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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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자 이창준 박사는 2003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를 찾았다. 콜드스프링하버(Cold Spring Harbor Laboratory)는 세계 정상의 민간 생명과학연구소. 암과 신경과학 분야가 강하다. 콜드스프링하버는 뉴욕시 맨해튼 동쪽 롱아일랜드섬에 있어 열차나 자동차 등 교통편으로 한참을 가야 한다.

이창준 박사가 롱아일랜드 외진 데까지 찾아간 건 생명과학 분야 세미나 참석이 목적이었다. 콜드스프링하버는 생명과학의 최고 연구자들이 참석하는 학회를 많이 연다. 그곳에서 그는 한국에서 온 신경과학자 신희섭 박사를 만났다. 신 박사는 당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연구단 단장이었다. 이 박사보다 십몇 년 이상 연배가 많다.

신희섭 단장은 그때 일(日)주기(생체리듬) 관련 유전자 연구를 ‘포스터’로 만들어 발표했다. 이창준 박사가 그 포스터를 현장에서 보고 당시 관심을 갖고 있던 ‘별세포(astrocyte)’와 관련한 메커니즘과 연결해 얘기했다. 별세포는 뇌에 있는 세포 중 하나. 얘기를 들은 신 단장은 “서울의 KIST에 와서 2주 정도 머무르면서 그게 왜 그런지 실험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신 단장 초청에 따라 그는 한국을 찾았다. 중3 때인 198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가 한국 땅을 디딘 건 오랜만이었다. 그는 강화도가 보이는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태생이다.

서울 홍릉에 있는 KIST에 갔더니 신희섭 박사가 당시 김유승 원장과 미팅도 잡아놓았다. 김 원장은 젊은 신경과학자 이창준 박사에게 “KIST에 와서 일해 달라”면서 좋은 연구 환경을 약속했다. 결국 그는 2004년 10월 한국에 정착했다. 자신의 별세포 연구와 신희섭 박사와의 만남이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삶의 진로를 바꾼 신희섭 박사와의 만남

신희섭 박사와의 인연은 이후 계속 이어졌다. KIST에서 오래 같이 일한 건 물론이고, 2018년부터는 대전 IBS(기초과학원)의 같은 연구단(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에서 공동 연구단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정부는 2011년 기초과학 발전을 통해 인류의 지식 확대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로 한국 정부 최초의 기초과학연구기관인 IBS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 최고의 과학자들을 분야별로 선발, 그 과학자의 리더십 아래 연구단을 구성하도록 했다. 2021년으로 출범 10년이 되는 IBS에는 31개 연구단이 물리, 화학, 생명과학 분야에 걸쳐 구성되어 있다.

신경과학자인 신희섭 박사는 IBS 출범 직후인 2012년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으로 선임됐다. 8년 뒤 이창준 박사도 IBS 연구단장으로 뽑혔다. 그는 새로운 연구단을 만들 수도 있었으나, 은퇴가 예정된 신희섭 단장의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을 물려받는 선택을 했다. 지난 6월 7일 대전 IBS 본원 내 2층 연구실에서 이창준 단장을 만났다. 신희섭 단장은 2020년 말 퇴직했고 지금은 이창준 단장이 단독으로 연구단을 이끌고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뇌과학=신경과학’이라고 생각한다. ‘신경과학’이라는 용어에는, 뇌 기능을 이해하려면 신경세포만 알면 된다는 관점이 깔려 있다. 이창준 단장은 “신경세포 말고 뇌에 있는 교세포도 중요하다”라는 걸 학계에 널리 알렸다. 그가 KIST에 온 뒤부터 교세포 관련 연구를 쏟아내면서 교세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교세포 중에서도 ‘별세포’를 연구했다. 별세포와 신경세포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려고 힘써왔다.

그가 2004년 말 KIST에서 독립적인 연구자로 출발하면서 연 실험실 이름도 ‘교세포와 신경세포 상호작용 실험실’이었다. 그리고 2018년 IBS로 옮겨오기 전까지 KIST에서 신경교세포연구단을 이끌었다. 이 단장은 “별세포는 신경세포보다 숫자가 1.4배나 많다. 크기는 작다. 별세포는 그전까지는 무시되어왔다. 별세포의 비밀을 풀고 이를 통해 치매와 하반신마비, 뇌졸중과 같은 질환을 고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신희섭 박사(왼쪽)와 이창준 단장. ⓒphoto IBS
신희섭 박사(왼쪽)와 이창준 단장. ⓒphoto IBS

신경세포와 교세포, 그리고 별세포

그는 왜 별세포에 꽂힌 것일까? 이 단장은 미국에 이민 간 뒤 1985년 시카고대학 화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생리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박사학위는 2001년 받았다. 컬럼비아대학에서는 신경세포를 공부했다. 이후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대학으로 갔고 이곳에서 연구한 게 별세포다. 이 단장 얘기를 들어본다.

“신경세포의 NMDA 수용체는 기억에서 중요하다. 그걸 막으면 기억을 못 한다. 그 연구를 하러 애틀랜타에 갔다. PAR1 수용체라는 게 활성화되면 NMDA 수용체의 활성화가 엄청나게 증가한다. NMDA 수용체의 활성화가 늘어나면 학습이 잘돼 의미가 크다. PAR1이 어디에 있나 하고 찾아봤다. 신경세포에 없었다. 있어야 할 신경세포에 없고, 신경세포 옆에 있는 별세포에 있었다. 현미경으로 보고 그걸 알아냈다. 나는 별세포가 왜 신경세포의 NMDA 수용체를 강화시키나 하는 질문을 갖게 됐다. 별세포 연구를 시작했다.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에 가서 신희섭 단장을 만났을 때 나는 별세포와 신경세포의 상호작용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 단장님의 포스터를 보았을 때 별세포를 경유하는 메커니즘과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기억력 수용체를 강화시키는 별세포

이창준 단장은 에모리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3년간 일하면서 논문은 한 편도 못 썼다. 하지만 별세포와 신경세포의 상호작용을 주목해야 한다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KIST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단장이 동영상을 두 개 보여준다. 첫 번째 동영상 속의 쥐는 척수가 고장났다. 척수의 신경세포들이 다 죽었다. 동영상 속 쥐는 뒷다리를 질질 끌고 있다. 하반신마비다. 다른 동영상 속의 쥐는 손상된 척수가 회복됐다. 이 단장 그룹이 척수의 죽은 신경세포를 살려냈다. 쥐는 뒷다리를 움직인다. 움직임이 100% 회복되지는 않았으나 잘 움직인다. 쥐의 하반신마비를 이 단장 그룹이 고쳤다. 사람으로 따지면 하반신마비 환자를 일어서게 한 것이다.

죽은 신경세포를 살려낸 별세포

“뇌척수 손상으로 신경세포가 모두 죽었다. 그런데 신경세포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했느냐. 척수에 있는 별세포를 신경세포로 바꿨다. 별세포가 일종의 줄기세포 역할을 했다. 별세포는 주위 환경이 나빠져 신경세포가 죽는 일이 일어나면 그 역시 ‘반응성 별세포’라는 다른 유형으로 바뀐다. 주위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면서 자신의 속성이 바뀐다. 우리는 ‘반응성 별세포’에 유전자 NGN2를 집어넣어, 그 ‘반응성 별세포’를 신경세포로 바꿨다. 유전자 전달에 사용하는 바이러스인 AAV 바이러스가 있다. 그 바이러스에 NGN2 유전자를 집어넣을 수 있었고, 그게 쥐의 뇌척수에 있는 반응성 별세포로 정확히 전달되도록 했다. NGN2 유전자는 그 세포의 핵 안으로 들어가 우리가 원하는 단백질을 만들어냈다. NGN2 단백질이 발현되면서 결과적으로 ‘반응성 별세포’의 70~80%가 건강한 신경세포로 바뀌었다. 그 결과 앉은뱅이 쥐를 걸을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반응성 별세포에서 NGN2를 발현시키는 데 성공한 기술에 우리는 TRANsCre-DIONE라는 이름을 붙였다.”

별세포는 전체적으로 보면 동그란 모양이다. 신경세포는 그에 비해 길쭉하다고 할까? 신경세포는 세포체(cell body)에서 멀리 촉수를 뻗고 있다. 그런 촉수를 ‘축삭돌기’ ‘가지돌기’라고 한다. 이 단장이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동그랗던 반응성 별세포가 전형적인 신경세포처럼 모양이 변해 있다.

기적과 같은 얘기다. 쥐의 하반신마비를 고쳤다면, 사람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단장은 “아직은 기초연구 단계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앞으로 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현재 논문이 과학학술지에 제출된 상태다. 아주 따끈따끈한 연구다.

별세포는 신호전달물질도 만들고 분비함으로써 동물의 인지기능과 사회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별세포가 잘못되면 ‘반응성 별세포’로 바뀐다고 앞에서 말했다. 이 단장은 “우리가 연구를 해보니 치매, 파킨슨 질환에서도 별세포가 ‘반응성 별세포’로 바뀌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반응성 별세포는 원래는 갖고 있지 않았던 여러 신호전달물질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GABA라는 신경 억제성 물질이 있는데, 반응성 별세포는 GABA를 많이 분비했다. 또 최근에 우리가 내놓은 논문을 보면 반응성 별세포가 활성산소(ROS), 그중에서도 과산화수소(H₂O₂)를 많이 만든다. 신경세포 주위 환경을 아주 안 좋게 만든다. 걷잡을 수 없이 신경세포의 환경을 망가뜨린다. 별세포가 신경세포를 보조하기는커녕 오히려 나쁜 환경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반응성 별세포를 타깃으로 한 치료제를 개발하고, 반응성 별세포를 좋은 세포로 만들면 질환이 호전되지 않을까 착안했다. 여러 가지 질병에 대해 적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알츠하이머와 반응성 별세포

그의 별세포 관련 연구 성과는 KIST에 온 뒤에 줄줄이 이어졌다. 2007년 ‘생리학저널’에 별세포에서 글루타메이트라는 신경 흥분성 물질이 나온다는 걸 보고했다. 2010년에는 최고의 과학학술지인 ‘사이언스’에 신경 억제성 물질인 GABA를 별세포가 분비한다는 기전을 규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생명과학 분야의 최상위 저널인 ‘셀(Cell)’에도 논문을 냈다. 별세포에서 나온 글루타메이트가 인근 신경세포에 있는 NDMA 수용체를 활성화시킨다는 메커니즘을 알아낸 연구였다.

2014년 학술지 ‘네이처메디신’에 보고한 논문은 질병인 알츠하이머에 적용한 연구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를 보면 반응성 별세포가 GABA를 많이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래서 GABA를 억제하면 기억을 회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별세포를 연구하면서 치료제를 제시할 수 있었다”며 2019년 연구를 예로 들었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GABA가 과다하게 나오는데, GABA를 만드는 MAO-B라는 효소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으면 알츠하이머 증상이 완화된다. 치료제가 되는 것이다.

이 단장은 “연구는 ever-expanding (끝없이 확장)해야 건강하다. 그런데 KIST에서는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IBS에서 별세포 연구를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구비와 공간, 장비를 충분히 지원하고 연구의 자율성도 보장한다고 했다. 그래서 옮기게 되었다”라고 2018년 전직 배경을 설명했다.

“생물학의 미래는 단백질학에 달려 있다”

이 단장이 이끄는 IBS의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크게 세 개 그룹으로 나뉜다. 사회성 신경과학 그룹, 인지 교세포과학 그룹, 신경이미징 기술개발 그룹 등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8명의 독립적인 연구책임자(PI·Principal Investigator)가 있고, 전체 스태프 수는 80~90명이다. 이 단장은 이 중에서 인지 교세포과학 그룹을 직접 이끈다.

그에게 IBS에 왔기에 가능했던 연구가 무엇이었고, 그걸 뒷받침하는 고가의 장비는 무엇인지 물었다. “별세포가 주위 환경이 나빠지면서 반응성 별세포로 바뀐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반응성 별세포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규명했다. 이런 메커니즘이 다른 뇌질환에서도 일어나는 게 아닌지, 다른 질병으로 연구를 확대해야 했다. IBS에 왔기에 연구 대상을 다른 질병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 치료제까지 개발할 수 있었다.”

그는 파킨스병 관련 연구 결과는 2020년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뇌졸중 관련해서는 2020년 ‘셀 리포츠’에 제출한 상태다. 뇌척수 손상 관련 논문 역시 제출해놓고 있다. 이런 걸 가능하게 한 장비들로는 초고해상도 현미경, 다광자 현미경(multi-photon microscope), 그리고 차세대 염기서열을 읽는 장비가 있다. 초고해상도 현미경은 100나노미터 크기의 물체를 구분할 수 있다. 이는 이전에 사용하던 공초점 현미경에 비해 10배 해상도가 좋아진 것이다. 이 단장은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 내부에 어떤 단백질이 있는지를 공초점 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생물학의 미래는 단백질학에 달려 있다. 유전자보다는 단백질을 보는 게 정확하다. 세포 내에 어떤 단백질이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기계들이 나오고 있다. 10억원 이상 하는 장비(tims TOF fleX)다. 이런 걸 구입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한국에서 시작한 과학이다. 그렇기에 더 부가가치가 있다”라고 했다. 한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해도 연구 아이디어가 좋으면 ‘사이언스’와 ‘네이처’, ‘셀’에 논문을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굳이 미국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원고를 작성했다. 원고에 틀린 부분이 없는지 본인의 확인을 받고, 대전에서 만나 같이 찍었던 사진을 보내기 위해 카카오톡을 열었다. 이 단장의 프로필에 쓰인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별세포 연구 중(studying astocytes)’이었다. 별세포가 뇌질환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별이 되어주길 빌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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