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을 하는 남방큰돌고래. ⓒphoto 셔터스톡
사냥을 하는 남방큰돌고래. ⓒphoto 셔터스톡

동물들의 먹이 사냥 기술은 매우 다양하다. 특히 돌고래가 사냥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여러 마리의 돌고래들이 먹이를 발견하면 협동심을 발휘해 마치 사냥개가 사냥감을 몰아가듯 사냥하기도 하고, 수면 가까이에서는 한 마리의 돌고래가 꼬리로 원을 그리며 흙탕물을 만들어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특별한 사냥 기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초음파를 속사포로 쏘아대며 먹이의 위치와 거리를 파악해 빠른 속도로 사냥하는 돌고래. 이들은 사회적 학습이 필요한 사냥 기술을 누구로부터 배우는 것일까.

소라 껍데기 도구 삼아 먹이 낚아

호주 서부 샤크만 지역에 서식하는 커다란 돌고래 한 마리가 알알이 부서지는 바다 거품을 뿌리면서 수면 위로 솟구치고 있다. 물속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기 위해 몸을 내민 남방큰돌고래(Indo-Pacific bottlenose dolphin)의 모습이다. 수면 위로 올라온 녀석은 잠시 소라 껍데기를 흔들어 물을 빼내더니 먹이를 바로 입속으로 흡입한다. 사람이 물고기를 잡을 때 뜰채를 사용하듯, 달팽이나 소라 같은 복족류 껍데기를 도구 삼아 먹이를 낚은 것이다. 도구를 사용하는 이 기술은 일명 ‘셸링(shelling)’이라고 부른다.

보통 돌고래의 사냥 기술이나 생존 방식은 어미에게서 배운다. 그리고 위 세대에서 아래 세대로 세대를 이어 계속 전승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어미의 행동을 그대로 흉내 내는 학습을 받게 된다. 그런데 스위스 취리히대학 인류학부 마이클 크뤼젠(Michael Kr tzen) 교수와 독일 콘스탄츠대학 소냐 와일드(Sonja Wild) 박사의 공동연구팀은 돌고래의 사냥 기술이 어미는 물론 동료로부터도 전달된다고 밝혔다. 지난 6월 26일 자 생물 분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를 통해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팀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호주에서 남방큰돌고래의 행동을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남방큰돌고래 무리와 약 5300차례에 걸쳐 접촉했고, 1000여마리를 대상으로 집단 내에서의 사회적·유전적 행동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먹이를 잡는 남방큰돌고래의 셸링 기술이나 생존 방식이 어미로부터 새끼에게 전달되는 것은 기본이고, 같은 집단끼리도 기술을 서로 배워 나간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남방큰돌고래는 흔히 5~15마리씩 무리 지어 다닌다. 하지만 100마리 가까이 무리를 짓는 경우도 있다. 수명은 약 40년. 12개월의 임신기간을 통해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 것이 특징인데, 새끼는 3~6년간은 어미와 함께 다니고 인도양과 서태평양의 열대 및 온대 해역 연안에 주로 서식한다.

연구팀은 어미와 함께 다니면서 사냥 기술을 배우는 돌고래들이 어떻게 같은 무리 사이에서 기술을 전수받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여러 사항을 조사한 끝에, 2011년 짧은 기간 일어났던 해수 온도의 상승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당시 바닷물이 갑자기 따뜻해지면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어류와 무척추동물이 사라졌는데 결국 이 먹이 고갈이 남방큰돌고래들이 새로운 먹이 사냥 기술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고, 그때 죽은 많은 복족류의 껍데기를 이용해 다른 작은 물고기들까지 잡아먹을 수 있는 셸링 기술을 학습할 기회를 늘렸을 것이라는 게 와일드 박사의 설명이다.

보통 육상동물은 작은 동물이 더 자그마한 먹이를 잡아먹고, 거대동물은 비교적 큰 동물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왕고래처럼 몸집이 큰 고래는 이빨이 잘 발달하지 않아 바닷물과 함께 휩쓸려오는 몸길이가 고작 수㎝에 달하는 크릴새우나 플랑크톤을 잡아먹는다. 먹이의 크기는 아주 작지만 섭취하는 먹이의 총량이 작은 고래들에 비해 훨씬 많다. 몸집이 거대한 비결이다. 반면 크기가 작은 고래는 이빨이 비교적 잘 발달해 있어서 해저로 들어가 커다란 먹이를 잡아먹는다. 고래는 크게 수염고래아목과 이빨고래아목으로 나뉘는데, 수염고래아목에 속하는 긴수염고래나 밍크고래는 긴 수염이 달려 있어서 물을 빨아들이고 난 후 수염으로 거른 크릴을 섭취한다. 이빨고래아목에 속하는 범고래와 향유고래, 돌고래 등은 종류에 따라 작은 어류부터 큰 포유동물까지 사냥해서 잡아먹는다.

고래의 몸길이는 대개 수~수십m 정도. 남방큰돌고래의 몸길이는 평균 2.6m에 이르고, 몸집이 가장 큰 종인 대왕고래는 30m가 넘는다. 현존하는 육상동물 중 가장 몸집이 큰 코끼리(5~7m)와 비교해 봐도 어마어마하다. 고래가 이렇게 큰 몸집을 가진 비결은 육지에서보다 바다에서 중력의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이다.

소라 껍데기를 사냥 도구로 삼는 남방큰돌고래. ⓒphoto sci-news.com
소라 껍데기를 사냥 도구로 삼는 남방큰돌고래. ⓒphoto sci-news.com

영장류의 방추세포 보유

연구팀은 특히 샤크만의 암컷 남방큰돌고래들은 새끼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친척 관계에 있는 다른 암컷 남방큰돌고래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돌고래들은 암놈과 수놈이 짝짓기 시기를 제외하고는 각각 따로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새끼를 돌보는 암컷들은 짝짓기 이후 수컷들이 찾아올 경우 새끼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공동으로 무리를 지어 수컷이 찾아오면 목숨을 걸고 어린 새끼를 지켜낸다. 다른 고래류에서도 어미가 아닌 다른 암컷이 새끼 고래들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같은 집단의 무리 사이에서 셸링 기술과 효율적 생존 전략을 전달하는 남방큰돌고래의 행동은 유인원이나 인간 공동체의 행동과 비슷하다. 어미가 새끼에게만 전달하는 훈련 방식보다 동료들끼리 서로 학습하는 방법은 집단 내에서의 전파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집단에 어떤 환경 변화가 일어났을 때 적응도 빠르고 그 변화에서 살아날 가능성도 높다.

해양 포유류인 돌고래는 육상의 포유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서식한다. 그럼에도 유인원이나 사람과 비슷한 복잡한 사회적 진화와 행동에 대한 학습 능력을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먹이 사냥 기술의 전달 능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래가 먹이 사냥 때 작전을 짜고 협동하는 영리한 행동이 가능한 것은 영장류의 뇌에만 있는 줄 알았던 방추세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방추세포는 사랑과 고통 같은 감정을 느끼고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빠른 반응을 하도록 돕기 때문에 복잡한 사회 활동을 하는 데 중요하다. 혹등고래, 참고래, 향유고래, 범고래 등의 대뇌피질에서 발견되었고, 상대적으로 뇌의 크기가 작은 고래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를 이끈 와일드 박사는 연구팀의 연구가 남방큰돌고래뿐만 아니라 다른 고래류 무리에서 사회적 학습이 필요한 사냥 기술 등이 어떻게 전달되고 유지되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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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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