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환경부 장관을 비롯해 수돗물안전관리 상황실장 등이 수돗물 유충 발생 관련 정수장 대응상황 점검차 지난 7월 28일 서울 성동구 뚝도아리수정수센터를 방문, 조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활성탄흡착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을 비롯해 수돗물안전관리 상황실장 등이 수돗물 유충 발생 관련 정수장 대응상황 점검차 지난 7월 28일 서울 성동구 뚝도아리수정수센터를 방문, 조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활성탄흡착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뉴시스

수돗물에서 벌레가 나왔다는 듣도 보도 못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인천에서 지난 7월 9일의 첫 신고 이후 7월 27일까지 무려 253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전국에서 800건이 넘는 비슷한 신고가 빗발쳤는데 유독 인천에서만 깔따구와 나방파리의 유충(幼蟲)이 확인된 모양이다. 지난해 5월 붉은 수돗물(赤水) 사고를 저질렀던 공촌·부평 정수장이 또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인천시의 변명이 몹시 옹색하다. 무려 39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고도 정수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인천시의 수도행정은 해체 수준의 개혁이 필요한 형편이다.

인체 유해성이 문제가 아니다

모름지기 수돗물은 무색·무미·무취가 기본이다. 지자체가 생산하는 수돗물은 60개 항목으로 구성된 세계 최고 수준의 ‘먹는 물 수질기준’을 정해놓고 엄격하게 관리한다. 그런데 벌레는 수질기준에 들어 있지 않다. 원칙적으로는 유충이 들어 있는 인천 수돗물도 수질기준을 만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벌레가 꿈틀거리는 수돗물을 정상적인 수돗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깔따구의 유충은 ‘학술적’으로 인체에 위해성이 보고된 바 없다는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의 입장은 사태의 본질을 완전히 벗어난 해괴망측한 궤변이다. 수돗물에서 유충 몇 마리가 나왔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일부 전문가의 지적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인천 주민들의 거부감은 ‘곤충에 대한 혐오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벌레에 대한 심한 거부감은 평소에 곤충에 대한 호감이나 혐오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깨끗해야 할 수돗물에 들어 있는 모든 이물질이 혐오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만에 하나 붉은 수돗물에 녹아 있는 철(鐵) 성분이 빈혈을 예방해주고, 유충에 들어 있는 단백질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수돗물은 빈혈 예방이나 단백질 섭취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상(粒狀) 활성탄 여과지의 역류(逆流) 세척을 충분히 자주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는 인천시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활성탄은 초미세먼지보다 훨씬 더 작은 분자들이 달라붙을 정도로 미세한 세공(細孔)의 흡착력을 극대화시킨 고운 숯가루를 말한다. 여름철 녹조에서 방출되어 흙냄새를 풍기게 만드는 지오스민과 같은 맛·냄새 물질을 제거해주는 필터 역할을 한다.

그런 활성탄은 항상 물속 깊숙한 곳에 잠겨 있기 마련이다. 날아다니는 곤충인 깔따구가 깊은 물속까지 잠수해서 활성탄에 알을 낳을 능력은 없다. 더욱이 부화된 유충이 활성탄 입자들 사이의 좁은 틈새를 뚫고 빠져나가서 소비자의 가정까지 흘러갔다는 주장도 과학적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사실 4급수의 지표생물인 깔따구나 나방파리와 같은 곤충은 절대 정수장의 깨끗한 물에 알을 낳지 않는다. 그런 물에는 유충의 생존에 필요한 영양성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취수·착수·혼화·응집·침전·여과의 표준정수처리 과정에서 염소 소독까지 마친 깨끗한 물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수돗물에 대한 신뢰 회복해야

정수장 전체에 대한 정밀 점검이 필요하다. 떠들썩한 ‘전수(全數)’ 조사가 능사일 수는 없다. 수돗물에서 살아있는 벌레가 발견된 것은 기계적 결함이나 오작동에 의한 녹물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정수장 어딘가에 깔따구가 산란 장소로 탐낼 만큼 유기물이 넉넉하게 들어 있어서 썩어버린 물웅덩이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실제 깔따구가 산란을 했던 곳의 흔적은 이미 사라져버렸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유충이 고운 모래로 만든 표준 여과지와 활성탄으로 만든 고도 여과지를 어떻게 빠져나갔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필요하다. 활성탄 여과지의 구체적인 구조와 오염 상태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

단순히 염소 소독을 강화하고 오존 소독을 도입한다고 유충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세균·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을 제거하기 위한 염소·오존 소독으로는 유충을 죽이기가 어렵다. 자칫하면 지나친 염소 소독이 수돗물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을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소독으로 유충을 죽이더라도 유충의 사체(死體)는 여전히 수도관을 따라 소비자에게 흘러가게 된다. 유충과 같은 이물질이 여과지에서 확실하게 걸러지도록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소비자의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인천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벌레 소동은 대부분 소비자가 관리해야 하는 물탱크나 하수구에서 유입된 것으로 밝혀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수돗물 사용 환경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상수도 사정이 좋지 않았던 1970년대에 연탄보일러 때문에 필요했던 물탱크는 더 이상 고집할 이유가 없다. 요즘의 가스보일러에는 고도의 전자제어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공동주택의 물탱크 관리에도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써야만 한다.

수돗물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물론 지자체가 먹는 물 수질기준에 맞는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생산·공급할 수 있도록 정수장 시설도 개선해야 한다. 외부에 노출된 여과지는 우리의 경제력과 삶의 질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무작정 고도 정수시설을 설치한다고 수돗물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정수장은 아무나 버튼만 누르면 작동되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상수도사업본부의 기술직 인원을 감축하고 있는 현실을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쏟아부어서 만든 깨끗한 수돗물을 먹는 물로 사용하는 소비자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것이다. 무작정 수돗물을 거부하고, 정수기와 생수에만 집착할 일이 절대 아니다. 굳이 정수기를 사용해야 한다면 철저한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복잡한 첨단 기능보다는 쉽게 관리할 수 있는 정수기가 훨씬 더 유리하다.

생수에 대한 집착도 절제해야 한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생수 업체의 마케팅은 경계해야 한다. 앞에서는 ‘그린’을 외치면서, 돌아서서는 생수병을 마구 버리는 자가당착은 사라져야 한다. 생수의 생산과 운반에는 상상을 넘어서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비용이 낭비된다. 결국에는 미세플라스틱으로 버려지게 될 PET 생수병을 제조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수돗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는 고약한 엉터리 상술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소비자 운동이 필요하다. 몸에 좋은 물이 따로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광고는 대부분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엉터리일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의 얄팍한 주머니를 노리면서 오히려 건강을 위협하는 육각수·이온수·심층수·전해수와 같은 엉터리 물은 더 이상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수돗물의 염소 냄새를 무작정 거부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염소 냄새가 나지 않는 수돗물은 자칫 미생물 오염을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약한 염소 냄새는 냉장고에 넣어두거나 끓이면 쉽게 제거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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