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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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성소은(成昭恩·45). 스님이 지어준 이름(昭恩)이다. 불교 신자였던 부모는 그가 11살 때 기독교로 개종했다. 소은은 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녔다. “오직 예수”를 외쳤던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 대학(일본 릿쿄대학, 도쿄대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성공회로 개종, ‘클라라’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의 ‘개종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38살이던 2006년 2월 그는 비구니가 됐다. 대구 동화사 부도암에서 묘지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해 광우(光宇)라는 법명을 받았다. 1년 반 뒤인 2007년 7월 그는 환속해 ‘성소은’이란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40여년에 걸친 종교적 번민. 기나긴 방황을 통해 그가 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6월 1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그는 “이젠 종교가 필요없다”고 말했다.

“원래 불교 집안이었는데,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셨어요. 부모님을 따라 저도 교회에 나갔죠. 그런데 그 교회가 근본주의를 주장하는, 좀 ‘뜨거운’ 교회였어요. 그곳에서 20년간 성가 활동을 하면서 ‘오직 예수’만을 외쳤습니다.”

성씨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일본 유학 시절이던 2001년이었다. 한 선배가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선물했다. “제목부터 엄청 논쟁적이잖아요. 저자 오강남 교수는 캐나다 리자이나대학의 비교종교학자입니다. 당시 저는 제목만 보고 ‘이런 책은 읽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친한 선배가 준 거니까 버릴 수는 없었고, 그래도 제목이 눈에 띄는 건 싫었고…. 그래서 책을 뒤집어서 책장에 꽂아뒀습니다.”

성씨는 대학원 졸업 후 ‘일본재단’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 책이 그 책’이란 것을 깜빡하고, 뒤집혀 꽂혀 있던 책을 꺼내들었다고 했다.

“표지를 넘기니까 서문에 ‘제목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이 있을 텐데 그렇더라도 외면하지 말고 한번 읽어달라’는 저자의 간곡한 당부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 말이 너무 정중하고 간곡해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접을 수가 없는 거예요.”

성씨는 “그날 밤을 홀랑 새워 책을 다 읽었다”고 했다. “그동안의 의문이 한꺼번에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우리나라 교회는 ‘천당 간다’ ‘다 잘된다’ ‘그러니까 믿어라’라고 하잖아요.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기복 신앙적 측면을 강조하죠. 그렇다면 결국 ‘나’를 위해 교회를 다니는 게 되는데, 예수의 가르침이 정말 그런 것이었을까요. 그런 예수는 없다는 것이 책의 논지였습니다.”

성씨는 “일종의 의식 전환이었다”고 했다. “의식의 전환을 서양에선 메타노이아(metanoia)라고 한답니다. 그리스어라는데요, 우리나라에선 이 말을 ‘회개’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면서 원래의 뜻과 다르게 전해졌지요. ‘누구를 미워했습니다’ ‘누구랑 싸웠습니다’ 하면서 반성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갖고 있던 기존 틀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회개(metanoia)가 뜻하는 진정한 의미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메타노이아’를 겪은 성씨는 “더 이상 교회에 다닐 수가 없었다”며 말을 이었다. “2003년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서 직장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성공회를 접하게 됐죠. 성공회는 신부의 결혼을 허용하며, 여성 사제를 임명하고, 동성애를 인정하는 개방적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 이끌려 교리 공부를 새로 하고, 세례를 받아 ‘클라라’라는 세례명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라는 외적 존재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태생적 한계가 여전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씨는 “이듬해인 2004년 11월 현각 스님을 만나게 됐다”고 했다. “미국인인 그분은 저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배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지사로 찾아갔습니다. 1박2일의 템플스테이였는데, 거기서 처음 참선을 했어요. 그때 오온개공(五蘊皆空·인간 세상의 모든 관계는 실체가 없는 현상이라는 부처의 가르침)이란 반야심경 구절을 들었는데요, 그걸 듣고서는 ‘아, 수행을 해야겠구나’ 하는 결심을 했습니다.”

성씨의 결심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의 부모님께는 ‘일본에 간다’고 해놓고는 계룡대 인근의 무상사로 들어갔다. 석 달 정도만 집중적으로 수행을 해보자는 애초의 계획은 하안거~동안거를 거치면서 결국 출가로 이어졌다. 2006년 2월 대구 동화사 부도암에서였다.

“참선 수행을 하다 보니 거꾸로 성경의 가르침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신 그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참선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부처를 통해 예수와 하나님을 이해하게 된 겁니다.”

“그 진리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하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답”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그럼 당신은 왜 태어났는지를 아느냐”고 묻자, 성씨는 주저없이 “네”라고 답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구니 시절의 성소은씨.
비구니 시절의 성소은씨.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이 지구 전체의 시스템에 비하면 사람은 미미한 티끌이지요. 이 티끌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을 벗어던지면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의 실체가 없다는 것, 그러니까 태어남도 없고 죽는 것도 없다는 가르침의 맛을 살짝 본 셈이지요.”

성씨는 그러나 “승려로 살아보니 속세의 삶과 별 다를 게 없더라”고 했다. “승려라는 이유만으로 신자들로부터 절을 받고, 또 다른 권위를 누리려 하는 모습이 불편했습니다. 뭔가 기복적인 것을 바라며 스님들을 대하는 신자들의 모습도 그랬고요.”

그는 “승려 신분이 오히려 제약으로 느껴지기도 했다”고 했다. “불교를 공부하면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고, 참선을 하면 성경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그 보석 같은 길이 막혀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승복 차림을 하고 있으면 크리스천에게 다가갈 수가 없잖아요.”

성씨는 “그래서 2007년 7월 환속을 했다”고 말했다. 한동안 칩거하던 그는 지난해 5월 자신의 정신적 방황을 기록한 책 ‘선방에서 만난 하나님’을 출간했다. 성씨는 “모든 종교는 서로 통하는 것 같다”면서 “종교 간의 차이를 뛰어넘어, 각 종파 간의 대화를 추구하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는 없다’의 저자인 오강남 교수와 함께 비영리단체인 ‘종교 너머, 아하!’를 2012년 설립했다. 기독교, 불교, 도교, 힌두교, 동학 등 각종 종교 간의 소통과 신(神)의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이 단체(02-882-0667)로 연락하면 된다.

이범진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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