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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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 예미산(989m) 지하에 건설 중인 우주입자 연구시설은 김영덕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단장의 작품이다. 김 단장이 이끄는 지하실험연구단은 1000m 지하에서 크게 중성미자 실험(AMoRE실험)과 암흑물질 검출 실험(COSINE실험) 두 가지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9월 9일 대전 갑천 변에 자리 잡은 IBS에서 만난 김 단장은 “저하고는 처음이죠?”라면서 친근감을 줬다. 김 단장에게 정선에 한국 최초의 심층 실험시설인 예미랩을 만드는 이유부터 묻자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가 있는 지하 700m에서 실험 중인데, 빌려 쓰는 공간이어서 좁고 경사져 있기도 하다.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출범할 때 계획했던 실험을 하기에는 너무 협소하다”라고 답했다.

김 단장의 말대로 현재 지하실험연구단은 양수발전소의 거대 터빈이 돌아가는 지하 공간을 빌려 쓰고 있다. 한국 최초의 암흑물질 실험인 ‘KIMS(Korean Invisible Mass Search)실험’을 1997년부터 시작한 세 물리학자(서울대 김선기, 세종대 김영덕, 경북대 김홍주 교수)가 2003년 양양 지하에 공간을 얻었다. KIMS실험은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출범한 뒤인 2016년 9월 COSINE-100실험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미국 예일대학, 영국 셰필드대학 그룹이 하던 DM-Ice실험과의 공동연구로 전환되면서 국제실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양양 지하실험실에서는 2015년부터 중성미자의 물리적 특성을 알아내기 위한 AMoRE실험도 가동하고 있다.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대학이 할 수 없는 실험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는데 여러 한계 때문에 결국 양양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4월 기공식을 가진 예미랩은 IBS의 한 연구단이 쓰기에는 큰 공간이다. IBS가 다 쓰려는 것은 아니다. 전체 공간의 30~40%는 다른 실험을 위한 공간으로 비워 두고 있다. 한국 지하 물리실험의 새 장을 열 것이다.”

지난 8월 말 1단계 굴착공사가 끝난 예미랩에서는 AMoRE실험이 2022년 1월부터 가동된다. 이를 위해 내년 초부터 장비를 설치하게 된다. 동시에 ‘대용량 중성미자 검출기’도 설치한다. 김 단장은 “가로 세로 20×20m 크기 물탱크를 만들게 된다. 초기에는 물만 집어넣을 생각이다. 실험 구상이 구체화되면 그림이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성미자 검출기는 다용도로, 그 안에 COSINE실험 검출기도 넣을 수 있다. 암흑물질 검출 실험인 COSINE실험을 예미랩으로 언제 옮겨올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영덕 단장은 중성미자 실험인 AMoRE실험 공동대표를 경북대 김홍주 교수와 같이 맡고 있기도 하다. 중성미자의 특성을 알아내는 게 목적인 AMoRE실험은 흔히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 붕괴 실험’이라고 불린다. AMoRE라는 이름은 ‘몰리브덴을 기반으로 하는 희귀 반응 실험(Advanced Mo-based Rare-process Experiment)’의 영어 약칭이다. 예미랩이 완성되면 가장 힘을 쏟을 연구가 바로 이 AMoRE실험이다. 김 단장은 암흑물질 실험보다 중성미자 연구에 돈과 사람을 더 많이 투입하고 있다.

중성미자는 자연을 이루는 기본입자 중 하나다. 전기적으로 중성(中性)이고, 질량이 아주 작다(微子). 최소한 세 종류가 있는 걸로 확인됐다. 김 단장은 “중성미자 질량을 아직 모르고 있다. 중성미자 세 개 간의 질량 차이는 아는데, 절대질량은 모른다”라면서 “특히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입자인지 아닌지를 모른다. 그걸 알아내는 게 AMoRE실험 목표다”라고 말했다.

“태초 의문 푸는 마요라나 입자 확인할 것”

‘마요라나 입자’는 무엇일까? 마요라나는 이탈리아의 천재 물리학자 에토레 마요라나(1906년생, 젊은 나이에 실종)의 이름에서 왔다. 입자(Particle)가 있으면 반입자(Anti-particle)라는 게 있다. 반입자는 입자와 물리적 성질이 똑같으나 전하가 다르다. 중성미자에도 반(反)중성미자라는 쌍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반중성미자가 따로 없을지 모른다는 이론이 있다. ‘중성미자=반(反)중성미자’라는 것이다. 이런 입자를 마요라나 입자라고 한다.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입자라는 걸 확인하면 자연의 여러 의문이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태초에 우리 우주에서 물질이 반물질보다 왜 더 많았는지 하는 ‘비대칭’ 문제를 풀 수 있다. 빅뱅 직후의 우주에서 물질과 반물질의 양이 똑같이 만들어지고(쌍생성) 다시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 감마선과 같은 빛으로 변했을(쌍소멸) 걸로 예상된다. 그런데 물질과 반물질이 똑같이 생성되었으나 물질 일부가 소멸되지 않고 약간 더 남아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우주의 물질이 존재하게 되었다. 어디서 쌍생성, 쌍소멸의 대칭이 무너졌고 그 이유는 뭘까 하는 건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다. 이걸 설명하는 이론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경입자 생성(Lepto-genesis)’ 이론이다. 경입자에 바로 ‘중성미자’가 들어간다. 중성미자의 특수한 성격 때문에 초기우주 때에 물질이 반물질보다 많아졌다는 게 이 이론의 설명이다.

김 단장은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입자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는 건 중성미자 질량을 이론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요라나 입자인 경우 ‘중성미자가 방출되지 않는 이중 베타붕괴’의 반감기를 측정함으로써 중성미자의 절대질량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성미자가 방출되지 않는 이중 베타붕괴’라는 낯선 문장은 무얼 뜻할까? ‘이중 베타붕괴’는 베타 붕괴가 두 번 연이어 일어나는 걸 가리킨다. 베타붕괴는 핵 분열 반응에서 흔히 일어나는데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거나,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우라늄은 자연에서 좀 불안정한 상태여서, 두 개의 가벼운 딸핵으로 쪼개져 좀 더 안정된 상태로 있으려고 한다. 이때 일어나는 게 딸핵들의 베타붕괴이다. 베타붕괴에서는 중성미자가 한 개 나온다. 그리고 베타붕괴가 두 번 일어나면 중성미자 두 개가 나온다. 하지만 매우 드문 경우에 ‘중성미자가 나오지 않는 이중 베타붕괴’가 일어난다. 김영덕 단장은 이걸 찾고 있었다.

AMoRE실험에 사용할 몰리브덴 결정.
AMoRE실험에 사용할 몰리브덴 결정.

“세계 어디서도 관측되지 않은 실험”

그는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 베타붕괴가 세계 어느 실험실에서도 관측되지 않았다”라며 “여러 나라가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 베타붕괴’를 관측하기 위해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이 분야는 전 세계적으로 그 중요성에 있어서 맨 앞에 있는 프런티어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 베타붕괴’ 관측을 위해 김영덕 단장의 AMoRE실험은 몰리브덴의 동위원소 중 하나인 몰리브덴 100을 사용한다. 몰리브덴에는 38종의 동위원소가 있는데, 원자량 100인 동위원소에서는 이중 베타붕괴가 일어난다.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 베타붕괴’를 관측하는 방법은 몰리브덴 100 동위원소를 포함하는 결정을 크게 만들어놓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몰리브덴 100 원소가 이중 베타붕괴를 하는지, 특히 그중에서도 중성미자를 방출하지 않는 이중 베타붕괴를 일으키는지 지켜보자는 것이다. 양양의 AMoRE 초기 실험에서도 많은 이중 베타붕괴를 관측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중성미자가 나오지 않는 이중 베타붕괴 관측이다.

몰리브덴 100은 이중 베타붕괴를 얼마나 자주 일으킬까? 몰리브덴 100의 반감기에 그 정보가 들어 있다. 몰리브덴 100 동위원소의 반감기는 약 7.0×1018년이다. 베타붕괴를 일으켜 해당 방사성 물질의 양이 당초보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기간을 반감기라고 한다. 몰리브덴 100은 7.0×1018년이 지나면 전체 물질의 절반이 다른 물질로 변해 있다는 게 반감기 의미다. 근데 반감기 7.0×1018년은 우주 나이 138억년(1.38×1010)보다 훨씬 길다. 그러면 몰리브덴 100의 핵에서는 베타붕괴가 138억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몰리브덴 원자를 138억개 이상 모아놓으면 그중의 일부는 베타붕괴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이게 포인트다.

김영덕 단장이 자신의 손가락 마디를 보여주며 이렇게 설명했다. “이 정도 크기면 아보가드로수(6×10²³) 이상의 원자가 들어 있다. 몰리브덴 100은 반감기가 7.0×1018년이니, 1년에 10만개 이상의 원자가 붕괴한다고 볼 수 있다.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이중 베타붕괴를 관측하고 있다. 그런데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 베타붕괴’의 반감기는 훨씬 더 커서 붕괴가 극히 희귀하고, 따라서 관측이 어렵다.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입자일 경우 몰리브덴 100의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 베타붕괴 반감기가 1026~1028년으로 추정된다. 현재 양양 AMoRE-1 실험의 몰리브덴 100 결정 크기는 6㎏이지만, 예미랩에서 할 AMoRE-2 실험에 사용될 결정 크기는 200㎏이다. 이 크기면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 베타붕괴를 1년에 몇 개 정도는 측정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오지 않으면 또 한 번 결정의 양을 키우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김 단장이 이끄는 IBS 지하실험연구단은 예미랩에서 사용할 결정들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AMoRE실험을 위해 필요한 몰리브덴 결정을 김 단장의 방에서 조금 떨어진 실험실에서 키우고 있다. 또 지하에서는 차세대 암흑물질 실험인 COSINE-200실험에 들어갈 요오드화나트륨(NaI) 결정을 키우고 있다.

김 단장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78학번) 출신이다. 1985년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이스트랜싱)으로 유학을 가서 1991년 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스트랜싱에는 현재 IBS가 짓고 있는 것과 같은 중이온가속기가 있다. 그는 이후 미국 인디애나대학과 일본 고에너지연구소(KEK)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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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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