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경 경희대 교수를 만나러 지난해 12월 21일 경희대 의과대학 건물로 찾아갔다. 연구실에 들어가 보니 화학자의 책장 거의 절반을 해부학 서적이 차지하고 있다. 그는 “해부학을 강의할 수 있는 한국 내 유일한 화학자”라고 말하며 웃었다. 현재 그는 의대 의예과 소속이다. 의예과에는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교수가 속해 있는데 경희대의 경우 60여명의 교수들이 있다. 다른 학과인 의학과에는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교수 300여명이 속해 있다.
2017년 경희대에 자리 잡은 김 교수는 ‘해부학 및 신경생물학 교실’ 소속이다. 의대는 ‘미생물학 교실’ ‘병리학 교실’ ‘생리학 교실’ 등으로 연구진이 구분되어 있는데, 그가 해부학을 강의하는 화학자가 된 건 ‘해부학 및 신경생물학 교실’에 속하기 때문이다. 신경생물학과는 그가 알츠하이머 등 뇌질환을 연구해왔기에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으나 화학자와 해부학의 조합은 낯설다.
“해부학 강의하는 유일한 화학자”
해부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의대생에게 어떻게 강의를 할 수 있나 싶었다. 김 교수는 “포항공대에서 석박사 공부할 때 동물실험을 했고, 박사후연구원 시절 미국에서 뇌 공부를 1~2년간 한 적이 있다”면서 “해부학 과목은 팀 티칭이다. 4명의 교수가 공동으로 강의를 맡는다. 그중에는 의학박사(M.D.) 두 사람이 있다”라며 너무 놀라지 말라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는 해부학 강의 외에 실습도 한다. 경희대 의대에는 지난해 14구의 해부용 시신이 들어왔는데, 피를 몸에서 빼고 배도 가르고 뇌 해부도 해봤다. 그게 부족해 혼자서 지하 해부 실습실에서 따로 연습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해부를 할 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일부 동료 화학자는 김 교수를 걱정 반, 기대 반의 시선으로 지켜본다. 기초연구자가 의대에서 지내는 데 문제가 없겠느냐는 게 ‘걱정 반’의 시선이다. ‘기대 반’ 쪽은 대학병원에서 환자 샘플을 쉽게 구할 수 있어 연구에 좋지 않으냐는 시선이다. 그는 “의대에 속해 있으니 임상 샘플을 구해서 테스트하는 것도 비교적 쉬운 편이다. 사람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는 데 의대는 여건이 좋다”라고 말했다.
“환자에게 적용 가능한 신소재 개발”
김 교수는 의대에서 구체적으로 뭘 연구할까. 그는 “환자에게, 그러니까 임상학적으로 적용 가능한 신소재를 개발하는 화학자”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이런 설명도 덧붙였다. “유기화학에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들이 만든 물질을 바이오(Bio) 쪽으로 쓸 수 있는 응용 연구를 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뇌에 특이적으로 약이나 유전자가위 등 특정 기질을 보내는 시스템을 개발한다.” 김 교수 실험실 이름은 ‘DEL(Disease Expose Lab) 연구실’이다. ‘병이 숨을 곳이 없는 실험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가 뇌 전달(Brain Delivery) 시스템 연구를 시작한 건 박사후연구원 시절이다. 포항공대에서 석사와 박사(2009~2014)를 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샌디에이고)의 마이클 세일러 교수 방으로 연구하러 갔다. 세일러 교수는 다공성 실리콘 분야의 석학이다. 그는 뇌 전달 연구를 위해 박사 시절 뇌에 뭔가를 보내는 연구를 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뇌에는 약 말고도 면역강화제, 비타민 등 연구자들이 보내고 싶어 하는 게 많다. 그런데 그런 기질들이 뇌에만 가지 않는다. 몸의 다른 부위로도 간다. 간으로 가서 간 독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뇌로만 뭔가를 보내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뇌 전달’ 연구가 중요하며, 세일러 교수는 이를 위한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포항공대에서 알츠하이머 영상 진단을 위한 조영제 개발 연구를 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약물 100개를 몸에 넣었다면 나는 100개 모두를 뇌에 보내고자 한다. 약을 보내는 좋은 ‘셔틀(Shuttle)’을 개발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셔틀에 담을 약물로는 알츠하이머 관련 약물도 있고, 뇌종양 치료제나 노화억제 물질, 혹은 필수영양제도 있다. 그는 “뇌에 특이적으로 셔틀을 보내는 물질은 무궁무진할 거라고 본다. 그런데 고민해야 할 게 있다”라며 ‘셔틀’이 갖춰야 할 조건을 설명했다.
일단 셔틀은 독성이 없어야 한다. 배달 업무를 마치고 체내에 남아 있으면 안 된다. 부유물이 남지 않고 체외로 소변을 통해 배출되면 좋다. 또 셔틀을 뇌로 어떻게 잘 보낼 거냐는 문제가 있다. 셔틀에 내비게이터를 붙여 목적지를 찾아가는 문제를 해결한다. 뇌라고 모두 같지 않다. 정상인과 뇌종양 환자, 알츠하이머 환자는 모두 다르다. 그러니 ‘맞춤형’ 셔틀이 필요하다. 또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안 된다. 고가의 물질은 실용적이지 않다.
뇌로만 약물 보내는 ‘뇌 전달’의 중요성
김 교수가 책장에서 작은 시험관 몇 개를 갖고 와 보여준다. 시험관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는데 그 안에 다공성 실리콘 입자가 들어 있다고 했다. 실리콘 나노입자가 김 교수가 개발한 ‘셔틀’이다. 재료는 반도체를 만들 때 쓰는 실리콘 기판이다. 여기에 작은 구멍을 뚫어 겉면의 한 개 층을 뜯어낸다. 그런 뒤 실리콘을 잘게 부순다. 실리콘 입자, 즉 셔틀을 정맥주사를 통해 체내에 집어넣는다. 실리콘 입자는 인체 친화적이어서 독성 유발과 같은 문제는 없다. 다공성 실리콘 입자는 혈관을 타고 뇌로 간다. 뇌혈관에서 뇌로 넘어가려면 뇌혈관 벽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입자가 작아야 한다. 실리콘 입자, 즉 셔틀의 크기가 100㎚(나노미터)보다 작아야 한다. 그런데 연구자가 만들 수 있는 한계는 200㎚ 크기였다. 김 교수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을 때 한 일이 100㎚보다 작은 실리콘 입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지도교수에게 만들어보겠다고 하자 그는 “100㎚ 이하로 나오면 (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을 내줄게”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샌디에이고에서 그걸 붙잡고 애를 썼으나 1~2년을 맨땅에 헤딩만 하고 말았다. 만들지 못했다.
100㎚보다 작은 셔틀 최초로 개발
2017년 경희대에 와서 연구를 계속했다. 초임 교수는 실험실도 없고, 같이 연구를 할 학생도 없다. 학교에서 초임 교수 연구비(Start-up)로 수천만원을 받았고 이어 한국연구재단이 주는 ‘생애 첫 연구비’ 3000만원도 손에 쥐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2017년 2학기에 석사 학생 세 사람을 뽑았는데 인건비로 쓰기에도 부족했다. 개인 돈을 들여서 실험에 쓸 시약을 사야 했다.
중요한 건 ‘실리콘 입자’를 만드는 장비 개발이었다. 상업용 장비는 시중에 없으니, 직접 만들어야 했다. 미국에서 쓰던 장비를 모델로 해서 2년 걸려 2018년 말 장비를 완성했다. 장비에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다공성 실리콘을 만드는 식각(etching) 장치’쯤 된다. 이 장비를 완성하기 전인 2017년에 100㎚ 이하 크기인 60㎚ 크기의 다공성 실리콘 입자를 만드는 데 드디어 성공했다.
그는 실리콘 입자를 만든 후 쥐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쥐의 자궁경부암 세포에 실리콘 셔틀을 보낼 수 있었다. 100개 중 85개가 암세포로 갔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뇌세포에도 찔러봤는데 뇌혈관에서 뇌로 잘 넘어갔다. 비결은 다양한 조건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데 있었다. 실리콘 기판에 구멍을 뚫는 데 사용하는 불산(HF)의 농도도 중요하고, 어떤 크기의 전류를 얼마만큼 흘리는가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김 교수는 “어느 순간 최적의 조합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전기화학도 알아야 했다. 공부를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다공성 실리콘 입자를 60㎚ 크기로 작게 만든 건 김 교수가 처음이었다.
그는 미국 UC샌디에이고의 옛 지도교수에게 ‘네이처’에 논문을 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네이처가 거절했다.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나노테크놀러지’에 보냈으나 또 거부됐다. 최종적으로는 2017년 재료 관련 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에 논문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