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받기도 쉽지 않은 퓰리처상을 세 번씩이나 받은 이가 있다. 더구나 소설, 희곡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성과를 일궈냈다. 손턴 와일더(Thornton Wilder·1897~1975)가 그 주인공이다. 1897년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난 그는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로마로 건너가 고고학과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프린스턴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는 그는 입센, 사르트르, 오베이 등 여러 대작가들의 희곡작품을 직접 번역하고 각색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에 비해 한국독자들에게 다소 낯설지만 소설가이자 극작가로서 20세기 문학사에서 그의 문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영향력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나이 서른을 막 넘긴 1928년 그는 두 번째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The Bridge of San Luis Rey)’(샘터)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1938년에는 희곡 ‘우리 읍내(Our Town)’(예니)로 또 한 번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또 그로부터 5년 후인 1943년에는 희곡 ‘벼랑 끝 삶(The Skin of Our Teeth)’(동인)으로 세 번째 퓰리처상을 거머쥐는 영광을 누리며 마침내 미국을 넘어 세계 문단에서 명실상부한 세기의 작가로 우뚝 선다.

1926년 여름부터 1927년 여름까지 약 1년에 걸쳐 쓰여진 이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1927년 11월 3일 초판 4500부가 인쇄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시장에서의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다. 출간된 지 두 달이 채 안 돼 1만7500부가 팔려나갔다. 그리고 1928년 5월 퓰리처상 수상작이 되자 곧바로 다음달에 이르러서는 15만8000부가 나갔다. 이 책 판매를 통해 와일더가 받은 인세 관련 서류 기록에 따르면 17판까지 찍어 모두 22만3170부가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단으로부터 날아드는 호평과 찬사도 줄을 이었다. “문장가들의 교과서” “가장 위대한 문학적 선물” “당대에 이 작품을 능가하는 작품은 없다” 등과 같은 찬사가 그들 중 일부이다. 불후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와일더의 문학에 대한 평가와 관심은 21세기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1998년 ‘모던 라이브러리’는 이 소설을 ‘20세기 최고의 영미소설’ 중 하나로 선정했고, 2005년 ‘타임’지는 ‘1923~2005년 최고의 영미소설 100권’에 이 소설을 포함시켰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와일더의 작품으로는 미국 뉴햄프셔주의 한 작은 지역을 무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그의 대표 희곡 ‘우리 읍내’와 ‘벼랑 끝 삶’ 정도였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서야 작고한 영문학자 고 장영희 교수가 그토록 번역하고 싶어 했다던 바로 그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것이다.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져 여행객 다섯 명이 다리 아래 깊은 골짜기로 추락했다. 리마와 쿠스코를 연결하는 큰길에 있는 이 다리는 매일 수백 명의 사람이 지나다녔다.”(29쪽)

이 소설을 시작하는 첫 대목이다. 이 소설은 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거기서 떨어져 죽은 다섯 사람의 행적을 역추적하면서 그들의 인생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우연한 기회에 그 사고현상을 목격하게 된 주니퍼 수사(修士)는 함께 희생된 그 다섯 명의 사람들이 왜 꼭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다 그런 화를 입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급기야는 그들이 살아온 인생을 되짚는다. 그러면서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탐색한다. 독자들은 바로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늘 충돌하는 모순을 지닌 우리 인간의 본성을 다시금 경험하면서 이 작품이 지닌 영원한 보편성에 무릎을 치게 된다.

이구용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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