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신의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와의 인터뷰는 “코로나 바이러스 연구자는 아닌 거죠”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지난 4월 21일 대전 카이스트의 E18동 3층 연구실. 그는 “아니다”라며 “나는 넓게 보면 면역학자이고, 그 안에서도 바이러스 면역학을 한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가 문제가 될 때 중요한 두 가지 학문이 있다. 바이러스학과 바이러스 면역학이다”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바이러스 학자와 바이러스 면역학자는 보는 시각이 다르다. 바이러스 학자는 바이러스 자체와 감염 메커니즘에 관심이 있다. 가령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인간의 세포 내부로는 어떤 식으로 들어가는지, 어떤 식으로 세포 내에서 복제를 하느냐를 연구한다. 바이러스 면역학자는 다르다. 바이러스 면역학자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몸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연구한다. 예를 들면 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왔을 때 항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내 몸의 면역세포인 T세포가 이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관심사다.”

신 교수는 “나는 원래 C형 간염 바이러스 전문가”라며 바이러스 학자나 바이러스 면역학자라 해도 모든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바이러스가 따로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신 교수는 간염 바이러스 면역학자이고, 그중에서도 C형과 A형 간염 바이러스 전문가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C형 간염 연구

신의철 교수는 2019년에 C형 간염 바이러스 국제 학회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한 바 있다. 세계적인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자 500명이 한국을 찾았다. 그가 국제학회를 주최했다는 건 C형 간염 바이러스 학계에서 그의 위상이 상당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관한 높은 관심은 2020년 노벨생리의학상이 C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자 세 사람에게 돌아간 데서도 확인된다.

그가 C형 간염 바이러스 면역학 연구를 시작한 건 2002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러 가면서다. 그는 연세대 의대 90학번으로 의대를 6년간 다녔다. 의대 수석 졸업자이기도 하다. 본과를 마치고 동기생 대부분과는 달리 의대 대학원에 진학해 기초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면역학으로 200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공부하러 가서 5년간 있었던 곳이 NIH이다.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NIH는 미국 정부의 보건의료 관련 기관이면서 대단히 큰 자체 연구 조직을 갖고 있다. 그곳에서 바이러스 면역학을 연구했다. 스승은 바버라 레허먼(Barbara Rehermann) 교수. 그는 “암에 대한 면역 연구는 해도 잘 안될 것 같아, 바이러스 면역학 연구를 택했다”라고 말했다. 그때 C형 간염 바이러스 면역학 연구를 했고 2007년 말 카이스트 교수가 되었다.

그가 미국에 갈 때만 해도 C형 간염 은 난치성 질환이었다. 그런데 카이스트에 오고 나서 몇 년 후부터 C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C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의 동력이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질병 치료가 잘되니, 과학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그는 A형 간염 바이러스 연구로 눈을 돌렸다. 연세대 의대 소화기내과의 간 담당 의사와 얘기하다가 A형 간염 이야기를 들은 게 계기였다. 대학 후배인 그는 학회에서 만났을 때 신 교수에게 “요즘 A형 간염이 유행이다. 연구를 해보면 어떠냐”라며 권유했다.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실제 2009년에는 A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한국에 1만5000명이 발생했다. 신 교수는 “그렇게 해서 A형 간염 바이러스 면역 연구가 내 연구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A형 간염은 2019년에 또 유행했다.

신의철 교수가 면역에 관해 쓴 책.
신의철 교수가 면역에 관해 쓴 책.

만성 바이러스에서 면역항암제 연구로

처음에는 A형 간염 바이러스 면역학 연구만 하기에는 주제가 작다고 생각해 면역항암제 연구를 함께 했다. 면역항암제는 체내의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을 치료한다. 신 교수는 “면역학에서 보면, 암과 만성 바이러스 감염은 성질이 같다”라고 말했다. C형과 B형 간염은 만성 질환으로 바이러스가 몸 안에 30년 넘게 있을 수 있다. 오래도록 아픈 것 같지 않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지 30~40년이 되면 간암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게 만성 바이러스 질환의 특징이다. 반면 독감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급성 질환이다.

신 교수는 오래 연구해온 C형 간염 바이러스가 만성 질환을 일으킨다는 생각에 착안, 면역항암제 연구를 시작했다. C형 간염과 똑같은 원리를 면역항암제 연구에서 적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신 교수가 C형 간염에서 암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을 때인 2020년 초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됐다.

신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해 1~2월에는 코로나 연구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남들이 많이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상황이 악화하면서 4월쯤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과거 연구 경험을 코로나에 적용해서, 지난 1년간 논문을 많이 냈다”라고 말했다.

‘착한’ 면역반응과 ‘나쁜’ 면역반응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해 뭘 연구했을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우리 몸의 면역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해 우리는 잘 몰랐다. 새로운 바이러스였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마다 몸이 보이는 면역반응이 조금씩 다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새로 나왔으니, 그게 어떤지를 알아야 했다. 나도 그렇지만 그때를 전후해 외국에서도 관련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두 가지 방향으로 팠다. 면역반응은 때에 따라 두 가지 다른 작용을 한다. 신 교수는 그걸 ‘착한 면역반응’과 ‘나쁜 면역반응’이라고 부른다. ‘착한 면역반응’에는 중화항체(neutralizing antibody)와 T세포 같은 게 있다. 신 교수는 “우리 몸에 유리한 면역반응이 착한 면역반응이다. 그리고 우리가 백신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면역이 ‘착한 면역반응’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중화항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병원체나 감염성 입자가 신체에 침투했을 때 생물학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중화하여 세포를 방어하는 항체다. 병원체에 결합하여 감염성을 억제하고, 세포 유입에 사용되는 분자를 차단할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겨냥한 백신도 ‘중화항체’를 몸속에 만들어내느냐가 핵심이다. 그리고 T세포는 대표적인 면역세포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 세포를 직접 죽여서 제거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나쁜 면역은 ‘과잉 염증반응’이다. 과잉 염증반응은 사이토카인 폭풍이라고도 불린다. 사이토카인이라고 불리는 분자가 일으킨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과잉 염증반응이 일어나면 사람을 잡는다. 코로나19의 경우도 결국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에 환자가 사망하는 것이다.

신 교수는 ‘착한 면역’과 ‘나쁜 면역’ 두 가지를 다 연구했고, 지난해 7월 학술지 ‘사이언스 면역학(Science Immunology)’에 논문을 보고했다. 신 교수 설명을 계속 들어본다.

“채혈하면 몸의 면역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면역세포, 즉 백혈구의 수를 센다. 요즘은 그 정도가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가 어떤 유전자를 발현하는지를 한 번에 보는 테크닉이 나와 있다. 그걸 적용해서 우리 그룹은 중증과 경증 코로나19 환자를 분석했다. 중증 코로나19 환자들이 과잉 염증반응을 보이는 건 맞는다. 그때 구체적으로 어떤 분자들이 어떻게 되어 과잉 염증반응을 일으키는지를 우리가 밝혔다. 그 분자라는 게 사이토카인이다. 사이토카인은 한 가지 물질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 있는데, 100가지가 넘는다. 그중 어떤 사이토카인 분자가 중증 코로나19 환자의 몸에서 ‘사이토카인 폭풍’, 즉 과잉 염증반응을 일으키는가를 알아봤더니 바로 1형 인터페론 분자였다.”

T세포 이미지 ⓒphoto 위키피디아
T세포 이미지 ⓒphoto 위키피디아

그가 밝혀낸 사이토카인 폭풍의 비밀

신 교수에 따르면, 작년에 코로나 연구가 과열되었다. 일부 성급한 논문도 나왔다. 그중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리면 1형 인터페론이 잘 안 나온다는 연구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신 교수의 연구와는 달랐다. 신 교수는 논문을 작년 7월 ‘사이언스 면역학’에 내고 한 달 뒤인 8월에 이번에는 다른 학술지에 ‘오피니언’ 글을 썼다. “‘네이처 리뷰 면역학’이라는 권위 있는 학술지에 ‘내가 중요한 논쟁거리를 제시하겠다’라며 당시의 1형 인터페론 관련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1형 인터페론이 좋은지, 나쁜지 사람들이 헷갈리는데, 내가 보기에는 적어도 중증 코로나19 환자에 있어서는 나쁜 면역반응이다.”

신 교수의 글이 나간 뒤 1형 인터페론의 면역반응에 대한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증 코로나19 환자에게는 1형 인터페론을 치료제로 안 쓰게 되었다. 그러나 경증, 그리고 초기 환자에게는 약효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면역학자 중에서도 T세포 면역학자라는 점을 자주 강조한다. 항체는 바이러스에 안 걸리게 한다.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못 들어가게 막는다. 반면 T세포는 일부 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몸이 빨리 회복하게 하는 일을 한다. 감염된 세포를 잘 골라서 제거하기 때문이다. 중화항체의 단점은 변이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 경우 변이에 작용하는 항체가 다시 생겨야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수 있다.

T세포는 변이 바이러스에 강하다. 한 바이러스의 여러 곳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력이 좋아, 한 번 만난 바이러스 공략법을 잘 잊지 않는다. 예컨대 싱가포르에서 연구하는 이탈리아 학자 안토니오 베르톨레티 박사가 있다. 그는 2003년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회복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년에 조사를 했다. 그 결과, 17년이 지났으나 T세포의 기억 반응이 쌩쌩하게 살아 있는 걸로 나왔다. 신의철 교수가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의 최원석 교수와 공동연구를 한 게 있다. 한국의 코로나19 환자를 추적한 연구다. 감염되었다가 회복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10개월을 추적 관찰한 결과, 그들의 T세포 기억이 잘 살아 있는 걸로 나왔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다른 분석을 더 했다. T세포 중에 ‘기억세포’가 있고, 기억세포 중에서도 ‘줄기세포 유사기억세포’가 있다. 줄기세포는 원래 자기 증식을 잘한다. 줄기세포 유사기억세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세포의 기억은 굉장히 오래간다. 코로나19에서 회복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줄기세포 유사기억세포를 갖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 세포들이 잘 나온다는 걸 확인했다. 신 교수는 “우리는 한국인 회복자들을 10개월간 추적했을 뿐이지만, 그들이 줄기세포 유사기억세포를 갖고 있다는 건 그들이 3년 후에도,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T세포의 ‘기억’이 생생히 살아 있을 거라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곧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나올 예정이다. <다음 호에 계속>

최준석 선임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