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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6호]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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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돌아온 폴리페서들의 만능 대선 공약이 무섭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2021-02-25 오후 4:52:39

▲ 탈원전 공약에 따라 영구정지 결정이 내려진 월성 1호기. photo 뉴시스
내년 3월로 예정된 대선의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친문 세력의 ‘민주주의 4.0’이 물밑 활동을 시작했다. 정세균 총리 지지 모임으로 전북에서 8년 동안 와신상담하던 ‘국민시대’도 정세균 싱크탱크를 자처하고 나섰다. “코로나와 싸우느라 (대선에 신경 쓸) 정신이 없다”던 총리의 지난 2월 4일 국회 답변은 빈말이었나 보다. 엉터리 언론 폭로로 유전자 편집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었던 김진수 박사를 추락시켜버린 여당의 박용진 의원도 대선 캠프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두컴컴한 밀실을 통해 화려한 양지로 한바탕 출세(出世)를 꿈꾸는 철새 폴리페서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민주화가 만들어낸 비정상
   
   대선 캠프는 애써 이룩한 민주화의 산물이다.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에서 온 국민이 공감하는 민주투사가 후보로 등장할 가능성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대선은 ‘도토리 키 재기’로 변해버렸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후보자의 능력·경험·비전만으로는 합리적 선택이 불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오히려 후보가 동원할 수 있는 대선 캠프의 정치적 영향력과 화려하게 치장한 공약이 훨씬 더 중요해져버렸다. 대선 캠프가 대선을 압도하는 비정상이 일상화돼버린 셈이다.
   
   후보자가 자신의 정치적 세(勢)를 과시하고, 유권자의 설득에 필요한 화려한 공약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선 캠프의 일차적 역할이다. 그런 대선 캠프가 집권에 성공한 후보에게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재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대통령과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동지’로 인정받게 되는 캠프 인사들에게는 확실한 출세의 길이 열린다.
   
   대부분의 캠프는 대학의 교수들로 채워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교수는 본업을 놓지 않고도 정치권을 기웃거릴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 연구에서 쌓은 전문성을 활용해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한다는 주장은 핑계일 뿐이다. 사실은 연구와 교육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호시탐탐 출세의 기회를 엿보던 ‘폴리페서’들이 마지막 승부처로 선택하는 곳이 바로 대선 캠프다.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는 폴리페서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학문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이룩한 학자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의 현실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춘 윤리적 폴리페서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알량한 교수직을 발판으로 정치권과 부처 관료들 주위를 맴돌면서 정부의 용역사업이나 기웃거리던 변방의 교수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전문성·윤리성보다는 요란한 수사(修辭)와 말재주를 앞세우기 마련이다.
   
   자격 미달의 폴리페서들이 밀실에서 중구난방으로 쏟아내는 대선 공약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과거 공약과의 차별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화려한 포장이 가능한 과학기술 관련 공약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국가 경제·안보와 국민 생활을 위한 장기 과제는 사라지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단기 과제 중심의 공약이 넘쳐난다.
   
   대선 캠프가 ‘코드 인사’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도 난감한 현실이다. 5년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단계에 들어선 지금도 대통령이 챙겨줘야 할 폴리페서들이 넘쳐나고 있다. 캠프 출신의 코드 인사로는 원활한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진실이다.
   
   
   법치를 위협하는 대선 공약
   
   대선 공약의 ‘위세’는 대단하다. 국회가 제정해놓은 법률이나 우리 사회의 상식적 관행도 공약 앞에서는 힘을 잃어버린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 조작에 대한 검찰 수사에 격하게 반발하는 이유도 대선 공약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 때문이다. ‘월성 1호기를 언제 폐쇄하느냐’는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했던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통령이 진노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아무리 ‘우리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검찰이라도 신성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고, 공개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국정과제’인 탈원전은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는 것이 청와대 대변인의 항변이었다. 법치를 강조하던 정부·여당의 입장은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공약이나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저질러진 탈법과 불법은 검찰이 수사하면 안 된다는 법률이나 관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다.
   
   대선 공약에 의한 혼란은 탈원전만이 아니었다. 노동생산성과 임금에 대한 왜곡된 통계분석에서 시작된 ‘소득주도성장’ 공약도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되고 말았다. 결국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줄 것처럼 요란했던 소득주도성장이 언젠가부터 아무도 들먹이지 않는 금기어로 변해버렸다. 그런데도 소득주도성장을 고집했던 캠프의 인사들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동안의 정책적 혼란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것이었던 검찰 개혁도 윤리적으로 타락한 어설픈 법학자에 의해 의미가 완전히 퇴색해 버렸다. 이제 우리는 범죄의 수사에서도 일반 국민은 고위공직자와 명백하게 구분되는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같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출세한 고위공직자는 수사 단계에서부터 차별화된 대접을 받는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은 설 자리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대선 공약이 막강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의정부가 채택했던 햇볕정책이 그랬고,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과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이 그랬다. 지역균형발전의 수단으로 밀어붙였던 수도 이전은 대통령을 탄핵 직전까지 몰고 가는 원인이 돼버렸다.
   
   MB 정부의 4대강·녹색성장·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그랬고,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청난 예산을 무작정 쏟아부어 마구잡이로 만들어놓은 4대강 보가 이제는 합리적 근거도 없는 해체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무작정 만들었다가 무작정 부수는 공약으로는 국가 발전이 불가능하다.
   
   노벨상·국제·비즈니스를 어설프게 짜깁기해 놓았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결과도 몹시 실망스럽다. 노벨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지금도 표류하고 있다. 박용진 의원의 엉터리 폭로로 단장 직위도 빼앗긴 IBS의 김진수 박사는 특허 도둑질과 연구비 횡령범으로 재판정을 드나들어야만 했다. 다행히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사태는 돌이키기 어려운 형편이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중이온가속기는 완공조차 보장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제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대선 공약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대선공약관리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형편이다. 대선 캠프에 영입되는 폴리페서들에 대한 공개적인 자격 검증도 필요하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가 그렇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정부출연연구기관에 400년 전 서양의 르네상스를 되살리라는 요구는 부끄러울 정도로 퇴행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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