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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4호]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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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의 최전선]‘암흑물질 사냥꾼’ 김선기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누구

최준석  선임기자 jschoi@chosun.com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 힘들지만, 김선기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지난 8월 20일 6개월 체류 예정으로 출국했다. 목적지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 이곳에서 예정된 GBAR 실험에 들어가는 장비를 갖고 갔다. 현지 학생들과 함께 장비를 설치하고 다른 장비들과 잘 연결해 가동하는지를 지켜볼 예정이다.(GBAR는 The Gravitational Behavior of Antihydrogen at Rest의 약자다. 정지상태에 있는 반수소의 중력행동이라는 뜻이다.)
   
   지난 8월 11일 서울대 물리학과 연구실로 찾아가서 김 교수에게 제네바에 가져가는 장비는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여기 없고, 고려대 세종캠퍼스에 있다”라고 했다. 고려대 세종캠퍼스에는 ‘가속기과학과’라는 낯선 학문 분야가 있다. 중이온가속기, 의료용가속기, 방사광가속기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는 “세종캠퍼스에 필요한 공간이 있어, 그곳에서 장치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컴퓨터 모니터에 장치 이미지를 띄워 보여줬다.
   
   장비는 스테인리스스틸 빛깔의 쇠로 보이고, 크기는 가로세로 2.5×2.5m 정도다. 내부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김 교수는 “양성자의 반물질인 반양성자를 붙잡아놓는 장치다. 여기에서 반양성자들을 다음 장치에 보내게 된다”라고 했다. 반물질(anti-matter)은 물질(matter)과 다른 물리적 성질은 똑같으나 전하만 다르다. 양성자는 +전하이니, 반양성자는 –전하를 가진다. 고려대 세종캠퍼스의 김은산 교수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정모세 교수 등 모두 7~8명의 한국 그룹이 이 장비를 만들었다.
   
   
   고려대 출신이 서울대 교수 돼 화제
   
   김선기 교수는 왜 이런 연구를 할까? 그는 한국에서 암흑물질 실험을 처음 시작한 실험입자물리학자로 유명하다. 김 교수는 “박사학위를 1988년에 받았으니까, 내 연구 히스토리가 길다”라며 자신의 연구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은 건 고려대였고, 1992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가 비(非)서울대 출신으로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되었다고 해서 당시 크게 주목받았다. 검색을 해보니, 중앙일보가 크게 보도한 기사가 있다. 김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얘기했다. “학위가 끝나고 일본 KEK(일본 고에너지 가속기연구기구)의 AMY 실험을 하다가 미국에 갔다. 미국이 짓고 있던 차세대 입자가속기(SSC·초전도초충돌기) 쪽에서 새로운 입자검출기를 개발하는 일을 하다가 서울대로 오게 됐다. 미국 정부가 당시 한국에 SSC 참여를 요청하였고, 한국 정부는 이에 따라 참여를 결정했다. 서울대도 SSC 참여를 결정하고 이에 필요한 사람을 뽑았다. 그래서 내가 서울대에서 일하게 됐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 SSC 가속기 실험 참여를 위해 실험입자물리학자들로 위원회를 만들었다. 당시 위원장이 김제완 서울대 교수였다. 김 교수는 “SSC의 어떤 실험에 한국이 참여할지, 어떤 일을 한국 그룹이 할지를 논의하였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SSC가 1993년 갑자기 중단되었다. 과도한 비용을 이유로 미국 의회가 제동을 걸었고, 빌 클린턴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입자물리학계가 가속기 실험을 시작할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 서울대에 오고 다음해에 일어난 이 일로 김선기 신임교수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김선기 교수는 새로운 실험을 찾아야 했다. 1992년부터는 일본 KEK의 또 다른 입자가속기를 이용한 실험인 벨(Belle) 실험에 참여했고, 1994년부터는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의 D0(D제로) 실험에 참여했다. D0 실험은 페르미연구소가 갖고 있던 입자가속기 테바트론에 붙어 있던 입자검출기로 하는 실험이었다.
   
   
   KIMS 실험 주도하는 세 명의 ‘김씨들’
   
   해외 실험에 참여해온 김 교수는 1997년 한국에서 독자적인 입자물리실험을 모색했다. 그게 KIMS 실험이다. KIMS 실험은 암흑물질을 찾는 실험이다. KIMS라는 이름은 영어 ‘Korea Invisible Mass Search’의 첫 글자 네 개를 따서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김씨들’ 실험이라고 해석했다. 그 김씨들이 김선기·김영덕(서울대 원자력공학과)·김홍주(고려대 물리학과 박사) 교수다. 김영덕은 현재 IBS지하실험연구단 단장이고, 김홍주는 경북대 물리학과 교수다. 김선기 교수는 세 사람이 뭉친 시기에 대해 “1997년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김영덕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학위를 하고 인디애나대학을 거쳐 KEK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가 세종대학에 자리를 잡기 전이었다. 김선기 교수도 KEK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알게 되었다. 김홍주 교수는 고려대 물리학과 1년 후배다.
   
   “우리는 30대 후반이었고, 에너지가 넘쳤다. 아이디어도 많았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얘기했다. 가속기 실험을 한국에서 하는 건 생각도 못할 때였다. 암흑물질, 중성미자 검출 실험은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 연구비 제안서를 여러 번 썼다. 그러다가 2000년에 창의연구단 사업에 선발되면서 KIMS 실험이 탄력을 받게 됐다.”
   
   당시 김선기 교수는 일본 KEK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고, 칼로리미터를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벨 실험의 칼로리미터에 들어가는 CsI(약간의 탈륨을 섞은 요오드화세슘) 결정 20~30개를 얻어왔다. 그때가 1998~1999년쯤이었다. 일본 KEK의 후쿠시마 마사키 교수가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후쿠시마 교수는 지금은 도쿄대학 우주선연구소 소속이다. 현재 미국 유타주 사막에서의 우주선 검출 실험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으며, 박일흥 성균관대 교수가 이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일본의 AMY 실험에 참여한 바 있다.
   
   암흑물질 실험은 지하에서 해야 한다. 지하에 내려가야 배경 잡음이 줄어들고, 암흑물질 신호를 검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 교수는 “당시 컬럼비아대학의 이원용 교수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하늘’이라는 우주선-암흑물질 검출 실험이 있었다. 시작은 했지만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 이 실험의 중심멤버 중에 경상대 송진섭 교수(퇴직)님이 경남 산청의 양수발전소를 실험 장소로 물색한 바 있다. 송 교수님은 고려대 김종오 교수님의 제자다”라고 했다.
   
   
▲ 경기도 청평양수발전소 지하에 한국 최초의 지하 암흑물질 실험(KIMS)장비를 설치하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은 KIMS 연구진. 오른쪽 두 번째가 김선기 교수이고, 오른쪽 다섯 번째가 김영덕 현 IBS지하실험연구단 단장이다. photo 김선기 교수

   양수발전소 지하를 이용해 실험
   
   여기서 힌트를 얻어 수도권에서 가까운 양수발전소를 찾았다. 청평양수발전소가 가장 가까웠다. CsI 크리스털을 갖고 청평양수발전소 지하로 내려갔다. 발전소 측은 협조적이었다. 발전소 지하공간에 차폐재를 설치하고 공간 안에 CsI 크리스털을 넣고 배경 방사능 측정을 했다. 세슘 137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감마선의 특정한 피크(peak)가 보였다. 그럴 리가 없었다. 김 교수는 “누가 소스(source)를 놓고 측정했느냐”고 야단을 쳤다. 실험실에서 검출기 교정(calibration)을 위해 사용하는 세슘 137 동위원소 피크가 지하 실험 장소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CsI 크리스털 안에 세슘 137이 들어 있었다. 지상에서는 다른 잡음 때문에 보이지 않던 신호가 지하에서는 보인 것이었다. 세슘 137 동위원소는 반감기가 30년이어서 CsI 크리스털 안에 들어 있을 수 없다.(세슘의 동위원소 중 안정된 것은 세슘 133으로, CsI 크리스털은 세슘 133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내부에 들어 있었고, 그 이유를 따져봤다. 여러 종류의 물, CsI 파우더, 크리스털에 대한 방사능 측정을 한 결과, CsI 크리스털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간 지하수가 오염된 걸로 판단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핵폭탄 실험을 지구촌 곳곳에서 하면서 세슘 동위원소가 전 지구에 퍼져나갔던 것이다. 그 세슘에 지하수가 오염되어 있었다. 크리스털을 정화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물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결국 독일에 있는 기업을 찾아갔다. 크리스털의 재료인 CsI 분말부터 새로 만들어 초(超)순수 크리스털을 개발하게 되었다.”
   
   김 교수가 컴퓨터 속에서 옛 사진 파일들을 찾아 보여줬다. ‘암흑물질 탐색실험’이라고 쓴 사각형의 가건물이 뒤에 보이고 그 앞에 7~8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고향식당’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김 교수는 “청평 시절 자주 다녔던 식당”이라고 말했다. 사진 속에는 김영덕 IBS지하실험연구단 단장, 김홍주 경북대 교수, 연세대 권영준 교수가 보였다. 김 교수가 제자이던 이현수 대학원생(현 IBS지하실험연구단 부연구단장)이 돕는 가운데 톱을 들고 중성자 차폐를 위해 설치할 흰색의 폴리에틸렌 자재를 자르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청평에서 3~4년 실험하고, 2003년 강원도 양양으로 실험 장소를 옮겼다. 더 깊은 지하, 그리고 조금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점봉산 아래 양양양수발전소 지하공간에 실험장비를 설치했다. “발전에 필요한 지하공간을 만드는 폭파 작업 중, 생각보다 암반이 더 떨어져나간 곳이 있었다. 모서리 공간이었는데, 정확히 우리가 필요한 크기여서 그곳을 사용했다. 천우신조라고 생각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국제 실험으로 확대된 KIMS 실험
   
   장비를 개발하고 배경 방사능을 줄이고 순수한 CsI 결정을 새로 개발하는 데 시간이 5~6년 지나갔다. 논문을 많이 쓰지 못했다. 창의연구는 3년, 3년, 3년 해서 잘하면 9년간 연구비를 연구재단으로부터 지원받는다. 3년마다 하는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에 그렇다. 그런데 KIMS 실험은 6년이 됐을 때, 즉 2006년 두 번째 심사에서 탈락했다. 김선기 교수는 이후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연구를 계속 열정적으로 했다. KIMS 연구는 CsI 결정 1개로 시작했고, 결정 4개를 사용한 실험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2007년에는 미국 학술지 PRL(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연구 논문을 냈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이현수 박사가 제1저자다. 논문이 실린 건, 창의연구과제 중간 심사에서 탈락하고 다음 해에 올린 큰 성과였다. 김 교수는 “입자물리 실험에서 외국 시설이 아니고 한국에서 한국 연구진이 실험 계획, 장치 개발, 실험 진행을 직접 수행한 결과를 PRL 논문으로 최초로 실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생긴 WCU(World Class University·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사업)라는 게 있었다. 연구비가 떨어져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마침 이 프로그램이 생겼다. 김 교수는 “WCU는 논란도 있었지만 KIMS 실험에는 큰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스티브 올슨 당시 미국 하와이대학 교수(일본 KEK의 AMY 실험, 벨 실험 대표 역임)를 WCU 프로그램으로 초빙했다.
   
   그리고 중성미자의 성질을 연구하기 위한 이중베타붕괴 검출 실험을 2006년쯤 시작했다. 김홍주 경북대 교수가 아이디어를 낸 이 검출 실험은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이 참여하는 국제 공동연구로 발전하여 AMoRE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양양에 간 뒤에 이중베타붕괴 검출 장비에 필요한 CaMoO4 결정을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개발했고, 저온실험장치 R&D에서는 한국표준연구원의 김용함 박사의 지원을 받았다. 김용함 박사는 현재 IBS 지하실험연구단에 부단장으로 합류하여 AMoRE 실험의 주축이다.
   
   KIMS 실험은 지금은 COSINE 실험으로 이름이 달라졌다. 미국 예일대 그룹, 영국 셰필드대학이 참여하면서 한국 실험에서 국제 실험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KIMS 실험의 첫 박사 배출자인 이현수 부단장이 예일대학의 레이나 마루야마 교수와 함께 공동 대표를 맡아 실험을 이끌고 있다.
   
   김선기 교수는 2011년 11월 KIMS 실험에서 손을 뗐다. IBS가 건설하기로 한 중이온가속기 건설단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입자물리학자가 중이온가속기 책임자가 된 걸 두고 갑론을박이 많았고, 결국 그는 3년 후인 2014년 서울대로 복귀했다.
   
   50대 중반이었다. 그는 뭘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학교에서 은퇴하기까지는 10년이 남은 시점이었다. “연구 의욕을 잃었다. 몸도 안 좋았다”라고 그는 그때를 돌아봤다. 가속기 실험으로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암흑물질 실험을 국내에 정착시킨 그다. 이제 암흑물질 실험은 KIMS를 만든 세 명 중의 한 명인 김영덕 교수가 잘 이끌고 있었다. KIMS 그룹은 IBS에 들어가 지하실험연구단이란 이름으로 열심히, 그리고 잘하고 있었다. 김선기 교수가 여기에서 할 일은 크게 없었다. IBS 중이온가속기건설단장을 맡아 서울대학교에서 떠나 있었기에 랩도 다시 재건해야 했다.
   
   이때 스티브 올슨 교수가 또 그에게 소식을 갖고 왔다. 박사학위 연구를 일본 AMY 실험에서 하도록 한 것도 그였고, WCU 프로그램 때도 같이 일한 바 있다. 올슨 교수는 프랑스 물리학자 한 명을 소개했다. 그가 AMY 실험 대변인으로 일할 때, 그곳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한 바 있는 패트리스 페레즈 박사였다. 김 교수는 “내가 AMY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 KEK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인 프랑스 사클레이 연구소의 페레즈 박사가 CERN의 GBAR 실험 대표가 되어 한국에서 공동연구진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만나보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페레즈 박사를 2015년 한국에 왔을 때 만났다.
   
   인터뷰 도중 김선기 교수가 “암흑물질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가끔 생각한다”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 지난 20년 이상 암흑물질을 찾아온 실험물리학자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암흑물질 입자를 찾지 못한다면 뭐가 잘못된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중력 때문일 수 있다. 중력을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그 때문에 암흑물질이 있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한 것일 수 있다. 물론 암흑물질이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실험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말의 의문이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GBAR 실험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암흑물질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중력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은 물질의 자유낙하 가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그간 수없이 많은 중력가속도 정밀 측정 실험이 있었다. 그러나 물질과는 전하가 다른 ‘반물질’을 갖고 중력 낙하 실험을 한 적은 없었다. GBAR 실험은 수소의 반물질인 반수소의 중력가속도를 측정하게 된다. 그게 기존의 실험결과와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보려고 한다. 부합하면 인류가 중력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셈이 된다.
   
   김 교수가 이끄는 GBAR 한국 그룹은 두 가지 실험장비를 만들었다. 반양성자를 모아놓은 장치(반양성자 트랩)와 TOF(Time Of Flight) 카운터라는 장치다. 김 교수는 학생 세 명과 같이 제네바로 간다. 내년 여름에 반양성자 빔이 CERN의 실험에서 나올 거라고 했다. GBAR 실험에는 9개국 그룹이 참여한다.
   
   여기까지 얘기를 들었을 때 김선기 교수의 휴대폰 벨이 계속 울렸다. 김 교수는 “양운기 교수 전화네요. 회의 시작한다고 오라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취재를 일단 접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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