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미산 땅속 1000m 지하에 들어서는 ‘예미랩’ 건설 현장. 중성미자와 암흑물질이라는 ‘우주입자’ 실험을 하게 될 곳이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예미산 땅속 1000m 지하에 들어서는 ‘예미랩’ 건설 현장. 중성미자와 암흑물질이라는 ‘우주입자’ 실험을 하게 될 곳이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강원도 정선의 예미산(해발 989m)에는 남한 유일의 철광산이 있다. 한덕철광만이 한반도 남쪽에서는 철광석을 캔다. ‘남한 유일의 철광’이라는 명성 말고 이곳을 한국인에게 각인시킬 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예미산 정상에서부터 땅속 1000m 지점에 ‘예미랩(Lab)’이라는 대규모 지하 물리실험 연구소가 자리 잡는다. 중성미자와 암흑물질이라는 ‘우주입자’ 실험을 하게 될 곳이다. 예미랩은 내년 말 가동이 목표이며, 실험시설이 들어갈 공간 굴착 1단계 작업이 지난 8월 말 완료됐다. 예미랩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김영덕 단장의 작품이다. 지난 9월 8일 한덕철광 지하의 예미랩 건설 현장을 찾았고, 다음 날 대전에서 김영덕 단장을 인터뷰했다.

제천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빠져나가 38번 국도를 타면 ‘신동, 예미, 함백’이라고 쓰인 도로표지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국도를 벗어나 조금 달리니 ‘예미역’이 왼편에 나타났다. 예미역에서 1.6㎞ 떨어진 지점에 IBS 지하실험연구단의 예미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충남 오송역에서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서 출발했는데,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지났다. 예미역 인근의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서울 사람’이라며 쫓겨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될까봐 두렵다며 60대 여주인은 외지인은 받지 않는다고 나가라 했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항의도 못 하고 식당을 나왔다. 그 옆집에서 짜장면으로 점심을 때운 후 지척인 한덕철광으로 향했다.

동행한 이현수 IBS 지하실험연구단 부단장(COSINE실험 대표)과 녹색 그물로 덮어둔 철광석 더미들을 지나 한덕철광 안으로 쑥 들어갔다.

공사 현장 가건물들 사이에 차가 멈춰 선 건물 앞에는 ‘IBS 우주입자 연구시설건설단’이라고 쓴 작은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다. 예미랩에 들어설 대표적인 시설은 중성미자의 성질을 알아내는 ‘AMoRE실험’과, 암흑물질 후보인 윔프(WIMP)를 검출하는 ‘COSINE 실험’ 장비다.

중성미자는 질량도 파악하지 못한 미지의 물질이다. 중성미자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 등이다. 인간은 세 중성미자 사이의 질량 차이만 알고 있을 뿐이다. 암흑물질은 이보다 더해 100% 미지의 물질이다. 우주에 있는 물질보다 암흑물질은 6배나 많은 걸로 예상된다. 동행한 이현수 COSINE실험 대표에게 “암흑물질이 정말 있다고 믿느냐”고 묻자 “99% 확신한다”고 답했다.

현장 건설책임자 방기문 박사(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위원)는 “때맞춰 찾아주셨다. 지하 공간 굴착 1단계 공사가 8월 말에 끝났다. 2단계 굴착 전에 잠시 임시운용 기간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AMoRE실험과 COSINE실험 장비가 들어갈 지하 공간 굴착은 이미 끝났지만 이왕 지하실험 공간을 만드는 김에 향후에 할 수도 있는 추가 물리실험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 공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하실험 공간 외에 지상에는 연구실과 주거단지도 만들 예정이다. 지상연구실은 옛 함백고등학교 건물 일부를 사용하게 되며, 주거단지에는 연구원들이 살게 된다. 이현수 대표는 “지상연구실에는 20~30명이 상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수직 갱, 엘리베이터 설치에 40억원 들여

이현수 대표와, 공사를 하는 한덕철광 건설책임자와 함께 지하 1000m 아래로 들어가기 위해 공사장 사무실을 나왔다. 공사현장용 헬멧과 장화, 마스크를 착용했다. 사무실에서 차를 타고 더 위로 올라가니 수십m 높이의 철제 탑이 보였다. 그 옆에는 3층 높이가 훨씬 더 되는 건물이 있다. 지하 587m를 수직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타워였다. 한덕철광 관계자는 “강원도 언론은 몇 번 이곳을 찾았는데, 중앙언론사로는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워키토키로 “탑승 완료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수작동한다고 했다. 초당 4m의 속도로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3분 후 600m 바닥에 도달했다. 문이 열리니 지하 안은 쾅쾅쾅 소리가 들리는 등 요란했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철광석이 잔뜩 올려져 있는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고 있었다. 수직 엘리베이터에 실려 지상으로 올라갈 철광석들로, 사람이 타는 엘리베이터와 철광석을 운반하는 엘리베이터가 구분되어 있다. 수직 갱 구착 비용 일부와 엘리베이터 설치 비용으로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40억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다.

지하 터널 안은 시꺼멓다. 철광석 컨베이어벨트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SUV 차량 한 대가 서 있다. 터널 안에서 SUV가 지나다닐 만큼 높다란 공간이다. 이제 782m 떨어진 예미랩으로 가기 위해 타야 할 차량이라고 한다. 지하 공간에는 이리저리 구멍이 나 있는데 차량을 타고 30분 이상을 달리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도 지상으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차가 울퉁불퉁한 땅속을 한참 달리면서 계속 내려간다. 이현수 대표는 “지하 1000m 높이를 확보하기 위해 터널이 아래로 향해 있다. 경사가 7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차가 멈춘 후 밖으로 나오자 높이 5m, 폭 5m가 조금 넘는 크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전체 공간이 8637㎡라고 한다. 이 지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파낸 암석 조각만 15t 트럭 5000대 분량이라니 놀랍다.

15t 트럭 5000대 암석 파내고 만든 공간

아직 아무 시설도 없이 텅 빈 지하 공간. 하지만 이곳이 앞으로 ‘한국 과학의 성지’가 될 곳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공간의 전체적인 구조는 가운데 큰 통행로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양옆으로 실험실이 들어설 공간이 뚫려 있는 형태다. 중성미자 실험인 AMoRE실험을 할 공간이 가장 크다. 21m(폭)×11.4m(높이)×21m(길이) 규모다. 이곳에는 깊이 7m의 큰 구덩이가 있는데 절대온도인 영도(-273도)에 가까운 초저온을 만들어낼 냉동고가 들어갈 자리라고 한다. AMoRE실험 장치에 들어갈 차폐재 설치 작업은 9월 말 시작할 예정이다. COSINE실험 장비가 들어올 공간에 ‘COSINE-200’이라는 작은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지하에 이런 실험 공간을 마련하는 건 그동안 숙원사업이었다. 일본 도쿄대 우주선연구소는 폐광에 지하실험연구소 ‘가미오칸데’를 만들어 노벨물리학상을 2개나 거머쥐는 성과를 올린 바 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물리학자들이 지하 1000m 지점으로 내려온 건 그들이 잡으려는 신호 말고 다른 배경 잡음을 줄이기 위해서다. 지상에는 온갖 물질이 있어 그 물질이 만들어내는 신호들이 많다. 지하에 내려오면 그런 잡음들이 최소화된다.

일본은 폐광 활용 노벨상 2개 거머줘

지하실험 공간 공사를 위해서는 지상에서 들여오는 골재도 특별한 걸 써야 한다. 터널 벽은 ‘숏크리트’라는 걸로 마감을 한다. 암반 벽에 압축공기를 이용하여 콘크리트를 분무하는 게 숏크리트 공법이다. 숏크리트에 들어갈 모래는 오염이 덜 돼 있어야 한다. 그래서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오염이 적은 모래를 찾아 경북 안동 등 5~6군데를 다녔다. 검사 결과 안동 모래가 우라늄, 토륨, 포타슘과 같은 방사능 물질이 가장 적게 들어 있었다. 이현수 대표는 “하지만 경제성에 비해 효과가 크지 않아 안동 모래 대신 예미산 인근에서 나오는 모래를 그냥 사용했다”라고 설명했다. 지하실험실이 마련되면 30명 이상의 상근인원이 근무해야 하는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피소’도 마련된다.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현재는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 지하 공간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양수발전소 터빈이 돌아가는 지하 700m 지점에 공간을 빌려 2003년부터 실험을 하고 있다.

1시간 가까이 지하 공간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보기 힘든 이곳에서 훗날 노벨물리학상이 나올지 안 나올지는 아직 모른다. 한국도 일단 게임의 출발선에 섰다는 느낌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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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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