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5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를 들으며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photo 뉴시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5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를 들으며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했다. 야당의 거센 반발과 여당 중진 의원의 공개적 반대에도 인사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인사 횡포라는 것이 언론의 공통된 의견이다. 새 장관과 함께 화려한 부활을 기대했던 과학기술계의 입장도 황당하다. 임 후보자가 ‘성공한 여성의 롤모델’이라는 대통령의 평가가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야당이 지적한 무려 13가지의 도덕적 흠결이 전부 ‘무안 주기’라는 인식에도 동의할 수 없다. 오기 인사가 자칫 과학기술의 돌이킬 수 없는 몰락을 부추길 수도 있다.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지적한 반도체·인공지능·디지털경제에 필요한 전문 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 확대가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절박하다. 롤모델을 내세워 여학생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로망을 키우고, 유능한 과학자로 성장하기를 기다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지금 당장 연구개발 현장에 투입할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반도체 대란을 말로만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4년 동안 과학기술은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는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막무가내의 불법·탈법으로 밀어붙인 탈원전의 결과부터 참혹하다. 지난 60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킨 원전 산업은 해체 위기에 빠져버렸다. 원전 분야의 인재 양성도 어려워지고 있다. 가동·건설 중인 원전의 안전 운전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안전한 폐로(閉爐)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

무분별한 적폐 청산으로 10여명의 기관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과기부의 어처구니없는 억지 감사 때문에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결국 무혐의로 끝났지만 임기의 대부분을 무기력하게 지내야만 했다. 유전자 편집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인 김진수 박사도 뒤늦게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여전히 항소심에 시달리고 있다.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장관들에게 포획당한 과기정통부도 정말 해야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의 보조금·요금 관리가 주 업무가 돼버렸다. 일본과의 소재·부품·장비 갈등 해결은 기재부의 몫이 돼버렸고, 코로나19 대응에서도 주변을 겉돌고 있다. 비대면 온라인 교육이나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기초연구소 설립에 대한 관심이 고작이다. 새로 설립되는 우주정책센터도 항우연이 아니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의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차지가 돼버렸다.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과 혁신본부장도 존재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정에서 과학기술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상황이다.

임혜숙 후보자가 87일 만에 이사장직을 미련 없이 내던져버린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현실도 안타깝다. NST는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해야 할 25개 정부출연연구원을 총괄하는 중차대한 조직이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대선 캠프 출신의 이사장은 400년 전 서양의 ‘르네상스’를 우리 땅에서 되살리자고 외치고 다녔다. 출연연의 오랜 숙원 사업인 PBS(연구과제중심운영체제) 개선과 21세기를 향한 실질적 개혁은 철저하게 외면해버렸다.

우리 원전 ‘안심할 수 없다’고?

여학생의 이공계 진출을 확대하기 위한 ‘롤모델’을 들먹일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주저앉은 과학기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실 임 후보자를 성공한 여성 과학자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전자공학회,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과기부 ‘최초의 여성 수장’이 여학생들의 미래 꿈이 될 수는 없다.

임 후보자가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것도 아니다. 물론 야당이 ‘여성 조국’이라고 몰아붙인 것은 정치 공세라고 할 수 있다. 대학원 학생의 논문 표절 논란도 이공계의 세계적 관행을 무시한 잘못된 지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청문회에서 드러난 도덕적 흠결을 모두 덮을 수는 없다. 더욱이 임 후보자의 학술 논문 중 30%는 배우자와 공동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공계에서 공동연구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배우자와의 평생 ‘논문 품앗이’로 성공했다는 지적은 성공한 여성 과학자의 롤모델로 크게 자랑할 일은 아니다.

과학기술 행정에 대한 전문성도 분명하지 않다. NST의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기관 운영에 대한 기본적 구상조차 당당하게 밝히지 못했다. NST가 공부해가면서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한 조직도 아니다. 당장 원전 산업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인정받은 우리 원전에 대해 ‘안심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은 기술 개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공학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어처구니없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지지부진한 28GHz 서비스에 대한 통신사의 투자 의무를 완화해주겠다는 발언도 무책임하고 섣부른 것이었다. 코로나19 대응의 선봉에 서겠다는 주장은 과기부의 안타까운 현실에서는 무의미한 허풍이었다.

장관으로서의 정무적 감각도 의심스럽다. 자진해서 떠맡은 장관급 이사장직의 사회적 무게감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임기제 공직을 더 좋은 공직을 향한 출세의 발판으로 활용하는 부끄러운 선례는 과학기술계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의 ‘선택적 법치’는 반(反)민주적 독선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책임을 모두 야당에 돌릴 수는 없다. 청와대의 인사 검증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안경덕 노동부 장관과 문승욱 산업부 장관의 청문회를 주목해야 한다. 국회의 후진적 행태만 탓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청와대가 스스로 내놓았던 ‘7대 고위공직자 인사배제기준’은 물론이고 가족의 부끄러운 밀수와 절도처럼 간단한 도덕적 흠결조차 걸러내지 못하는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검증을 탓해야 한다.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자는 대통령의 요구는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함부로 선진국을 흉내 낼 상황이 아니다. 공개적인 도덕성 검증 때문에 고위공직자 선임이 어렵다는 변명은 부끄러운 것이다. 내로남불에 빠져버린 청와대의 도덕성 검증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히려 공개 검증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있다. “도덕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한 방이 없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은 국민들에게 모욕적인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시끄러웠던 후보가 일을 더 잘하더라는 대통령의 발언도 국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재벌 개혁의 적임자라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최초의 여성 외교부 장관이었던 강경화 장관의 뒷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제 빛을 발하는 법이다. 더욱이 국회가 만든 법은 대통령이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선택적 법치’는 국민적 염원이었던 촛불 민심을 무시하는 반(反)민주적 독선일 뿐이다. 괜한 오기로 레임덕을 부추기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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