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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7호]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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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의 최전선]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과학자 현택환 교수의 나노화학 개척

최준석  선임기자 jschoi@chosun.com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10월 노벨상 발표 시즌 당시 서울대 현택환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가 한국에서 조명을 받았다. 영국의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라는 글로벌 정보 서비스기업이 지난해 9월 23일 노벨상 발표를 앞두고 수상 가능성이 높은 학자를 예측했는데, 화학 분야 후보군 6명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1일, 서울대 제2공학관 8층의 현택환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니 출입구 쪽 진열장에 클래리베이트가 만들어 보낸 ‘2020 Citation Laureates in Chemistry’라고 쓴 패가 놓여 있었다. 클래리베이트 예측은 적중률이 상당히 높다. 2002년부터 2019년까지 예측한 후보자 중에서 54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현 교수는 화학생물공학부가 자리 잡은 서울대 ‘제2공학관’(302동)의 교수 연구실을 자신의 공간으로 쓰고 있었다. 그는 IBS(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 연구단 단장이기도 하다. IBS 단장이라는 건 그가 한국 과학계에서 스타라는 또 다른 증거다. 그는 2011년 세계 화학의 해를 맞아 선정한 ‘세계 100대 화학자’에 이름을 올렸고, 그게 2012년 IBS 단장이 되는 데 크게 작용했다.(당시 100대 화학자 명단에는 세 명의 한국인이 있었고, 이름이 오른 김기문 포항공대 교수, 유룡 카이스트 교수, 현택환 서울대 교수는 모두 IBS 단장이 되었다.)
   
   
   대학 수학 시험 때 남긴 전설
   
   연구실 안과 문 앞에서 현 교수 사진을 찍는데 연구실 바깥쪽 벽에는 지난해 표지 논문이 실렸던 과학 학술지 ‘네이처’의 표지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네이처 표지 논문을 쓴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서울대 83학번이다. 현 교수의 학창 시절 ‘전설’을 한 가지 들어 알고 있는 터라 그게 사실인지 먼저 물어봤다. 대학교 2학년 때 응용수학 과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점수를 받았다고 전해지는 것이 현택환의 전설. 그에게 “다른 친구들이 30점 안팎의 점수를 받은 시험에서 혼자 100점을 받았다는 얘기가 맞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그게 내게는 자신감을 회복한 계기가 되었다. 매우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회복’? 그럼 그전에 뭔가 망가졌다는 얘기가 된다.
   
   현 교수는 “나는 항상 출발이 안 좋았다”라고 했다. “대구 경신중 때는 2등을 했다. 체력장에서 점수를 까먹었다. 고교 때, 그러니까 대구 수성구에 있는 덕원고에서도 출발은 안 좋았다. 졸업 때는 1등을 했다. 서울대 화학과에 합격하고도 남을 점수로 합격해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에 들어와서 자유로우니 놀았다. 노는 거 좋아하고, 친구들 좋아해 술 마시고 그러다가 상한 돼지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파라티푸스라는 병에 걸렸다. 1학년 중간고사를 앞두고 서울대병원에 2주간 입원했다. 1학년 때 학점이 잘 안 나와 자신감을 상실했다. 특히 1학년 1학기 성적이 안 좋다. 1학년 겨울방학 때 경북 달성의 집에 내려갔고, 고교 시절같이 공부했다. 2학년 때 배울 과목 일부를 예습했다. ‘유기화학’과 ‘응용해석(applied mathematics)’ 두 과목을 열심히 했다. 2학년에 올라가 두 과목 점수가 잘 나와 자신감을 회복했다.”
   
   당시 응용해석은 수학과 민호기 교수 과목이었다. 자연대학의 물리학과, 화학과 학생이 모두 들어야 하는 전공 필수 과목. 시험은 2학년 1학기에 세 번 보았는데 문제가 난해하기로 악명 높았다. 첫 번째 시험에서 수강생 절반 이상이 빵점을 받았다. 50점 이상은 1~2명에 불과했다. 이때 현택환 학생은 100점을 받았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빵점 받은 수강생이 좀 줄었으나, 3분의 1은 여전히 빵점이었다. 현택환 학생은 이 시험에서도 100점을 받았다. 이국적인 풍모의 민호기 교수가 두 번째 시험 답안지 채점한 걸 나눠주면서 “현택환이 누구야. 어떻게 100점을 맞아? 또 100점이야”라고 말했다. ‘응용해석’ 과목에서의 좋은 점수는 그를 동기들 사이에서 전설로 만들었다.
   
   현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어바나-샴페인)에 가서 박사공부를 했다. 1991년이었다. 미국 경기가 나빠 일리노이대학 이상의 좋은 대학으로 유학을 갈 수 없었다. 그보다 상급의 대학은 외국인 학생을 잘 받지 않았다. 현 교수는 “그 이야기를 하려면 길다”라고만 말했다.
   
   
▲ 균일한 나노입자와 불균일한 나노입자 비교 이미지. 기존에는 불균일한 크기의 나노입자를 만들고 그중에서 같은 크기별로 골라내 사용했다. 현택환 교수는 같은 크기의 나노입자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박사 유학 때는 ‘초음파 화학’ 연구
   
   국비 장학금을 받고, 일리노이대학 어바나-샴페인 화학과의 케네스 서슬릭(Kenneth Suslick) 방으로 갔다. 서슬릭 교수는 ‘초음파 화학’ 연구자. 박사 공부 때도 현 교수는 발동이 늦게 걸렸다. 3년 동안 논문이 나오지 않아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이러다가 박사학위는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학위를 받아도 중소기업 정도에 취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 그는 일리노이대학 화학과 건물 중 하나인 ‘노이즈랩(Noyes Lab)’ 3층 도서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실험이 잘 안 될 때는 도서실에 가서 논문을 읽었다.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내는 법을 노이즈랩 도서관에서 배웠다. 논문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을 아이디어 노트에 적었다.
   
   현 교수는 박사과정 초기에 고전한 이유에 대해서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험을 해보면 생각대로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쉽지 않다. 너무 쉽게 풀려도 고민할 시간이 없어서 좋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박사과정 때 공부한 ‘초음파(supersonic) 화학’이 무엇일까? 현 교수는 “초음파로 화학을 해보려는 것이다. 초음파 화학 분야가 기대만큼 커지지는 못했다. 초음파 가습기, 초음파 세정기 등에 사용되는 초음파를 화학에 응용하려는 새로운 학문 분야였다”라고 말했다.
   
   3년간의 분투는 ‘해피엔딩’이었다. 그는 박사 4년 차, 그리고 졸업 직전에 쓴 두 편의 논문을 1996년 미국화학회지(JACS)에 보고할 수 있었다. JACS는 많은 화학자가 꼽는 최고의 화학 학술지 중 하나다. 두 편의 논문 내용에 대해 현 교수는 하나는 몰리브덴-카바이드 물질을 만들어 촉매에 용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철 콜로이드 입자를 만든 연구라고만 얘기했다. 그는 졸업하면서 어바나-샴페인 소재 일리노이대학이 무기화학 분야의 최우수 박사논문을 쓴 사람에게 주는 ‘T. S. 파이퍼 상’을 받았다.
   
   미국화학회지에 두 편의 논문을 쓴 게 평가를 받아 1997년 서울대 교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공과대학 소속의 ‘공업화학과’ 교수로 채용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화학공학과’와 통합되었다. 오늘날은 ‘화학생물공학부’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현 교수는 화학자인데, 화학공학과에서 일하고 있다. 화학(자연과학)과 화학공학(공학)의 차이에 대해 그는 “요즘은 두 분야 구분이 없다. 개인적으로 화학과 교수로 일하는 것보다 화공과에 왔기에 더 자유롭게 지냈다. 화공과 교수들은 동료 교수였지, 은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공대가 자연대보다 개방적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교수 채용 뒤 연구 주제 완전히 바꿔
   
   서울대 교수가 된 뒤에 그는 연구 주제를 완전히 바꿨다. 박사 때 했던 ‘초음파 화학’이 좋은 분야였지만 잊어버렸다. 그 대신 당시 막 떠오르고 있던 ‘나노화학’이라는 분야에 도전했다. 현 교수는 “1999년을 나노기술의 원년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당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국가 나노테크놀러지 이니셔티브(National Nanotechnology Initiative)’를 발표하고, 이후 나노기술 연구를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현 교수는 20여년 전 새로운 분야에의 도전을 돌아보며 “박사학위를 하고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면 박사 때 연구는 버리라는 얘기를 제자들에게 자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시카고대학, 코넬대학, MIT의 교수들 ‘정년(tenure)심사’를 자주 하는데 한국에서 서류로 정년심사를 할 때 대상자가 박사 때, 박사후연구원 때 했던 주제를 조교수가 되어서도 그대로 가져갔는지, 아니면 새로운 걸 하는지를 중요하게 본다고 했다.
   
   현 교수는 독립적인 연구자의 길을 걸은 지 2년 만인 1999년에 나노화학 관련 첫 논문을 영국화학회지에 썼다. ‘나노 다공성 탄소 물질’을 개발한 걸 보고한 것으로, 지금은 카이스트 교수(생명화학공학부)인 첫 박사 제자 이진우 학생(서울대 93학번)이 연구했다.
   
   현 교수는 이어 나노화학 분야에서 두 건의 중요한 논문을 썼다. 2001년 JACS에 실린 논문과, 2004년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실린 논문이다. 두 논문을 통해 그는 나노화학 분야의 개척자, 혹은 초기 연구자 중 한 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001년 논문은 ‘균일한 크기의 나노입자’를 만들어내는 ‘승온법(Heat-up process)’ 개발에 관한 것이었고, 2004년 논문은 균일한 나노입자를 값싸게, 많이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었다.
   
   
▲ 현택환 교수의 외부강의 슬라이드 한 컷. ‘창의력은 좋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

   균일한 나노입자를 만드는 방법을 찾다
   
   현 교수가 균일한 나노입자를 만드는 방법을 내놓기 전에는 여러 가지 크기의 나노입자를 만들어놓고 그중에서 같은 크기의 나노입자를 골라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현 교수가 이런 크기 분리 과정을 거치지 않도록, 균일한 크기의 나노입자를 바로 합성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출발 물질은 Fe(CO)5. 현 교수는 균일한 크기의 나노입자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반도체 나노입자가 어떤 형광을 내놓느냐는 입자의 크기에 달려 있다. 원하는 빛을 정확히 내기 위해서 균일한 크기의 나노입자를 얻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2004년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실린 논문 연구는 지금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에너지화학공학과)로 일하는 박종남 학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 교수는 “2001년 연구가 산화철 나노입자를 사용해 ‘밀리그램’ 정도의 균일한 나노입자를 생산할 수 있었다면, 2004년 네이처 머티리얼스 논문에서는 ‘수십 그램’ 생산할 수 있는 걸 보여줬고 이걸 한화석유화학이 가져가 연구해 ‘킬로그램’ 규모로 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현 교수의 논문, 특히 2004년 논문은 피인용 횟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논문을 작성할 때 현 교수 논문을 인용한다는 뜻이다. 균일한 나노입자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2004년 논문의 피인용 횟수는 현 교수가 보여주는 슬라이드를 보니 ‘구글 스칼라’ 기준으로는 3900회 이상,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 기준으로는 3000회 이상이다.
   
   현 교수는 현재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양자점(Quantum Dot)을 예로 들어 자신의 연구를 설명했다. 양자점은 QLED 디스플레이 색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나노입자다. 나노입자로 색을 만드는 게 양자점 원리다. 나노입자의 크기가 다르면 다른 색을 낸다. 지난 20년간 나노화학 분야의 주요 산물이 ‘양자점 TV’이다. 그러니 QLED 디스플레이는 수없이 많은 나노입자를 필요로 한다. QLED에 들어가는 나노입자를 만드는 방법은 프랑스의 피터 레이스 교수 그룹이 2008년에 내놓았다. 현 교수는 “피터 레이스 그룹이 QLED에 들어가는 나노입자 생산법을 내놓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바로 내 그룹의 연구인 승온법”이라고 말했다. 삼성 QLED에는 현 교수가 만든 승온법이 직접 들어가지는 않으나, 그걸 구현하기 위한 원천기술을 현 교수가 개발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으니,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은 현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고, 그때마다 그의 논문 피인용 지수는 올라간다.
   
   현택환 교수가 지난해 10월 노벨상 후보로 각광을 받은 것도 나노화학 연구 실적 덕분이다. 지난해 10월 노벨화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던 날, 현 교수 연구실 바로 앞에 기자 20여명이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 그는 그날 학생들에게 ‘줌’으로 비대면 강의를 했는데, 아이돌그룹 BTS의 ‘Not Today’(‘오늘은 아니다’라는 뜻)를 틀어줬다. 2020년에는 노벨화학상을 받을 차례가 아니라는 뜻을 BTS의 노래를 통해 전달한 셈이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클래리베이트에 이름이 올라가고 당해에 노벨상은 받은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현 교수에 따르면 노벨화학상은 크게 보면 세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유기화학·물리화학·분석화학과 같은 정통 화학 분야, △지난해 노벨상을 받은 크리스퍼 가위와 같은 생화학 분야, 그리고 △리튬 이온 배터리와 같은 응용화학 분야다. 세 분야를 돌아가면서 노벨재단은 상을 준다. 2019년 노벨화학상은 응용화학인 리튬 이온 배터리 개발자(존 구디너프)가 받았다. 그러니 2020년에는 응용화학자가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던 것이다. 나노화학은 응용화학 분야다. 그리고 나노화학에서도 순서가 있다. 현 교수는 “나는 그 분야를 만든 사람이 아니다. 나노화학의 이론적 기초를 만든 70대 연배의 학자들이 있다. 그분들이 먼저 상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에 앞서 노벨상 받아야 할 나노화학자들”
   
   나노입자 크기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는 이론을 낸 사람은 두 사람이다. 러시아 학자이던 알렉산더 이프로스(Alexander Efros·현재는 미국 해군 연구소 소속)가 1982년에, 루이스 브루스(Louis E. Brus) 현 컬럼비아대학 교수가 1983년에 관련 논문을 냈다. 그리고 실험가의 연구가 나왔다. 모운지 바웬디(Moungi Bawendi) MIT 화학과 교수와, 모운지 바웬디의 학생이던 크리스토퍼 머리(Christopher Murray)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 논문이 1993년에 나왔다.
   
   현 교수에게 “노벨상을 받기 전에 먼저 받아야 할 다른 상들이 있다고 들었다. 무기화학 분야에는 어떤 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현 교수는 “무기화학 분야로 좁혀 말하기보다 화학 분야, 그리고 물리학 분야로 넓혀 보면 ‘울프상(Wolf Prize)’이 있다. 그리고 생리의학 분야에서는 ‘래스커상(Lasker Award)’이 있다. 노벨화학상을 받으려면 울프상을 먼저 받아야 한다. 나도 그렇고, 지난해 클래리베이트의 노벨상 후보로 거명된 다른 동료 두 명은 아직 울프상을 못 받았다”라고 말했다. 나노화학 이론을 만든 루이스 브루스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울프상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두 가지 면에서 자랑스럽다. 일단 나의 나노화학 연구가 한국에 와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나의 연구는 ‘메이드 인 코리아’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IBS 연구단장으로 일하면서 젊은 학자를 도울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교수가 된 뒤에 빨리 실적을 낼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2012년에 IBS 연구단장이 되었다. 유능한 젊은 교수들을 뽑아 연구단 소속으로 해서 그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가령 내 연구단의 부단장인 서울대 김대형 교수(화학생명공학부)는 유연 전자 소자(soft electronics)의 세계적 대가가 되었다. 서울대 박정원 교수(화학생명공학부)는 동년배 세계 화학자 중에서 최고다. 교수가 되고 3년 반 만에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표지 논문을 썼다. 그간 JACS에 논문을 7~8편은 썼을 것이다. 이건 IBS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지난 8년간 IBS가 있었기에 나의 연구는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현 교수는 향후 연구에 관해 질병 연구와 에너지 쪽을 공략할 거라고 했다. 치료제가 없는 질병인 패혈증,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허혈성 뇌졸중을 인공나노효소를 갖고 치료제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분야 연구는 “IBS 연구단에서 같이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서울대병원의 최승홍 교수가 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취재였다. 울프상을 받고, 노벨상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현 교수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받았다. 그걸 자랑할 날이 오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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