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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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사당 난동이 벌어진 이틀 뒤인 지난 1월 8일, 트위터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계정을 영구정지시켰다. 이때만 해도 그의 인터넷 제국이 무너진 줄 알았다. 그리고 맞은 첫 주식 거래일인 1월 11일, 오히려 휘청거린 건 트위터였다. 뉴욕증시에서 트위터 주가는 6.4%가 급락했다. 이날 3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증발했다.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트위터를 걱정했다. 가장 최근 발표를 보면 2020년 3분기 트위터의 일간 활성사용자는 약 1억8700만명이다. 그런데 트위터가 몰아낸 대통령의 팔로어 수가 8900만명이었다. 그가 거느리고 있는 팔로어는 열성적으로 트위터를 사용했던 사람들이다. 트위터의 조치는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일 순 있어도 투자자들은 그른 선택으로 봤다.

트럼프 대통령을 쫓아낸 소셜미디어는 더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바이든 당선자 취임식까지 그의 계정을 중단시켰다. 영구정지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트위치(Twich)와 스냅챗(Snapchat)도 대통령의 계정을 무력화시켰다. 레딧은 트럼프의 서브 그룹을 없애버렸다. 쇼피파이(Shopify)는 트럼프 선거운동 상품 채널을 삭제했다. 그러자 관심은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동으로 모아졌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추종자들을 만나려고 시도할 사람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 트럼프는 파괴적인 존재”

트럼프 대통령은 2009년 처음 트위터에 발을 디뎠다. 그때는 리얼리티 TV쇼의 출연자였고 풋내기 소셜미디어 사용자였다. 정치에 발을 들인 2015년 첫 대선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트위터 팔로어는 300만명, 페이스북 친구는 1000만명이었다. 그는 팔로어를 밑천 삼아 저비용 고효율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펼쳤다. 결국 백악관에 들어갔으니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건 소셜미디어라고 봐도 무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가 된 뒤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소셜미디어를 ‘힘’이라고 표현했다. “소셜미디어 이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경쟁자를 고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적 플랫폼에서 논쟁하는 능력을 가지면서 상대보다 더 많은 힘을 얻게 됐다.”

대통령으로 지낸 4년간 그는 뉴욕타임스나 CNN을 가짜뉴스라고 욕하고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을 날조하거나 중국을 얼간이라고 부르는 데 트위터를 썼다. 전용 메신저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됐다. 싸울 대상을 선택하고 공격하며 음모론을 퍼트리기에 이보다 좋은 도구는 없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뒤 올린 트위터 메시지는 3만2000여건이다. 이 메시지가 무서운 건 다른 어떤 공인들의 메시지보다 많은 참여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대런 린빌 클램슨대 소셜미디어 연구원은 “2015년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전 한 달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리트윗 평균치는 66회였는데 2020년 12월은 평균 1만9600회로 3만%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의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네트워크에 대통령의 메시지를 확산시켰다. 때로는 기계의 힘도 빌렸다. 워싱턴포스트는 “팔로어 중 상당수는 자동으로 리트윗을 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트럼프의 메시지를 공유했다”고 전했다.

만약 의사당 난동 사태가 없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측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랬다면 그는 1월 20일에 강력한 온라인 메가폰을 든 채 합계 1억명이 훌쩍 넘는 청중을 데리고 퇴임할 수 있었다. 현대 정치에서 가장 큰 직통 인프라를 가지고 백악관을 떠날 수 있는 대통령이 될 뻔했다. 그랬다면 2021년의 소셜미디어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집회 장소로 끊임없이 괴롭힘당했을지 모른다. 유명 역사학자인 티모시 나프탈리 뉴욕대 교수는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미국 정치에서 파괴적인 존재가 될 것 같다”고 봤다. 바이든이 자신의 유산을 훼손할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침묵을 지킬 리 없어서다.

실리콘밸리의 발빠른 조치는 민주당에 정치적 이득을 줬다. 의사당 난동 사건 직후 하원 국토안보위원장인 베니 톰슨 의원(민주·미시시피)처럼 “이들 기업(소셜미디어 기업)이 그의 계정을 영구히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실리콘밸리는 여기에 응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현저히 줄었다. 그는 2024년 대선의 잠재적인 후보였다. 재출마에 대해서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선택지를 열어둬야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다.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한 것도 그의 정치적 재기를 싹부터 잘라버리기 위해서다. 애덤 시프 민주당 하원 정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퇴임 전에 탄핵 심판이 열리지 못한다면 퇴임 후에라도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 그의 재출마를 막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퇴임 이후라도 탄핵만 되면 트럼프는 공직에 나설 수 없다.

트럼프 측이 한때 대안으로 생각했던 팔러(Parler)는 구글과 애플이 앱 다운로드를 금지하고 아마존이 클라우드 서버 서비스를 중단하자 소셜미디어로서 힘을 잃었다. ⓒphoto 뉴시스
트럼프 측이 한때 대안으로 생각했던 팔러(Parler)는 구글과 애플이 앱 다운로드를 금지하고 아마존이 클라우드 서버 서비스를 중단하자 소셜미디어로서 힘을 잃었다. ⓒphoto 뉴시스

트럼프는 새로운 플랫폼 강구 중

탄핵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채널 저지는 민주당이 해야 할 숙제다. 조 바이든 당선자가 내놓은 목표는 통합의 정치다. 지역·인종·당파적으로 분열된 미국을 하나로 모으겠다는 건데 이미 난이도가 높은 문제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씨앗을 여기저기 심어놓은 게 컸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 1월 7일 미국 유권자 139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자. 응답자의 63%가 의사당 난입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진영 간 온도 차가 심했다. 민주당 지지자는 93%가 위협이라고 봤지만 공화당 지지자는 27%에 불과했다. 의사당 난입 사태가 평화적이었는지 폭력적이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공화당 지지자들의 58%가 “평화적이었다”고 답했다.

그럼 이대로 ‘트럼프 메가폰’은 막힐까. 트위터나 페이스북 없이도 팔로어들에게 다가갈 순 있다. 폭스뉴스나 OANN 같은 보수 방송국은 그의 메시지를 중요하게 다뤄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의 규칙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온라인 제국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두 가지다. 비주류 소셜미디어로 이동할 수도 있고 그만의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 수도 있다.

주류 플랫폼에서 쫓겨났으면 열렬한 추종자들이 있는 마이너 플랫폼으로 가면 된다. 원래 1000만명 정도의 이용자를 보유한 팔러(Parler)는 유력한 대안이었다. 트럼프의 두 아들이 활동 중인 곳이기도 했고 극우 사용자들이 많다. 실제로 의회 난동이 벌어지기 이전부터 트럼프는 트위터를 대체할 다른 소셜미디어를 찾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9년 여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운동에 참여한 참모들이 팔러 가입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모바일앱 시장분석업체인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 1월 8일 트위터가 트럼프 대통령 계정을 정지시킨 날, 팔러 다운로드는 18만2000건이 이뤄져 전날보다 355% 증가했다. 그런데 폭력을 조장하고 선동한다는 이유로 구글과 애플이 팔러 앱 다운로드를 금지하고, 아마존웹서비스(AWS)가 팔러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팔러는 힘을 잃어버렸다.

현재로선 퇴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는 검열 규정이 거의 없는 온라인 보수 플랫폼인 갭(Gab)이나 미위(MeWe) 같은 곳이다. 갭은 2018년 11명이 사망한 피츠버그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반유대주의 게시물을 작성한 곳으로 알려지며 유명세를 탔고, 미위는 큐어넌 음모론이 활발히 전개돼 언론의 주목을 받은 곳이다. 두 곳 모두 보수적인 소셜미디어로 탄생한 건 아니다. 주류 소셜미디어보다 모니터링의 강도가 약하면서 자연스레 극우 사용자들이 몰렸다.

그런데 그의 성격으로 볼 때 새로 무언가를 만들 거라는 전망도 많다. 자신의 발언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연설장을 만들길 원하기 때문이다. 모니카 스티븐스 버팔로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소규모 플랫폼에 참여할 것 같진 않다.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는 무언가에 동참하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이미 그는 트위터로 민주당과 급진좌파가 자신에게 재갈을 물렸다고 불평하며 “조만간 우리만의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모호한 약속은 2016년의 데자뷔인데 당시 힐러리 클린턴에게 패배한다는 전망 때문에 ‘트럼프TV나 해볼까’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적이 있다. TV가 아니라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란 것만 그때와 다르다.

지난해 11월 17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미 상원 청문회에 화상으로 출석해 콘텐츠 검열과 규제에 관해 답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11월 17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미 상원 청문회에 화상으로 출석해 콘텐츠 검열과 규제에 관해 답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빅테크 떨게 만든 230조 법안 다시 수면 위로

자금만 있으면 서비스를 개발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사용자 때와는 다른 장벽이 가로막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들 네트워크가 유해 콘텐츠를 걸러낼까. 표현의 자유를 내세울 가능성이 클수록 팔러와 같은 운명을 맞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정부 아래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세계 3대 클라우드 업체가 트럼프의 소셜네트워크를 허락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서 빅네임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자신의 플랫폼에 가입시킬 힘이 있다. 하지만 열성 지지자들만 가입하다 보니 메시지 도달 범위는 줄어든다. 전 세계 기자들에게 알릴 수도,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확산시킬 수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건 그에게 큰 불만이다. 그의 플랫폼에 들어온 사람들은 트럼피즘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일 거다. 대신 이념적으로 고립될수록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네트워크 효과는 떨어진다. 그의 플랫폼은 그 자체로 이념의 집합체가 된다. 에단 주커만 매사추세츠 애머스트대학 교수는 “트럼프의 탈플랫폼은 이념적 노선에 따라 소셜미디어 세계의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 사람을 축출하기 위해 빅테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건 이전에 없던 일이다. 소셜네트워크에서 미국 대통령이 삭제된 것도 모자라 그의 후원금 계좌도 끊어졌고, 그의 지지자들이 피난처로 여기던 대안 서비스는 서버가 끊어져 오프라인이 돼 버렸다. 뜻하지 않게 빅테크의 견제받지 않는 힘이 주목받은 계기다. 공화당 인사지만 온건보수파로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마저도 “우리는 선출되지 않은, 책임질 수 없는 네댓 개의 회사가 권력과 독점권을 가지고 있고, 디지털 플랫폼에서 사람들을 지워버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때문에 빅테크는 가장 피하고 싶은 단어를 다시 맞아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날리면서 뜻하지 않게 ‘규제’, 그리고 ‘통신품위법 230조’가 화두에 올랐다. 이 법 조항은 빅테크에 구세주 같은 존재다. 1996년 만들어진 통신품위법 230조 덕분에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은 사용자가 올린 게시물에 대해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일종의 면책권이다. 가짜뉴스와 인종·종교적 혐오 콘텐츠 등이 미국 사회를 격렬하게 갈라놓은 현실을 생각하면 이 법은 대표적인 악법이다.

반대로 빅테크는 이 법이 있어서 성장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나 잭 도시 트위터 CEO는 230조 폐지에 관한 의견을 물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산업이고 그래서 230조가 필요하다”고 항변했다. 만약 230조가 없다면 저커버그나 도시 같은 사업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줄소송을 당할지 모른다. 소송을 걱정해 콘텐츠의 자유를 제한하면 수익성은 떨어진다. 실리콘밸리에서는 230조를 두고 “인터넷을 만든 26개의 단어”라고 칭송한다.

미국과 유럽, 민주·공화당 모두 “규제 필요”

자신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빅테크는 ‘계정 정지’라는 펀치를 날렸다. 하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물러난 대통령으로 인해 미국 정치권에 통신품위법 230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빅테크를 긴장시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대로라면 이게 모두 “빅테크가 도를 넘어서 생긴 일”이다.

과거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은 ‘진보 편향’의 알고리즘을 문제 삼으며 230조 폐지를 꺼내 들었고, 민주당은 온라인 속 편견과 왜곡을 걸러내지 않고 방치한 책임을 물으며 230조 폐지를 주장했다. 이제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례처럼 빅테크의 정치적 영향력을 문제 삼으며 230조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은 트럼프와 같은 사람을 걸러내는 데 왜 이리도 오래 걸렸는지에 대한 책임을 물어 230조 폐지를 주장한다. 이유가 다를 뿐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통신품위법 230조의 수정이나 폐지에 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법은 희귀하다.

유럽에서 비슷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번 기회에 지지부진했던 소셜미디어 규제의 고삐를 확실히 죄겠다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맷 행콕 보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채널을 막아버린 결정을 두고 “소셜미디어 기업이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과 내서는 안 될 사람을 선택하고 있다”며 규제를 언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직접 나서서 트위터의 트럼프 대통령 계정 정지를 ‘문제’라고 지적했다. “언론의 자유와 같은 권리는 기업의 결정이 아닌 법률과 입법부에 의해 간섭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유럽식 신념을 근거로 내세웠다. 미국과 유럽, 공화당과 민주당의 빅테크를 향한 칼날을 보면 그들이 대통령을 삭제한 대가는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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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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