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세상의 모든 계절’의 원제는 ‘Another Year’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만성 노이로제 및 히스테리 환자로 보이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이안 감독의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에서 한 푼, 한 푼 잔돈에 연연하는 구두쇠 엄마로 출연했던 이멜다 스턴톤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웃지 않는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그녀, 자넷은 수면제 처방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혈압과 호흡을 확인하고는 이것저것 주변사를 묻는다. 우리도 알고 있다시피, 불면증의 원인에는 신체적인 것보다 정서적인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의사의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짜증까지 내며 무조건 수면제만 요구한다.

의사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왜 잠이 안 오는 것 같나요? 혹시 특별한 걱정거리는 없나요? 돈 문제는요? 폐경이 시작되었나요? 자녀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여전히 시큰둥한 그녀는 도리어 의사에게 묻는다. “도대체 그게 불면증과 무슨 상관이죠? 전 하루 그냥 푹 자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니 수면제나 주시죠.” 영화를 보는 내내 결국 그녀가 약을 처방받았는지, 상담은 받았는지 아니면 잠을 푹 자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그녀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냥 그렇게 불면에 대해서 투덜거리곤 사라져 버린 셈이다.

어쩐지 그녀를 보면 우리네 평범한 엄마가 떠오른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다간 세상에 되는 일이 없다 여기셨는지 언젠가부터 크게 울지도 웃지도 않고 참기만 했던 엄마 말이다. 의사가 물었던 질문은 사실 의사가 아니라 남편이나 딸, 아들 그러니까 가족이 물어봐야 할 항목들이다. 엄마 무슨 걱정 있어? 여보, 당신 뭐 문제 있어?, 라고. 사실은 가족들이 묻고 관심을 가져줘야 할 일상사란 뜻이다. 만일 그녀의 식구들 중 누군가 이런 다정한 질문을 던졌더라면 그녀는 병원까지 와서 수면제를 요구하지 않아도 됐을지 모를 일이다.

그녀의 이 무덤덤한 태도에는 자신의 삶에 어떤 개선의 여지도 없다는 포기가 담겨 있다. 적극적으로 상담에 응하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삶이 변화하리라는 기대와 의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넷은 이 나이에 무슨 변화람, 하고 멀찌감치 내버려둔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어디서부터 고장난 줄도 모른 채 덜덜거리는 소음을 안고 달리는 자동차와 닮았다. 언젠가 길거리 한복판에 멈출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고칠 의향이 없다. 어쩌다 보니 웃는 법 자체를 잊어버린 채 늙어버린, 웃지 않는 불쌍한 공주라고나 할까?

고작 5분여에 지나지 않지만 그녀의 모습이 내내 뇌리에 남는 것은 ‘세상의 모든 계절’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넷’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자넷이 빠져나간 화면에는 톰과 제리 부부가 등장한다. 멋져 보일 것도 없이 평범한 외모의 그들은 이제 막 녹기 시작한 텃밭에 씨를 뿌리느라 한창이다.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묘목을 나르고 땅을 파고 잠시 휴식도 취한다.

별것 없는 인생 같지만 그들은 이 자체에 만족한다. 지리학자로 일하는 톰도 상담사로 일하는 아내 제리도 자신의 현재에 별 불만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곳에 상당히 독특해 보이는 제리의 동료 메리가 방문한다. 그녀는 그들의 표현대로 정말 독특하다(something else). 나이가 60에 가깝지만 펍에 가서는 40대 초반의 남자를 유혹하려 하고 이에 실패하자 이내 시무룩해진다. 30대처럼 잘 가꾼 몸매에 꽤 예쁘장한 할머니이니 아직은 젊은 여자 못지않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세상 남자들도 그녀를 그렇게 예쁘게 봐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늘 메리는 외롭고 슬프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뭔가 특이한 그녀를 언제나 따뜻하게 받아주는 곳은 톰과 제리뿐이다. 그녀는 남자친구도 없는 지루한 일상을 새로운 자동차로 바꿔보고자 한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 차가 몇 기통인지 연비는 어찌 되는지도 모른다. 다만 빨갛고 귀여운 자동차에 불과한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어딘가 자신을 사랑해 줄 젊은 남자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배 나오고, 머리가 하얗게 세고, 뒤뚱거리는 늙은 동년배와 어울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톰과 제리는 계절에 한 번씩 사람들을 초대해 텃밭에서 일군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나눠 먹는다. 아주 먼 곳에 사는 오랜 친구들이 오기도 하고 가족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왜 그런지 톰과 제리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장년층은 별로 없어 보인다. 혼자 도시에 사는 친구는 젊은이들이 많은 펍에 가 있을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한다. 시끄럽게 떠드는 녀석들에게 자신의 30년 단골집을 뺏겼다며 손에서 영 맥주병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때 톰이 말한다. 옛날엔 너도 그랬잖아. 노친네들이 우리 술집에 자주 와서 분위기 망친다고, 그리고 그 당시 가장 시끄러운 건 바로 너였어, 라고 말이다. 그렇다. 술집이 변한 게 아니라 다만 톰과 톰의 친구가 나이를 먹고 늙어버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은퇴하고 싶지도 않다. 은퇴를 한다 해서 집에서 따뜻하게 오후를 나눌 아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만 매일매일 습관처럼 회사에 출근해 하루를 보낼 뿐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 보여주는 노년기의 삶은 다양하다. 마이크 리 감독은 노년의 삶은 이래야 한다 혹은 저래야 한다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다양한 삶을 풍경사진처럼 전시할 뿐이다. 누군가는 늙는 것이 초조해 굳이 젊음을 가장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하루하루의 삶에 열심히 집중한다. 그런데 영화의 원제를 살펴보면 아마도 마이크 리 감독은 나이든 이후의 삶도 또 다른 계절의 하나가 아닐까라고 말하는 듯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가듯 그렇게 사람도 이 큰 지구라는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게 아닐까라고 말이다.

젊을 때야 자유롭고 방탕한 삶이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영원히 그 자유가 훈장처럼 반짝거릴 수만은 없다. 가을에 맛있는 토마토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봄, 여름의 바람과 햇빛에 그을린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이라는 게 늘 대가를 요구한다. 게다가 누구나 언제나 젊을 수만은 없다. 겨울이 오기 전엔 얼마나 올 겨울이 추울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아니 사람들은 곧잘 지난 겨울을 봄 기운과 함께 잊어버린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난생 처음 추위를 맞듯 몸을 웅크린다. 세상의 또 다른 계절은 그런 것 아닐까? 어제와 또 다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평범하지만 오래된 진리 말이다.

강유정

영화·문학 평론가, 2005년 조선·경향·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고려대 국어국문과 박사 졸업, 세계의문학 편집위원, 고려대에서 강의 중

강유정 영화·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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