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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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빗을 때마다 한 움큼씩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눈물 짓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이비인후과 칼 쾰러(Karl R. Koehler) 교수팀이 모낭과 함께 피지선과 신경회로까지 재현한 인공피부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 실제 피부와 매우 닮은 인공피부는 전 세계 탈모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모발이 빠지거나 재생하지 않는 탈모에 활용될 가능성이 큰 이 기술이 과연 탈모를 완전하게 치료할 수 있을까.

유도만능줄기세포에서 인공피부 배양

지난 6월 4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머리털이 나면서 피지까지 나오는 칼 쾰러 교수팀의 인공피부 개발 연구가 실렸다. 피지선에서 분비되는 피지는 표피의 물을 스며들지 못하게 하며, 피부가 건조되는 것을 막아 피부를 탄력 있게 해준다. 또 연구팀의 인공피부는 촉각신호 등을 전달하는 신경회로도 갖추고 있어서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피부 중 가장 사람의 피부와 흡사하다.

피부의 기능은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몸의 표면을 덮어 내부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피부 속에 있는 멜라닌 색소가 자외선을 흡수하여 태양광선으로부터 인체 세포를 보호한다. 산성물질이나 병원균 분해효소 등을 분비하여 병원균 침입도 막는다. 피부의 단백질이 저항성을 발휘하고, 땀샘이나 지방선에서 분비하는 지방산은 독성을 발휘한다. 또 기온이 낮을 때에는 피부 표면적을 줄이고 두께를 늘려 열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적게 하는 반면, 기온이 높을 때에는 땀샘에서 땀을 내어 열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왕성하게 해 체온을 조절한다. 이 외에도 통증이나 촉감 등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피부 자체가 총알을 막아주는 방탄복처럼 방어막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기능이 많다 보니 피부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기저층, 유극층, 과립층, 담명층, 각질층 등 20종 이상의 세포가 여러 층으로 배열된 형태를 띠고 있다. 많은 과학자는 1970년대부터 실험실 배양을 통해 이 같은 피부 조직을 인공적으로 만들려는 연구를 끊임없이 시도해왔다. 이를테면 영국의 인터사이텍스사의 경우 실제 피부와 비슷한 구성 성분을 가진 인공피부(ICX-SKN)를 개발한 적이 있다. 콜라겐을 만드는 섬유아세포와 켈틴 형성 세포로 구성된 ICX-SKN은 욕창이나 심한 화상을 입었을 때 손상된 피부를 신속하게 재생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피부의 구조가 워낙 복잡해 대부분의 인공피부는 표피와 진피 세포 일부 등 5~6종의 세포만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절반의 성공에 머무른 셈이다.

쾰러 교수팀 또한 실제 피부에 가까운 인공피부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그리고 2018년 마침내 동물의 줄기세포에서 인공피부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생쥐의 내이(속귀)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한 뒤, 털이 자라는 모낭까지 갖춘 피부세포를 배양해 인공장기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교수팀은 줄기세포가 피부 표피와 진피 4종으로 정확하게 분화하며, 모낭까지 형성함을 실제로 확인했다. 머리카락 등 털 형성에 필수인 모낭세포까지 실험 배양한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다.

이번 연구는 당시의 기술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2018년 개발한 인공피부에서는 털이 2㎜밖에 자라지 않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최대 5㎜까지 자라나게 했다. 생쥐의 등에 인공피부를 이식해 나타난 결과다. 더구나 피지선에서 피지를 분비하게 하고, 신경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회로까지 갖추도록 진일보했다.

이를 위해 교수팀은 먼저 생쥐의 내이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채취하고, 뼈 유도 능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뼈 형성 단백질 ‘BMP4’와 유전자의 전사(transcription) 억제제를 첨가하여 5개월 동안 배양했다. 전사는 DNA에 적혀 있는 유전정보를 mRNA(메신저 RNA)로 옮기는 과정을 말한다. 그 결과 당연히 표피와 진피로 성장한 것은 물론 사람 피부와 다를 바 없는 모낭, 피지선, 신경회로까지 갖춘 피부 형태가 탄생한 것이다.

이보다 더 완벽한 인공피부를 만들려면 실제로 사람 피부처럼 빛에 노출될 경우 색이 달라지거나 백인이나 흑인, 황인종처럼 피부색을 달리 만들어내는 멜라닌 세포를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근육이나 지방세포 같은 연구도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쾰러 교수의 설명이다. 쾰러 교수팀의 인공피부는 앞으로 탈모 치료나 피부에 손상을 입어 자가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 치료에 사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 하버드대 의대 칼 쾰러 교수(오른쪽)가 생쥐의 속귀 줄기세포로 만든 인공피부. 최대 5㎜까지 털이 자란다. ⓒphoto koehler-lab.org
미 하버드대 의대 칼 쾰러 교수(오른쪽)가 생쥐의 속귀 줄기세포로 만든 인공피부. 최대 5㎜까지 털이 자란다. ⓒphoto koehler-lab.org

사람의 손바닥 특성 살린 인공피부

한국에서도 인공피부 개발 연구가 활발하다. 지난 5월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 박형순·김택수 교수는 사람 손바닥의 특성을 살린 ‘인공피부’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공이 많이 뚫린 다공성 라텍스와 얇은 실리콘을 소재로 층을 쌓아 올려 피부층, 피하지방층, 근육층으로 이뤄진 사람의 3중층 피부 구조를 만들어냈다.

다공성 라텍스의 경우 기공들이 물체의 눌림에 쉽게 압축되기 때문에 물체의 형상에 맞게 쉽게 변형된다. 또 기공 사이의 질긴 라텍스 격벽이 비틀림이나 당김에도 강한 저항력을 나타내 물체를 붙잡았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기존에는 주로 실리콘 소재의 단일층 인공피부가 개발되었다. 하지만 이 인공피부를 로봇의 손에 적용했을 경우 스마트폰 등과 같은 물체를 잡는 동작을 하려면 반드시 엄지손가락을 써야만 했다. 반면 이번에 교수팀이 개발한 인공피부는 네 손가락으로도 물체를 단단히 고정시킬 뿐 아니라 물체의 조작성(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과 작업 안정성(물체를 고정할 수 있는 능력)이 기존의 실리콘 소재보다 30%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 인공피부는 의수나 산업용 집게, 산업용 로봇 손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신소재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터리얼스’에 실렸다.

박형순 교수는 앞으로 나사처럼 작은 물체나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물체도 잡을 수 있도록 조작 대상의 크기, 단단함, 표면 특성을 고려해 인공피부의 질감, 두께, 형상을 조절하는 등 용도에 맞는 최적의 피부 구조를 설계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할 계획이다.

한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문승언 박사팀은 사람 피부의 땀샘을 모방한 방열소자를 개발했다. 사람의 피부 표면 온도와 비슷한 섭씨 31도보다 낮으면 표면의 구멍이 닫히고 이보다 높으면 자동으로 열려 열을 방출하는 투명한 박막 형태의 소자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머지않아 땀샘이 있어서 온도조절이 가능한 인공피부가 개발될 것이다. 아직은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과학자들이 만들어낼 완벽한 인공피부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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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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