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경기도 남양주 금곡 홍유릉에서는 고종황제의 고명딸 덕혜옹주 추모제향이 치러졌다. 대한제국 황실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모임단체인 ‘우리황실사랑회’가 주관하고 ‘의친왕숭모회’가 후원했다. 직계후손도 아니고, 후손 모임도 아닌, 그야말로 일반시민들의 순수한 관심과 사랑이 모여 치러지는 퍽 이례적인 행사다. 더구나 추모제향의 대상이 여염집이 아닌 금지옥엽 황실의 일원이어서 이채롭다.

2010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다. 그러고 보면 아직 많은 사람이 덕혜옹주, 혹은 대한황실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드라마 ‘궁’이나 ‘마이 프린세스’가 화제가 됐던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인다.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 궁금증은 ‘제국의 후예들’(황소자리)을 보면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 같다.

많다 할 순 없지만 그간 대한황실 관련 책을 몇 권 읽어봤다. 그리고 대한황실과 관련하여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매체에서 흥미롭게 다뤄지는 내용 또한 접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필자가 보기에도 분명 사실이 아니거나 의심 가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이것은 그 전달자가 특정 제보자의 말만 들었거나 일정 내용을 중간 검증과정 없이 그대로 내보낸 데서 빚어진 결과로 보인다.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일일이 오류를 범한 당사자에게 가서 정정을 요구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2006년 5월에 나온 정범준의 저서 ‘제국의 후예들’은 해당 분야의 저서들 중 나름 적잖은 신뢰감을 제공한다. 그것은 순전히 정범준의 발로 뛴 노력에 기인한다. 일부 특정인의 목소리만이 아닌 다양한 인물들의 육성을 균형있게 듣고 채록한 덕이다. 실제로 정범준은 ‘책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미 대한제국 황실에 관한 많은 책이 세상에 나와 있었고 신문 기사나 방송 프로그램, 연극이나 영화로 다뤄진 경우도 꽤 있었다. 그런데 사실과 다른 대목이 너무 많았다.” 그 원인으로는 일제에 대한 증오나 언론매체의 선정적 보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름대로 풀이한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대한제국 황족 평전’ 정도로 할 수 있겠다. 순종황제를 제외한 고종황제의 다른 두 아들인 영친왕 이은과 의친왕 이강, 그리고 고명딸 덕혜옹주. 그리고 영친왕의 아들 이구와 의친왕의 두 아들 이건과 이우에 대한 삶을 조명한다. 여기에다 영친왕비 이방자와 의친왕비 김덕수, 영친왕의 약혼녀였던 민갑완, 이구의 전 부인 줄리아 뮬록 등의 인물까지도 비중있게 다뤄진다. 그리고 황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황족임에는 분명한 의친왕의 또 다른 자녀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빠짐없이 조명했다. 특히 생존해 있는 여러 황손과 황실 관련단체 인사들과의 인터뷰와 여러 문헌기록에서 얻은 설득력 있는 자료의 인용은 책의 신뢰감을 높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금 이런 생각을 해봤다. 우리는 언제까지 대한제국 황실을 망국의 중심으로만 바라볼 것인가. 최근 혜문스님 등이 주축이 되어 도난당하거나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 찾기 운동이 한창 전개되고 있다. 당연히 찾을 수 있는, 혹은 찾아야 하는 우리의 보물과 문화재는 우리 스스로가 적극 나서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에필로그 마지막 장을 넘기며 한 가지 바람을 더 가져본다. 문화재 찾기와 더불어 우리가 오랜 세월 놓아버린 대한제국에 대한 자존과 대한황실에 대한 그간의 그릇된 인식이나 오해 또한 바로잡았으면 하는 바람, 그것이다.

이구용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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