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한 장면.
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한 장면.

김진영 감독의 ‘위험한 상견례’는 여러모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격세지감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지역감정을 웃음 코드로 삼았다는 데 있다. 지역감정이 코미디 소재라니, 한때는 상상도 못할 불경한 일이었다. 지역감정이란 농담으로 웃고 넘기기엔 너무 심각한 갈등이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결구도를 두고 코미디로 만들었다는 점은 한편 더 이상 지역감정이 그다지 중요한 갈등 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설마 그 사이 지역 감정이 사라졌다고? 중요한 것은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그 양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어쩌면 갈등의 고리들이 훨씬 더 다각도로 입체화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만 해도 지역 갈등이라는 문제가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큰 이분법으로 나뉘었던 데 비해 지금은 훨씬 더 세분화된 갈등들이 존재한다. 가령 신공항문제만 해도 그렇다. 최근 10여년 동안 발생했던 지역 간 갈등 문제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고향이 어디냐에 따른 충돌이라기보다는 명명백백한 이익을 두고 나뉘는 경우가 많다. 같은 경상도라고 해도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나뉘고, 다른 지역이라 해도 이익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수가 다반사다. 지역이 가장 큰 갈등의 원인이던 시절을 두고 낭만적인 로맨틱 코미디가 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전라도 총각 현준과 경상도 처녀 다홍은 펜팔로 서로를 알게 된다. 한 달에 한 번씩 서로 버스를 타고 상경해 음악다방에서 데이트를 나누다가 헤어지기를 몇 년 째, 헤어지는 게 아쉬워 드디어 결혼을 결심한다. 눈치챘겠지만 ‘위험한 상견례’는 이미 꽤 먼 과거가 된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30년 전이라는 과거 시제는 많은 부분의 디테일에 있어 관객의 관대함을 이끌어낸다. 혼사 장애라는 오래 묵은 장르적 관습에 복고풍 추억담이라는 또 다른 관습을 얹어 새로운 형태의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980년대에 의존한 복고풍 웃음은 영화 내내 발견된다. 태동기의 프로야구에 대한 열기나 고교야구의 인기도 그중 하나다. 무엇보다 아날로그식의 연애가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밤 10시에 전화할 테니 네가 받아라든가, 공중전화기에 붙어 서서 다리 저린 줄 모르고 전화했던 기억, 혹은 전화기 너머로 녹음한 음악을 들려주거나 시를 낭송해주던 아날로그식 연애 방법이 지금에 와 돌아보니 오히려 신선하고 풋풋해 보인다. 유명 DJ가 있던 리퀘스트 음악다방이나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역시 추억 속의 한 부분을 간지럽힌다.

아날로그 정서가 집약된 장면은 바로 막차를 놓쳐 어쩔 수 없는 척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시간일 테다. 사랑한다는 말을 식은땀 흘려가며 어렵게 고백한 두 사람은 손만 꼭 잡고 자자는 약속을 하고, 또 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전전긍긍하고, 손잡고 누워 천장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연인들에게는 어떤 훈훈함이 있다. 말하자면 최근 로맨틱 코미디에서 어렵지 않게 보는 정사 장면과는 전혀 다른 설렘이 자리잡고 있다. 막차를 놓치고 외박하는 게 엄청난 일탈이었던 과거시제의 추억들이 1980년대였지, 라는 식의 합의를 이끌어낸다. 그것이 꼭 순수의 징표일 수는 없지만 어쩐지 좀 더 순진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위험한 상견례’에서 관객을 웃겨주는 것은 말 그대로 지역색에 기반한 농담들이다. 가령 광주 사나이가 부산의 구멍가게에서 해태껌을 찾는 에피소드나 나이트클럽의 과열 경쟁 중에 당시 마이클 잭슨으로 군림했던 박남정의 실수담은 어딘가 그럴 듯한 웃음을 선사한다. 표준어에서 맛볼 수 없는 투박한 사투리의 질감도 웃음을 보탠다. 비속어의 경계 어디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묘한 매력이 바로 사투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언급했듯 조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등장부터 웃음을 기대하게 하는 김수미의 존재감은 말할 것도 없고 박철민과 김정난의 부담스러운 연기 역시 웃음을 주는 데 일조한다. 부산 여자 다홍의 집에서 근무하던 도우미 봉자의 반전이라든가 얼굴 없는 만화가로 활동하는 남자 주인공 현준의 캐릭터도 곳곳에서 웃음의 도화선이 되어준다.

물론 이야기의 흐름상으로 보자면 양가 아버지가 고교 시절부터 원수 사이였다거나 그로 인해 장인어른감은 눈에 장애를, 시아버지감은 다리에 장애를 입었다는 점은 억지스러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지역감정에서 웃음의 물꼬를 텄지만 그 사회적 갈등 요인을 개인사 가운데서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갈등의 고리를 변환하려는 과정에서 억지가 발생하고 지역감정이라는 보편적 갈등의 흔적은 특별한 상처와 반목을 가진 개인들의 감정적 차이로 축소된다. 물론 이 축소된 갈등 덕분에 화해 역시 쉬워지기도 한다. 두 사람의 화해로 지역감정이 해소되는 듯한 환상을 주니 말이다.

미국 영화 ‘미트 페어런츠(Meet Parents)’가 3편까지 만들어지고 ‘위험한 사돈’이라는 유사 작품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혼사는 코미디 영화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이 외에도 ‘신부의 아버지’나 ‘웨딩 크레셔’에 이르기까지 결혼에 관련된 갈등은 주로 웃음의 코드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영화와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아마도 대개 할리우드의 혼사 코미디는 예비 사윗감이 딸을 사이에 두고 장인과 경쟁을 벌이는 게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딸을 빼앗기는 심정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안타까움과 심술은 웃음의 기폭제가 되어 준다. 가족 중심적 미국 문화에서 결혼은 아버지 중심 가족에서 남편과 이루는 가족으로의 이동이다. 아버지 성에서 남편 성으로 바뀌는 순간이니 말이다.

반면 한국의 혼사 코미디를 보면 대부분 너무도 다른 양가의 충돌이 주된 소재를 차지한다. 이는 한국에서의 결혼이 곧 두 사람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양가의 결합이라는 특징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 한국에서는 연애는 둘이 하지만 결혼은 모두가 함께 하는 행사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한국형 혼사 코미디들을 보면 두 사람은 뒤로 물러나 있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친정아버지, 어머니 캐릭터가 훨씬 더 전면에 배치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감독을 맡은 김진영은 전작 ‘청담보살’에서도 보여주었듯이 한국형 웃음의 소재에 꽤나 기민한 코미디 영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순탄한 출발을 보이는 ‘위험한 상견례’ 역시 여러모로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바탕으로 한다. 아쉬움이 있다면 결혼의 모든 갈등이 지역 차이로 단순화된다는 데에 있다. 두 사람의 계급적·계층적 차이는 무시되고 지역차이만 강조되고 있으니 말이다. 초기 혼사 장애 로맨틱 코미디가 대개 계급적·계층적 차이를 사랑이라는 문제로 무마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둘만 잘되면 만사형통, 역시 잘되면 문제 없나 보다.

강유정

영화·문학 평론가, 2005년 조선·경향·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고려대 국어국문과 박사 졸업, 세계의문학 편집위원, 고려대에서 강의 중

강유정 영화·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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