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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사 김미경이 만난 생각을 파는 사람]  크로스오버 음악계의 비르투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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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241호]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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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김미경이 만난 생각을 파는 사람]크로스오버 음악계의 비르투오소

받아들일 땐 유연하게 통합할 땐 고집 있게
박종훈 피아니스트·작곡가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 

생각을 파는 사람 - 열아홉 번째 인물

셀러(seller) 박종훈 피아니스트·작곡가
셀러유형 크로스오버 비르투오소(cross-over virtuoso)
대표상품 리스트 초절기교연습곡
최신상품 Piano Paradiso(2012)
크로스오버 비르투오소의 셀링 포인트
1)크로스오버를 통해 휴식과 자극을 동시에 얻어라.
2)받아들일 때는 유연하되 통합할 때는 자기만의 색깔을 넣어라.
3)전달과 소통의 기본, 테크닉부터 연마하라.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몇 달 전 나는 그와 처음 무대에서 만났다. 나는 MC이자 강연자로, 그는 피아니스트로. 모교인 연세대 음대를 돕기 위한 토크콘서트에 고맙게도 그가 함께 해줬다. 기품이 흐르는 이탈리아제 수트를 입고 피아노를 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를 본 우리 회사 여직원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순정만화 주인공이 꽃중년이 되면 딱 저 모습일 것 같아요!”
   
   박종훈(44)씨의 대학시절 후배에게 물어보니 그는 당시 연세대에서 ‘전설의 얼짱’이었단다. 그런데 그는 비주얼만 훌륭한 것이 아니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열다섯 살에 서울시향과 협연을 할 정도로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다. 줄리아드음대를 거쳐 정예 피아니스트를 조련하는 이탈리아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에서 전설의 피아니스트인 라자르 베르만을 스승으로 모셨다. 2000년 이탈리아 산레모 클래식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KBS교향악단을 비롯해 상트페테르부르크심포니, 브루노심포니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왔다. 미국 신문 뉴욕타임스의 버너드 홀랜드는 그의 연주에 대해 “놀라운 개성, 우아한 음악성”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클래식 연주자로 잘나가던 그 무렵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앙드레 가뇽처럼 뉴에이지 음악을 직접 작곡해 음반을 발표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클래식과 뉴에이지의 장벽이 견고하게 가로막고 있을 때였다. 특히나 클래식 연주자가 뉴에이지 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그는 거침없이 클래식과 뉴에이지, 재즈 사이를 오가면서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음악방송 DJ, 클래식 공연 음악감독, 루비스폴카라는 클래식 전문 기획사 대표로 클래식 연주가들의 매니지먼트와 음반까지 제작하고 있다. ‘피아노 치는 잘생긴 남자’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이렇게 다양한 장르와 직업으로 자신의 생각을 파는 남자라니. 굳이 안 만날 이유가 있을까? 결국 우리는 두 달 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그의 녹음실 겸 사무실에서 재상봉했다.
   
   
   크로스오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청중과의 소통
   장르 장벽 깨고 ‘좋은 음악’ 들려주고파

   
   스튜디오에는 내 나이 정도는 돼 보이는 스타인벡 피아노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멋들어진 이탈리아제 셔츠를 입고 있다. 알고 보니 실제 그의 집이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단다. 1년에 절반 정도는 가족이 있는 이탈리아에 가서 지냈는데 요즘은 일이 많아 서울에 있을 때가 더 많다.
   
   한국에 있을 때는 1년에 크고 작은 공연을 50여건 한다. 그는 10년 전부터 ‘피아노 파라디소(Piano paradiso)’라는 자신만의 공연 브랜드를 만들어 독자적인 크로스오버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매번 주제에 따라 때로는 베토벤이나 리스트가 나오기도 하고, 크라이슬러나 미국의 뮤지컬 음악이 흐르기도 하고, 그가 만든 편하고 쉬운 뉴에이지곡을 소개하기도 한다. 여기에 ‘박종훈식 토크’가 가미된다.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건 아닌데 은근히 웃기고, 은근히 말도 많다. 말하다 보면 딴 데로 샜다가 다시 돌아오곤 한다. 대본은 있지만 주로 말하고 싶을 때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청중도 이런 그의 담백한 토크를 더 좋아한다.
   
   요새는 그가 직접 작곡한 뉴에이지나 재즈곡들을 많이 연주하는 편이다. 지난번 토크콘서트 때도 자작곡을 연주했다. 제목은 그의 회사 이름이기도 한 루비스폴카(Ruby’s polka). 그가 기르던 개 루비를 위해 만든 곡인데 듣고 있으면 강아지 한 마리가 깡총깡총 뛰고, 멍멍 짖고, 나른하게 조는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청중도 다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생각나는지 웃으면서 신나게 박수를 쳤다. 곡 하나로 무대와 객석 사이에 완벽한 교감이 이루어진 것이다.
   
   “크로스오버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나와 청중 사이의 크로스오버예요. 교차점 안에서 서로 만나야 한다는 거죠. 클래식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것, 재즈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것을 가져와서 재즈 팬들과 클래식 팬들 모두와 소통의 폭과 수준을 끌어올리고 싶은 건데 현실에서는 사실 만만치 않아요.”
   
   클래식 팬들에게는 가요를 협주곡으로 웅장하게 만들어도 원곡이 가요면 가요일 뿐이다. 클래식 화성과 구조로 재즈적인 연주를 하면 재즈팬들은 “이건 클래식이니까 안 들어”라는 반응이 대번에 나온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한 분야에 조예가 깊어질수록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보다는 스스로 좁아진다. 그게 음악이든, 고전이든, 미술이든.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장벽이 무척이나 싫었다. 가요든, 클래식이든, 재즈든 왜 그걸 그렇게 구분하는 거지? 들어서 좋으면 되는 거 아냐?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음악 앞에 크로스오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에게는 ‘음악 사랑하는 본능’ 있어야
   재즈와 클래식 넘나드는 크로스오버는 휴식인 동시에 자극

   
   크로스오버의 시작과 끝은 결국 관객과의 소통이다. 그렇다면 청중과 무엇으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피아니스트 박종훈은 음악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느낀 것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먼저 음악과 나 자신 사이에 충분한 교감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음악을 사랑하는 본능’이라고 말한다.
   
   “어떤 여자를 사랑할 때 그녀는 이렇게 생겨서 사랑하고, 성격이 착해서 사랑하지는 않잖아요. 그저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이죠.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무조건적으로 좋아하고 사랑해야 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머리가 좋으면 90%까지는 모방이 가능하다는 거죠. 머리가 좋은 천재들은 뭘 하는지 모르면서도 표현은 해내요. 그런 경우가 아니면 훈련에 의해서 어느 정도는 가능하죠. 그러나 100%까지 가기는 쉽지 않아요. 연습하고 연주밖에 모르니 자기가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알 틈조차 없죠.”
   
   그는 다섯 살 때 처음 피아노와 만난 이후 40여년간 질긴 연애를 해왔다. 내가 볼 때 그는 ‘밀당(밀고당기기)의 고수’다. 반복을 싫어하고 늘 새로운 변화를 좋아하는 자신의 성향을 잘 알았던 그는 클래식부터 재즈, 뉴에이지 등 수많은 장르들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교감해 왔다. 물론 베토벤을 연주하다가 갑자기 재즈 즉흥연주를 하기란 쉽지 않다. 발레를 하다가 갑자기 힙합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때때로 이는 훌륭한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리스트의 초절기교연습이나 쇼팽의 즉흥환상곡도 하루 이틀이지 그도 인간인데 짜증날 때가 있다. 그럴 때 편한 뉴에이지나 재즈를 열심히 연습하면 다시 리스트가 치고 싶어진다. 다양한 장르의 곡들과 적당히 밀고 당기면서 피아노에 대한 사랑을 오랫동안 지켜가는 것이다.
   
   한 분야에서 무르익은 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을 질기게 사랑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 소설가 박민규는 동시에 두 가지 소설을 쓴다. 방의 양쪽 구석에 각각 두 개의 책상과 두 개의 컴퓨터를 둔다. 그리고 이쪽 소설을 쓰다가 지겨워지면 다른 컴퓨터에 가서 또 다른 소설을 쓴다. 그것이 그에게는 휴식이고 힐링이며 또 다른 자극이다. 피아니스트 박종훈에게도 크로스오버 음악은 피아노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지키고 발전해 나가는 그만의 방식이지 않았을까.
   
   
   ‘나만의 색깔’ 보여주는 단단한 실력
   하루 12~13시간 연습은 기본… 손톱 깨져 건반이 피로 물들기도

   
또 하나, 그는 자신의 느낀 것을 청중에게 가장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는 테크닉을 갖고 있다. 그는 2009년에 ‘대형사고’를 한 번 친 적이 있다. 그 유명한 리스트의 ‘초절기교연습곡’ 전곡 독주회를 국내 최초로 감행한 것이다. 총 12곡으로 구성돼 있는 이 작품은 모든 피아노 곡 중에서 가장 어렵기로 유명하다. 슈만이 “이 세상에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10여명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 비현실적일 정도로 현란한 기교와 극한의 다이내믹, 풍부한 낭만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초절기교연습곡 전곡을 녹음한 피아니스트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런데 그는 불혹의 나이에 과감히 도전했고 음반으로도 내놨다. 그의 첫 번째 음반의 전곡 역시 리스트의 작품들이었다. 언뜻 생각해도 리스트와 재즈와의 간격은 멀고도 멀다. 바로 여기에 박종훈식 크로스오버의 핵심이 숨겨져 있다. 고도의 테크닉이 없으면 절대 소화할 수 없는 리스트의 초절기교연습곡을 마스터했다는 것은 피아니스트로서 그 어떤 곡도 겁 없이 도전할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이 쌓였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어떤 장르가 들어와도 유연하게 흡수하되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을 낸다. 그것은 수십 년간 클래식 피아노를 치면서 만들어온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덴티티가 없으면 크로스오버는커녕 이도저도 아닌 따로국밥이 되거나 색깔을 찾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무엇이 돼버리고 만다. 실제로 뼈대가 빈약해서 혼자서는 안 되니까 이것저것 붙인 억지 콜라보레이션이 얼마나 많은가.
   
   최근에 나는 최고의 크로스오버 음악을 하나 발견했다. 제목은 소녀시대의 ‘아이갓어보이(I got a boy)’. 처음에 듣는 순간 힙합, 일렉트로닉 등 4~5가지 장르가 절묘하게 연결되면서 낯선 듯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자연스럽게 귀에 착착 감겼다. 다양한 장르가 크로스오버됨에도 불구하고 ‘신선함’과 ‘자연스러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은 보통의 프로듀싱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 곡은 SM엔터테인먼트의 ‘산역사’라 불리는 작곡가 유영진이 10여년간 녹음실에서 수많은 가수들의 곡을 만들어봤기에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피아니스트 박종훈 역시 다양한 장르와 크로스오버하면서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떤 곡에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색깔을 입힐 수 있는 단단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만드는 과정은 그야말로 처절한 ‘몸과의 사투’였다. 한창 때는 하루에 12~13시간 연습은 기본. 한번은 공연 중에 손톱이 깨지면서 건반이 시뻘건 피로 물든 적도 있었다. 그야말로 목에서 피가 날 때가지 노래해야 득음한다는 판소리 명창처럼 그도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연습했던 것이다.
   
   “리스트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물을 끓이려고 불을 지폈으면 끓을 때까지 계속 불을 지펴야 한다.’ 연습을 하다 보면 예측을 못하겠어요. 이 정도면 됐겠지 싶을 정도로 연습을 했는데 다음날 돌아가 있고, 죽어라 연습해도 안 돼서 포기했는데 일주일 뒤에는 또 되고. 중요한 것 하나는 결국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거죠. 죽어라 연습한 실력이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나오게 돼 있거든요.”
   
   
   국내 최초 리스트 초절기교연습곡 독주회 열어
   테크닉이란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내 몸이 해내는 일

   
   테크닉이란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내 몸이 해내는 일이다. 마음으로는 수천 번도 더 완벽하게 연주했던 초절기교연습곡을 몸으로 해내는 것. 마음으로는 더 없이 완벽한 강의를 실제 내 온몸으로 완벽하게 해내는 것. 파울로 코엘료처럼 완벽하게 쓰고 싶은 글을 실제 내 손으로 써내는 것이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간격은 얼마나 머나먼가. 때로는 지독한 슬럼프와도 싸워야 한다.
   
   그에게도 승승장구하던 25세 무렵 예고도 없이 슬럼프가 찾아왔다. 어디서 어떤 연주를 하건 칭찬이 쏟아지고 스스로도 가장 자신만만하던 그때, 이유 없이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망쳤다. 그 이후로는 라흐마니노프뿐만 아니라 모든 연주에 무대공포증이 생겼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그가 6층에서 떨어져서 혼비백산할 때의 딱, 그 느낌이었다. 심각하게 피아노를 접을 생각까지 했다. 해결 방법은 오직 하나, 두려움에 익숙해질 때까지 견디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피아노에 매달리다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그 결과가 한꺼번에 돌아왔다. 무대에서 최고의 연주를 해낸 것이다.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가진 크로스오버적인 콘텐츠를 가장 신선하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전달하려면 먼저 테크닉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듣기에 가장 편안한 연주, 읽기에 가장 편안한 글, 이해하기 가장 편안한 강의는 가장 혹독하게 그 자신을 괴롭힌 결과다. 그런 면에서 나느 그를 크로스오버 음악계의 대가, 크로스오버 비르투오소(cross-over virtuoso)라고 부르고 싶다. 오늘 저녁 귀여운 강아지와 편안한 음악감상을 원한다면 그의 루비스폴카를, 광기 어린 천재의 현란한 테크닉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그가 연주하는 리스트의 초절기교연습곡을 들어보자. 무엇을 듣든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김미경
   
   스피치 전문가 및 동기 부여 강사. ‘김미경의 아트스피치’ 원장, ‘W.insights’ 대표. 연세대 음대 졸업, 이화여대 정책대학원 석사. MBC ‘희망특강 파랑새’, KBS ‘아침마당’ 등 방송 출강. 저서로 ‘한 달에 한 번, 12명의 인생 멘토를 만나다’ ‘내 안의 스티브 잡스를 깨워라’ ‘2012년 자기계발을 위한 트렌드 키워드’ ‘언니의 독설’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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