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 라르손
스티그 라르손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 ‘밀레니엄’ 3부작의 마지막 3부가 8월 29일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집계 하드커버 소설 순위에서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작품 이름은 ‘밀레니엄 Ⅲ: 바람 치는 궁전의 여왕(The Girl Who Kicked the Hornet’s Nest)’이다. 지난 5월 25일 출간된 후 곧바로 베스트셀러 대열에 진입한 이 소설은 12주째 미국 서점가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서점인 미국의 아마존닷컴 종합 순위에서도 이 소설은 8월 26일 현재 4위에 올라 있다.

2008년 9월 미국에서 최초로 번역·출간된 1부 소설인 ‘밀레니엄 I: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은 5위, 2009년 7월에 출간된 2부 소설 ‘밀레니엄 Ⅱ: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The Girl Who Played with Fire)’는 6위다. 스티그 라르손의 3부작 소설 세 권 모두가 출판시장에서 몇 년째 기염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비영어권 작가의 작품이 미국 시장으로 진입하여 번역·출간되는 비율은 현저히 낮다.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프랑스어권, 독일어권, 스페인어권, 이탈리아어권 등의 유럽 지역 출신 작가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문학이, 그것도 스웨덴 출신의 작고한 무명작가 소설이 미국 출판 시장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작가 사망 후 출간… 한국선 1만부 팔려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이 종이책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전자책 시장에서도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의 전자책 ‘킨들’ 북스토어 관계자는 지난 7월 말 “킨들을 통해서만 스티그 라르손의 3부작이 이미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전자책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작가는 제임스 패터슨 정도가 있다. 그러나 패터슨은 미국 작가인 데다가 지난 20여년간 거의 매년 두 작품 정도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작가로 군림해오고 있다. 그의 책을 출판해오고 있는 아셰트 북 그룹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제임스 패터슨의 전자책이 지난 7월 초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킨들뿐만 아니라 누크 등 다른 전자책 시장의 판매량도 함께 합산된 것이라 스티그 라르손 소설의 인기가 전자책 시장에서도 이미 그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라르손의 미국 정상 등극은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티그 라르손(Stieg Larsson·1954~2004)은 1954년 스웨덴 북부의 도시에서 태어났다. 사회비판적 성향이 강했던 그는 좌파 계열의 잡지사에서 기자로 근무했다. 그러던 중 소설을 구상하게 된다. 시사 월간지 ‘밀레니엄’의 편집주간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보안경비업체의 비밀정보 조사원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한 재벌의 손녀 실종 사건을 함께 풀어나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8년 7월부터 2009년 6월까지 1, 2, 3부가 총 6권으로 출간되어 지금까지 1만부 내외가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이 시리즈는 애초 3부작이 아닌 10부작으로 기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3부까지 완성된 원고를 2004년 11월 출판사에 넘긴 직후에 예기치 않게 발생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나머지 이야기는 영원히 묻히게 됐다. 라르손의 소설 3부작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05년 7월 1부를 첫 권으로 출간을 시작했고 2007년 3권 3부작이 완간되면서 스웨덴의 주요 추리문학상을 모두 거머쥐는 결실을 이뤘다. 그러는 사이 스웨덴 전체 인구인 900만명 중 3분의 1이 넘는 사람이 그의 소설을 읽었다. 300만부 이상이 팔렸고 그 기세는 유럽 전체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어 나갔다. 라르손의 모국에서 그의 소설이 베스트셀러 상위 1, 2, 3위를 휩쓴 것은 당연지사. 프랑스에서는 아마존 프랑스 종합순위 1위를 기록하는 등의 맹위를 떨치며 해리포터 시리즈의 판매기록을 능가하는 기록을 세우고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밖에도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거의 유럽 전역에서 흥행몰이에 성공해 판매부수가 1000만부를 훌쩍 넘었다. 이런 기록들은 미국출판시장의 구미를 강하게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으로의 영어 판권은 랜덤하우스의 한 계열사인 크노프(Alfred A. Knopf)로 넘어갔다. 이 출판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종이책)은 한 주에 40만부 이상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뉴욕 AP통신은 7월 말 현재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출판시장에서 그의 소설(종이책과 전자책) 판매량은 모두 3000만부에 이른 것으로 보도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

그리고 이제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은 종이책과 전자책을 넘어 할리우드판 영화로 다시 거듭난다. 프랑스판이 제작되어 극장에 올려졌으나 제대로 된 평가를 얻지 못하자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유명 영화사인 소니 픽처스가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영국배우 대니얼 크레이그를 소설 속 주인공인 시사경제 월간지 ‘밀레니엄’의 편집장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역으로 캐스팅해 ‘밀레니엄’ 1부를 제작 중이라고 한다. 연출은 ‘세븐’ ‘조디악’ 등을 지휘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맡았다.

그런데 그의 유작소설 성공과 더불어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그의 소설이 어마어마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일궈낸 1500만달러에 달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더 늘어나게 될 인세 수익 유산을 둘러싼 소식이다. 라르손이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정식결혼을 미룬 채 32년간 사실혼 관계만을 유지했던 가브리엘손에게 한 푼의 유산도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그 모든 유산이 느닷없이 나타난 라르손의 아버지와 동생의 차지가 되고 있다. 스웨덴 법에 따르면 법적으로 결혼하여 혼인이 인정되는 배우자에게만 유산이 상속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가브리엘손과 라르손 아버지 측의 인세 유산을 둘러싼 법적 공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3부작과 관련된 주변 상황을 돌아보면 주한 스웨덴 대사의 자국문학 알리기 외교가 새삼 이목을 끈다. 라르손의 소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떠오르자 2008년 말 스웨덴 주한대사는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자체적으로 이 소설의 한국어판 출간에 즈음하여 축하 자리를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는 “인종주의 편견을 반대하며 사회 비판적 기자로 유명했다”고 저자를 소개하며 “겉으로는 스릴러지만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반감이 소설 속에 잘 담겨있다. 다문화 국가인 스웨덴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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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용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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