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한 장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한 장면

습관처럼, 5월이 되면 기다려지는 영화들이 있다.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다. 올해엔 어떤 영화가 대기 중일까? 시작은 ‘캐리비안의 해적’이다. 2003년 첫선을 보인 이후 8년 동안 ‘캐리비안의 해적’은 독창적 트레이드 마크를 구축해왔다. 장기적 시리즈물로 생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해적 탐험물의 특수함에 있다. 지금껏 많은 어드벤처 무비가 있었지만 ‘인디아나 존스’라는 어마어마한 전례를 뛰어넘기가 힘들었다. ‘미이라’ 등의 영화가 조금 색다른,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어드벤처 무비의 새로운 흐름을 이었지만 아류작이라는 느낌을 지우긴 힘들었다. 그에 비해 ‘캐리비안의 해적’은 난데없는 해상 액션으로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질감의 ‘쾌감’과 ‘모험’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로 8년, 네 번째 시리즈물이 찾아왔다.

사실 3편의 마지막 장면에는 후속편에 대한 기대감이 생길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유는 하나다. 바로 터너 부부가 ‘캐리비안의 해적’호에서 하선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기 때문이다. 잭 스패로와 ‘블랙 펄’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얼굴이기는 하지만 세세한 모험이나 이야기, 긴장과 갈등은 바로 올랜도 블룸과 키이라 나이틀리가 맡았던 터너 커플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의 하선은 일종의 캐릭터 모델이었던 잭 스패로의 입지 변화를 예고하는 한편 어떤 점에서 시리즈의 종말에 대한 암시이기도 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캐리비안의 해적’은 다시 관객의 눈앞에 돌아왔다. 필연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선장이 바뀌었다. 3편까지 감독을 맡았던 고어 버빈스키가 하선하고 롭 마셜이 영화의 선장으로 승선했다. 영화 한 편을 항해에 비유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선장이 바뀐 셈이다. 선장은 바뀌었지만 배는 그대로이다. 직설적으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관객들에게 ‘캐리비안의 해적’은 잭 스패로, 즉 조니 뎁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여전히 잭 스패로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쉬운 점은 너무 잭 스패로 중심이라는 사실이다. 역설적이지만 잭 스패로는 주인공이지만 조금 방관자적 입장으로 물러나 있을 때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런데 이번 편에서는 말 그대로 이야기에서나 활약 면에서나 너무나 잭 스패로에게 기대고 있다.

연출의 변화는 여러 부분에서 드러난다. 우선 러브라인의 변화이다. 1, 2, 3편에서 터너 부부가 담당했던 격정적 사랑의 공간은 잭 스패로의 과거지사로 대체된다.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캐릭터가 바로 일등 항해사 안젤리카(페넬로페 크루즈 분)이다. 덕분에 한번도 러브라인의 주인공인 적이 없었던 잭 스패로는 과거 있는 남자, 애인을 둔 남자로 변신하게 된다. 안젤리카가, 잭 스패로가 과거에 상처를 주었던 바로 그 여자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잭 스패로 선장과 러브라인’이라는 설정이 어딘가 관객의 기대치를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객에게 잭 스패로는 유사 피터팬과 다름없다. 성인 남성이긴 하지만 그에게는 항해도 사랑도 심지어 목숨마저도 일종의 장난처럼 가볍게 다뤄진다. 가볍지만 진지한 그의 캐릭터는 인디아나 존스 이후 가장 개성적인 어드벤처 영화의 주인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열심히 하지 않지만 언제나 말끔히 처리하는 모순이 조니 뎁의 매력으로 한층 배가되었으니 말이다. 잭 스패로의 개성과 사랑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등장하는 새로운 커플이 바로 선교사와 인어이다. 그들은 인간과 초현실적 피조물의 만남이자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터너 부부의 빈자리를 메운다.

이전까지의 ‘캐리비안의 해적’이 해상 판타지와 볼거리의 매력에 호소했다면 이번 에피소드, 낯선 조류는 좀 더 전통적인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고어 버빈스키 영화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얼굴을 온통 휘감은 문어 이미지나 어패류로 뒤덮인 몸, 배의 일부로서 영생을 누리는 판타지적 신화의 세계였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고어 버빈스키 감독은 이러한 상상력을 독특한 시각 이미지로 재현해 주는 데 성공했다. 이제껏 본 적 없었던 해상 액션과 해상 판타지라는 미개척 영역에 ‘캐리비안의 해적’이 어떤 해답이 되어준 셈이다.

반면 새로운 이야기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오히려 고전적 신화인 세이렌이 이야기의 구심점을 차지한다. 선원들을 유혹한다는 전설 속 세이렌은 오디세우스 이후 오랜 기간 동안 해상 신화의 바탕이 되어 왔다. 롭 마셜 감독은 100명에 한 명꼴일 법한 미녀들을 대동해 우리가 기대하는 세이렌의 이미지를 충족시켜준다. 여기에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안데르센의 인어 이미지가 합쳐져 ‘캐리비안의 해적’에서는 독특한 질감의 ‘괴물’로서 인어가 재탄생한다.

할리우드의 높은 기술력이 선보이는 인어 등장 장면이나 버려진 배 안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상황극은 관객이 기대하는 신기하고 재밌는 체험을 일부 충족시켜준다. 아쉬운 것은 잭 스패로 선장이 배를 잃고 바다가 아닌 육지를 헤맬 때 어쩐지 매력이 반감된다는 사실이다. 수하를 거느리고 얼렁뚱땅 적들을 헤쳐 나갔던 임기응변의 달인이 어쩐지 육상에서는 보물 찾기에 필요한 나침반 이상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전편들에 비해 출연 빈도나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늘었지만 존재감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롭 마셜 감독의 장기가 십분 발휘되는 장면은 오히려 유사 뮤지컬 장면들이다. 가령 잭 스패로를 사칭하는 안젤리카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의 우아한 펜싱 장면이나 음악에 맞춰 상대를 유혹하려는 동작들에서의 움직임을 보면 오차없이 꽉 차 있는 동선들을 확인하게 된다. 롭 마셜을 거치자 배 위의 갑판이 이색적 무대로 탈바꿈한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가장 탐나는 부분은 새로운 판타지 영역을 개척해가는 할리우드의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영화의 중요한 줄거리가 되는 ‘젊음의 샘’은 뱃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토대로 재구성되었다. 바다와 해적에 얽힌 신화적 에피소드들은 영화의 밑거름이 되어 현대적 판타지로 재탄생한다. 후안 폰세 데 레온이나 검은 수염 역시 무시무시한 뒷이야기를 남긴 실존인물들이라고 한다. 어쩌면 어드벤처 무비야말로 가장 한국적으로 변환하기 어려운 블록버스터의 코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선 명탐정’으로 시작된 한국형 어드벤처 무비가 좀 더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다면, 언젠가 여름용 블록버스터 영화로 한국 영화가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이야기이니 말이다.

강유정

영화·문학 평론가, 2005년 조선·경향·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고려대 국어국문과 박사 졸업, 세계의문학 편집위원, 고려대에서 강의 중

강유정 영화·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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