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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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가요계의 명확한 증상 중의 하나는 아이돌의 쇠퇴다. 싸이, 조용필, 이효리로 이어진 빅 스타들의 컴백 앞에서 기성 그룹도, 신인도 ‘중원’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팬덤 안에서만 인기를 끌었을 뿐이다. SM, YG, JYP 3대 기획사 역시 힘을 쓰지 못했다. 무력했다. 포화상태인 시장이 나아가는 필연적인 방향이라 단정해도 좋은 상황이었다. 얼마 전까지 그랬다. 그 상황을 뚫고 이슈를 장악한 건 3대 기획사의 신인도 아니었다. 화려함, 혹은 섹시함으로 중무장한 기성 걸그룹도 아니었다. ‘B급’ 혹은 ‘4차원’ 콘셉트의 5인조 ‘크레용팝’이다.

한국에서 여자 아이돌이 취할 수 있는 캐릭터는 둘 중 하나다. 귀엽고 청순하거나 섹시하거나. 역사가 증명한다. 1차 걸그룹 전성기였던 1990년대 중반 S.E.S와 핑클은 전에 보지 못한 청순한 콘셉트로 단숨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 후 베이비복스를 비롯한 수많은 걸그룹들이 섹시함의 경쟁을 펼쳤다. 이효리의 솔로 데뷔로 촉발된 2000년대 초중반 섹시 여가수 시대는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등장으로 시작된 걸그룹 르네상스 역시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세대들의 몸은 한국인의 체형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그 우월한 신체를 굳이 드러내지 않고 초기의 걸그룹들이 그랬던 것처럼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로 승부했다. 하지만 그 후 등장한 후속 걸그룹들은 마찬가지로 우월한 신체 조건을 적극적으로 상품화했다. ‘꿀벅지’ 같은 신조어들이 나타난 게 그쯤이었다. 프로듀싱 및 콘셉트에서 차별화를 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무기는 육체의 상품화였고 이를 적극적으로 가공하는 최선의, 그리고 역시 유일한 방법은 섹시 콘셉트였던 것이다. 지난 6월 발표된 달샤벳의 ‘내 다리를 봐’는 성적 판타지를 제외하고는 어떤 돌파구도 찾지 못한 걸그룹 시장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크레용팝은 음악과 이미지, 모두에서 현재 걸그룹의 흐름과 완전히 궤도를 달리한다. 지난 6월 발표된 그들의 네 번째 싱글이자,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빠빠빠’를 살펴보자. 뮤직비디오의 배경은 버려진 듯한 유원지다. 이 ‘없어 보이는’ 공간에서 다섯 명의 크레용팝 멤버는 시골 학교의 치어리더를 연상케 하는 트레이닝 바지에 치마를 입고 등판에 그룹의 로고가 궁서체로 인쇄된 폴로 티셔츠를 입고 있다. 여기에 방점을 찍는 것은 머리에 쓰고 있는 흰색 오토바이 헬멧이다. 하이 패션의 반대편에 있는, 안티 패션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차림으로 크레용팝이 추는 춤 역시 화려한 군무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 걸그룹들의 해외 진출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군무 말이다. 노래의 절정부에서 크레용팝은 멤버들끼리 번갈아가면서 제자리 점프를 할 뿐이다. ‘직렬 5기통 댄스’로 불리는 이 춤은 그들의 패션과 더불어 크레용팝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주요 지점이다.

음악은 또 어떤가. ‘댄싱 퀸’ ‘빙 빙’ 같은 그들의 지난 곡은 기존의 K팝과 큰 차이가 없다. 2013년 초 ‘빙 빙’의 리믹스 버전으로 활동 시 교복치마에 ‘추리닝’을 받쳐 입는다든가 아예 체육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 등 이미 파격적인 스타일을 시도했음에도 큰 화제를 끌지 못했던 것은 결국 음악의 문제였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스타일에 특이한 의상을 입어봤자 이는 그저 튀는 정도에 머물 뿐, 파격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빠빠빠’에 이르러 크레용팝은 안무와 의상, 그리고 음악의 삼위일체를 이룬다. 도입부 한 소절, 절정부 한 소절, 두 부분을 잇는 짧은 삽입부. 단 세 소절의 반복으로 진행되는 ‘빠빠빠’의 각 소절에는 그나마 최소한의 음계만이 사용된다. 드라마틱은커녕 기승전결조차 배제되는 것이다. 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 서사는커녕 맥락조차 소거된 채 ‘다같이/날 따라/소리쳐/날 따라해/엄마도 파파도 같이/빠빠빠빠/점핑’, 이 단어들의 흐름이 전부다. 그들의 음악은 안무, 의상과 맞물려 색다른 자극을 탄생시킨다. 그것을 우리는 ‘명백한 무의미’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을 ‘표현을 통한 의미의 발현’이라 서술할 수 있다면 ‘빠빠빠’는 이 서술에서 완벽히 비껴 나간다. 대중음악이 갖고 있는 두 가지 속성, 즉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에서 ‘빠빠빠’는 순수한 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여명기부터 10대에게는 철저한 열광의 대상이었으나, 기성세대 및 능동적 음악 수용자들에게는 철저히 무시당했던 한국 아이돌 산업은 뮤지션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조금씩 수용함으로써 한계를 돌파해왔다. 립싱크 논란을 덮기 위해 동방신기처럼 노래 잘하는 아이돌을 만들어냈고, 창작능력이 전무하다는 비판에는 빅뱅 같은 아티스트형 아이돌을 내세움으로써 아이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했다. 이는 또한 아이돌에게 엔터테인먼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 일본 등지에서 한국 아이돌들이 약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크레용팝은 그런 아이돌 발전사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이 K팝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크레용팝에 대해 흥미를 가질 또 하나의 지점이 있다. 그들이 소비되는 방식이다. 지난 6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그들이 출연했을 때, 방청석에서 들려온 함성은 메탈리카의 내한 공연에서나 들을 수 있는 테너와 바리톤의 하모니였다. 스스로를 ‘용팝이 아저씨’로 부르는 크레용팝의 30대 남성팬들이 그 하모니의 주인공이었다. ‘삼촌팬’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걸그룹 팬덤이지만, 크레용팝의 팬덤은 보다 극성스럽다. 공개방송은 물론이고 온갖 행사를 따라다닌다. 그들이 벼락 스타덤에 오르기 전 자체적으로 만들었던 팟캐스트 ‘크레용 TV’를 보면 지난 2월에 오사카에서 가졌던 게릴라 콘서트까지 따라가서 응원하는 아저씨 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크레용팝이 초기부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뿐만 아니라 디지털카메라, IT, 스포츠 등 남성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홍보 활동을 전개해왔기 때문에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오타쿠 산업이 된 일본의 걸그룹 산업에는 인디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있다. 아키하바라 등의 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미디어를 타지 못하는 아이돌을 일컫는 말이다. 크레용팝 외에는 소속 연예인이 없으며, 엔터테인먼트 사업 경력마저 전무한 크레용팝의 소속사 크롬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런 전략을 변용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직접 잠재적 팬들과의 스킨십을 시도하고 팬덤을 만드는 방식을 써온 것이다. 그렇게 크레용팝의 존재를 알게 된 네티즌 중 유독 30대 남성이 팬덤의 핵심을 이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순수한 엔터테인먼트라는 키워드 아래 숨어 있는 크레용팝의 문화적 코드이기도 하다. 바로 ‘전자오락실’ 코드다. 30대 남성들의 기억에는 1980년대의 전자오락실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8비트, 고작해야 16비트 컴퓨터로 제어되던 그때의 게임은 모든 것이 단순했다. 캐릭터의 동작은 전후 이동과 점프가 다였다. 그래픽은 조야했으며 BGM 역시 ‘뿅뿅’으로 대표되는 몇 개의 음이 전부였다. ‘빠빠빠’와 크레용팝은 그 코드를 모두 관통한다. 복고의 시대라지만 아무도 활용하지 않았던 아케이드 세대의 감성을 크레용팝은 자의건 타의건 또렷이 소환한다. 아이돌 팬덤의 핵심 세대인 10대보다 30대가 그들에게 먼저 열광했던 까닭이다. 일본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0년대에 만들었던 게임들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소년들의 주요한 오락도구였다. 크레용팝이 소구하는 이 감성은, 따라서 일종의 글로벌 코드이기도 하다. 크레용팝의 세계 시장 진출을 점칠 때 효과적 성공 요인이 될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아니 병을 비틀기에는 아직 한참 때가 일러 보인다. 비교 대상이 되고 있는 ‘강남스타일’의 싸이와 크레용팝은 정반대의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강남스타일’이라는 뮤직비디오만 있었다면 싸이는 유튜브 이상의 무대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그가 치고 들어갈 수 있었던 힘은 영어 능력 외에도 줄곧 자신의 음악과 활동 전략을 수립해온 아티스트적 존재로서의 커리어였다.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크레용팝은 아티스트, 즉 창작의 주체가 아닌 아이돌이다. 소비의 객체다.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은 주어진 이미지 이상의 콘텐츠를 뽑아내기 힘들다. 언어의 장벽이 존재하는 서구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비의 객체라는 한계는 국내에서의 승승가도에도 녹록잖은 장애물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과 소속사 대표가 일베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그 문화에 젖어 있다는 여러 의혹들이 제기됐다. 온건한 보수층마저도 학을 뗀다는, 한국판 ‘넷 우익’이자 ‘사이버 나치’인 일베와의 연관성은 당연히 그들의 팬덤 밖에서는 강력한 반감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일베용 팝’이라는 불미스러운 별명도 생겼다. 소속사 측에서는 일베뿐 아니라 다른 사이트들에서도 홍보 활동을 했을 뿐이라 해명했다. 하지만 사망한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는 용어를 그대로 쓴다든가, 심지어 백골단과 크레용팝을 합성한 사진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든가 하는 행동은 ‘위험한 농담’이다. 전체 대중을 타깃으로 해야 하는 아이돌에게는 특히 그렇다. 보다 적극적이고 신속한 해명과 사과가 필요했다. 그들이 음원 차트 1위를 하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충분히 풀리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가 크레용팝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8월 18일 신인 걸그룹으로는 이례적으로 옥션의 광고모델로 기용되었지만 회원들의 탈퇴 행렬과 항의에 하루 만에 광고가 내려갔다. 삼성전자 주최의 콘서트 라인업에서도 빠졌다. 예정되어 있던 FC서울 시합의 시축 및 축하 공연도 취소됐다. 광고와 행사가 수입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돌 비즈니스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런 일련의 과정은 이미 충분한 악재다. 불행히도 걸그룹의 팬덤은 보이밴드의 그것에 비해 방어력도 약하다. 소속사의 힘으로 덮고 가기엔 그 역량과 대처가 미흡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소비의 객체다. 맥락을 떠나 소비됨으로써만 존재를 인정받는 아이돌이다. 크레용팝은 탈(脫)K팝 이데올로기적 이미지와 음악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그들의 진격을 멈춘 것은 정치 이데올로기의 한복판에 있던 행적이다. 지난 대선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는 정치담론과 제2의 ‘강남스타일’을 기대하는 연예 산업, 두 개의 뜨거운 기류가 지금 크레용팝이라는 전선에서 충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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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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