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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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화학과 장우동 교수는 ‘도쿄대학 박사’ 출신이라는 게 이색적이다. 이공계 전공자는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 일본으로 가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난 9월 11일 연세대 과학관 내 연구실로 장 교수를 찾아가는데 그게 우선 궁금했다.

장우동 학생이 경북대 고분자공학과(90학번) 학부를 다닐 때였다. 강인규 교수(지금은 퇴임)가 그를 불러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유학을 가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장우동 학생은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공부했고 대학에 와서도 일본어를 계속하고 있었다. 꼭 일본 유학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지만 일본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강인규 교수가 이런 권유를 한 건 자신이 일본 문부성 장학생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우동 학생은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일단 경북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석사 1년 차인 1997년 주한 일본대사관 추천 일본 문부성 장학생 시험을 연습 삼아 보았다. 1년에 60명을 뽑았는데 3000명이 몰려 경쟁률이 50 대 1이었다. 그런데 덜컥 합격한 덕분에 급작스럽게 일본으로 떠나게 됐다. 일본 문부성 측은 시험 합격 통보 뒤 두 달 안에 일본 쪽 지도교수를 미리 결정하도록 요구했다. 두 달 내에 일본 대학에서 지도교수를 찾고 학생으로 받아주겠다는 허가서를 받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침 선배 한 명이 도쿄대학 화학생명공학과의 아이다 다쿠조(相田卓三) 연구실에 있었다. 아이다 교수는 세계적인 고분자화학자. 선배를 통해 아이다 교수와 접촉했더니, 교수는 면담을 위해 도쿄로 오라고 했다. 인터뷰를 했고 지도해주겠다는 승낙을 받았다.

석사 2년 차인 2000년 그는 JACS(미국 화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JACS는 여러 화학자가 ‘최고의 화학학술지’라고 말했던 학술지다. 나는 그가 석사 때 JACS에 논문을 썼다는 얘기에 놀랐다. 장 교수는 대단한 일이라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잘하는 분이 한국에 너무 많다. 별거 아니다”라고만 했다.

지도교수인 아이다 교수는 엄격했다. 세계적인 학자여서 그런지, 학생들 논문 지도를 해줄 시간이 없었다. 학생들이 쓴 논문은 쌓여가나 교수가 논문을 보지 못하니 학술지에 나오는 논문이 적었다. 장우동 박사 역시 학위 과정 5년간 논문을 한 편밖에 쓰지 못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건 2003년. 장 교수가 연구실 책장에서 꺼내 보여준 논문 제목은 ‘생체 물질에서 영감을 얻은 기능성 덴드리머 설계’였다. 박사 때 연구 분야는 초분자화학(Supramolecular Chemistry)이었다. ‘덴드리머’와 ‘초분자화학’은 낯선 용어다.

일본 문부성 장학생 출신 도쿄대 박사

장 박사는 일본에서 공부했으니 박사후연구원 생활은 일본이 아닌 미국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같은 대학에 과는 같지 않으나 재료공학과에 있는 가타오카 가즈노리(片岡一則) 교수가 장 박사를 포닥(박사후연구원)으로 뽑고 싶다고 했다. 장 박사가 그동안 연구한 걸 보고 자신과 연구 분야를 같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제안한 것이었다. 장 박사는 가고 싶지 않았으나, 지도교수인 아이다 교수가 “1년만 하라”라며 등을 떠밀었다. 어쩔 수 없이 가타오카 교수 실험실로 갔다.

가타오카 교수는 장 박사가 배운 것과 관심 분야가 달랐다. 아이다 교수가 고분자 연구자라면, 가타오카 교수는 생체 재료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장 박사는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며 항암 치료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했다. 그리고 가타오카 교수 방에서 1년이 아니라 3년을 있게 되었다.(마지막 1년은 조교수로 일했다.) 가타오카 교수와 호흡이 잘 맞았다. 지도교수는 화를 낸 적이 없었고 잘 도와줬는데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가령 이런 일이 있었다. 장 박사는 2004년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한국의 과학기술부 사무관 특채 자리에 지원했다. 한 명을 뽑는 최종 면접의 3배수 후보로 선발되었다. 면접을 보러 도쿄에서 한국으로 가야 했다. 가타오카 교수에게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교수는 “한국에 왜 가느냐”고 물었고 그는 “공무원 시험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다. 가타오카 교수는 “그렇다면 나는 보내줄 수 없다. 자네는 연구를 해야 할 사람이다. 공무원이라니, 안 된다”라며 나무랐다. 장우동 박사는 그로 인해 과기부 면접을 볼 수 없었던 대신 다음 해인 2006년 연세대 화학과 교수가 되었다.

장 교수는 연세대에 화학생물학 전공으로 임용됐다. 교수가 되었으니 새로운 연구를 개척해야 하는 부담감이 생긴다. 그는 학부 때는 고분자화학을 했고, 박사 때는 초분자화학, 그리고 박사후연구원 때는 생체고분자를 이용해서 약물을 신체의 특정 부위에 정확히 전달하는 시스템을 연구했다.

장 교수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랬더니 연구를 시작하면서 다뤘던 분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연세대에 와서 지난 14년간 포르피린(Porphyrin), 초분자화학, 바이오 관련 응용 연구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포르피린 <그림 1 참조>이라는 물질을 특히 많이 연구해 왔다. 포르피린을 갖고 생체 모방형 물질을 개발해왔다. 포르피린을 중심으로 내 연구를 설명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그가 혈액 속의 적혈구 그림을 보여준다. 빨간색 적혈구 안에는 헤모글로빈이 4개가 들어 있다. 헤모글로빈은 헴(Heme)이라는 화합물과 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의 결합체다. 헤모글로빈은 체내에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데,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적재하는 부분이 ‘헴’이다. 헴은 평면 모양으로, 가운데에는 철(Fe) 원자 하나가 있고, 그 주위를 포르피린이라는 화합물이 둘러싸고 있다. 헴(헤모글로빈)은 철-포르피린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철-포르피린은 몸 안의 원하는 장소에서 산소를 붙여 장착하고, 또 산소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산소를 떼낸다. 이런 식으로 체내에 산소를 공급한다.

포르피린으로 치료용 소자도 연구 중

포르피린은 5각형 모양의 ‘피롤(pyrrole)’ 4개가 연결된 모양으로, 구조 가운데에 빈 공간이 있다. 포르피린의 가운데 빈 공간(Cavity)에 금속 원자 한 개가 들어가 있는 걸 자연에서 볼 수 있다. 헤모글로빈의 헴에는 이곳에 철 원자가 들어가 있고, 식물의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클로로필)에는 마그네슘이 들어가 있다. 동물과 식물에 들어 있는 물질 구조가 같다는 게 흥미롭다. <그림 2 참조> 장 교수는 “포르피린이 하는 일을 정리해 보면 광합성, 산소 전달, 산화·환원 반응의 촉매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포르피린 합성 연구를 하고 있다. 포르피린으로 새로운 구조체를 만들고 그 기능을 이용해 치료용 소자(device)를 만들거나 인공 광합성 연구를 한다. 장 교수는 “포르피린 합성 분야에서는 내가 한국에서 가장 열심히 해왔다”라고 말했다. 그가 포르피린을 갖고 맨 먼저 시도한 건 인공 광합성 안테나 만들기다. 2002년 박사과정 때 했으며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도 연구를 하고 있다.

식물의 광합성은 빛(햇빛)을 받아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로부터 포도당(C6H12O6)을 합성하는 과정이다. 식물의 엽록소가 광합성 기관이다. 일부 박테리아(예 자색세균)도 광합성을 한다. 지구 역사의 초기 대기에 산소를 뿜어낸 시아노박테리아가 최초의 광합성을 한 걸로 유명하다. 장 교수에 따르면 이들의 광합성 효율은 90% 이상이다. 사람은 태양광이니 해서 태양에너지를 뽑아 쓰려고 하나 효율이 떨어진다. 현재 효율이 30% 정도이다. 그는 “자연이 만든 생체 물질들은 구조와 특징이 독창적이다. 인간이 본떠서 만들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장 교수가 자색세균의 ‘광합성 안테나(Light Harvesting Antennae)’를 이미지를 보여줬다. 크리스마스 화환 장식과 같다. 수없이 많은 단백질이 뼈대 기능을 하며 구조를 유지한다. 단백질들 안에 포르피린들이 들어 있다. 그가 다음 이미지를 보여주며, 단백질을 제거하고 포르피린들만 남긴 모양이라고 했다. 역시 서로 이어져 동그란 장식 모양을 이루고 있다. 장 교수는 “구조적으로 아름답고, 기능적으로도 우수하다. 인간은 포르피린을 합성해서 ‘인공 광합성 안테나’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분자 단위로 포르피린 구조체를 조립할 수 없다. 다만 그와 비슷하게 만들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해서 연구를 했다”라고 말했다.

덴드리머라는 거대분자 구조체

포르피린을 연결해 인공 광합성 안테나를 만드는 데 그가 시도한 게 ‘덴드리머’ <그림 3 참조>라는 거대분자 구조체 만들기다. 일반적인 고분자는 선형의 사슬 구조이나, 덴드리머는 수목(樹木) 형태다. 중심에 있는 분자에서부터 가지 모양으로 밖으로 규칙적으로 계속해서 뻗어가는 구조다. 장 교수는 덴드리머의 가지 끝에 포르피린을 붙이고, 포르피린들이 수집한 빛을 전체 구조의 가운데로 모으는 연구를 박사과정 때 잠시 했다. 주위에 배치한 포르피린 수를 8개로 하는 연구를 했고(중심에서 포르피린이 1개 있음), 16개까지 시도해 봤다. “포르피린을 동그랗게 배열하면 광합성 안테나와 비슷한 기능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만들어봤다”고 그는 말했다.

장 교수는 “결국 내가 박사과정 때 한 연구는 ‘덴드리머’이고, 덴드리머의 자기조립(self-assembly)화 연구를 많이 했다”라고 했다. 자기조립은 상호작용으로 분자들이 자발적으로 조립되는 현상이다. 초분자를 만들 수 있는 분자 단위체에 조건들을 주면 스스로 모여 초분자 구조체를 형성한다. 그를 박사후연구원으로 오라고 했던 가타오카 교수도, 장 교수의 덴드리머 연구를 보고 같이 일하자고 했던 것이다.

장 교수는 도쿄대학 박사과정 때 초분자화학을 했다고 앞에서 언급했다. 덴드리머 구조를 만들고 기능을 살펴본 게 그의 초분자화학 연구다. 초분자화학은 지금까지 두 번의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2016년에 ‘분자기계’를 만든 세 사람의 초분자화학자가 수상했다. 장피에르 소바주(프랑스)는 1983년에 두 개의 고리를 서로 끼워 빠지지 않는 ‘카테네인’을 만들었고 <그림 4 참조>, 프레이저 스토다트는 1991년 막대 모양 분자에 고리 모양 분자를 끼우고 외부 자극을 줘서 고리 분자가 막대 위에서 왔다 갔다 하게 만들었다.

초분자는 무엇인가? 비슷한 단어로는 단분자, 고분자, 거대분자가 있다. 분자 하나는 단분자(Monomer)이고, 단분자가 여러 개 반복되는 구조는 고분자(Polymer) 혹은 중합체다. 거대분자(Macromolecule)는 또 고분자와 다르다. 단분자가 반복되는 구조인 고분자와는 달리, 단분자가 반복되지 않아도 분자량이 큰 걸 거대분자라고 한다. 장 교수는 “초분자 개념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분자의 결합 방식과 관련이 있다”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분자의 결합에는 강한 결합(공유결합·금속결합·이온결합)과 약한 결합(수소결합·소수성결합·배위결합)이 있다. 약한 결합은 강한 결합인 공유결합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붙었다 떨어졌다 한다. 하나는 쉽게 떨어져도 3개를 동시에 떼내려면 에너지가 상당히 필요하다. 결합력이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약한 결합력을 통해 구조를 만들어내는 걸 초분자 상호작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초분자 상호작용을 이용해서 분자 구조체를 만드는 연구가 초분자화학이다. 헤모글로빈이나 인슐린은 아미노산이 길게 사슬 형태로 연결된 구조다. 이 아미노산 사슬을 가만히 놔두면 어떻게 되나? 소위 ‘단백질 접힘’ 현상에 의해 고유한 단백질의 구조가 된다. 이 단백질 접힘을 만드는 힘은 수소 결합을 포함한 약한 결합력이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만드는 것도 수소결합이다. 결국은 약한 상호작용이 최종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초분자 구조체의 범위는 상당히 넓다. 그중에서 장 교수가 이용하는 초분자체는 분자 내부에 공동(cavity)이 있어, 그곳에 다른 분자를 결합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초분자체는 고리 모양이거나 새장(Cage) 모양이고 이 중 고리 모양이 포르피린이다. 그는 포르피린의 가운데 아연(Zn)이 들어가 있는 걸 덴드리머로 에워싼 구조를 만들어 암 치료제로 쓸 수 있는 약물을 개발했고 그게 박사후연구원 때 연구다.

“초분자화학의 시작은 ‘주인-손님’ 화학”

도쿄에서 했던 광(光)역학 연구를 한국에 와서 교수로 일하면서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초분자로 돌아갔다. 포르피린 유도체를 이용해 나노 크기의 초분자 구조체를 만들거나, 에너지 전달을 제어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알로스테리즘(Allosterism)’이다. 알로스테리즘 현상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포르피린 구조체를 장 교수는 만들어왔다.

장 교수 설명을 들어보면 초분자화학의 또 다른 주요 특징을 알 수 있다. “초분자화학의 시작은 ‘주인-손님 화학(Host-Guest Chemistry)’이다. 포르피린 구조체의 경우 포르피린은 ‘주인’이고, 포르피린에 결합하는 ‘손님’은 산소와 같은 거다. 철-포르피린의 경우 손님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산소가 철-포르피린 구조의 위에 붙는다면, 아래쪽에도 손님(예 이미다졸)이 와서 붙는다. 손님 둘이 아래위로 붙는 순간 전체 구조가 변형된다. 적혈구에는 헤모글로빈이 4개 들어 있는데, 한 개의 헤모글로빈 구조가 변하면 옆에 있는 헤모글로빈도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 바뀐 모양으로 인해 산소가 더 쉽게 붙게 된다. 산소가 한 개 붙기 시작하면 추가로 산소가 붙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게 알로스테리즘 현상이다. 산소가 결합하는 강도가 시간이 갈수록 세지니, 산소의 결합곡선을 만들어 보면 그 기울기가 크다. 알로스테리즘 현상은 원하는 특정 신호를 증폭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 특정한 신호의 검출 강도를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에 산소가 가속해서 붙는 현상을 인공적으로 수용체를 만들어 구현해 보려 했다. 그게 교수가 된 초기에 많이 했던 연구다.”

이후 바이오센서 연구를 했다. 그리고 2012년쯤에는 카이랄성 센서 연구를 했다. 카이랄성 센서는 물질이 오른손물질이냐 왼손물질이냐를 구별할 수 있다. 2014년에는 ‘손님’이 결합했을 때 에너지적으로 어떻게 바뀌는지를 연구했다. 이 연구가 미국화학지(JACS)와 독일화학회지(Angewandte Chemie)에 각각 실렸다. 식물이 광합성을 할 때 지나치게 강한 빛이 오면 광합성 시스템이 멈춘다. 자체적으로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활성산소가 만들어져 식물이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빛이 약해지면 광합성을 재개한다. 마찬가지로 에너지가 흘러가는데 뭔가를 넣어주면 에너지 전달을 멈추거나 에너지 흐름이 반대로 갈 수 있다. 에너지 전달 방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면 흥미롭다. 장 교수는 “에너지 전달 조절 연구를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어떤 연구가 가장 재밌었는가?’라는 질문에 “지금 하는 게 제일 재밌다. 포르피린으로 3차원 구조체를 만들고 있다. 다공성분자 조립체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라고만 말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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