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산업부가 공개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 ⓒphoto 뉴시스
지난 2월 1일 산업부가 공개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 ⓒphoto 뉴시스

어설픈 ‘북원추(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의 아이디어가 담긴 산업부의 문서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경제성 조작까지 마다하지 않고 탈원전을 밀어붙인 정부가 원전을 북한과의 핵심적인 경협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것이다.

탈원전을 위해서 월성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조작하는 불법적 업무를 담당하던 실무자가 동시에 탈원전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북원추를 은밀하게 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역시 충격적이다. 놀라울 정도로 무능하거나 어쩔 수 없는 압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바보야 문제는 탈원전이야’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의 존재는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야당의 공격적인 지적에 대한 정부·여당의 반응은 지나칠 정도로 격하고 혼란스럽다. 자중지란이 따로 없어 레임덕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야당 대표에게 ‘법적 대응 이상의 조처’를 고려하겠다는 청와대의 초법적 발언은 민주사회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협박’이다. 법치와 소통을 강조해왔던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누워서 침을 뱉는 형국이다.

‘북한 원전 자료는 박근혜 정부부터 검토한 내부자료’라는 여당 의원의 발언을 산업부 대변인이 정면으로 부정해버리는 일도 볼썽사나운 것이었다. 머쓱해진 여당 의원은 자신의 발언은 ‘추정’이었을 뿐이라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정부가 지나치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폐기된 것으로 알려졌던 문서가 산업부 대변인의 손을 통해 홀연히 멀쩡하게 되살아난 것도 깜짝 놀랄 이변이었다. 북원추 파일이 하필이면 옆자리의 컴퓨터에서 온전하게 발견되었다는 주장은 ‘유아적’ 해명이다.

그렇다면 재판에 넘겨진 관료가 일요일 야밤에 아무도 몰래 삭제했다던 530여개의 파일도 산업부의 다른 컴퓨터에 온전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산업부는 정부를 위해서 불법적인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동료들을 구명하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 찾아낸 모든 파일의 공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부·여당의 변명과 반박이 지나치게 옹색하고 구차하다. 과거 정권에서도 북한에 원전 제공을 논의한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때는 원전이 분명하게 남북 경협의 수단이 될 수 있었다. 탈원전도 없었고, 북핵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어쨌든 국민안전과 환경보호를 위해 탈원전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은 당연히 북한에도 적용되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위험하지만 북한 주민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억지일 뿐이다. 북핵 때문에 시작된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제재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과거 정권에서도 북한 원전을 얘기했는데 우리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남북 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2018년에 일부 언론과 단체들이 북한에 원전을 제공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주장은 명백하게 정부에 탈원전 정책의 폐기를 요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어설픈 탈원전의 폐기가 한반도의 비핵화와 남북 화해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지금까지도 탈원전을 고집하는 정부의 입장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른 것이었다. 남의 주장을 아전인수 격으로 왜곡하는 버릇은 절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특히 권력을 쥐고 있는 여당의 사실 왜곡은 몹시 부끄러운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북원추의 내용은 절대 북한에 전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비무장지대에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은 기술적으로 소가 웃을 정도의 엉터리다. 비무장지대의 정치적 가치를 인식하는 정치인들에게나 가능한 발상이다. 신한울3·4호기를 완공해서 북한에 송전하겠다는 구상도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원전 제작사의 마당에서 오래전에 시뻘겋게 녹슬어버린 원자로 구조물을 활용하겠다는 지적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엄청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기업의 염장을 지르는 못된 행태다.

하루가 시급한 경제성 조작 수사

북원추 문서 논란의 진짜 중요한 핵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원추 문서는 월성1호기의 경제성 조작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산업부 관료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자료에서 불거진 곁가지일 뿐이다. 원전산업을 관리해야 하는 산업부가 엉뚱하게 탈원전의 주무부처로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월성1호기 수사의 핵심이다. 아무리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라고 해도 주객(主客)이 뒤바뀌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월성1호기의 경제성 평가 조작에 대한 수사와 사법적 책임은 어떤 꼼수로도 회피할 수 없다. 이미 1년이 훌쩍 넘는 감사원의 감사를 통해서 불법적 정황은 모두 드러났다. 이제 검찰이 범죄 사실을 확인하는 단순한 절차만 남았을 뿐이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끝까지 탈원전을 위해 입을 다물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무망한 것이다. 백 전 장관이 더 큰 대의를 위해 입을 다물어주도록 단련된 정치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탈원전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 원전 기술은 우리 과학기술계와 산업계가 지난 60년 동안 그야말로 땀 흘려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개발해놓은 가장 소중한 성과임이 틀림없다. 일부 몰지각한 환경·생태주의자와 정치꾼들의 어설픈 선동에 휘둘려서 그런 성과를 휴지통에 던져버리는 일은 훗날 역사적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많이 늦었지만 정부가 탈원전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흔들리면 국가경제도 휘청거리고, 국민안전과 환경보호도 불가능해진다. 정부가 오매불망 염원하는 남북관계의 개선도 어려워진다. 비핵화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원전은 안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기술이다. 미래의 기술인 신재생을 위해 탈원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믿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의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원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정부·여당이 원전의 안전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것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여당 대표가 섣불리 나섰던 월성원전 삼중수소 논란이 며칠 만에 가라앉아 버린 현실을 주목해야 한다. 주민들과 한수원 사장까지 여당 대표의 문제제기에 반발하고 나섰다. 우리 원전이 40년 이상 무사고·안전 가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탈원전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더 이상의 억지는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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