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변의 몸값이 껑충 뛰었다. 건강한 젊은 대변이 회춘의 묘약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이탈리아 피렌체대학, 영국 쿼드램연구소 등이 참가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늙은 쥐의 대변을 어린 쥐에게 이식하여 장 속의 미생물 군집이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 결과 이식한 대변이 노화와 관련된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반대로 어린 쥐의 대변을 늙은 쥐에게 이식할 경우 노화된 기능을 회복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늙은 대변 이식한 어린 쥐에 나타난 장애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어간다. 성장을 거쳐 성인이 되고 노화 과정을 거쳐 노인이 되기까지, 신체적 측면이나 정신적 측면에서 수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면역체계도 약해지고 추리와 언어능력, 인지기능도 떨어진다. 신경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의 시냅스가 퇴화하기 때문이다. 생물의 신체기능이 퇴화하는 노화는 나이와 정비례 관계다.

그런데 영국과 이탈리아의 국제 공동연구팀은 이러한 노화 과정이 장내 미생물의 변화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어린 쥐에게 늙은 쥐의 대변을 이식하는 실험을 통해 어린 쥐가 학습과 기억능력에 장애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장내 미생물을 상실한 늙은 쥐 대변의 영향으로 노화를 일으키는 유해균들이 어린 쥐의 장내 생태계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이번 실험은 지금까지 ‘어린 쥐의 대변을 늙은 쥐에게 이식’하던 과학자들의 방식을 거꾸로 한 셈이다.

장내 미생물은 동물의 장내에 분포하여 집단을 이루고 서식하는 미생물을 말한다. 개인마다 고유하게 장내 미생물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시간이 흘러도 잘 바뀌지 않는다. 혈액형처럼 개인에 따라 장내 미생물 조성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2011년 처음 밝혀졌다. 장 속에 수백 종의 미생물로 이뤄진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졌었지만, 우리 몸이 미처 소화하지 못한 영양분을 먹고 살면서 가끔 인체를 위해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주는 존재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장내 미생물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게 아니라 어떤 패턴을 보이며 장 속에 어울려 산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대변이 이러한 장내 미생물을 등에 업고 귀한 존재로 변모한 건 최근 일이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이스트앵글리아대학의 데이비드 바우저(David Vauzour) 박사는 늙은 쥐에서 젊은 쥐로의 대변 이식은 장내 미생물 조성에서 노화와 관련된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특히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 군집과 뇌 사이, 즉 ‘장-뇌 연결축’의 흥미로운 연결 고리를 많이 발견했다. 장-뇌 연결축이란 장내 건강과 뇌 건강의 연관 관계를 뜻하는 말로 장에서 흡수되는 물질이 혈관을 타고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이다.

연구팀이 나이 든 쥐에서 어린 쥐로 장내 미생물을 옮긴 이유는 장내 미생물이 노화와 관련된 중추신경계의 일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연구팀은 어린 쥐에게 대변을 이식한 후 각 쥐들의 불안, 탐색 행동, 그리고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어린 쥐는 불안이나 행동 측면에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지만 공간 학습과 기억에 문제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쥐는 마치 나이가 많고 정신장애가 있는 늙은 쥐처럼 미로 시험을 통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장과 뇌 사이의 양방향 교신이 행동과 인지기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바우저 박사는 말한다.

연구팀은 이후 추가로 조사를 더했다. 그리고 해마의 주요 기능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발현에 변화가 있음을 발견했다. 즉 늙은 쥐의 장내 미생물이 단백질 발현에 큰 영향을 미쳐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저하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해마는 기억력 생성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사람으로 예를 든다면 해마가 발달할 경우 처음 가본 주차장에서 주차 장소를 훨씬 잘 떠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주위 사물을 더 잘 기억해내기 때문이다. 기억 외에 학습과 공간 탐색은 물론 감정을 제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의 부위가 해마다. 어린 쥐들이 인지기능 면에서 늙은 쥐처럼 행동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최신호에 게재됐다.

어린 쥐 대변 늙은 쥐에 이식하면?

연구팀은 반대로 어린 쥐의 대변을 늙은 쥐에게 이식하는 실험도 계획 중이다. 대변 이식 절차를 반대 방향으로 작동할 경우 노화로 저하된 늙은 쥐의 인지기능을 역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늙은 쥐의 인지기능이 회복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장내 미생물 군집의 변화가 나이와 관련된 중추신경계의 구성 요소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연구에 참여한 피렌체대학의 클라우디오 니콜레티 교수의 설명이다.

장내 세균의 중요성은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유산균을 포함한 유익균은 장내에서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고, 이 싸움의 결과가 우리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유익균과 유해균은 각각 85%와 15%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연구팀의 이번 연구는 인지기능 등 노인들의 회춘을 목표로 하는 치료법의 근거 중 하나로 장내 미생물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건강한 대변 이식을 통해 장 환경을 재구성하여 건강을 개선하거나 질병을 치료한 사례도 최근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대변이식술은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특수처리해 장내 미생물 용액으로 제조한 뒤 이를 내시경이나 관장을 통해 환자의 장에 뿌리거나 직접 주입하는 치료법이다.

지난 8월 벨기에의 겐트대학병원이 발표한, 자동양조증후군에 걸린 47세 남성이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받은 치료는 대표적인 예다. 자동양조증후군이란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취한 증상이 나타나는 희소 질환으로, 내장발효증후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평소 술 냄새, 호흡, 비틀거림과 나른함 등의 증세를 보인다. 이 벨기에 남성은 항진균제로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대변 이식을 받았는데 치료가 시작된 지 34개월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는 체내에 있는 유해한 박테리아를 대변 기증자의 건강한 박테리아로 교체하는 대변이식술의 사례가 느는 추세다. 21세기 생명과학 분야에서 주목받는 가장 중요한 건강 지표는 장내 미생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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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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