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합원 그림
사합원 그림

중국의 전통적인 집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사합원(四合院)입니다. 베이징에 가면 시 중심의 스차하이(什刹海)에서 베이징 특유의 골목길 후퉁(胡同)을 유람하는 자전거를 타볼 만한데 이 자전거를 타면 사합원 한 군데는 꼭 들어가 보게 됩니다. 사합원은 베이징을 비롯한 화베이 지방 전통 가옥의 대표적인 배치 방식인 데다가 베이징이 최근 1000년 가까이 중국의 수도였던 만큼 중국 민가기행을 베이징 사합원에서 시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합원은 네(四) 채의 건물이 모여서(合) 가운데 마당(院)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집으로, 한마디로 한글 ‘ㅁ’ 자 형태입니다. ㅁ자 형태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산시성(陝西省) 봉추현에서 발견된 건축 유구는 이러한 배치 방식이 3000년 전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자에도 중국 집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궁(宮) 자는 진시황(기원전 259~210) 이전에는 일반적인 집을 의미했는데 갑골문으로는 <그림3>과 같습니다.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네 채의 건물이 배치된 것은 사합원의 기본형과 같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사합원을 보면 <그림1>의 단진 사합원과 같습니다. 사합원 전체로 보면 북쪽에 앉아 남쪽을 향합니다. 중국어로는 좌북조남(坐北朝南)라고 하지요. 겨울 추위가 심하기 때문에 태양을 향해 남으로 문을 내는 구조입니다.

위계질서 따라 방 위치 달라

사합원의 가운데 마당
사합원의 가운데 마당

집의 평면은 직사각형, 곧 장방형(長方形)입니다. 반듯하게 각이 잡히고 그 안에 위계질서가 명료한 느낌을 주지요. 집에서의 위계질서란 어른이 어느 방에, 아이들은 어느 자리에, 하인들은 어디에 머무는지 등등이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단진 사합원에서는 정방과 정원은 집의 중심이고, 동서 이방에는 주인장 내외가, 동서 상방에는 주인장의 첩이나 후손들이, 도좌방에는 하인들이 사는 법이지요.

아울러 장방형의 대지를 두고 천원지방(天圓地方)과 같은 고대 중국인의 우주공간 관념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천원지방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의미로 고대 중국인이 우주와 공간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입니다. 천문학과 지리학이 발달하기 이전, 눈으로 보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그에 비교해 네모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중국인만의 관념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갖는 보편적 인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합원의 평면도를 보면 동서로 대칭이 되는 남북 방향의 중심선을 그을 수 있는데 이것을 중축선(中軸線)이라 합니다. 중축선은 개별 가옥에서도 적용되고 궁궐은 물론 도시 전체 공간 배치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베이징은 도시 자체가 중축선을 기준으로 해서 설계된 계획도시로서 자금성의 중축선이 바로 베이징의 중축선과 일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개개의 사합원은 표준화된 모듈과 같아 동서남북으로 배열하기만 하면 골목과 마을이 쉽게 만들어지고 이것이 몇 번 반복되면 큰길이 되고 도시가 됩니다. 베이징이 바로 그런 도시라서 개개의 집이든 골목이든 대로든 전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딱딱 맞아떨어지면서 바둑판과 같은 구조를 갖습니다.

사합원의 확장<그림1></div>
사합원의 확장<그림1>

이런 구조는 베이징 지도인 <그림2>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지도는 청나라 건륭제(재위 1735~1795) 시절의 ‘건륭경성전도’라는 지도의 일부로 자금성의 북쪽에 있는 고루(鼓樓)와 스차하이(什刹海) 부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왼쪽 아래의 호수는 첸하이(前海)이고 왼쪽 중간에 끝이 조금만 보이는 호수는 허우하이(后海), 두 개의 호수를 나누면서 건너는 다리는 인딩차오(銀錠橋)입니다. 베이징을 찾아간 관광객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가봤을 곳이지요. 이 지도에서 보듯이 크고 작은 사합원들이 동서남북 방향에 맞춰 빼곡하게 늘어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합원 내부도 가지런하고 골목이나 대로 역시 동서남북으로 반듯하게 이어집니다.

박지원 열하일기에 ‘정정방방’ 기록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1737~1805)도 베이징에 관한 소감을 ‘정정방방(正正方方)’이란 말로 아주 간결하게 표현했지요. 중국의 남방은 베이징과는 크게 다릅니다. 각이 잡힌 것이 아니라 소박하면서 자유분방한 느낌이지요. 남방과 비교하면 북방의 사합원은 자세를 곧고 바르게 하는 베이징의 관방(官方)적 특성으로 느껴집니다.

사합원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북쪽에 앉은 정방(正房)은 중심이 되는 지위를 갖습니다. 정방 좌우의 작은 방은 귀가 붙어있는 모양에 빗대어 귀방 또는 이방(耳房)이라 하여 동이방, 서이방이라고 부릅니다. 동서 방향의 두 채는 곁채 또는 곁간으로 상방(廂房)이라고 합니다. 남쪽에는 정방과 반대 방향으로 앉았다 하여 도좌방(倒坐房)이라고 하지요.

대문(大門)은 남쪽으로 내지만 동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풍수지리에서 길상의 방향에 해당합니다. 신분이 낮으면 문을 동쪽으로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문에는 도좌방의 깊이만큼 걸어 들어가는 문도(門道)가 생기게 됩니다. 이 대문 외에 다른 출입구는 없습니다.

이 문도를 들어서면서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되는 동상방의 벽면은 영벽(影壁) 또는 조벽(照壁)이라고 합니다. 귀신이 대문을 들어서면 영벽에 비친 자기 그림자(影)를 보고 스스로 놀라서 돌아나가게 한다거나, 귀신은 직진밖에 못하기 때문에 영벽에 막혀 들어오지 못한다는, 민간 속설이 듬뿍 담겨 있는 구조입니다. 실제 기능은 문 밖에서 집안을 직접 들여다보는 것을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영벽은 동상방의 측면이 자연스레 영벽이 되기도 하지만 별도의 벽을 세워 의장으로서 멋을 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민가에서 내외벽이라고 불리는 것과 유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방은 마당으로 통한다

후퉁
후퉁

가운데 마당은 집의 중심이 됩니다. 모든 방들과 직접 면하고 있고 꽃과 나무를 심거나 어항을 놓기도 합니다. 가운데 마당은 정원(庭院), 원락(院落) 또는 원자(院子)라고도 하는데 院은 집이란 뜻 외에 마당, 뜰, 정원을 의미하지요.

방마다 용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정방(正房)은 주인이 손님을 맞는 곳이고, 정방 좌우의 이방은 주인 부부의 침실입니다. 서이방은 남자가 사용하는 서재 겸 침실이지요. 동이방은 여자가 사용하는데 차를 끓이는 차로(茶爐)가 놓이기도 합니다. 서상방(西廂房)은 주로 자녀들이 사는 방으로 아들 부부나 딸들이 거처하는데 때로 주인 남자의 첩이 기거하기도 합니다. 동쪽에 있는 상방은 주방과 식당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도좌방(倒座房)은 일반적으로 하인의 방과 창고로 사용하고, 가족 구성에 따라서는 아들이 문간방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쪽 모서리에는 변소(便所)가 배치됩니다.

정방과 동상방, 서상방의 창문은 전부 마당을 향해 안으로만 나 있습니다. 가운데 마당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각 방으로 잘 들어가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집밖으로는 창문을 내지 않는데 겨울의 매서운 북서풍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이징은 건조한 지역이라 다습한 지역에 비해 통풍의 필요성도 크지 않았고 잦은 전란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능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구조로 인해 ‘중국인은 밖으로는 폐쇄적이고 자기들끼리만 열려 있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사합원의 폐쇄적 구조는 중국인의 기질 때문이 아니라 화베이 지방의 기후조건으로 인한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습기가 많고 더위가 심한 일본이나 중국 남방의 집들은 통풍이 잘되도록 개방적 구조로 돼 있습니다. 습기를 쉽게 배출하기 위한 것이지요.

정방과 동서상방과는 달리 남쪽의 도좌방은 집의 바깥 방향으로 창을 내는데 이것도 남쪽의 태양광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배려지요. 집의 구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역시 기후입니다.

동서남북 확장의 건축

베이징 고지도<그림2>
베이징 고지도<그림2>

사합원은 주로 흙으로 구운 벽돌, 즉 전(塼)으로 짓습니다. 물론 시골로 가면 말린 흙벽돌로 지은 것도 있습니다. 이 벽에는 칠을 하기도 하는데, 백성이 사는 사합원은 청회색을 칠하게 됩니다. 지금도 베이징에서 오래된 골목 후퉁(胡同)을 보수할 때는 골목 양측의 담장에 이런 색을 칠하곤 합니다.

사합원은 자기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크게 만들 수 있습니다. 확장의 첫 단계는 수화문(垂花門)을 설치하는 것이지요.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문과 내원 사이에 수화문을 설치해서 전원(前院)을 두고 외부 시선으로부터 가운데 마당을 완전히 차단합니다. 내원까지는 두 개의 문을 들어서야 하기 때문에 이진(二進) 사합원이라 하지요. 수화문은 장식성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사합원이라면 신분은 이미 어느 정도 높은 중간층입니다.

그 다음, 자손이 늘어나거나 하인들을 새로 들이는 등 사합원의 식구가 늘어나면 사합원의 방도 더 많이 필요해집니다.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방 뒤에 후원(後院)을 설치하고 동서 방향으로 길게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눠지는 건물 한 채를 추가하는데 이것을 후조방(後照房)이라고 합니다. 후원까지는 문을 세 번 통과하기 때문에 삼진(三進) 사합원이라고 합니다. 후조방은 대개 주인 부부의 딸들을 비롯한 여성들이 거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혼 여성들은 이 후원과 내원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삽니다. 용변조차 야호(夜壺)라고 하는 요강을 사용하고 하인이 변소에 가져다 버리게 됩니다. 여성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가부장적 사회제도가 방의 배분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합원을 확장할 수 있는데 집주인의 신분이나 재력에 따라 그 이상도 가능하고 칠진까지도 있습니다. 베이징 스차하이 근처에 일반인에게도 개방된 공왕부(恭王府)가 그런 일례입니다.

사합원은 남북뿐만 아니라 동서 방향으로도 확장합니다. 남에서 북으로 들어가는 것을 진(進)이라고 하고 동서로 이동하는 것은 과(跨)라고 합니다. <그림1>에서 보는 것과 같이 동상방의 동쪽에 과원(跨院)을 세우기도 합니다. 과원은 분가한 자녀 부부나 하인들이 살기도 하고 주방이 들어서기도 합니다.

그럼 사합원이 최대로 커지면 어떤 것이 될까요? 자금성이라 할 수 있지요. 중축선도 선명하고, 남향이고, 거대한 사합원 안에 작은 사합원들이 반복적으로 배치되고, 위계질서가 정연한 구조지요.

한옥과 사합원은 좌식과 입식의 차이

갑골문 궁<그림3>
갑골문 궁<그림3>

사합원은 우리의 한옥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사합원은 하부의 기단(基壇)이 한옥에 비해 얕습니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무덥고 겨울에 추운 탓에 남방식 마루와 북방식 아궁이가 함께 설치된 게 큰 특색입니다. 그래서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차단하고 방 아래 구들을 설치하기 위해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베이징의 여름은 뜨겁기는 해도 습기가 적기 때문에 굳이 기단을 높이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옥과 사합원의 차이는 입식 생활과 좌식 문화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북방 유목 문화에서 발달한 입식 문화는 거란의 요나라에 의해 중원에 전파되었고, 지금은 입식 문화가 대부분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까지는 입식 생활이었지만 조선시대에 좌식 문화로 바뀌어 가면서 한옥 역시 좌식문화에 맞춰 변해왔지요. 그래서 한옥의 방바닥은 사합원의 바닥보다 높지만 방바닥에서 천장의 높이는 사합원이 더 높습니다.

사합원에선 도좌방에서만 밖으로 창을 내지만, 유사한 위치에 있는 한옥의 사랑방은 길을 향해 모든 것을 다 열어젖힌 것처럼 개방적입니다. 대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길로 나설 수도 있고 지나가던 사람이 그저 사랑방의 툇마루에 걸터앉기만 해도 주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구조지요. 사합원에 비해 한옥이 좀더 개방적입니다.

사합원은 남자 주인이 마당 안쪽의 정방과 서이방을 사용하지만, 한옥에서는 안방을 주인 여자에게 내주고 남자 주인은 사랑방에 기거하는 것도 크게 다른 문화입니다. 가부장적이란 것은 비슷하지만 가정 안에서 여자의 실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말에서 안주인, 바깥주인이라고 하는데, 이를 한옥의 구조에 적용해도 재미있습니다. 안방과 그에 딸린 부엌, 안마당과 그에 연접한 창고는 안주인의 소관이고, 사랑방에서 바깥을 향해 대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바깥주인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합원은 각 방의 바깥 벽이 외부와의 경계가 되는 담장을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옥에서는 각 채는 그대로 두고 그 바깥에 따로 담장을 쌓는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물론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한옥이든 사합원이든 가운데 마당을 두고 있는 것은 같습니다. 마당은 가족이 모이는 공간이자 가사를 비롯한 휴식과 놀이, 혼인·장례 등 여러 가지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이지요. 사합원을 원락식(院落式) 주택이라고도 하는데 원락이 곧 사합원의 가운데 마당 또는 정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원을 중심으로 합일하고 정원이 곧 하늘로 통한다는 관념도 있습니다.

이제 사합원의 내부 구조를 살펴봤으니 다음 회에서는 베이징으로 들어가서 실제 주민들이 사는 사합원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윤태옥

1960년생. 성균관대 사회학과 졸업. 방송위원회 비서실장, m.net 편성국장, 팍스넷 부사장, 팍스인슈 대표 역임. 현 중국 인문 다큐멘터리 전문제작사 와이더스케이프 대표. 다큐멘터리 ‘인문기행 중국’ ‘삼국지 기행’ ‘북방 대기행’ ‘동티벳 다큐’ 기획, 제작. 주간조선에 ‘중국 음식기행’ 연재. 중국 여행기인 ‘왕초일기’ 블로그에 연재. 2006년 이후 총 70여회 중국 여행.

윤태옥 다큐멘터리 제작자 / 한동수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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