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월성원전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설 반대 및 주민투표 결과 수용 촉구 기자회견에서 울산 북구 주민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6월 1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월성원전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설 반대 및 주민투표 결과 수용 촉구 기자회견에서 울산 북구 주민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연합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맥스터 7기의 증설에 빨간불이 켜졌다. 법과 제도를 우습게 여기는 산업부가 증설 결정을 떠넘겨 놓았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위원장과 위원들의 사퇴로 좌초해버렸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미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으로 낙인이 찍혀버린 형편에 갑자기 2.1GW를 생산하는 월성 2·3·4호기를 대체할 현실적 방안이 없다. 맥스터를 증설하지 않으면 월성 2·3·4호기는 사용후핵연료가 포화상태여서 가동이 불가능해진다. 탈원전은 60년 후에나 걱정할 일이라던 정부의 억지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린 탈원전이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무의미한 10만년의 굴레

원전 폐기물은 10만년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탈원전주의자들의 단골메뉴다. 채 100년도 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이 10만년이나 되는 기간 동안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위험한 원전 폐기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원전 폐기물에 반감기가 매우 긴 방사성 동위원소가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원전의 전력 생산에 사용하는 우라늄-235의 반감기는 무려 7억년이나 되고, 요오드-129는 반감기가 1570만년이나 된다. 테크네튬-99의 반감기도 21만년이나 된다.

그런데 일반적 인식과 달리 반감기가 길다고 해서 인체와 환경에 더 위험한 것은 아니다. 방사성 동위원소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걸리는 기간을 말하는 반감기는 방사성 붕괴의 속도에 반비례한다. 그래서 반감기가 길수록 방사성 붕괴로 방출되는 방사선의 양은 적어진다. 실제로 반감기가 2배로 늘어나면, 방사선 방출량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반감기가 길다고 무작정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반감기가 긴 방사성 동위원소는 대부분 화학적으로 반응성이 매우 낮은 무거운 금속 원소들이다. 기체 상태로 공기 중에 떠다닐 가능성도 없고, 물에 녹아서 이곳저곳으로 흘러 다니면서 생태계를 위협할 수도 없다. 진흙이나 점토 속에서의 이동·확산을 걱정할 이유도 없다. 산소와 반응해서 부식(腐蝕)이 진행되더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실 오랜 기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원전 폐기물만이 아니다.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서 환경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플라스틱도 쉽게 썩지 않는다. 친환경이라는 태양광 패널도 20년이 지나면 골치 아픈 폐기물로 변해버린다. 유리로 만든 패널은 자연 환경에서 수만 년이 지나도 분해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재활용도 불가능하다.

사실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콘크리트 건물도 언젠가는 썩지 않는 폐기물로 변해버린다. 그렇다고 콘크리트·플라스틱·유리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썩지 않는 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원전 폐기물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영구 처분장

사용후핵연료를 아무 데나 함부로 버려도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선 원자로에서 꺼낸 핵연료에서는 상당한 양의 열이 방출된다. 그래서 원전 내부에 마련해 놓은 대형 물탱크(水槽)에 넣어서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5년 정도 물탱크에 넣어두면 더 이상의 열은 방출되지 않는다. 물탱크의 물이 사용후핵연료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을 차단해주는 역할도 한다.

사용후핵연료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반감기가 짧은 방사성 동위원소들이다. 반감기가 100년이 안 되는 세슘(30.2년), 스트론튬(28.9년), 크립톤(10.76년), 사마륨(88.8년) 등이 그런 원소들이다. 반감기가 짧기 때문에 초기에 방출되는 방사선의 양도 걱정스러울 정도로 많을 수 있다. 물에 잘 녹는 특성을 가진 경우도 있고, 작고 가벼워서 이동·확산이 쉬운 경우도 있다.

다행히 반감기가 짧은 동위원소는 쉽게 붕괴되어 사라진다. 300년이 지나면 방출되는 방사선의 양이 1000분의 1 이하로 줄어든다. 결국 사용후핵연료는 생물이 살지 않는 500m 이상의 충분히 깊은 땅속에 묻어두고, 최대 300년만 관리하면 된다. 인류사적 시간을 크게 넘어서는 10만년이나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부식 속도가 매우 느린 것으로 확인된 스테인리스와 구리를 사용할 수도 있고, 세라믹이나 유리에 넣어 고정시키는 기술도 있다. 깊은 땅속에 묻어두면, 기후변화나 자연재해를 걱정할 이유도 없다. 첨단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으로는 77억의 세계 인구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사용후핵연료의 양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석탄화력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의 양은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에서 만들어지는 사용후핵연료의 1만6000배나 된다.

1978년 이후 우리가 건설한 원자로에서 배출된 사용후핵연료의 총량이 원전의 물탱크에 저장할 수 있을 정도다. 더욱이 사용후핵연료에서 정말 관리가 필요한 방사성 동위원소의 양은 5%도 안 된다.

사실 사용후핵연료를 무작정 폐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사용후핵연료는 재활용이 가능한 소중한 자원이다. 핵연료 생산에 사용하는 농축 기술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고온으로 녹인 후에 전기화학적인 방법으로 우라늄을 선택적으로 회수하는 ‘파이로프로세싱’도 개발되고 있다.

문제는 사용후핵연료를 농축하는 과정에서 분리한 플루토늄을 핵무기로 악용할 가능성이다. 그래서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핵확산금지조약을 준수하는 국가로 인정을 받는다면, 처분해야 할 사용후핵연료의 양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월성원전의 맥스터는 물탱크에 넣어두었던 사용후핵연료를 금속 캐니스터로 옮겨서 장기간 안전하게 보관하는 건식저장시설이다. 2010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7기는 현재 94.18%가 채워진 상황이다. 2030년까지 사용할 맥스터 7기의 추가 건설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10년 맥스터 가동을 시작할 때 마련해놓았던 부지에 대한 안전성·적합성 검토는 오래전에 끝났고, 지난 1월 10일 원안위의 승인도 받은 상태다.

작년 5월에 출범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어떤 법률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초법적 임의 기구다. 재검토위원회가 맥스터의 포화 시점을 4개월 늦춰 잡은 것은 월성원전의 가동률을 떨어뜨리겠다는 말장난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탈핵 시민단체의 거부로 월성 2·3·4호기의 가동을 중단시킬 수는 없다. 밀실에서 어설프게 만든 ‘공약’이 국회가 정한 ‘법률’을 넘어서는 것은 촛불민심이 염원했던 ‘법치’가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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