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인지장애 과정이 인간과 비슷해 알츠하이머병 치료법 연구의 모델로 적합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photo 셔터스톡
개는 인지장애 과정이 인간과 비슷해 알츠하이머병 치료법 연구의 모델로 적합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photo 셔터스톡

요즘은 반려 문화 시대라고 할 만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점차 개인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반려견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을 달래고 삶의 활력소를 얻는 모습이다. 국제노령연맹(IFA)이 발간한 논문 ‘반려동물이 노인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실제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신체능력 감소율이 1년 더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엔 반려견이 치매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반려견이 어떻게 인간의 치매 치료법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인지장애 과정 인간과 비슷

치매에 걸릴 확률은 나이가 들수록 높아진다. 치매는 정상적이던 지능이 뇌 질환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기억, 언어, 판단력 등 여러 영역의 인지 기능이 감소하여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임상증후군이다.

치매에는 알츠하이머병이라 불리는 노인성 치매, 중풍 등으로 생기는 혈관성 치매가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의 수많은 신경세포가 서서히 쇠퇴하면서 뇌조직이 소실되고 뇌가 위축되는 질환이다. 혈관성 치매는 뇌 안에서 혈액순환이 잘 안돼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거나 갑자기 큰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면서 뇌세포가 죽어 발생하는 질환이다.

사람에게 발생하는 가장 흔한 치매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전체 치매 환자의 약 70%를 차지한다. 혈관성 치매는 20~25%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기타 원인에 의한 치매다. 알츠하이머병은 인지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 질환이지만, 현대 생명과학·의학 분야에서 가장 큰 난제의 질환이다. 아직 치료법이 없어 발병하면 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의학 기술로는 약물로 질병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만 가능하다. 증세가 나타나거나 진단이 이뤄진 뒤에는 뇌세포 손상이 이미 한참 진행된 뒤일 경우가 많다.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연구 진전이 잘 이뤄지지 않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유전공학 없이 자발적으로 치매를 유발하면서도 인간의 유전적·환경적 복잡성을 적절하게 반영할 만한 유용한 동물 모델이 없는 한계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국 워싱턴대의 매트 캐벌린(Matt Kaeberlein) 교수팀이 반려견의 인지장애가 인간 치매의 몇 가지 측면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반려견이 인간 치매 치료법 연구의 동물 모델로 적합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동물 모델을 찾았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캐벌린은 말한다. 캐벌린은 노화의 기본 생물학 연구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병리학 교수이자 ‘개 노화 프로젝트’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반려견을 인간 노화의 질병 모델로 활용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다.

연구팀은 반려견의 인지장애가 인간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것은 주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같은 환경을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렇기에 인간과 똑같은 위험 요인에 노출될 수 있고, 또 수명은 달라도 같은 노화 과정을 겪기 때문에 노년기가 되면 반려견도 자연적으로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반려견의 노화 속도는 인간보다 약 10배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반려견이 치매에 걸렸다면 어떤 증상을 보일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방향감각 상실이다. 늘 생활했던 집이나 매일 걷던 산책길에서 부딪히는 횟수가 늘어나고 헤매는 모습을 보인다. 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거나 낮잠을 많이 잔다. 으르렁거리는 일이 많아져도 치매일 가능성이 높다.

과학자들이 지목한 인간 알츠하이머 치매 주범의 하나는 뇌의 특정 노폐물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다. 아밀로이드는 당과 단백질이 뭉쳐진 덩어리다. 아밀로이드 베타의 원래 기능은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것이라서 정상인도 인체 곳곳에서 소량 만들어지지만 이후 빠르게 분해돼 인체 내에 쌓이지 않는다.

반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경우 이 물질이 분해되지 않고 뇌세포 주변에 쌓이면서 딱딱하게 엉긴 덩어리를 형성한다. 아밀로이드 베타42(Ab42)라고 불리는 펩티드가 비정상적으로 과다하게 쌓여 뇌의 주요 기능을 잃게 하는 것이다. 펩티드는 아미노산의 중합체로, 소수의 아미노산이 연결된 형태는 펩티드, 수백 개 이상 아미노산이 연결되면 단백질이라고 한다.

반려견의 Ab42 펩티드 인간과 동일

캐벌린 교수팀은 수많은 연구 과정을 거쳐 반려견의 Ab42 펩티드가 인간 형태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처음엔 영장류와 반려견의 뇌와 뇌척수액(CSF)에서 Ab42를 측정하는 새로운 분석법을 개발해 연구했지만 충분한 샘플을 측정하기 어려워 헝가리 부다페스트 엘테(ELTE)대학의 과학자 등이 설립한 ‘개 뇌조직 은행’과 협력했다.

이 은행은 수의사와 합의해 반려견을 의학적으로 합당하게 안락사한 뒤 연구용으로 시신을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주인들을 위해 반려견 시신 기증 규약을 시행하고 있는 곳이다. 은행은 반려견이 죽기 전에 보유했던 인지능력에 대한 철저한 기록(문서화)과 함께 수명을 다했을 때 반려견의 뇌와 뇌척수액을 수집해 보관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연구팀은 뇌 영역의 세 곳(전전두엽, 측두엽, 해마·내후각피질)에서 반려견의 죽음 후 뇌 조직과 분자 데이터 등을 조사해 반려견의 행동 측정과 연결시켰다. 그 결과 세 곳 모두에서 Ab42의 양과 반려견의 나이 사이에 상당히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발견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Ab42 양이 많은 한편 인간과 마찬가지로 Ab42 펩티드의 양이 많을수록 인지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반면 뇌척수액의 Ab42 양은 나이와 관계없었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제로사이언스(GeroScience)’에 발표되었다.

반려견의 인지기능은 인간의 알츠하이머병 진단처럼 검증된 설문지를 사용해 평가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진단할 수 있다. 점수가 50점 이상이면 인지장애로 진단한다. 연구팀은 반려견의 뇌에 쌓인 Ab42 양과 인지 점수의 상관관계는 알츠하이머병 치료법 연구 모델로서 반려견이 적합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말한다.

반려견의 정확한 노화를 조사하려면 다양한 장기에서 추출한 생체 표본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연구팀은 ‘개 뇌조직 은행’이나 ‘개 노화 프로젝트’ 바이오뱅크 등의 더 많은 생체 표본을 이용한 대규모 연구를 통해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거나 확실한 치료법을 찾아낼 계획이다. 이러한 연구는 반려동물의 건강한 수명 연장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반려견을 통한 연구팀의 연구가 치매를 완전 정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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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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