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파는 사람 - 열다섯 번째 인물

셀러(seller) 문훈 문훈발전소 소장
셀러유형 용감한 건축가(Brave Architect)
대표상품 롤리팝하우스, 상상사진관, 펜션 락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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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건축가의 셀링 포인트
1) 하기 싫은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2) 새로운 아이디어는 겉핥기만 해도 충분히 나온다.
3) 금기시했던 생각의 모든 자물쇠를 풀어라.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이 남자의 첫인상, 대략난감이다.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에 빨간색 점퍼. 아침에 머리는 빗었는지 의심 가는 머리 스타일. 철가방만 들면 딱 중국집 배달아저씨다. 팍팍 튀는 빨간 점퍼는 그가 셀프튜닝(?)한 거다. 중저가 브랜드의 옷에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조각들을 붙인 거란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도 오묘하긴 마찬가지다. 갤러리처럼 양쪽 벽에는 그의 작품들이 걸려 있는데, 정중앙에는 뜬금없는 일본식 로바다야키 같은 부스가 있다. 이번에도 빨간색. 여기가 그의 작업실이자 생각의 아지트다. 그나마 이번 사무실은 양반이다. 이전 논현동 사무실은 문 앞에 빨간 망사천을 두르고 실내를 전부 빨갛게 칠했다. 대놓고 ‘점집’ 콘셉트로 꾸민 것이다.

“소장님이 건축가들 중에서 가장 특이한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요?”

“특이하다면… 평소에 아무 생각이 없는 거겠죠.”

문훈(44) 소장은 악동처럼 웃었다. 건축계에서 이단아를 넘어 ‘삼단아’로 불린다는 그와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마치 그의 새빨간 점퍼처럼.

지난 9월 20일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기발한 집들(In South Korea, Houses With a Sense of Whimsy)’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문훈 소장이 디자인한 건물들을 한데 모아 소개한 것이다. 강원도 정선에 있는 ‘락있수다’라는 펜션은 건물에 황소뿔이 달려 있다. 심지어 건물 뒤에는 해먹으로 쓸 수 있는 긴 ‘꼬리’까지 달렸다. 일명 ‘롤리팝하우스’라 불리는 경기도 기흥의 주택은 집 모양이 막대사탕을 닮았다. 이뿐인가. ‘S-마할’이라는 양평의 주택에는 외벽에 빨간 망사를 달아 바람이 불 때마다 펄럭인다.

문훈. 그는 현재 한국 건축계에서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만의 독보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누군가는 유치찬란한 판타지의 ‘대마왕’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에너지가 넘치는 상상력의 ‘끝판왕’이라고도 부른다. 이상하거나 독특하거나 어쨌든 왕은 왕이다. 게다가 요새 젊은 건축가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핫(hot)’한 인물이라니 번지수는 제대로 찾은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대학 포기하고 잠만 자던 문제아

“하고 싶은 일만 하기 위해 일부러 회사 안 키웠다”

그의 사무실에는 직원들 서너 명이 전부다. ‘문훈’이라는 이름값에 비하면 조촐한 살림살이다. 포트폴리오도 그렇다. 지금까지 각종 주택과 학교 리모델링 등은 진행했지만 대형 프로젝트는 아직 없다. 여기에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지금도 주변 선후배들과 함께 100만평짜리 대형 프로젝트를 따낼 수도 있지만 안 한다. 건축으로 ‘즐기고 놀기’ 위해서다.

일을 많이 벌이면 직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건축주의 비위도 맞춰줘야 하고 원하면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집도 지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들보다 좀 더디 가도, 조금 가난해도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그의 회사인 문훈발전소는 건물 면적과 상관없이 무조건 설계비용으로 3000만원을 받는다. 마치 택시요금처럼 마음에 들면 하고, 마음에 안 들면 내리면 그만이다. 이런 똥배짱 덕분에 그만큼이나 크리에이티브한 건축주들을 만나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하는 것. 사실 그건 엄청난 용기다. 군더더기를 빼고 확실한 나다움을 유지하는 일은 보통 소신과 배짱이 필요한 게 아니다. 문훈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참으로 용감무쌍한 인간이다.

그의 용감함이 전면에 드러난 것은 고등학교 무렵부터였다. 2학년 때부터 공부에서 손을 놨다. 하루 종일 잠만 자거나 교과서에 만화를 그렸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아버지를 따라 호주에서 3년간 학교를 다녔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렸다. 정규교육을 한 번도 받지는 않았지만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중학교 2학년 때 그의 재능을 발견한 미술 교사의 도움으로 첫 개인전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는 국어, 국사, 한자에 젬병인 낙제생 취급을 받았다. 대학 못 가면 인간 취급 못 받는 한국에서 웬만하면 노력이라도 해봤을 텐데 그는 싹 접었다.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니까. 친구가 대충 사다준 건축과 원서가 아니었으면 대학 근처에도 못 갈 뻔했다.

“별 생각 없이 건축과에 갔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부모님도 쟤가 왜 저러지? 그럴 정도로 잠도 안 자고 공부했으니까. 대학 때는 딱 두 가지밖에 안 했어요. 설계하거나 여자 만나거나. 그 와중에 상도 타고 좀 우쭐해졌죠. 내가 잘하나 보지? 그래서 자연스럽게 졸업 후 유학을 가게 됐죠. 호주에서의 경험이 있으니까.”

그러나 기대했던 MIT 건축대학원에서 그는 교수와 툭하면 싸웠다. 졸업 작품이 동호대교에 화장장과 러브호텔이 들어서고 교각에 점집과 사창가가 매달려 있는 가상 프로젝트였다. 교수는 그가 하는 건 건축이 아니라며 “때려치우라!”고 소리를 질렀다.

졸업 후, 미국 현지에서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지겨워서 그만뒀다. 저녁에 아무도 술 마시러 나가는 사람이 없더란다. 한국에 와서도 큰 사무실에 취업했는데 지각을 밥 먹듯이 하다가 9개월 만에 그만뒀다. 부품처럼 취급되는 느낌이 싫어 일에 흥미를 못 느꼈던 것이다. 오히려 작은 회사에 갔을 때는 다양한 일을 경험한다는 재미에 매일 밤 12시까지 일했다.

그러다 2000년에 독립해 그의 사무실을 차렸다. 보통은 사무실에 있다가 일감을 가지고 나와 개업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으면서 넓은 사무실에 혼자 책상을 두고 몇 년 동안 버텼다. 일이 조금씩 생긴 게 홍대 앞 상상사진관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은 2005년부터니 근 5년간을 무명, 배고픔과 싸운 것이다. 그것도 그를 아끼는 선배 건축가가 대신 신청해 준 덕에 받았다. 문훈 소장은 상을 달라고 본인이 신청해야만 건축상 수상자 후보가 되는 관행이 싫어 지금까지도 상에는 관심이 없다.

이렇게 보면 그의 인생 전체가 용감함으로 점철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피하는 용기가 어디 보통 용기인가. 나 역시 지금까지 돈 앞에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하기 싫음’과 사투를 벌였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하기 싫은 일을 참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문훈 소장은 거꾸로 말한다.

“능률도 안 오르는 하기 싫은 일을 왜 억지로 해요? 하고 싶은 일만 열심히 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데.”

물론 하기 싫은 일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도 지금까지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나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돈이나 명예처럼 타인이 매기는 가치보다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자신의 가치에 충실했던 것이다. 게다가 하기 싫은 일은 과감히 덜어냄으로써 자신을 가장 독특한 존재로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영감은 겉핥기만으로 충분

오늘 할 일은 최대한 내일로 미뤄라

그의 생각 발상법 자체도 그렇다. 그는 무엇이든 깊게 파고드는 법이 없다. 무속, 인도철학, 주역, 도덕경 등 다양한 학문과 분야에 관심을 갖지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영감은 ‘겉핥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라일락 향기를 맡으면 학자들은 이 향기의 성분이 뭐고, 어떻게 향기가 나는지 밝히겠죠. 하지만 저는 향기로 영감을 자극하면서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거기서 끝. 깊이 안 들어가요. 오타쿠처럼 깊이 들어가서 삶이 그렇게 되는 것도 귀찮아요. 근처에 가서 느끼고 뭔가를 만들어내고 또 딴 걸 찾는 거죠.”

그래서 그는 규칙적으로 뭔가를 하는 걸 싫어한다. 똑같은 일을 계속 하는 것은 그에게 두려운 일이다. 심지어 때 되면 친척들한테 인사드리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의 생각 역시 노마드(Nomad)처럼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 예전에는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려고 했다. 나한테 여자란 뭘까. 나에게 빨강이란 뭐지? 이렇게 하나하나 정의하다가 그만뒀다. 최근에 시작했던 것은 수첩에 낙서하기. 그런데 말이 낙서지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입이 떡 벌어진다. 가느다란 펜으로 수천, 수만 번 획을 그은 초정밀화들이다. 처음에는 매년 한 권씩 만들려고 목표를 세웠지만 2권까지 만들고 관뒀다. 계속 하다 보니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새로운 일을 벌일 때마다 샘솟기 때문에 꽂히는 것은 늘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꾸준히 하는가가 아니라, 이 일을 하면서 무엇을 느끼고 즐겼느냐다. 처음 계획대로 밀고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충분히 즐겼다면 과목은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

문훈의 작품인 강원도 정선의 ‘락있수다’ 펜션. ⓒphoto 문훈발전소
문훈의 작품인 강원도 정선의 ‘락있수다’ 펜션. ⓒphoto 문훈발전소

우리는 지금까지 늘 깊이 있는 생각, 꾸준한 실천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그는 얄팍한 생각, 변덕스러운 실천의 순기능을 역설한다. 이뿐인가. 그는 생각에서 ‘멍 때리는 행위’의 필수 불가결함도 강조한다.

“저는 평소에 아무것도 안 하면서 멍하니 있어요. 기껏 하는 생각이라는 게 오늘 뭘 먹지? 아니면 남자들이 늘 하는 야한 생각 같은 거죠. 그렇게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안 주고 놀아요. 그게 쉬는 시간 같지만 사실은 생각이 쌓이고 있는 거죠. 생각도 계속 뽑아 쓰면 안 나와요.”

그의 생활신조는 이거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끝까지 내일로 미뤄라.” 내일 할 수 있는데 왜 구태여 오늘 하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마감시간이 닥쳤을 때 나오는 ‘날것’의 즉흥성은 때로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는 가벼운 즉흥성이야말로 진실에 가깝고 일관성 있는 생각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문 소장은 현장에서 설계도에 없던 창을 뚫기도 한다. 그의 용감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도 명확해진다. 그는 생각의 정공법 대신 ‘변칙법’을 애용한다. 남들이 정답이라고 하는 모든 생각의 방식을 뒤집는 것이다. 그 자신이 남들보다 15도 정도 삐딱하다는 것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그런 자신에게 맞춰 생각하는 방식도 변형했다.

‘나다움’을 쿨하게 인정하고 세상에 내보이다

생각의 자물쇠 풀면 세상 모든 것이 생각재료

그래서 그는 용감한 건축가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다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난 싫은 건 안 해. 나는 생각도 가볍고 뭘 끈기 있게 못해. 야한 상상을 즐겨. 난 아직도 사춘기 소년으로 있고 싶어. 야망 같은 건 개나 주라고. 나는 재미있고 즐거운 게 최고야. 문훈 소장은 그런 자기 자신을 가장 쿨하게 인정했다. 또한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세상에 보여주었다. 시도 때도 없이 건물과 스케치에 등장하는 빨간색으로. 아직 짓지는 않았지만 섹시한 여체를 그대로 본뜬 그의 작품들로.

용감하게 나다움을 인정하고 세상에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생각의 모든 자물쇠를 푸는 일이다. ‘명색이 건축가인데 다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그에겐 없다. 문훈의 독특함, 혹은 기발함은 바로 여기서 발화된다. 생각이 막힌 곳이 없고 360도 트여 있으니 세상의 모든 것이 생각재료가 된다.

“베이징덕을 먹다가 건축적으로 생각하죠. 속은 텅 빈 껍질 건축을 해볼까? 건축주의 얼굴에 큰 점이 있으면 저 점을 확장해서 에지가 불균형한 집을 만들어볼까? 건축주의 몸에 난 상처를 가지고 할 수도 있고. 엎질러진 커피를 보면서도 영감을 얻죠. 저는 안 된다고 미리 단정 짓는 게 없어요. 그게 없으니까 원천 소스가 많아지는 거죠.”

건축가 문훈에게 건물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건물도 자세히 보면 사람처럼 삐그덕거리며 늙어가는 중이다. 우리가 딱딱하다고 느낄 뿐이지 양자역학적으로 보면 세상에 하드한 건 없다. 물질의 경계라는 것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도 경계가 없다. 인터뷰 내내 그는 신나게 자신의 머릿속 건물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앞으로 움직이면 주방, 뒤로 움직이면 화장실이 나오는 엘리베이터 집. 동네 사람들이 마실 나와 차를 마실 수 있는 넓은 엘리베이터 카페. 주행속도를 지키면 포인트를 받고 과속하면 톨게이트에서 벌금을 내는 고속도로 등등. 바람 소리와 차 소리까지 입으로 흉내내며 이야기에 빠져 있는 그는 영락없는 사춘기 소년 같다.

보통 사람들은 철들고 나면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플러스해 스스로를 차별화 한다. 그러나 그게 쉽지만은 않다.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의 차별성은 그리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그는 거꾸로 갔다. 자기가 싫은 것들을 다 털어내는 마이너스 전략이다. 이 전략은 오히려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독특하다. 결과적으로 최고의 플러스가 된 셈이다. 평생 사춘기를 연장하고 싶다는, 국내에서 가장 본능적인 건축가 문훈. 앞으로 오래오래 당신의 용감함을 보.여.줘.

김미경

스피치 전문가 및 동기 부여 강사. ‘김미경의 아트스피치’ 원장, ‘W.insights’ 대표. 연세대 음대 졸업, 이화여대 정책대학원 석사. MBC ‘희망특강 파랑새’, KBS ‘아침마당’ 등 방송 출강. 저서로 ‘한 달에 한 번, 12명의 인생 멘토를 만나다’ ‘내 안의 스티브 잡스를 깨워라’ ‘2012년 자기계발을 위한 트렌드 키워드’ ‘언니의 독설’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등이 있다.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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