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셔터스톡
ⓒphoto 셔터스톡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온도와 촉각 수용체를 발견’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의 데이비드 줄리어스(66)와 스크립스연구소의 아뎀 파타푸티언(54) 두 교수에게 돌아갔다. 센서 역할을 하는 수용체를 찾아내 촉각의 기능을 분자 수준에서 최초로 밝혀낸 공로다. 두 교수가 발견한 촉각 수용체는 무엇이고, 또 인간의 오감 중 지금까지 발견된 수용체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또 인간의 감각은 어떻게 감지되고 전달돼 세상을 인식할까.

‘고추를 먹으면 왜 뜨거울까’

인간의 피부로 느끼는 촉각은 하나가 아니라 접촉(touch), 온도(temperature), 통증(pain) 세 가지의 감각이다. 이들 감각은 진피 내에 있는 수용체로 느낀다. 온도, 통증, 접촉 등을 감지하는 능력은 생존에 필수적이고, 우리는 이런 감각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뇌가 촉각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신경계에서 열이나 기계적 자극이 어떤 작용 원리를 거쳐 전기신호로 바뀌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알아낸 생리학자가 바로 줄리어스 교수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통증과 온도, 접촉에 반응하는 감각 뉴런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를 연구했다. 특히 열(온도)에 반응하는 피부의 신경 말단 수용체를 확인하기 위해 매운맛의 대명사인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을 이용했다. 캡사이신은 만졌을 때 화끈거리는 느낌으로 통증 감각을 일으켜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물질이다. 연구 결과 줄리어스 교수는 매운 것을 먹으면 사람이 땀을 흘리는 것과 관련된, 열에 반응하는 특정 수용체(유전자) ‘TRPV1’을 척추의 배근신경절 세포에서 처음 찾아냈다.

고추 매운맛이 통증으로 느껴지는 원리는 이렇다. 캡사이신 분자가 수용체 TRPV1에 달라붙으면 캡사이신 자극(열)에 의해 TRPV1 분자구조가 변형되면서 수용체가 열려 전기신호를 일으키고, 이 신호가 신경계를 거쳐 대뇌에 전달돼 42도 이상의 뜨거움과 통증을 느끼게 한다. 즉 고추의 매운맛이 혀가 느끼는 ‘뜨거운 아픔’이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셈이다. TRPV1이 활성화하기 시작하는 온도 27도보다 높으면 따뜻하게, 이보다 낮으면 차갑다고 느낀다.

줄리어스 교수는 우리가 외상을 입었을 때 통증과 열감을 느끼는 것은 캡사이신과 비슷한 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경로다. 이후 줄리어스 교수는 TRPV1을 만드는 유전자를 복제하는 데 성공해 1997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줄리어스 교수의 연구는 TRPV1에서 전기신호가 전해지는 통로를 차단해 신경통증 자극을 줄여주는 리도카인 등 통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활용됐다. 앞으로도 관절염, 천식, 만성통증과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한편 우리가 꼬집거나 만졌을 때의 기계적 자극(압력)에 대한 촉각 수용체도 밝혀졌다. 그동안은 피부에 가해지는 압력이 어떻게 전기신호로 바뀌는지 알지 못했다. 이를 해결한 사람이 파타푸티언 교수다. 그는 손가락으로 피부를 누르면 압력을 느끼게 되는 현상을 연구한 분자생물학자로, 마이크로피펫 끝단으로 찔렀을 때 전기신호를 방출하는 ‘압력에 민감한 세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이와 관련 있는 유전자 72개를 찾아내고, 이 유전자들을 하나씩 비활성화하면서 기계적 자극을 감지하는 촉각 수용체(유전자) ‘PIEZO1’을 발견했다.

그 뒤 그는 위치와 자세까지 감지하는 실질적 촉각 수용체 ‘PIEZO2’까지 찾아냈다. PIEZO2는 역시 기계적 자극의 일종인 혈압이나 호흡, 방광, 폐의 확장이나 수축 같은 주요 생리과정을 감지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2007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이 발견은 인간 신경계가 기계적 자극을 감지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준 한편 새로운 통증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열었다.

빛 수용체 ‘로돕신’ 발견, 시각 과정 밝혀져

인간은 눈과 귀, 코, 혀, 피부 등의 감각기관으로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인다. 바로 오감이다. 감각기관의 핵심은 외부의 자극을 전기신호로 변환시키는 수용체이다. 신호는 신경세포인 뉴런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수용체에서 시작된 뉴런의 흥분이 뇌에 전달되어야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빛이 눈에 있는 수용체를 활성화시켜 전기신호를 만들고 이것이 시신경을 타고 뇌까지 전해지면 뇌가 앞에 있는 사물이 어떤 모양과 색깔을 띠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눈의 이 같은 작용을 알게 된 것은 196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조지 월드와 케퍼 하틀라인, 스웨덴의 랑나르 그라니트가 빛 수용체 ‘로돕신’을 발견해 시각 원리를 밝힌 덕분이다. 망막에는 간상세포와 원추세포라는 빛을 감지하는 세포가 있다. 간상세포는 빛의 밝기 정보를, 추상세포는 빛의 색상 정보를 처리한다. 간상체에는 로돕신, 원추세포에는 아이오돕신이라는 빛 수용체가 존재하는데, 특히 로돕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빛에 민감하다. 일반 회중전등이 1초에 약 2×(10억의 10억배)개의 광자를 발산한다면 망막 간상체는 100개 광자만 있어도 빛을 식별할 수 있다.

로돕신은 옵신(opsin)이라는 단백질과 레티날(retinal)이라는 색소분자로 이뤄져 있다. 빛이 수정체를 통해 들어오면 광자의 에너지가 시스-레티날(시스형)이라는 원래의 화학구조를 트렌스-레티날(트렌스형)로 바꾼다. 빛이 분자 구조를 변형시키면서 생긴 이 이성질체가 신경자극을 만들고, 신경자극은 곧 우리 뇌에 전달되어 밝기·색·형태·움직임 등의 시력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3명의 과학자가 이룬 결론이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왼쪽)와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 ⓒphoto 뉴시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왼쪽)와 아뎀 파타푸티언 교수. ⓒphoto 뉴시스

후각 수용체 만드는 유전자 분리

로돕신은 체내의 비타민 A로부터 생성된다. 구체적으로 시스-레티날을 만들 때 비타민 A를 사용한다. 그런데 트랜스형이 다시 시스형으로 전환되고 시스형이 또 트랜스형으로 전환되는 시각회로(visual cycle)의 반복 과정에서 레티날의 일부는 파괴되어 회수되지 않는다. 이 손실분은 혈액 속의 레티놀이 레티날로 전환되어 공급한다. 만일 이때 비타민 A가 부족해 손실량을 보충할 수 없으면 야간에 사물을 식별하기 어려운 야맹증을 유발한다. 이를 밝혀낸 것도 3명의 과학자다. 비타민 A의 보고인 당근을 많이 먹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냄새를 맡을 때의 뇌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시각, 청각, 촉각이 물리적 감각이라면 후각과 미각은 화학적 감각이다. 화학물질이 실체인 셈이다. 냄새를 처음으로 알아내는 곳은 코의 점막에 있는 ‘후각상피’다. 1991년 미국 컬럼비아대 리처드 엑셀 교수와 프레드 허치슨 암연구센터 린다 벅 연구원은 호흡할 때 들어오는 냄새 분자와 코 점막의 후각 수용체 단백질이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결합하면, 후각상피에서 나온 신경계를 통해 전기신호가 뇌의 후각망울로 보내져 냄새를 인지한다는 후각 메커니즘을 밝혔다. 유전자 클로닝기술(gene cloning technique)을 이용해 후각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를 처음으로 분리해낸 것이다. 이 공로로 이들은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후각상피에 무려 1000여종류의 후각 수용체가 있어 냄새를 식별하는 데 관여한다. 냄새분자 하나가 수용체 하나에 결합한다 해도 1000가지가 넘는 냄새를 맡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몇 종류 안 되는 촉각이나 시각 수용체와 비교하면 놀라운 다양성이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가 1:1은 아니다. 예를 들어 레몬향의 주성분인 ‘시트랄’이라는 향기분자는 수십 개의 수용체와 상호작용한다. 보통 하나의 수용체는 2~3개의 냄새 종류를 담당한다.

1000여개의 특별한 수용체는 각각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 따라서 냄새를 맡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도 1000여개에 이른다. 이는 우리 몸이 갖고 있는 전체 유전자의 약 3%에 해당한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이 가운데 실제 작동하는 유전자 수는 375개 정도다. 절반이 넘는 유전자가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가짜 유전자’인 셈이다. 인류가 직립해 코가 땅바닥에서 멀어진 이래 후각에 대한 의존도가 줄면서 퇴화됐기 때문이다.

다양한 후각 수용체는 냄새분자 중 특정 부위에 반응한다. 뇌가 많은 종류의 냄새를 어떻게 식별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어느 냄새분자의 특정 부위가 어느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지 알게 되면 후각을 잃은 환자들에게 완벽한 치료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우리가 맛이라고 느끼는 감각의 90%는 사실 후각이다. 혀로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만 느낄 뿐이다. 감기에 걸려 코가 막힌 경우 음식을 먹어도 무슨 맛인지 잘 모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맛은 과학적으로 ‘맛 분자가 혀에 있는 맛봉오리(미뢰)에 붙어 미각 수용체를 자극한 뒤 신경계를 통해 뇌에 맛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5가지 기본 맛의 교묘한 지각 메커니즘

미각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된 건 불과 지난 20년 사이의 일이다. 당시 미각은 감각 가운데 가장 연구가 안 된 분야였다. 2000년에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 T2R을 처음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2001년 단맛(T1R2·T1R3), 2002년 감칠맛(T1R1·T1R3), 2006년 신맛(PKD2L1), 2010년 짠맛 수용체(ENaC)를 잇달아 발견하면서 5가지 기본 맛에 대한 지도가 그려졌다. 이러한 미각의 과학을 이끈 과학자는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찰스 주커 교수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니콜라스 리바 박사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2011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현재 신맛 수용체의 실체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각각의 맛의 정보는 뇌에서 어떻게 처리될까. 주커 교수에 따르면 미뢰에 분포하는 미각 세포마다 5가지 맛 가운데 하나를 감지하는 미각 수용체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나뉘어 있어 각각의 자극을 뇌의 담당 신경으로 전달한다. 예를 들어 사탕을 먹으면 설탕 분자가 혀의 미뢰에 있는 단맛 수용체에 달라붙으면서 전기신호가 발생해 뇌의 단맛 담당 신경계로 전달되는 것이다. 주커 교수와 리바 박사는 미각의 신비를 밝히는 데 헌신해 왔지만 아직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언젠가는 이들에게도 생리의학상이 주어지지 않을까.

여전히 베일에 싸인 청각의 인지 작용

인간의 오감 가운데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감각은 청각이다. 귀는 작지만 소리를 듣고 어지럼을 관장하는 등 많은 일을 하는 인체 기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귀의 기능은 청력이다. 청력은 소리를 탐지하는 능력이다. 청각은 놀라울 정도의 정교한 능력으로 소리의 주파수와 크기, 시간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여 소리의 식별이나 음원의 위치를 파악한다.

귀는 크게 외이, 중이, 내이로 나뉜다. 우리가 소리를 듣는 과정은 이렇다. 외이인 귓바퀴에서 소리(음파)가 모여 외이도를 타고 중이의 고막에 전해진다. 고막까지 전달된 음의 진동은 3개의 작은 뼈(이소골)를 통해 내이에 있는 달팽이관으로 이어진다. 달팽이관은 물리적 소리인 진동을 전기적 신호로 바꿔 청신경을 거쳐 뇌에 전달한다.

이렇게 소리를 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달팽이관에는 역할이 다른 두 개의 유모세포가 있다. 외유모세포는 달팽이관에 들어온 소리를 증폭시키고, 내유모세포는 증폭된 소리 정보를 청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한다. 헝가리 출신의 미국 생리학자 게오르크 폰 베케시는 이 같은 달팽이관 원리를 발견해 196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처럼 동물의 청각기관 구조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청각세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소리를 인지하는지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진동 등 물리적 움직임이 어떤 물질적 과정을 거쳐 청각세포 전기신호로 전환되는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미국의 베일러의대 연구자들과 한화석유화학 중앙연구소의 김창수 박사 등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은 소리를 청각세포의 신호로 변환시키는 유전자를 발견하는 등 내이의 최말단에서 일어나는 기능을 속속 밝히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가 난청의 예방과 치료, 청력의 재활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다. 하지만 귀가 소리의 자극을 뇌에 전달하여 느끼는 감각은 생각보다 여러 종류의 분자들이 관여하고 있다. 때문에 서로 복잡하게 뒤엉켜 작용하는 이들 분자들을 가려내 수용체를 찾아내는 연구는 시각이나 후각, 청각, 미각만큼 쉽지 않다. 청각 분야에서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이 먼 훗날로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키워드

#과학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