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실험을 통해 종(種)의 수준을 높이겠다고 밝힌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photo 뉴시스
돼지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실험을 통해 종(種)의 수준을 높이겠다고 밝힌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photo 뉴시스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괴짜에서 세계적인 부호로 거듭난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세계적인 난제들에 단순한 해법을 제시한다. 만약 교통체증 탓에 낭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면? 그가 만들고 있는 하이퍼루프를 타면 된다. 지하에 뚫린 이 새로운 교통수단은 시속 1000㎞로 목적지에 데려다줄 것이다. 탄소 배출로 기후변화가 문제라면 테슬라가 만든 전기차를 타면 된다. 더 나아가 지구가 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지는 게 두렵다면? 화성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을 수 있다. 머스크가 만든 스페이스X는 화성을 개척해 이주하는 걸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 또 다른 난제가 있다. 알파고가 증명했듯이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가 인류를 앞지를 것 같아서 생기는 두려움이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지 모른다는 디스토피아 예측에 머스크가 내놓은 해법은 단순했다. 인간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 종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을 쓰면 된다. 머스크가 만든 또 다른 회사, 뉴럴링크(Neuralink)는 이 방법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지난 8월 28일(현지시각), 유튜브를 통해 결과물을 공개했다. 이날 머스크와 함께 등장한 건 ‘거트루드(Gertrude)’라는 이름을 가진 돼지 한 마리였다. 다만 이 돼지는 2개월 전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한 ‘비범한’ 돼지다.

뇌에 컴퓨터 칩 이식한 비범한 돼지의 출현

돼지에 이식한 칩은 2세대 뉴럴링크 기기다. 지름 23㎜, 두께 8㎜의 동전 모양인데 돼지의 뇌파를 초당 10메가비트 속도로 외부에 전송한다. 충전식 배터리로 작동하는데, 피부를 통해 무선으로 충전할 수 있다. 머스크는 칩을 두개골 속 ‘핏빗’이라고 표현했다. 핏빗은 운동량이나 심장 박동 등을 측정하는 스마트워치다. 현재는 뇌 피질을 건드려 이식하는 정도지만 최종 완성을 위해서는 신경이 몰려 있는 뇌의 안쪽인 회색질에 칩을 심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원래 머스크는 2020년까지 인간의 뇌에 칩을 심겠다고 공언했다. 먼저 척수가 손상된 마비 환자에게 칩을 이식하겠다고 했고, 2024년쯤 보통의 건강한 사람에게 칩을 심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단계까지 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까지 칩을 심은 대상은 쥐와 원숭이, 그리고 돼지에 불과하다. 행사 내내 언제 인간에게 시험할 것이냐는 질문이 줄곧 따라다녔지만 머스크는 이를 능숙하게 피해 다녔다.

이날 보여준 돼지의 모습에, 그리고 돼지가 킁킁거리는 냄새 데이터가 단말기에 뜨는 장면에 15만명의 시청자가 흥분했지만 ‘볼 게 없다’는 시선도 있었다. 신경 인터페이스 전문가인 앤드루 잭슨 뉴캐슬대학 교수는 “가장 큰 도전은 이 모든 두뇌 데이터로 무엇을 하느냐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시연이 별로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이전에 행해진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뇌에 칩을 심는 것이 사실 새롭지는 않다. 파킨슨병 같은 경우 이미 전기자극치료법을 활용하고 있다.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가는 절연선으로 된 전극을 삽입한 뒤 뇌를 자극하는 치료법이다. 미국이나 중국의 대학에서는 사람의 뇌에 칩을 이식한 뒤 로봇팔과 동기화해 움직이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뉴럴링크는 이런 단계를 넘어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수준까지 진입하길 원한다. 칩을 통해 생각을 전송하고 뇌파로 상대방과 소통하는 수준까지 도달하고, 나아가 컴퓨터에 내 기억을 저장하고 로봇에 내 의식을 이식하는 단계까지 가는 게 최종 완성형이다. 반면 이날 유튜브에 공개한 프로토타입은 머스크의 야심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다른 연구소나 기업들이 개발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Computer Interface)와 필적할 만한 증거는 볼 수 없었다. 돼지의 뇌가 뇌파를 전송할 때마다 들려오는 스피커의 벨 소리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학계 사정을 잘 모를 뿐이다. MIT테크놀러지리뷰는 “신경과학자들에게 그런 소리는 새로운 게 아니다. 그들은 실험실에서 동물의 뇌에서 녹음된 전기자극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수십 년 동안 듣고 있다”고 꼬집었다. 뉴럴링크 사례보다는 지난해 컬럼비아대 신경과학 연구팀이 뇌파를 인지 가능한 음성 기술과 결합하는 데 성공했던 조용한 사건이 훨씬 혁신적인 결과물이다.

유튜브 공개 행사가 있기 전에는 폭로 기사가 나왔다. 지난 8월 25일, 미국 의료전문 매체인 스탯(Stat)은 뉴럴링크 내부의 혼란을 다뤘다. 익명의 내부 직원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기업의 속도와 느리고 점진적인 의학 기기의 속도가 충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공개 행사를 위해 엄청난 속도로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면서 이런 문화 충돌이 있었고, 뉴럴링크 설립 때 있었던 과학자 8명 중 지금은 3명만 남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CES 2020에서 뇌파를 읽어내는 헤드셋을 체험해보고 있는 한 여성. ⓒphoto 뉴시스
CES 2020에서 뇌파를 읽어내는 헤드셋을 체험해보고 있는 한 여성. ⓒphoto 뉴시스

BCI에서 겨루는 머스크 vs 저커버그

새로운 것 없이 공개를 서둘렀다면 머스크는 왜 그랬을까. 이 시장은 생각보다 치열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 실리콘밸리는 “무엇인가에 충분한 돈을 투자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며 문제에 접근한다. 머스크의 도전이 다른 곳보다 각광받았던 이유는 그가 세계적인 부호이며 무한대의 투자가 만들어내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바닥에 뛰어든 머스크 같은 사람은 또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에 관심이 많다. 저커버그는 이미 2017년 ‘브레인-바이-브레인(Brain-by-Brain)’ 프로젝트를 내부에서 공유했다. “우리의 두뇌는 초당 4편의 HD 영화를 스트리밍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정보를 세상으로 내보내는 방법이 1980년대 모뎀과 비슷한 양의 데이터만 전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러분의 뇌에서 직접 타이핑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오늘날 여러분이 휴대폰으로 칠 수 있는 것보다 약 5배나 빠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착용 가능한 기술로 바꾸고 싶다.”

저커버그의 약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지난해 9월 페이스북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스타트업인 ‘컨트롤랩스(Ctrl-labs)’를 인수했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인수 가격이 대략 5억~10억달러로 추정됐을 정도의 큰 거래였다. 이 회사는 머스크가 선택한 뇌에 침습해 기기를 이식하는 방법이 아니라 비침습 기술을 활용한다. 헤어밴드처럼 생긴 기기를 머리에 쓰고 뇌세포의 혈액 산소 공급을 측정해 뇌파를 해독하는 방식이 그런 기술 중 하나다.

저커버그처럼 비침습성 방식을 택한 슈퍼리치는 또 있다. 모바일 결제서비스인 브레인트리(Braintree)를 페이팔에 8억달러를 받고 매각한 브라이언 존슨도 대표적인 BCI 사업가다. 그는 브레인트리 매각 대금 중 1억달러를 새로 만든 스타트업 ‘커널’에 투자하기로 했다. 이 회사의 초기 목표는 알츠하이머 등 기억력이 사라지는 사람들을 돕는 기기를 고안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뇌 속에 칩을 이식하는 걸 생각했지만 결국 웨어러블 기기로 선회했다.

BCI에 뛰어든 이들은 이런 장치들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의료적 접근이다. 하지만 더 큰 시장은 따로 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인간이 디지털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기할 수 있다. 내가 생각만으로 집안에 스마트 장치를 제어할 수 있다면? 이런 시장을 선점하는 기업은 엄청난 이익을 누릴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밸류에이츠는 BCI 시장 규모가 2019년 13억6000만달러에서 2027년에는 35억85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2020~2027년 사이 평균 성장률이 14.3%다.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 환자를 고객으로 삼는 게 우선 목표가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BCI를 접목한 게임산업과 스마트홈이 블루오션이다. 머스크는 인공지능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뇌를 컴퓨터에 직접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고 뉴럴링크의 칩이 의료계를 벗어나 ‘일반인들의 장치’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앞선 시장 전망과 같은 맥락이다.

머스크 앞의 난제 “두개골을 열게 해달라”

비침습성 기기로 뇌를 공략하겠다는 저커버그보다는 뇌에 칩을 이식하겠다는 머스크 앞에 놓인 과제가 더 어렵다. 이걸 ‘사람’에게 테스트해야 한다는 건 큰 장애물이다. 작은 칩이다 보니 뇌 속에서 부식될 수 있다. 칩이 작아질수록 이런 문제는 심각해진다. 뇌 속에서 염증이나 출혈이 일어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신경과학자로 커널에 참여하고 있는 데이비드 이글맨 스탠퍼드대 외래교수는 “신경외과 의사들은 반드시 필요할 때 외에는 그 어떤 뇌수술도 하지 않는다. 칩을 뇌에 이식한다는 아이디어는 시작부터 불운하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사람에게 “당신의 뇌 속에 칩을 심겠다”는 허락을 구하는 건 더 큰 어려움이다. 머스크가 자신의 말을 현실로 만들려면 임상시험을 통해 제품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해야 한다. 게다가 일반인을 위한 장치가 되려면 건강한 사람들이 두개골을 열어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와이어드는 이번 돼지 공개 시연의 의도를 이 지점에서 찾았다. “건강한 사람들의 두개골을 열도록 설득이 필요한데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을 거느린 머스크가 성공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뇌에 이물질을 넣는다는 건 위험한 의료행위라 엄격한 승인 절차가 뒤따르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수년간의 임상이 필요할 거고 머스크가 재촉하더라도 미 식품의약국(FDA)의 시간은 훨씬 여유롭고 느릿느릿하다. 머스크는 “칩 수술을 라식 수술처럼 간단하게 만들겠다”며 이번에 수술 로봇을 공개했지만 FDA가 뇌에 칩을 이식하는 수술을 라식 수술 정도로 간단하게 판단할 리 없다.

실리콘밸리의 부유한 투자자들은 만들기도 전에 자신들이 이루고 싶은 기술을 설명하면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덕분에 BCI는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아직 제대로 시장이 형성되지 못한 분야에 이미 부작용을 경고하는 보고서가 나오는 것은 이런 유명세 덕분이다. 1년 전인 2019년 9월 영국왕립학회는 향후 수십 년 안에 신경 인터페이스 혁명이 올 것이라 예측하며 대표적인 위험을 경고했다. 학회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뇌 데이터의 상업화다. 나의 뇌 속에 있는 가장 사적인 부분이 내 개인정보와 결합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소셜미디어가 친구를 추천하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광고가 날 따라다니며 구매를 유도하는 일이 반갑지만은 않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다른 신기술과 마찬가지로 BCI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실현 가능할까,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머스크나 저커버그가 첫 번째 물음에 집중하는 동안 우리는 두 번째 물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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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국제·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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