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은 혈당을 내리는 유일한 호르몬으로, 1923년 의약품으로 만들어졌다. ⓒphoto 게티이미지
인슐린은 혈당을 내리는 유일한 호르몬으로, 1923년 의약품으로 만들어졌다. ⓒphoto 게티이미지

올해는 인슐린이 발견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인슐린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의학적 발견으로, 불치의 병이었던 당뇨병에 처음으로 효과가 있다고 밝혀진 치료제이다. 100년 동안 인슐린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전 세계 수백만 당뇨병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인슐린 발견이 당뇨 환자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셈이다. ‘죽음의 병’이던 당뇨를 치료 가능하게 만든 인슐린은 정확히 어떤 물질이고 우리 몸속에서 어떤 작용을 할까.

‘불치의 병’에서 ‘관리하는 질병’으로

11월 14일은 국제당뇨병연맹(IDF)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당뇨의 날’이다. 당뇨병은 소변에 당이 섞여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혈액 속의 포도당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가 지속됨에 따라 과량의 당분이 소변으로 배설된다. 포도당은 탄수화물을 이루는 기본 성분으로, 우리 몸에서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가장 대표적인 물질이다.

한편 인슐린은 혈당을 내리는 유일한 호르몬이다. 식사 후 혈액 속에 포도당 농도가 증가하면 이에 반응하여 췌장의 랑게르한스섬(Langerhans islets·이자섬)이라는 조직의 베타(β)세포에서 인슐린이 분비되고, 인슐린의 작용으로 혈액 속의 포도당이 세포 안으로 이동되어 에너지를 만든다. 그러고도 남은 포도당은 간에서 글리코겐으로 바꾸거나 중성지방의 형태로 저장해 체내 혈당량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혈액 속의 포도당(혈당) 농도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분비되는 인슐린 양이 부족해 포도당이 세포에 전달되지 못하면 세포 기능에 문제가 발생해 당뇨병이 생긴다. 심한 경우 죽음에도 이르는, 흔한 병이지만 무서운 병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당뇨병으로 고통받아 왔다. 그만큼 당뇨병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도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인슐린을 처음 발견해 당뇨 치료에 성공한 사람은 캐나다의 의학자 프레더릭 밴팅(Frederick Banting·1891~1941)이다. 세계 당뇨병의 날인 11월 14일은 밴팅의 업적을 기려 그의 생일을 이날로 정한 것이다.

밴팅은 단짝 친구가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뇨병에 관심을 갖게 됐고, 친구를 치료하기 위해 대학원생인 찰스 베스트와 함께 연구에 착수했다. 이들의 첫 연구 실험 대상은 개였다. 정상적인 개의 췌장에서 추출한 물질을 당뇨에 걸린 개에게 주사하는 방식의 실험이었다. 하지만 추출된 인슐린 양이 너무 적고 독성이 있어서 91마리를 실험할 때까지는 아무 소득 없이 개만 죽어나갔다. 효과는 92번째 개에게서 나타났다. 거의 죽음에 이른 개에게 인슐린을 맞혔더니 몇 시간 뒤 기적처럼 일어나 꼬리를 흔드는 것이었다. 1921년의 일이다.

문제는 개를 이용해서는 많은 양의 인슐린을 추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밴팅은 소에서 인슐린을 추출해 개에게 투여했다. 그 결과 혈당이 더욱 떨어져 더 성공적이었다. 이듬해 1월 23일, 밴팅은 사람을 대상으로 첫 치료를 시작했다. 중증 당뇨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14세 소년 레널드 톰슨에게 인슐린을 주사했다. 이를 투여받은 소년은 24시간 후 정상 수준의 혈당 수치를 회복했다. 이후 토론토대 병원 중환자 50명 중 46명의 증세도 완화시켰다. 그의 단짝 친구도 살아났다. 이러한 인슐린 효과가 알려지자 죽음만 기다리던 수백 명의 환자들이 한꺼번에 병원으로 몰려들었고, 병원은 이들의 목숨을 모두 살려냈다.

1923년에는 의약품으로도 만들어졌다.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소에서 추출한 인슐린을 치료제(바이에타)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이를 통해 당뇨병을 의학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하는 새 시대가 열렸다. 밴팅은 인슐린을 발견한 공로로 1923년 최연소(32세)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함께 수상하지 못한 베스트에게는 공로의 반을 돌리고 상금의 절반을 나눠줬다. 또 밴팅은 인슐린이 자신의 것이 아닌 전 세계인을 위한 것이라며 단돈 1달러에 인슐린 특허를 토론토대에 넘겼다.

인슐린에 견줄 만한 발견 아직 못 해

당뇨병은 크게 1형과 2형으로 나뉜다. 1형 당뇨병은 우리 몸의 면역계가 췌장의 β세포를 공격, β세포가 파괴되어 인슐린이 거의 분비되지 않아 발생하는 일종의 ‘자가 면역 질환’이다. 전체 당뇨 환자 중 5~10%를 차지한다. 주로 10세 미만의 소아나 청소년에게 발병하는 특징이 있어 ‘소아 당뇨’라고도 불린다. 면역계가 왜 췌장의 β세포를 공격하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바이러스 감염이나 음식에 의한 유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전적 요인도 작용한다.

1형 당뇨병은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IDDM)1)이라고도 한다.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인슐린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2~4회 주사를 통해 인슐린을 공급해 치료한다. 하지만 1형 당뇨병을 완전하게 치료하는 일은 지금도 어려운 상황이다.

2형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분비되지만 근육세포나 간세포의 수용체에 이상이 생겨 인슐린을 흡수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즉 세포가 인슐린에 효과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당뇨병 환자 90% 이상이 제2형으로, 주로 40세 이후에 발생하기 때문에 ‘성인형 당뇨병’이라고도 불린다. 1형과 달리 2형 당뇨병은 대부분 식사요법이나 운동요법, 혈당강하제 복용만으로도 혈당 관리가 충분히 가능하다.

당뇨병의 가장 눈에 띄는 증상은 소변량 증가다. 인슐린 이상으로 포도당이 빠져나가면서 다량의 물을 끌고 나가기 때문에 당뇨병이 생기면 소변을 많이 보게 된다. 이로 인해 수분 부족으로 갈증이 심해져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또한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배고픔 현상이 심해져 점점 더 음식물을 먹고 싶어지게 된다.

당뇨병에 걸려 죽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심혈관계 합병증(심장질환)이다. 또 망막에 변화를 일으켜 시력이 나빠지는 당뇨성 망막증, 비만, 신경 손상, 고혈압, 고지혈증, 신장 질환, 손발 저림 등도 심각한 합병증이다. 당뇨병 합병증은 한번 발생하면 치료가 복잡하고 병의 진행을 막는 것도 어렵다.

인슐린이 발견되기 전, 1형 당뇨병에 걸리게 될 경우 10대 환자의 기대수명은 고작 1.3개월이었다. 사형선고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인슐린 발견 후에는 45년으로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었다. 10대 미만 환자의 사망률도 6분의1로 줄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슐린의 생산 기술도 발달했다. 1955년 소에서 추출한 인슐린의 아미노산(단백질) 구조가 밝혀지고, 이를 바탕으로 1979년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통해 인간의 인슐린을 안전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인슐린 부족 사태뿐 아니라 동물로부터 추출한 인슐린을 사용하여 생기는 치료의 부작용 문제를 해결했다. 최근에는 인슐린의 단백질 구조를 조금씩 바꿔 혈당 조절 효율이 높은 인슐린도 개발되어 있다.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분비 패턴을 파악해 정상인의 췌장과 같은 리듬으로 인슐린을 공급하는 인슐린 펌프. ⓒphoto 뉴시스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분비 패턴을 파악해 정상인의 췌장과 같은 리듬으로 인슐린을 공급하는 인슐린 펌프. ⓒphoto 뉴시스

오해·편견으로 치료 거부 환자 많아

이처럼 인슐린은 생산과 치료 면에서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인슐린이 개발되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당뇨병은 평생 관리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다. 특히 1형 당뇨병을 완치시킬 치료제가 아직 없고, 인슐린 발견에 견줄 만한 새로운 업적도 아직 없다. 하루 2~4회 인슐린 주사를 통해 혈당 조절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 치료법인 셈이다. 인슐린은 단백질 구조로 되어 있어서 경구로 투여하면 분해되어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피부 밑에 주사하게 된다. 하지만 주사에 대한 공포로 인슐린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패치형, 흡입형, 경구용 인슐린 등 주사제 외의 인슐린도 지속적으로 연구 중이다.

현재 전 세계 당뇨 환자의 수는 세계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만도 500만명이 넘는다. 30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꼴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당뇨병 환자는 27.7%나 늘었다. 하지만 국내 인슐린 치료율은 해외와 비교해 매우 낮다. 2015년 인슐린 치료를 받는 비율이 8.9%에서 2020년 6.4%로 줄었다. 인슐린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왜 이를 꺼리는 것일까.

대표적 원인은 인슐린 주사에 대한 환자들의 오해와 편견 때문이다. 대부분의 당뇨병 환자들이 “인슐린은 한번 맞으면 평생 맞아야 한다” “인슐린은 당뇨병 말기의 마지막 치료법이고, 주사를 맞으면 이젠 끝이다”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슐린 주사는 결코 최후의 치료 방법이 아닌, 당뇨병의 다양한 치료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당뇨병 치료는 인슐린 분비량이나 고혈당에 따른 다뇨와 체중 감소 정도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지는데, 당뇨병이 심한 경우 빨리 인슐린 주사를 맞아 몸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인슐린 주사는 매일 맞아야 하는 번거로움만 빼면 췌장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가장 안정적으로 혈당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다. 주삿바늘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으로 인슐린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적절한 치료로 혈당을 잘 관리하면 건강한 사람처럼 활동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당뇨병 환자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인슐린 치료 인식 개선이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인슐린 발견 100주년을 맞아 국내 당뇨병 환자들이 안전하고 적극적으로 인슐린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있다. 인슐린 발견 100년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과학적 도전을 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통해 언젠가는 당뇨병의 완전한 예방과 치료가 가능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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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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