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바렌보임의 베를린 슈타츠오퍼
460년 역사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떠받치는 젬퍼오퍼
켄트 나가노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드레스덴 엘베 강가에 자리잡은 170년 역사의 젬퍼오퍼. 바그너의 ‘탄호이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가 초연된 곳이다. ⓒphoto 김기철
드레스덴 엘베 강가에 자리잡은 170년 역사의 젬퍼오퍼. 바그너의 ‘탄호이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가 초연된 곳이다. ⓒphoto 김기철

독일행 루프트한자항공 일반석은 옹색했다. 하지만 독일을 대표하는 클래식 연주자와 공연단체들의 음반과 실황 DVD를 담은 개인용 비디오의 클래식 콘텐츠만큼은 풍성했다. 현역 최고 테너 중 하나로 꼽히는 요나스 카우프만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모차르트 오페라 ‘피델리오’, 최고의 베이스 르네 파페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공연한 바그너 아리아 공연,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한 리스트 탄신 200주년 기념공연 등 수십 종이나 됐다. 틸레만의 드레스덴 공연 실황을 클릭했다. 1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오페라하우스 젬퍼오퍼의 화려한 건물 외관과 함께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이 흘러나왔다. 마음은 벌써 다음날 찾을 드레스덴의 젬퍼오퍼로 날아갔다.

음악강국 독일을 대표하는 젬퍼오퍼

베를린 슈타츠오퍼,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와 함께 음악강국 독일을 대표하는 오페라극장 젬퍼오퍼를 1월 15일 찾았다. 드레스덴 구(舊)시가지를 에워싸고 흐르는 엘베강 옆에 자리 잡은 젬퍼오퍼는 건축가 고트프리드 젬퍼(Semper)의 설계로 1841년 문을 연 유서 깊은 오페라하우스다. 젬퍼오퍼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비롯,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장미의 기사’ 등 음악사에 기록된 숱한 걸작들을 초연했다. 1945년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으로 산산조각이 난 젬퍼오퍼는 1985년에야 원래 설계대로 다시 복원됐다. 후기 고전 양식에 르네상스 요소를 가미한 이 오페라하우스는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으로 보일 만큼 아름답다. 젬퍼오퍼를 등지고 앞에는 작센왕국의 공식 교회인 호프키르헤, 오른쪽엔 미술관·박물관으로 쓰이는 츠빙거 궁전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마침 이날 오전 11시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오케스트라 연주, 저녁 7시엔 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즐거운 미망인’이 올랐다. 46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바그너, 카를 뵘, 쿠르트 잔데를링,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주세페 시노폴리,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등 전설적 지휘자들이 거쳐갔다. 올해부터 독일 출신인 크리스티안 틸레만(Thielemann)이 상임지휘자로 이끌고 있다.

이날 오전 지휘봉을 잡은 이는 샤를 뒤투아가 오랫동안 조련한 미국 필라델피아 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야닉 네제 세귄(Seguin·37). 캐나다 출신의 이 패기만만한 지휘자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메시앙의 ‘잊혀진 희생’,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마음껏 요리했다. “50여년 전 처음 들었을 때 신천지가 열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 가야금 명인 황병기가 신년 초면 꼭 마음을 가다듬고 듣는다는 작품이 ‘봄의 제전’이다. 빈 초연 당시 낯선 불협화음 때문에 관객들이 소란을 피우면서 난장판이 됐다는 에피소드를 지닌 ‘봄의 제전’이지만 이미 고전이 된 지 오래다. 세귄이 지휘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연주는 든든하면서도 빛나는 음색들로 반짝거렸다.

오는 2월 21일 정명훈이 이끄는 콘서트헤보와 함께 내한 연주를 갖는 네덜란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Jansen·34)을 미리 만난 것도 수확이다. 170㎝가 넘는 늘씬한 몸매에 주황과 검은색이 섞인 드레스 차림의 얀센이 무대에 오르자 주변이 환해졌다. 세귄과 호흡을 맞춘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2번에, 청중들은 마룻바닥을 구르며 환호를 보냈다.

한국인 김우경 주역 맡기도

옛 서베를린 비스마르크 스트라세에 자리 잡은 쉴러극장. 리노베이션에 들어간 베를린 슈타츠오퍼가 2010년부터 상주홀로 쓰고 있다. ⓒphoto Thomas Bartilla
옛 서베를린 비스마르크 스트라세에 자리 잡은 쉴러극장. 리노베이션에 들어간 베를린 슈타츠오퍼가 2010년부터 상주홀로 쓰고 있다. ⓒphoto Thomas Bartilla

오케스트라 연주로 달아오른 흥분에서 채 벗어나기 전인 저녁 7시 젬퍼오퍼를 다시 찾았다. 열흘 전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한 티켓을 찾아 극장 안에 들어섰다. 1층 5열 19번. 11만원쯤 냈는데 가장 좋은 자리였다. ‘유쾌한 미망인’은 오페라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유럽의 가상 소국의 부유한 미망인 한나와 옛 연인 다닐로비치 백작의 결혼을 둘러싼 소동을 그린다. 인근 라이프치히 출신 소프라노 바바라 제나토(Senator)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늘씬한 몸매와 함께 미망인 한나 역에 한껏 어울렸다. 미국의 미성(美聲) 바리톤 크리스토퍼 마지에라(Magiera)는 여자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한량 다닐로비치 백작을 그럴 듯하게 연기했다. 이탈리아 출신 에치오 토폴루티(Toffolutti)의 무대 디자인은 보는 즐거움까지 더했다.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여자 손 모양의 소파가 무대에 등장했고 부유한 미망인 한나가 헬리콥터를 타고 파티장에 도착하는 장면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헬기 장면을 떠올릴 만큼 스케일이 컸다. 파티에 모인 사람들이 그 나라 지도자의 사진을 향해 인사할 때마다 사진 속 지도자의 눈이 반짝이게 하는 장치는 아이디어가 빛났다.

‘유쾌한 미망인’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것은 연륜 있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연주였다. 오페라를 볼 때마다 주역가수들의 노래에 우선 눈길이 가기 마련인데 젬퍼오퍼에선 오케스트라가 주역가수 못지않은 중요한 출연진이었다.

젬퍼오퍼는 2011~2012년 시즌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헨델의 ‘알치나’, 알반 베르크의 ‘룰루’ 등 8편의 신작과 ‘라 트라비아타’ ‘토스카’ ‘라보엠’ 같은 기존 레퍼토리 20편을 포함, 28편을 올리고 있다. 작년 3월 국립오페라단의 ‘파우스트’에 출연, 세계 정상급 테너의 기량을 국내 팬들에게 마음껏 선보인 김우경(35)이 ‘가면무도회’ 주역 리카르도를 맡아 반가웠다.

베를린의 대표 슈타츠오퍼

뮌헨 구시가지 막스 요제프 광장에 있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1818년 처음 건립됐고, 2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전후 재건했다. ⓒphoto Bayerische Staatsoper/Wilfried Hosl
뮌헨 구시가지 막스 요제프 광장에 있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1818년 처음 건립됐고, 2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전후 재건했다. ⓒphoto Bayerische Staatsoper/Wilfried Hosl

드레스덴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베를린은 런던과 함께 오케스트라 경쟁이 치열한 도시다.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을 비롯, 마렉 야노프스키가 이끄는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이반 피셔가 합류한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다니엘 바렌보임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쟁쟁한 오케스트라가 매일같이 경쟁을 벌인다. 오페라극장도 베를린 슈타츠오퍼, 도이치오퍼, 코미셰오퍼 등이 수준급의 작품을 올리고 있다. 세계적 명성의 오케스트라 연주회나 오페라 티켓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클래식 매니아의 천국이기도 하다.

오페라극장 가운데 단연 첫 순위로 꼽히는 베를린 슈타츠오퍼는 2010년 옛 동베를린 운터 덴 린덴 거리에 있는 오페라하우스가 리노베이션에 들어가면서 옛 서베를린을 가로지르는 비스마르크 스트라세의 쉴러극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1월 중순 초연에 들어간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와 헨델의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를 골랐다. 1월 17일 본 ‘지옥의 오르페우스’는 오페레타라기보다는 연극처럼 대사와 연기 비중이 높은 작품이었다. 무대 뒤편에서 실내악단 정도의 소규모 앙상블이 연주했는데, 음악이 빈약해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다.

베를린 슈타츠오퍼 신작 ‘지옥의 오르페우스’ ⓒphoto (c) Matthias Baus
베를린 슈타츠오퍼 신작 ‘지옥의 오르페우스’ ⓒphoto (c) Matthias Baus

다음날 본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는 4명의 주역가수들만 노래하는 오라토리오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같은 연출과 무대가 돋보였다. 시대악기로 이뤄진 오케스트라 지휘는 고(古)음악 해석에 뛰어난 마르크 민코프스키가 맡았다. 민코프스키는 30명 남짓한 오케스트라가 내는 소리로 믿기지 않을 만큼, 풍부한 음색을 이끌어내며 전날의 실망을 달래줬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는 젊은 여성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뇌하는 형이상학적 내용이다.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미모를 바라보며 언젠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유한한 미(美)를 안타까워하는 벨레자(미녀)에게, 쾌락을 위해 몸을 던지라고 부추기는 피아체레(쾌락), 그리고 이에 맞서 의미있는 삶과 신에 대한 귀의(歸依)를 설득하는 템포(시간), 디신간노(깨달음)의 논쟁이 이어진다. 20대 초반의 헨델이 1707년 작곡한 첫 오라토리오인데, 고급 레스토랑처럼 꾸민 원 세트 무대는 3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극히 현대적이다. 손님, 종업원, 바텐더 등 30여명은 노래나 대사 없이 간간이 연기만 할 뿐이고, 주역가수 네 사람만 노래를 주고받는데도 2시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넘친다. 벨레자가 템포와 디신간노의 설득에 따라 수녀로 살기를 서원함으로써 피아체레가 논쟁에서 패배하지만 청중들에게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것은 피아체레다.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대중에 친숙한 아리아 ‘라샤, 라 스피나(Lascia la spina)’를 부르기 때문이다. 베를린 슈타츠 오퍼는 이번 시즌 바렌보임이 지휘봉을 잡은 바그너의 ‘발퀴레’ ‘라인의 황금’ 등 37편을 올린다.

뮌헨의 자존심,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베를린 슈타츠오퍼 신작 ‘지옥의 오르페우스’ ⓒphoto (c) Matthias Baus
베를린 슈타츠오퍼 신작 ‘지옥의 오르페우스’ ⓒphoto (c) Matthias Baus

1월 19일 아침 10시5분 베를린 쇤펠트공항발, 뮌헨행 저가 항공 저먼윙스에 올랐을 때만 해도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날 저녁 마에스트로 하이팅크와 포르투갈 피아니스트 마리아 피레스가 협연하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티켓은 어렵사리 구했지만 그날 저녁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공연하는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티켓을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를린과 드레스덴과 달리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티켓은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2주 전부터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홈페이지를 들락거렸지만 매진이었다. 뮌헨공항에 내려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 슈타츠오퍼 티켓 부스로 달려갔다. 직원은 “두 달 전에 이미 매진됐다”면서 “공연 1시간 전에 극장 앞에 가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이대로 허탕 쳐야 하나. 오페라 하나 보겠다고 일부러 뮌헨까지 날아왔는데….” 혹시 몰라 극장 백스테이지 투어를 신청했다. 7년간의 공사 끝에 1818년 들어섰다는 오페라하우스는 화려했다. 개관 5년 만에 공연 도중 불이 나 다 타버리고 다시 재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1943년 2차대전 당시 연합군 폭격으로 전소됐다. 종전 후 재정 부족으로 옛 전통 양식의 화려한 극장 대신 현대식 극장을 건립하려고 했으나 뮌헨 시민들이 옛 오페라하우스 그대로 복원할 것을 요청하면서 건립에 필요한 재원 모금운동까지 벌였다. 정부는 마침내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1963년 11월 21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를 재개관했다. 오페라극장에 대한 뮌헨 시민들의 애정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로열박스, 무대, 주역가수 대기실부터 오케스트라 피트까지 극장 구석구석을 둘러본 백스테이지 투어는 오페라 제작과정을 이해하는 데 유용했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돈 카를로’에서 열연하는 안야 하르테로스와 요나스 카우프만(오른쪽). ⓒphoto Bayerische Staatsoper/Wilfried Hosl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돈 카를로’에서 열연하는 안야 하르테로스와 요나스 카우프만(오른쪽). ⓒphoto Bayerische Staatsoper/Wilfried Hosl

잠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숨을 돌린 뒤 오페라극장이 있는 막스 요제프 광장을 찾았다. 오후 6시 공연 시간보다 1시간30분쯤 여유 있게 나섰다. 극장 앞에는 벌써 ‘Suche Karte(티켓 구함)’이라고 쓴 쪽지를 손에 든 ‘경쟁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나도 얼른 스마트폰에 영어와 독일어로 ‘티켓 구함’이라고 써서 들었다. 한두 명씩 티켓을 들고 온 사람들이 나타날 때마다 대여섯 명이 둘러쌌다. 오후 5시가 되니 당일 티켓 판매소 앞에 다시 줄이 늘어섰고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직원은 “공연 시작 30분 전에 남는 티켓을 팔기 시작할 텐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속이 타기 시작했다. ‘내 앞으로 20명쯤은 있는 것 같은데, 차례가 올 수 있을까….’ 이런 예감은 대개 들어맞는다. 20명쯤 표를 팔았던 직원이 공연 시작 5분 전에 “이젠 표가 없다”고 손을 들어버렸다.

4시간20분의 감동

낙담한 채 매표소를 빠져나오는데 마침 표를 든 사람 주위로 몇 사람이 수군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90유로까지 주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100유로 낼 생각이 있냐”고 묻길래 무조건 사겠다고 하고 100유로 지폐를 건넸다. “표 잘 구했다”는 구경꾼들의 격려에 답할 새도 없이 부리나케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4시간20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티켓을 구한 만큼 더 그랬을 것이다. 베이스 르네 파페(48)와 테너 카우프만(43)이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타를 놓고 갈등하는 스페인왕 필리포 2세와 아들 카를로로 나섰고, 엘리자베타 역 소프라노 안야 하르테로스(40)까지, 독일 드림팀이 나선 최고의 ‘돈 카를로’였다. 카우프만의 풍부한 성량은 200년 가까운 역사의 극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카를로와 친구 로드리고의 이중창이자 몇 차례 반복되는 메인 주제이기도 한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에서 호흡이 어긋난 게 옥에 티였지만 주역 세 사람의 아리아와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photo (c) Hermann und Cl
헨델의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photo (c) Hermann und Cl

르네 파페는 휴식 후 이어진 4막에서 자신을 향해 칼을 빼든 아들 카를로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아버지의 고뇌를 절절하게 풀어냈다. 안야 하르테로스는 두 남자 사이에 끼어 갈등하는 엘리자베타 역을 드라마틱한 목소리에 담았다. 늘씬한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인 하르테로스는 안나 네트렙코만큼 풍부한 성량을 지녔으면서도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졌다.

최고의 배역들이 출연한 공연인데도 뮌헨 관객들의 박수가 박하다 싶었는데, 커튼콜은 야단법석이었다. 마룻바닥을 발로 구르고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의 열기 때문에 주역가수들이 10번 넘게 무대에 불려나왔다. 대부분의 관객이 자리를 뜬 후에도 무대에 나와 끝까지 관객에게 머리를 숙이는 정상급 가수들의 매너도 대단해 보였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 무렵 극장을 빠져나왔다. 최고의 오페라를 본 뒤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엔 맥박이 너무 가파르게 뛰었다. 건너편 막스 요제프 광장에 면한 레스토랑에서 송아지고기로 만든 구운 소시지와 뮌헨 특산 밀맥주 바이첸비어를 마시며 흥분을 달랬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레스토랑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를 들이켜며 관극평을 쏟아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뮌헨을 떠나는 날 아침, 지하철(S-bahn) 8호선을 타고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함박눈이 내렸다. 온통 눈세상인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음악을 듣고 싶은 충동에 이어폰을 꺼내려다 그만뒀다. MP3로 음악을 들으면 고통과 불안에 몸을 떨던 요나스 카우프만과 르네 파페의 얼굴이 기억 속에서 흐릿해질 것 같아서였다.

오페라 티켓 구하기

2달 전 대부분 매진
운 좋으면 당일 현장 구입도

독일 오페라 티켓은 각 극장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구입할 수 있다. 좌석 배치도를 보고 원하는 자리를 고른 뒤,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홈페이지에서 티켓을 인쇄해 가거나 현지 티켓박스에서 표를 픽업하면 된다. 경험상으론,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티켓이 가장 구하기 힘들다. 시즌 시작 전에 정기 회원들이 대부분의 표를 예약하고 남은 표만 웹사이트에서 팔기 때문이다. 웬만한 공연은 2달 전에 매진되고, 스탠딩 티켓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공연 당일 현장에서 표를 구하는 길이 있으니,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길!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는 매년 시즌 동안 올린 레퍼토리를 한 달에 몰아서 공연하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6월 29일부터 7월 31일까지 열린다. 2006년부터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전막 공연, 안젤라 게오르규가 미미로 나오는 푸치니 ‘라 보엠’ 등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대표작들이 매일같이 공연된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티켓은 이달부터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받고 있으니, 이번 여름 독일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서둘러야 한다.

드레스덴 젬퍼오퍼 www.semperoper.de

베를린 슈타츠오퍼 www.staatsoper-berlin.de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www.bayerische.staatsope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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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조선일보 오피니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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