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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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정원석 교수(신경과학)는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할 곳을 찾고 있었다. 박사학위는 20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캘리포니아대학(UCSF)에서 물고기(제브라피시)로 받았다. 이 대학에는 아내가 다니고 있어 새 일터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멀면 곤란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까운 팔로알토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의 신경과학자 벤 배러스(Ben Barres) 교수가 눈에 들어왔다.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답이 없었다.

배러스 교수가 어느 날 UCSF에 와서 특강을 한다는 걸 알았다. 강의에 참석했고, 강의 뒤 그에게 다가갔다. “나, 박사후연구원 자리 지원하는 이메일을 보낸 사람이다. 일할 기회를 달라.” 배러스 교수는 “당신이 제브라피시 연구한 사람이냐? 기억한다. 당신은 연구 분야나, 박사 때 쓴 모델동물이 나와는 다르다. 그래서 결정할 수 없어 답을 못 줬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박사 때 인슐린 만드는 췌장의 베타세포 발생을 연구했다. 췌장 베타세포는 신경세포와 비슷한 게 있다. 일을 하기 위해 만드는 세포들이 생산하는 단백질이 같다. 예컨대 뉴로D, 뉴로제닌과 같은 단백질을 두 세포는 똑같이 사용한다. 그 때문인지 오래전에는 췌장 베타세포를 신경세포라고 혼동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췌장 베타세포가 줄기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세포 분화를 연구했다. 세포와 세포가 어떻게 대화하는지, 그래서 하나는 베타세포가 되고, 다른 건 다른 세포로 어떻게 분화하는지를 보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할 곳을 찾으면서, 췌장에서 보았던 ‘세포와 세포의 대화’라는 주제를 또 볼 수 있는, 생물학의 다른 분야가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걸 신경과학자인 벤 배러스 교수가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배러스 교수 실험실은 ‘신경세포와 아교세포(glia cell)의 대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배러스 교수 실험실로 갈 수 있었다.

그 후 4년 만인 2013년 최상위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다. ‘별아교세포가 발생(development)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냅스 가지치기(Synapse Pruning)를 조절한다’라는 내용이다. 연구는 배러스 교수의 지시로 시작됐다. 배러스 교수는 이전에 별아교세포 말고, 뇌에 있는 다른 아교세포인 ‘미세아교세포’가 시냅스 가지치기를 조절한다는 걸 알아낸 바 있다. 이 논문은 2007년 최상위 생물학 학술지 ‘셀’에 나갔고, 이 논문의 제1저자로 배러스 교수 방에서 연구한 사람(Beth Stevens)은 하버드대학 교수가 되었다.

시냅스 가지치기는 무엇일까

정 교수가 말하는 미세아교세포나 별아교세포, 시냅스, 시냅스 가지치기는 무엇일까? 뇌 하면 신경세포가 가장 유명하지만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비신경세포인 아교세포(Glia)다. 아교세포 중에서 대표적인 게 별아교세포(Astrocyte)와 미세아교세포(Microglia)다. 별아교세포는 별세포 혹은 성상세포라고도 불린다. 아교세포의 존재감은 신경세포에 가려 그간 미미했다. 아교세포는 뇌의 정보전달 통로인 신경세포를 물리적으로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고만 생각됐다. 그러나 최근에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정 교수에 따르면 뇌는 특히 별세포로 가득 차 있다.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보니, 별세포 가운데 신경세포는 띄엄띄엄 있다. 정 교수는 “별세포 하나는 뇌의 작은 공간(domain) 하나를 책임지는 듯하다. 별세포 하나에서 팔(major processes)들이 수없이 뻗어 있고, 전체적으로 보면 별세포는 원형이다. 별세포 하나의 공간에는 신경세포 4~5개가 있고, 별세포의 팔은 신경세포의 시냅스에 직접 닿아 있는데, 이렇게 별세포 하나가 관리하는 시냅스들이 1000~1만개일 걸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시냅스는 무엇인가? 시냅스는 하나의 신경세포와 다른 신경세포가 만나는 지점이다. 신경세포 말단과 다른 신경세포 말단이 만나는 아주 좁은 공간이 있고, 두 신경세포는 이를 통해 대화를 한다. 신경전달물질을 한쪽(시냅스 전 신경세포)에서 보내고 다른 한쪽(시냅스 후 신경세포)은 받는 식이다. 새로운 기억이 만들어지면 시냅스가 생기고, 기억이 사라지면 시냅스 연결이 끊어진다.

정 교수는 “과거에는 시냅스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신경세포끼리의 작용인 만큼 신경세포만 있으면 된다고 잘못 생각했다. 나의 박사후연구원 때 지도교수는 그게 아니고, 신경세포 옆에 있는 별세포가 다양한 단백질을 분비해서 시냅스 형성을 돕는다는 걸 처음 알아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교세포가 시냅스에 다양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나는 아교세포가 시냅스를 잡아먹는 연구를 주로 한다”라고 말했다.

2013년 네이처 논문에서 그는 동물의 뇌에서는 발생 과정에서 만들어진 불필요한 시냅스들을 제거하는 시냅스 가지치기가 일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별세포가 시냅스를 없앤다는 걸 알아냈다. 별세포가 시냅스를 형성한다는 건 알려져 있었으나, 시냅스를 제거할 수도 있다는 건 정 교수 연구가 처음이다.

“사람의 경우, 시냅스 연결이 사춘기 전까지 뇌에서 많이 생긴다. 복잡한 동물은 일단 많이 만들고 써 본 뒤 필요하지 않은 걸 없애는 방식을 취한다. 사춘기가 끝날 때쯤 시냅스 수가 줄어들며 신경회로가 안정화된다. 어릴 때 뇌의 시냅스 가치치기를 연구한 게 박사후연구원 시절 논문이다.”

배러스 교수 실험실에는 다양한 세포에서 어떤 유전자가 발현하는지를 본 데이터가 있었다. 별세포를 보니, 세포막 표면에 Megf10과 Mertk 단백질이 있었다. 좀 이상했다. 이 두 단백질은 죽어가는 세포를 잡아먹는 면역세포의 메커니즘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번 생긴 뇌의 신경세포는 잘 안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세포를 잡아먹는 단백질이 별세포에 항상 있을까? 이 두 개의 단백질이 잡아먹는 건 무엇일까?

이 같은 과학적인 질문을 갖고 그는 4년간의 연구를 통해 Megf10과 Mertk가 별세포 막에 수용체로 있으면서 뇌 발생기에 불필요한 시냅스를 잡아먹는다는 걸 알아냈다. 정 교수는 “이들 수용체는 불필요한 시냅스에 별세포가 달라붙게 한다. 시냅스 일부를 잡아당기고 별세포 내부로 들어오게 한 후 분해한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가 보여주는 그림을 보니, 시냅스 말단 인근에는 별세포의 팔이 매우 근접하게 위치해 있었다. 그러다가 분해해야 할 시냅스가 있으면 특정 신호를 인식해 시냅스를 잡아먹는 것이었다.

시냅스 제거 기전을 알아내다

그는 6년간의 스탠퍼드대학 시절을 뒤로하고 2016년 초 카이스트로 옮겼다. 그리고 2020년 12월 네이처에 또다시 논문을 발표하는 성과를 올렸다. 2021년 6월에는 EMBO(유럽분자생물학기구)저널에 논문을 보고했다.

두 번째 네이처 논문 역시 별세포의 시냅스 제거 연구다. 7년 전 연구는 청소년기까지의 뇌 발달과정에서 일어나는 시냅스 가지치기였다면, 2020년 네이처 논문은 성체, 즉 어른 쥐의 뇌(해마)에서 일어나는 시냅스(흥분성 시냅스) 제거 기전을 알아낸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그는 해마의 시냅스 연결이 무조건 많다고 기억과 학습이 잘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냈다. 불필요하거나 안 쓰는 시냅스는 끊어져야 새로운 기억과 학습이 잘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새로운 걸 기억하려면 뭔가를 잊어야 한다”라면서 기억과 학습말고도 잘못된 시냅스 제거가 다양한 뇌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자폐환자는 시냅스 수가 정상인보다 많은 경우이고, 조현병 환자는 시냅스 연결이 적다. 조현병은 시냅스 가지치기가 청소년기에 빨리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고, 아교세포의 돌연변이가 한 원인이라는 보고가 있다. 알츠하이머병도 발병 초기에 아교세포가 시냅스를 잡아먹는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EMBO저널에 보고한 논문은 별세포가 아닌 미세아교세포 연구다. 그리고 미세아교세포가 제거하는 게 시냅스이기는 하나, 흥분성 시냅스가 아니라 억제성 시냅스임을 밝혔다. 정 교수는 “억제성 시냅스와 흥분성 시냅스가 잡아먹히는 기전이 다르다는 걸 보인 첫 번째 논문”이라고 말했다. 흥분성 시냅스는 한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를 흥분시키기 위해 물질을 방출하는 것이며, 억제성 시냅스는 다른 신경세포의 흥분을 억제하는 물질을 방출한다.

정 교수는 “EMBO저널 논문은 시냅스의 ‘나를 먹으라(eat-me)’ 신호를 처음으로 밝힌 데에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생체 안에서 분해되어야 할 물질은 ‘나를 먹어야 해’라며 표식을 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냅스에는 이 같은 신호에 어떤 게 있는지를 사람들은 모른다. EMBO 논문은 시냅스의 ‘eat-me’ 신호 중 하나를 밝혔고, 그건 ‘인지질(Phospholipid)’ 중의 하나인 포스파티딜세린(Phosphatidylserine)이었다.

2020년 12월 네이처 논문과, 이어 낸 EMBO저널 논문에서 사용한 실험 방법은 개발할 때 힘이 많이 들었다. 시냅스는 잡아먹히면 아교세포(별세포 혹은 미세아교세포) 내부로 들어간다. 이어 아교세포 내의 리소좀이라는 곳에서 분해된다. 리소좀은 산성도가 높다. ph5쯤 되는 높은 산성도로 시냅스를 분해시킨다. 정 교수는 리소좀의 산도가 높다는 성질을 이용해 시냅스가 제거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시냅스 제거 연구를 질병 연구로

처음에는 과거 과학자들이 산호로부터 추출한 산성에서 색이 변하는 단백질을 응용하고자 했다. mKeima 단백질이 그중 하나다. 네이처 논문을 쓰기 위한 방법론으로, mKeima 등 몇 개의 단백질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들 단백질은 안정성이 높지 않아 분해가 빠르고 고정도 되지 않았다. 또 기획한 실험에 적합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몇 년을 방법론 개발에 보내야 했다. 결국 eGFP-mCherry를 써서 성공했다. eGFP-mCherry는 녹색형광을 내는 단백질(eGFP)과 붉은색을 내는 단백질(mCherry) 두 개를 연결한 거다. 이걸 시냅스 말단 양쪽에 발현시켰다. 그러면 녹색과 붉은색이 동시에 빛을 내니, 두 색이 합해져 시냅스가 노란색으로 보인다. 이어 노란색 물질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봤다. 아교세포가 잡아먹은 직후에는 여전히 노란색이었다. 일정 지점에서부터는 붉은색만 보였다. 함께 노란색을 만들었던 녹색 단백질이 사라진 것이다. 이 지점에 세포소기관인 리소좀이 있었다. 리소좀에 도달한 시냅스가 분해되면서 산성에 강한 mCherry는 남아 있지만 산성에 약한 eGFP가 같이 녹아버린 것이다.

시냅스 제거 연구는 질병 연구로 연결된다. 알츠하이머는 뇌의 시냅스가 죽는 질환이다. 지금까지는 신경세포의 활성을 유지하거나 악화를 늦추는 쪽으로 약을 개발해왔다. 지난 6월 7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알츠하이머병 관련 ‘증상완화제’가 아니라, 사상 처음으로 치료제(애드헬름)를 승인했다. 정 교수는 “이 약은 항체를 사용해 미세아교세포를 통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하는 기전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아교세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약은 뇌염증을 유발하는 등 부작용이 심하다. 때문에 우리 실험실이 아교세포의 먹는 기능을 이용한 새로운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다른 실험실과 공동개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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