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통째로 띄울 수 있는 상온 초전도체 물질을 구하러 외계 행성에 진출하는 내용을 그린 SF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섬을 통째로 띄울 수 있는 상온 초전도체 물질을 구하러 외계 행성에 진출하는 내용을 그린 SF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그토록 기다렸던 초전도의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미국의 물리학자들이 상온에서 전기저항이 영(0)이 되는 초전도 물질을 개발했다. 지금까지 초전도를 실현한 최고 온도는 -23℃. 상온에서 초전도체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상온 초전도 물질 발견 소식에 세계의 물리학계가 떠들썩하다. 대체 상온에서의 초전도 현상은 무엇이고, 이로 인해 세상은 어떻게 변화될 수 있기에 물리학계가 흥분하는 것일까.

영상 14.5도서 전기저항 ‘0’ 확인

지난 10월 14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14.5도의 상온에서 초전도성을 나타내는 물질을 개발한 로체스터대 랑가 다이어스 교수팀의 연구를 커버스토리로 소개했다. 대기압의 267만배에 이르는 초고압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아직 실용화는 어렵지만 만약 이것이 일상의 환경에서 실현된다면 세상은 또 한 번 변할 것이다.

초전도 현상이란 특정한 온도에서 물체의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전기저항이 완전히 사라진 물체는 초전도체라고 한다. 도체라고 해도 전류가 흐를 때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전기저항이 있다. 전기저항이 없다는 것은 저항이 0이 된다는 것이고, 이 말은 전기에너지가 이동 중에 손실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전기회로에서 전력 손실이 생기지 않고, 저항에 의한 열이 발생하지 않아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카메를링 오네스(Kamerlingh Onnes)는 절대온도 4.2K(-268.8˚C)의 극저온 상태에서 놀랍게도 수은의 전기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때 전기저항이 없어지는 온도를 ‘임계온도’라고 한다. 오네스가 발견한 초전도 현상은 지금까지 총 8명의 과학자에게 5번에 걸쳐 노벨 물리학상의 영예를 안겼다.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면 물체가 자석 위에 둥둥 떠오르는 등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초전도체가 자기장을 밀어내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초전도체 위에 자석을 놓으면 초전도체의 자기장이 세지면서 자석을 밀어내는 방향으로 유도전류가 소용돌이처럼 발생한다. 이때 저항이 없으므로 유도전류가 사라지지 않아 자기장이 자석을 계속 밀어내어 떠 있을 수 있다. 스스로 떠 있는 상태에서 수평력을 가하면 마찰력이 작용하지 않아 적은 에너지로도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는 자기부상열차가 가능해진다.

문제는 초전도 현상이 극저온에서만 이뤄져 실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값비싼 액체 헬륨이나 액체 질소 등으로 냉각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크다. 액체 질소를 이용하면 -196℃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액체 질소가 공기로 바뀌면서 주위의 온도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196℃까지 온도가 내려가면 빛처럼 움직이던 전자가 자전거를 타듯 천천히 움직인다. 액체 헬륨을 이용하면 -269℃까지로 더 낮은 온도를 만들 수 있지만 가격이 질소보다 30배나 비싸다. 임계온도가 낮을수록 냉각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이유로 오네스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이후 많은 물리학자가 100년 넘도록 상온에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물질을 만들려는 연구를 지속해왔다. 그런 가운데 다이어스 교수팀이 ‘다이아몬드 침골 세포(diamond anvil cell)’로 만든 초고압 장치를 통해 상온의 초전도체를 만들어냈다. 연구팀은 수소와 황(황화수소), 탄소를 섞은 재료 물질을 다이아몬드 소재에 넣고 빛을 이용해 합성시키는 방법으로 14.5도의 상온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성을 지닌 물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물질로 진동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커서 전자 사이를 묶어주는 힘이 강하다. 상온 초전도체에는 가볍고 결합이 강한 재료가 필요한데 수소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이상적인 재료라는 게 다이어스 교수의 설명이다.

2015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과학자들은 대기압보다 150만배 강한 압력으로 황화수소를 압축해 영하 70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구현한 바 있다. 이 정도의 온도만 해도 당시의 기록을 크게 경신한 결과였다. 연구팀은 여기에 제3의 원소로 탄소를 추가하고 대기압보다 267만배 강한 초고압으로 새 물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극저온 환경에서 구현되는 기존의 초전도 현상. 초전도체 위에 자석을 띄운 실험. ⓒphoto 네이처
극저온 환경에서 구현되는 기존의 초전도 현상. 초전도체 위에 자석을 띄운 실험. ⓒphoto 네이처

초전도체 상용화 길 열려

한편 지난해 조지워싱턴대 연구팀은 란타넘(La)이라는 원소와 수소를 합성한 란타넘 수소화합물을 통해 200만 기압 환경에서 영하 23도까지 끌어올렸다. 지금까지 가장 큰 성과였던 이들의 연구와 비교해도 다이어스 교수팀의 초전도 물질은 대단한 진전이다. 그동안의 장벽을 깨고 초전도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수팀의 다음 과제는 더 낮은 압력에서 작동하는 상온 초전도체를 찾는 것이다. 압력이 높으면 초전도체의 크기가 작아져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다. 상온 초전도 물질을 발견한 교수팀조차 수소, 황, 탄소로 구성됐다는 것 말고는 정확한 구조와 화학식은 모르고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더 낮은 압력 조건에서의 연구를 통해 이 부분도 밝혀낼 계획이다. 만약 이들이 압력을 대기압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다이어스 교수는 많은 응용 분야의 문을 열어 세상을 확실하게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에너지 산업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초전도체로 전선을 만들면 송전 과정에서 전기저항으로 발생하는 전기를 손실 없이 보낼 수 있다.

자기부상열차와 같은 새로운 교통수단 시대도 열린다. 현재의 자기부상열차는 레일에 전자석, 열차 바닥에 초전도 코일이 들어 있다. 초전도 코일을 통해 강한 자기장을 얻어 레일과 열차 바닥이 서로 밀어내거나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에너지의 대부분을 열차를 부양시키는 데 쓰고 있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초전도체로 레일을 만들면 마찰과 소음이 거의 없으면서 연료 효율이 높은 자기부상열차 제작이 가능하다.

디지털 전자기기의 효율성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다. 휴대전화로 오래 통화를 하다 보면 열이 많이 난다. 노트북, 텔레비전, 비디오 등 열을 낼 필요가 없는 가전제품에서도 상당한 열이 발생한다. 이는 전기에너지의 일부가 열에너지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열 손실 없이 전류가 흐르는 초전도체로 대체하면 이런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다. 그 밖에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해 로켓, 반도체 등 초전도 기술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더욱이 배터리가 필요 없는 초전도 사회도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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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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