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 속으로’에서 학도병 중대장 역을 맡은 T.O.P
‘포화 속으로’에서 학도병 중대장 역을 맡은 T.O.P

6·25 발발 60주년을 기해 기획·제작되는 일련의 전쟁 대작 중 그 첫 번째 타자가 ‘포화 속으로’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이재한 감독이 T.O.P(학도병 중대장 오장범 역)을 비롯해 권상우(학도병 구갑조), 차승원(인민군 진격대장 박무랑), 김승우(국군 대위 강석대) 등을 기용해 빚어냈다. 1950년 8월 11일 낙동강 전선으로 이동한 국군을 대신해 포항을 기습 공격한 북한군에 맞선 학도병 실화를 극화했다. 71명의 학도병은 포항여중에서 11시간 반 동안 사투를 벌였다. 48명이 전사한 그 전투에서 학도병들은 북한군 60여명을 사살했다. 영화는 당시 열여섯 나이에 전사한 이우근 학도병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편지에서 비롯됐다.

110여억원을 투여했다는 이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실화성은 일종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학도병 스토리에서 무게중심은 정작 실화에 담긴 사실성·진정성이나 극적 개연성이 아니라 대중오락 영화 특유의 스펙터클과 특정 인물의 영웅화에 실렸다. 후반부에 이르면 더욱 더 그렇다. 전쟁에는 애당초 무관심한 듯한 젊은 관객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치부하려 해도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영화는 71명의 학도병이 무엇 때문에, 어떻게 학도병이 됐는가 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을 그냥 전장에 던져놓을 따름이다. 더욱이 그들 중 대다수는 오장범과 구갑조를 위한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포항 전투의 두 영웅 말이다. 이 각본을 ‘불 좀 꺼주세요’ 등의 명극본으로 이름난 이만희 작가(영화 ‘약속’ ‘보리울의 여름’ ‘거북이 달린다’)가 썼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갈등과 충돌로 일관하던 두 사람이 최후의 순간 영웅으로 거듭나는 광경을 지켜보는 맛은 꽤 짠하다. 하지만 그 맛은 영화를 만든 이들이 의도했을 감동과는 거리가 멀다. 한 평자의 지적처럼 그들은 영락없는 ‘람보의 후예들’ 아닌가. 감독이 ‘첩혈쌍웅’ 등 이른바 홍콩 누아르의 영향을 너무 세게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일찍이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그랬듯, 이재한 감독은 전투를 스펙터클로서 가능한 폼 나고 실감나게 형상화하는 데 주력한다. 그 폼과 실감에서는 ‘포화 속으로’만의 ‘새롭고 다른 그 무엇’은 아무리 애써도 찾을 수 없다. 영화 내내 기시감(旣視感)이 밀려든다면 그래서일 것이다. 상기 캐릭터들의 성격화나 연기도 단선적이다. 강석대(김승우 분)는 경직·건조하며 구갑조(권상우 분)는 학도병치고는 노쇠하다.

그들은 그래도 박무랑(차승원 분)에 비하면 무난한 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의 북한군 병사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박무랑 캐릭터는 엉뚱하게도 ‘홀리데이’(양윤호 감독)의 교도관 김안석을 연상시킨다.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는 거야 애교로 봐주더라도 차승원의 연기는 극적 설득력쯤은 아랑곳없는 ‘폼생폼사’랄까. 왜 그렇게 연기 연출을 한 건지, 가뜩이나 당혹스러운 영화가 더욱 당혹스럽다.

이 당혹스러운 영화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건 엔딩 크레디트(ending credit)에서 본명 ‘최승현’을 병기한 ‘T.O.P’(그룹 ‘빅뱅’ 멤버)의 집중력이다. 여느 아이돌 그룹 가수 출신 연기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쟁쟁한 선배 연기자들의 부진을 보완하는 놀라운 활력을 발산한다. 그 강렬한 눈빛도 그렇거니와 다부진 입 매무새 등이 여간 인상적인 게 아니다. 문득 찾아드는 의문 하나. ‘포화 속으로’는 ‘T.O.P의, T.O.P에 의한, T.O.P을 위한’ 영화인 걸까? 그건 아닌 듯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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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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