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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9호]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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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과학과 원전, 더 죽이면 다 죽는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공동대표(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석사후연구원)가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왼쪽 두 번째)과 지난 11월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부의 탈원전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제야의 종소리까지 사라져버린 적막 속에서 시작된 신축(辛丑)년 새해가 몹시 어수선하다.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으로 가족·친지들의 새해 인사마저 포기했다. 정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정부가 자랑하던 K방역도 머쓱해졌다. 병상도 동이 났고, 의료진도 지쳐가고 있다. 백신도 구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과학 방역’으로 선장 역할을 해야 할 방역기관은 허울 좋은 ‘청’으로 승격되더니 뒷전으로 멀찌감치 밀려났다. 뻔한 가짜뉴스도 마다하지 않는 관료·정치인들의 갈라진 목소리만 요란스럽다. 그야말로 속절없이 표류하는 난파선이다. 이제 전문가의 목소리를 더 죽이면, 우리 모두가 침몰한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무차별적인 탈원전으로 빠르게 침몰하고 있다.
   
   
   정치에 밀려나버린 과학 방역
   
   방역은 근본적으로 과학이다. 그런 과학을 외면한 방역의 참담한 실패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경제는 핑계였고, 사실은 대통령의 재선 욕심이 문제였다. 결과는 참혹하다. 전 세계 감염자의 23.8%, 사망자의 19.2%가 미국인이다. 세계 최고의 국력과 과학기술, 그리고 보건의료 체제를 자랑하던 미국에는 치욕적인 일이다.
   
   우리 방역도 역시 과학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K방역의 핵심이 ‘민주주의’와 ‘투명성’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다. 감염자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무차별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투명성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인권 침해를 묵묵히 참아준 국민들에게 정부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해야 한다.
   
   백신 구입 사달도 과학을 멀리한 방역 정책의 결과다. 지난 6월 말에 구성했다는 백신 태스크포스(TF)의 책임자가 김상조 정책실장이었다고 한다. 지난 봄 느닷없이 사회주의 경제 정책이라는 마스크 배급제를 밀어붙였던 장본인이다. 그런데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백신 개발 사업은 아무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 사용하게 된 mRNA의 과학에 대한 분명한 이해도 필요하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대한 정확한 인식도 필요하다. 대기업을 상대로 시민운동을 하던 어설픈 경제학자 출신의 정책실장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정부가 백신 구매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않았던 이유는 누구나 짐작하고 있다. 백신·치료제의 개발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뚝딱 만들어주는 요술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정부·여당이 모두 그렇다. 아마도 세계 최초로 진단키트를 개발한 경험이 오히려 그런 정부·여당에 독(毒)이 됐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오히려 정부와 국민들을 상대로 당장 치료제를 내놓겠다는 큰소리에 대한 기대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원인이었을 것이다.
   
   백신의 개발·구매에 대한 대통령의 ‘엄중한 지시’가 있었다는 정부·여당의 구차한 변명은 왕조시대를 담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몹시 부끄러운 구시대적 인식을 드러낼 뿐이다. 사실 대통령이 회의석상에서 ‘신속 진단키트’ 사용을 지시했던 것도 놀랍고 황당한 일이었다. 신속 진단키트의 사용 여부는 대통령의 통치권에 속하는 사안이 아니다. 방역 전문가들이 현장의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할 일이다.
   
   백신 문제의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게 폭발할 수 있다. 정부의 K방역을 믿었던 국민들에게 백신 접종 지연은 감당하기 어려운 박탈감을 안겨줄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과학적 대안을 찾는 진정한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의사 출신을 엉뚱하게 국정상황실장에 임명해서 공공의료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도 정부의 과학에 대한 몰상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이 한창인데 난데없이 공공의대 설립안을 들고나와 온 세상을 뒤집어놓은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 3000여명의 의과대학 졸업생들에게 ‘항복’을 요구하기보다 국가의 의료체계를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의료계를 검찰과 같은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력수급 체계도 위험하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탈원전도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은 이제 아무렇게나 덮을 수 없는 신(新)적폐가 돼버렸다. 영혼을 잃어버린 산업부 관료들이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상황이다. 이미 어물전 꼴뚜기 신세로 전락해버린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처벌도 시간문제일 뿐이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성 조작 사건을 어설픈 검찰개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망한 것이다.
   
   우리나라 전력수급 체계가 근본부터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대선 공약이라는 알량한 명분으로 무작정 밀어붙이는 ‘탈원전’은 대통령이 ‘먼 나중의 일이라고 착각’했다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는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지난 12월 10일 28년 전의 유행가인 ‘더 늦기 전에’까지 소환해서 절박하게 제시했던 ‘2050 탄소중립’은 우리 스스로 개발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과학적 진실이다.
   
   하지만 산업부는 또 탈원전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법률에 정해진 시한을 1년 이상 넘겨버린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초안에 대한 공청회를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격적으로 밀어붙였다. 초안에서 정량적인 전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원전은 위험해서 포기하고, 석탄을 더러워서 빼겠다고 한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온실가스와 초미세먼지를 마구 내뿜는 LNG를 무차별적으로 증설한다는 것이 전부다. 산업부가 대통령의 엄중한 ‘탄소중립’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해버렸다. 장관이 관료들의 소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탈원전에 따른 국민 부담도 가시화하고 있다. 한전이 밝힌 ‘연료비 연동제’와 ‘기후·환경요금 분리’는 그동안 억눌러 놓았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풀어헤치겠다는 신호탄이다. 산업부와 밀착돼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전에 전기요금 무제한 인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것일 뿐이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경제가 죽고 국민 생활이 무너진 후에는 탈원전도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와 신속 항원·항체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세계 최고의 원전기술을 확보한 것은 절대 공짜가 아니었다.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의 결과다. 이제 와서 우리의 값진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새해 벽두에 자칫하면 우리가 이룩해왔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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