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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5호]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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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소재산업 육성 떠들면서… 화평법·화관법 어쩔 건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울산시 남구 석유화학단지 내 나일론 섬유 제조공장에서 위험물 옥외 저장탱크 화재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부가 인체와 환경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퇴출시키고 있다. 사고로 유해물질을 유출시킨 기업은 사업장 매출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연간 1t 이상 사용하거나 위험성이 높은 물질은 수억원의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독성 정보를 환경부에 등록해야 한다. 미등록 물질을 제조·수입하거나 사용·판매한 사람을 무겁게 처벌하자는 법률 개정안도 나왔다. 중공업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화학산업이 이제는 토사구팽의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작년에 정부가 떠들썩하게 내놓았던 소재산업 육성도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독성 정보에 대한 환상
   
   화학물질은 실제 인체와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2011년에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환경부에 신고한 피해자가 무려 6923명이었고, 그중 1577명은 이미 목숨을 잃었다. 2012년 경북 구미 불산 사고로 근로자 5명이 사망했고, 18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반도체 공장의 근로자들이 암에 걸리기도 한다. 화학공장의 화재·폭발·유출·누출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13년에 제정되어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화평법(化評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과 ‘화관법(化管法·화학물질관리법)’은 유해물질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화평법에 따르면, 연간 1t 이상의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기업은 동물실험을 통해서 파악한 유해성 정보를 환경부에 등록해서 심사·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정부가 요구하는 유해성 자료가 최대 47가지나 된다.
   
   화평법의 등록 대상 물질이 몇 종이나 되는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2021년 말까지 등록이 유예된 ‘기존화학물질’ 중 고위험물질로 분류되는 것만 해도 무려 1973종이나 된다. 유해물질 하나당 수억원의 등록비용이 필요하다. 유해성 정보를 생산할 만큼의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은 유럽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고 품질 향상이나 공정 개선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정보를 구입할 수밖에 없다.
   
   환경부가 요구하는 유해성 정보가 국민 안전과 환경 보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화학공장에서의 안전은 독성 정보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후된 시설을 교체하고, 안전을 강화하는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안전 관리에 필요한 제도와 인력을 갖추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
   
   등록에 필요한 유해성 정보가 인체에 직접 활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해물질의 독성을 확인하는 인체 실험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쥐와 어류 등을 이용하는 동물실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물실험의 결과에서 인체 독성을 확인하는 것은 어설픈 추론일 뿐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지금도 쥐 실험의 결과를 두고 제조사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동물실험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면서 동물실험 자체를 금지하는 나라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좋은’ 화학물질과 ‘나쁜’ 화학물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잘못 사용하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아무리 나쁜 물질이라도 적절하게 활용하면 기적의 의약품이 될 수 있는 것이 화학이다. 화학물질의 독성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독성은 노출 방법·시간·양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개인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관법에 따른 산업현장의 안전관리도 억지스럽고 비현실적이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현장의 상황은 모두 다르다. 시설도 다르고, 공정도 다르고, 인력도 다르다. 그런 차이를 무시한 획일적인 장외 영향평가와 위해관리 계획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서류상으로 산업현장의 안전을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지난해 7월 1일 일본 정부의 갑작스러운 전자소재 수출 금지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 규제가 우리에게 소재산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소재는 100% 화학 공정을 통해 생산된다. 소재산업은 외국에서 수입한 천연광물이나 생물자원을 화학적으로 가공해야 하는 화학산업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전적으로 기술은 자연의 자원을 인간의 생존을 위해 활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모든 기술은 편익과 위험·오염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절대 예외는 없다. 오염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경제적 편익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친환경’과 ‘무공해’는 꿈속에서나 존재하는 환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오염과 위험을 고스란히 감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안전과 환경을 위한 투자를 통해서 오염과 위험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기술과 공정을 개선하고,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고, 합리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위험과 오염은 극복과 도전의 대상
   
   더럽고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술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화려한 문명은 기술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한 덕분에 이룩할 수 있었다.
   
   50만년 전에 처음 불을 사용한 인류가 화재의 위험에 굴복했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위험과 오염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는 지금도 포기할 수 없는 인류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소재·화학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와서 화학 소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과 위험에 굴복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안전 관리의 책임을 무작정 기업에 떠넘겨버리고, 산업현장의 안전을 책상머리에서 관리하겠다는 화평법·화관법은 퇴행적이고 패배주의적인 것이다. 현대 화학산업의 발상지였던 유럽의 화학산업이 과도하고 불합리한 규제 때문에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와 국민 생활이 무너지고 나면 국민 안전과 환경 보호도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풍요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절대 공짜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소재·화학산업의 국제 경쟁력과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화평법·화관법을 만들어야 한다.
   
   무작정 기업에 안전 관리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정부가 관리해야 할 유해물질을 선정하고, 안전 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생산하는 일을 떠맡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 안전과 환경 보호는 발로 뛰는 현장 행정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기술이나 개발해주는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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