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6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통과 후 인사말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6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통과 후 인사말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교육부가 뒤늦게 초·중·고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추진 일정이 묘하다. 새로운 교육과정 개정안의 고시가 차기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내년 10월로 예정되어 있다. 결국 경쟁 중심의 교육과정을 협력·연대를 강조하는 ‘미래형’으로 바꾸겠다는 주장은 핑계일 뿐이다. 오히려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뒷전으로 제쳐뒀던 ‘고교학점제’를 차기 정부에 떠넘기려는 꼼수라는 평가가 더 설득력이 있다. 일단 교육과정의 목표와 학년별 교과의 체제를 정해놓으면 개정 작업을 중단·변경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여당이 상임위에서 단독으로 밀어붙여버린 국가교육위원회 법도 듣도 보도 못한 ‘교육 알박기’다. 임기가 끝나더라도 교육정책은 틀어쥐고 절대 놓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최상위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국가교육위원회가 연내에 출범하면 현 정부가 교육위원의 과반수를 임명하게 된다. 차기 정부의 교육부는 무력화되고, 교육부총리는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린다.

고교학점제 밀어붙이기

현 정부가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적성과 진로를 존중해주는 훌륭한 제도로 소개되었다. 사실 고교학점제는 정치권을 기웃거리던 어느 교육학자가 내놓은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우리의 교육 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설익은 구상일 뿐이다. 고교학점제에 필요한 교사도 찾을 수 없고 시설도 갖추지 못했다. 학생들의 지나친 편식을 차단할 대책도 없다. 무엇보다도 수능을 중심으로 하는 대학입시에 맞지 않는다. 무제한의 선택권이 교육의 다양성을 실현하는 방법이라는 근거도 없다.

정부가 지난 4년 동안 고교학점제 시행을 위해 필요한 시설투자도 외면했고 교사양성도 포기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정부가 고교학점제의 허구성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뜻이다. 자신들도 포기했던 엉터리 고교학점제를 다음 정부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 수능 절대평가와 자사고 폐지 등의 뼈아픈 교육정책 실패를 잊지 말아야 한다. 뒤늦게 교육정책을 바로잡겠다는 어설픈 시도로 아픈 상처를 더욱 덧나게 해서는 안 된다.

국가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주기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광복 이후 군정 시절의 ‘교수요목’으로 시작된 교육과정은 1955년부터 2007년까지 7차에 걸쳐 개정되었다. 2009년 ‘수시’ 개정 체계가 도입되면서 평균 7년의 개정 주기가 종잡을 수 없이 짧아지고 있다. 이제 학생들은 초·중·고 12년 동안 수시로 교육목표와 교과체계가 달라지는 혼란을 겪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이 어설프게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한국사를 필수화하기 위해서 일제가 남겨놓은 문·이과의 구분 철폐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모든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적 창조력을 길러주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목청껏 ‘문·이과 통합’을 외쳤지만, 학교 현장은 도무지 요지부동이다. 올해부터 시작하는 ‘통합수능’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6월 3일 치러진 모의고사의 결과는 ‘문과의 몰락’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학 1등급의 95.5%가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한 소위 ‘이과생’이었다.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소위 ‘문과생’은 국어와 영어에서도 이과생에게 밀려나버렸다. 국어 1등급의 79.3%와 영어 1등급의 71%도 이과생이었다. 그렇다고 이과의 교육이 실제로 강화된 것도 아니다.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할 학생들이 미적분·기하·확률과 통계를 모두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습내용을 20%나 감축해버린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의 교육은 바닥부터 무너져버렸다.

그런 교육과정을 단순히 ‘미래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개정한다고 고교학점제를 시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학생들의 교과 선택권은 이미 차고 넘친다. 실제로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는 7개의 공통과목, 51개의 일반선택과목, 42개의 진로선택과목이 들어 있다. 더 이상의 선택권은 학교도 감당할 수 없고 학생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과정 개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국민참여단’의 공론화로 결정하겠다는 시도도 황당하다. 교육의 미래 비전과 인재상·교육목표·지원체계·교과구성 등에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어떠한 전문성이나 책임감도 보장할 수 없는 국민참여단의 중구난방 ‘숙의’를 통해서 국민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 교육과정은 교육기본법에 따라 전국의 초·중·고에서 학생들에게 반드시 교육해야 하는 내용을 정해놓은 것이다. 교육의 목표·방법과 함께 학년별로 가르쳐야 할 교과목과 교육내용이 담겨 있다. 심지어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정해놓는다. 그런 국가 교육과정에 얽매인 학교 교육은 군대의 정훈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획일적으로 정형화된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국가 교육과정 탓이다. 교육과정이 정당·정파는 물론이고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포획되어버린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육과정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을 줄여야 한다. 교육부가 획일적으로 제작하는 국정교과서는 서둘러 폐지해야 한다. 교육부가 틀어쥐고 있는 교과서의 검정·인정 제도도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국민의 공교육에 대한 다양한 기대가 교육 마피아에 점령당한 교육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옥상옥의 국가교육위원회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정책 결정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교육계와 국민의 오랜 숙원이 담긴 대안이다. 5년 임기 정권의 단기적인 포퓰리즘과 소수 교육 마피아의 관료주의적 하향식 의사결정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정당·정파를 초월하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장기적 교육 청사진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런 국가교육위원회가 차기 정부의 교육정책을 틀어쥐겠다는 ‘교육 알박기’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역설적인 일이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여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법으로는 교육계와 국민의 숙원을 해결할 수 없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교육부 위에 또 다른 교육부로 올라서서 국가의 교육정책을 통째로 마비시켜버릴 수도 있다.

교육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실질적인 교육정책을 시행하는 교육부, 시도교육위원회와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제도적 장치를 위한 더 많은 고민도 필요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