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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3호]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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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열풍? 거품? NFT 실체는 소유에 대한 집착

김회권  기자 khg@chosun.com 2021-04-12 오후 5:14:36

▲ 5000개의 디지털아트를 조합한 비플(Beeple)의 NFT 작품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달러에 낙찰됐다. photo 뉴시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글로벌 비즈니스 인맥 사이트인 링크드인(Linked in)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뽑기 위해 채용공고를 냈다. 그런데 지원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흥미롭다. “미디어 산업이 빠른 변화를 겪고 있다”며 내건 조건 중 하나가 ‘암호화폐 분야에 능통할 것’이었다.
   
   CFO에 요구되는 자질 외에도 타임이 디지털 자산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는 또 발견된다. 최근 타임은 과거 표지 중 9개의 이미지 파일을 ‘슈퍼레어(SuperRare)’라는 마켓에 올려 경매에 부쳤다. 슈퍼레어는 NFT(대체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 마켓으로, 최근 미술 시장에서 가장 큰 거래액을 기록하고 있는 곳이다.
   
   타임이 올려놓은 이미지 중에서 가장 높은 값을 받은 건 우주탐사 경쟁을 다룬 1959년 1월 19일 자 표지였다. 60년 전의 일러스트로 카메라를 들고 달을 촬영하고 있는 인공위성과 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달을 의인화했는데 낙찰가가 139.05이더리움(Ethereum)이었다.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을 거래 시점 기준 달러로 환산한 가격은 29만304달러, 우리 돈 3억2557만원에 낙찰됐다. 타임은 이번 경매에서 얻은 수익금을 비영리단체에 기부할 예정이지만 과거의 유산을 수익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건 큰 수확이었다.
   
   최근 우리는 ‘NFT’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사용되는 이 단어는 토큰화된 디지털 자산을 뜻한다. 가치가 있는 것, 혹은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디지털로 기록할 수만 있다면 유형자산이든 무형자산이든 상관없이 모두 토큰화해 NFT를 발행할 수 있다. NFT에는 이미지, 동영상, 오디오뿐만 아니라 소유권, 거래내역 등 여러 종류의 정보를 담을 수 있다.
   
   
   ‘복제’를 ‘원본’으로 뒤바꾸면 생기는 일들
   
   NFT는 서로 다른 데이터를 갖고 있다. 같은 종류라고 해도 내재된 가치가 달라 다른 토큰으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세상에는 수많은 말티스 강아지가 있지만 내가 키우는 우리 집 말티스는 단 한 마리뿐이며 다른 말티스와 가치가 다르다. 말티스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말티스가 아니다. 키우는 주인이 누구인지, 어떤 대접을 받고 키우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강아지이고 대체불가능한 존재다. 이런 개념이 ‘Non-Fungible’이다.
   
   만약 내가 지금 경매되고 있는 타임의 표지 NFT를 구입했다고 치자. 3억원이 넘는 돈을 주고 확인할 수 있는 건 각종 정보들이다. 거래는 보통 이더리움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의 이더리움 지갑 정보, 판매자인 ‘타임’의 이더리움 지갑 정보, 이더리움 전송과 함께 생성된 스마트계약, NFT의 전송, 지급한 가격과 수수료, 그리고 이 거래와 소유권 등의 정보가 저장된 이더리움의 블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산 표지 이미지 파일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이 파일을 연결할 수 있는 URL을 제공받는다. 거래소 서버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IPFS라는 분산저장시스템에 파일이 저장돼 있어서 확인할 수 있다. 거래소가 문을 닫을 경우 구입한 파일이 날아갈 수 있다는 위험이 제기되면서 생긴 변화다.
   
   정리해보면 3억원을 넘게 주고 산 건 결국 블록체인에 기록된 문자와 숫자의 조합, 그리고 링크다. 그렇다고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는 표지 이미지가 경매사이트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구글링만 해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원래 이미지나 동영상은 원본과 복사본이 구별되지 않는다. 원본의 아우라가 없다. 실물 창작물이 유일성을 내세워 독자적 가치를 인정받는 건 진짜배기에서 나오는 아우라 때문이다. 디지털아트는 원본과 차이 없는 복제가 무한정 가능하다는 이유로 창작의 세계에서는 그간 홀대받았다.
   
   뒤집어 말하면 단 하나만 존재하는 창작물이라는 걸 입증할 수 있다면 디지털아트라도 희소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거액을 주고 산 숫자와 문자의 조합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수많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내가 산 타임 표지의 JPG 파일이 저장돼 있더라도 NFT가 증명하는 유일한 원본은 슈퍼레어에서 구입한 이미지 하나뿐이라는 걸 입증해주는 게 블록체인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 소유주만이 이미지 파일을 디지털 자산 형태로 소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이처럼 NFT는 디지털 세계의 속성이던 ‘복제’를 ‘원본’으로 뒤바꿔 디지털 자산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 내렸다.
   
   
▲ NBA 선수들의 특정 시점 영상과 기록을 담은 카드를 판매하는 ‘NBA 톱샷(Top Shot)’은 가장 성공적인 NFT 마켓으로 자리 잡았다. photo 톱샷 캡처

   “NFT는 아트를 덮어씌워 파는 것일 뿐”
   
   원본이라는 상징성이 디지털과 접목하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뉴스는 연일 엄청난 가격에 판매된 NFT 소식들을 전했다. 그림·사진·영상뿐만 아니라 잭 도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의 첫 트윗 같은 것도 33억원이라는 거액에 팔렸다.
   
   가장 충격을 준 건 무려 6930만달러에 판매된 NFT 작품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이 NFT로 만든 ‘매일: 첫 5000일’이라는 작품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술사를 통틀어 세 번째로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작품의 제목처럼 비플은 2007년부터 5000여일 동안 디지털아트를 만들었는데 이번에 낙찰된 작품은 그간의 창작물 중 5000개를 조합한 NFT다. 비플의 작업 5000개를 깨알처럼 모아놓은 것이 얼마나 예술성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가격과 화제성만 남았다. 낙찰자가 NFT 펀드인 메타퍼스(Metapurse)의 창립자라는 점 때문에 NFT 가격을 띄우기 위해서라는 음모론도 제기됐지만 그런 점을 고려해도 역사에 남을 가격인 건 틀림없다.
   
   특히 NFT는 희소한 가치를 가진 예술품과 궁합이 잘 맞는다. 그래서 이런 흐름을 가장 눈여겨 바라보는 곳이 미술계다. 그림의 유일성은 붓과 물감으로 일궈낸 캔버스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디지털아트도 유일할 수 있다고 하니 미술계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이런 흐름을 긍정적으로 보는 한 미술평론가는 NFT가 가진 확장성을 언급했다. “작품을 판매하는 ‘화랑’의 전통적 역할이 이제 직거래로 바뀌어 갈 수 있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오픈마켓에서 거래하듯 시장 진입이 쉬워졌고 판매 루트를 찾지 못하던 신진 창작자들은 NFT 시장에서 직거래를 통해 유통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젊은 창작자들 사이에서는 요즘 NFT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실제로 크리스티에 따르면 비플 작품의 경매에 참가한 응찰자의 90%가 새로 등록한 ‘뉴바이어’였는데 주로 젊은 층이었다. 이들은 작품의 감상보다는 소유에 집중한다. 갖게 된 걸 인증하고 기쁨을 누리는 데 익숙한 소비자다. NFT 서비스를 준비 중인 서울옥션 측도 “새로운 컬렉터들을 끌어들이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주로 젊은 층이 타깃이다.
   
   반대로 NFT의 가치를 의심하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요즘의 개념미술과 NFT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3월 열린 안창홍 작가의 개인전 ‘유령패션(Haunting Loneliness)’의 작품들은 스마트폰의 디지털펜으로 그려진 창작물이다. 이곳을 찾은 관객들은 그의 작품 중에서 원하는 작품 이미지를 골라 안 작가의 드로잉이 그려진 디지털 액자에 소장할 수 있다. 드로잉된 디지털 액자는 화면에 연출되는 디지털아트가 ‘안창홍의 작품’이라는 걸 보증한다. NFT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개념이다. 정 대표는 “미술품의 가치는 실물이 지닌 아우라에서 나온다. NFT는 아트가 아니라 아트라는 걸 덮어씌워서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NFT로 판매되고 있는 많은 작품은 디지털아트가 전혀 아니다. 전통적 미디어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의 디지털 사진일 뿐이다”(미 시사지 디애틀랜틱)라는 분석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가상이 현실을 압도하는 시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대립하고 있는 미술계와 달리 디지털화가 대세인 분야에서는 NFT가 훨씬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중음악은 지금 NFT의 비즈니스적 요소를 끌어내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DJ 블라우는 지난 2월 NFT를 발행해 약 130억원을 모금했다. NFT가 음악 시장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보자. 아이유의 음원을 다운로드받은 사람은 국내에 수없이 많다. 만약 아이유가 다음 음원을 NFT로 발매한다고 치자. 그리고 NFT로 발행되는 토큰을 1000개라고 가정해보자. NFT 속에 아이유의 녹음 장면이나 뒷이야기를 담은 영상, 미공개 음원 등을 담은 오디오 등이 포함돼 있다면? 아이유 팬이라면 1000명 안에 들어가는 그 가치가 꽤 소중할 수밖에 없다. 가수나 기획사 입장에서는 NFT가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채널이자 비즈니스 도구가 된다. DJ 블라우 역시 그런 매력을 느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유야말로 이 기술과 다른 기술의 차이점이다. 소유는 사람을 정말 흥분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유일성을 가진 그 무엇을 소유하기 위해 몰려든 자본 탓에 NFT가 투기 자산처럼 폭등했던 게 최근 몇 개월 새 있었던 일이다. 최근에는 그런 과열이 진정되는 분위기다. NFT 작품의 3월 평균 가격이 2월에 비해 70% 정도 폭락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비록 넘치는 유동성과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만들어낸 광풍일 거라는 시선이 팽배하지만 NFT 시장은 오히려 폭등을 바로잡는 건강한 조정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전통 미술관, 경매업체 등이 NFT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고, 다른 산업으로 NFT가 퍼져가는 속도 역시 꽤 빠르다. 크리스 윌머 피츠버그대 교수는 NFT가 계속 가치를 인정받을 거라고 본다. 그는 “NFT가 거품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다. 과열은 있겠지만 암호화폐처럼 NFT도 계속 존재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되짚어보면 불과 3년 전인 2018년, 2000만원을 넘던 비트코인이 300만원대로 폭락했을 때 우린 암호화폐의 종말을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물도 없고, 사용처도 없는 불안정한 디지털 자산이 수백만원씩 하던 걸 부정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비트코인이 7000만원을 넘는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NFT가 인정받는 것 역시 마찬가지. ‘가상’이 때로는 ‘현실’을 압도하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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