 표지(glowing marker)’다. 녹색 빛을 낼 때 특정 세포가 어떻게 움직이고 성장하는가를 손에 쥐듯 알 수 있다. 마치 조명등을 켜놓은 것처럼 밝은 빛을 내는 발광식물은 과연 어떻게 탄생했을까.

우리는 잠을 잘 때 보통 취침용 스탠드를 켜둔다. 하지만 이제 곧 스탠드 대신 발광식물이 조명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생명공학 기업인 플란타(Planta)와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의 공동연구팀이 유전자공학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 은은한 빛을 내는 식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영화 ‘아바타’(2009) 속의 한 장면처럼 컴컴한 어둠 속에서 형광녹색 빛을 뿜어내는 담배나무(tobacco plants)를 개발했다.

유전공학 이용 녹색 빛 뿜는 담배나무

자연에는 생물발광을 하는 생물들이 있다. 생물발광은 생명체가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대표적인 발광생물은 반딧불이다. 반딧불이는 루시페라아제라는 효소 덕분에 빛을 발한다. 발광생물에는 공통적으로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이 있다. 이 루시페린이 효소 루시페라아제의 작용에 의해 산화되면서 그 산화 에너지로 빛을 방출한다. 식물에서는 버섯 등 균류에서 50여종이 발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동연구팀은 곤충, 물고기, 해저에 사는 무척추동물, 박테리아 등에서 오랫동안 생물발광 현상을 관찰해왔다. 스스로 빛을 내는 식물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연구팀이 처음에 주목한 것은 바다 깊은 곳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다. 미생물인 박테리아의 발광 시스템을 균류인 버섯에 적용하기 위해 박테리아의 DNA를 이식했으나 구조가 단순한 박테리아는 식물 같은 복잡한 생물과 맞지 않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공동연구팀이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베트남 남부 숲 지대에 서식하는 발광독버섯 ‘네오노토파누스 남비(Neonothopanus nambi)’다. 네오노토파누스 남비도 생물발광 능력을 가진 식물 중 하나다. 이 균류 유전자 중 4개가 카페익산(caffeic acid)이라는 물질을 루시페린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고, 이후 루시페라아제에 의해 산화되면서 빛을 발한다. 카페익산은 모든 식물에 존재한다. 이름과 달리 카페인과는 연관이 없다.

연구팀이 발광독버섯에서 유전자 4개가 카페익산을 루시페린으로 바꿔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18년 말. 이후 이 시스템에 착안해 발광식물 개발에 나섰다. 먼저 발광독버섯에서 4개의 유전자(DNA)를 채취한 다음, 이 DNA를 생물발광 능력이 없는 두 종의 담배나무(Nicotiana tabacum, Nicotiana benthamiana)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담배나무는 유전적으로 간단하고 성장이 빨라 단기간에 연구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실험 결과 담배나무의 잎, 꽃, 줄기, 뿌리 등 모든 부위에서 버섯보다 더 밝게 빛나는 발광 현상이 일어났다. 식물의 어린 부분이 가장 밝았고, 꽃은 유난히 선명했다. 발아에서부터 성장이 모두 끝날 때까지 발광 능력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빛을 발했다.

발광식물이 개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과거에도 반딧불이의 발광물질을 주입해 빛을 내는 식물이 개발된 적이 있다. 2017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곽선영 박사팀이 루시페린과 루시페라아제를 특수 나노입자에 넣어 물냉이(watercress)의 잎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4시간 정도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식물 스스로 루시페린을 만들지 못해 계속 나노입자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었다. 한편에선 발광 박테리아의 DNA를 식물의 꽃에 주입하는 기술도 등장했다. 그러나 이 또한 식물에서 나오는 빛이 너무 약하고 식물에 독성을 유발한다는 단점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의 연구팀은 따로 발광물질을 주입하지 않고도 식물이 자체적으로 빛을 낼 수 있도록 카페익산을 루시페린으로 바꾸는 방식을 찾아냈다. 따라서 별도의 나노입자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에 게재되었다.

새로운 차원의 원예식물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발광 유전자를 주입해도 식물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아, 개화 등 성장과 발현에 부정적 영향을 전혀 주지 않았다. 반면에 식물이 내는 녹색 빛은 박테리아 유전자를 주입했을 때보다 10배나 밝아 내부의 생리적 상태가 드러났을 정도다. 1분당 10억광자를 방출했는데, 이는 책을 읽기에는 다소 부족한 밝기지만 물체를 보는 데는 충분하다.

지난 4월 28일 CNN, 가디언 등 주요 언론들은 앞으로 공동연구팀이 발광버섯의 유전자를 특정 호르몬에 작동하는 식물 유전자 주변에 집어넣는 연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럴 경우 식물이 내는 빛을 통해 육안으로 보기 힘들었던 식물의 내부나 미세한 기관은 물론 호르몬 작용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식물이 어떻게 신진대사 활동을 하면서 어떤 방법으로 생존해 나가는지 알아낸다는 것이다.

담배나무의 발광 현상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이 가능하다. 옅은 실내조명이나 장식, 가로등을 비롯해 홈데코(Home Deco) 등 인테리어 산업에 이용할 수 있다. 또 낮과 밤에 관계없이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관상용 나무나 꽃의 개발도 가능하다. 연구팀은 수년 안에 새로운 차원의 발광식물이 등장해 가정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은 물론 공기정화 등을 위해 안전장치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피튜니아, 장미 같은 다른 식물들도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발광식물로 개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 식물 세포에 다양한 호르몬을 주입해 식물의 색깔이나 밝기를 바꾸는 연구도 진행한다. 다양한 호르몬을 주입하면 다양한 종류의 빛을 발할 수 있고, 심지어 식물의 스트레스나 기후변화 환경에 대한 반응 등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게 러시아 생명공학 기업 플란타의 대표 카렌 사르키샨(Karen Sarkisyan) 박사의 설명이다.

유전학으로 생물에 새로운 특징을 부여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단순히 어떤 특징에 해당하는 유전자 부분을 갖다 붙이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유전자가 유기체 안에서 대사적으로 통합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복잡한 유전공학 기술을 통해 만들어질 식물의 밝은 빛은 식물의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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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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