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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수의 보이차 이야기]  한 통에 수억원? 진짜 ‘호급차’ 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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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6호]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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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보이차 이야기]한 통에 수억원? 진짜 ‘호급차’ 감별법

서영수  영화감독 

▲ 리샤오친 세계차문화교류협회 부회장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인데 송빙호(宋聘號) 두 통을 갖고 있다”며 수개월 전 낯선 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통은 인사동에 팔기로 했는데 나머지 한 통을 1억원에 사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보관 상태를 확인하여야 하니 차를 가져오시라”고 했는데 그후 연락이 없다. 그가 갖고 있는 차가 보관이 잘된 진품이라면 그가 제시한 가격보다 몇 배의 가치가 있는 골동급(骨董級) 노차(老茶)다.
   
   순금은 1g당 4만5000원(2014년 2월 기준)이지만 송빙호처럼 80년 이상 된 호급차(號級茶)는 1g이 20만원을 상회하기도 한다. 금값의 다섯 배가 넘는다. 호급차는 세월을 사고 역사를 마신다는 노차의 최정점(最頂點)이다.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로 고가이나 중국은 물론 홍콩과 대만에서도 구하기 힘들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호급차는 뿌리 없는 복각판(復刻版)이거나 가짜가 대부분이다. 노차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감별법이 책과 인터넷에 많이 나와 있지만 참고사항일 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가짜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정보보다 앞서가고 있으며 심지어 대를 물려가며 긴 세월을 투자하여 정교한 가짜를 만들어낸다.
   
   진품 호급차를 소장하고 있는 대만의 차인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홍콩과 대만에서는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노차가 한국에는 터무니없이 많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대다수의 노차는 진품이 아니다. 나에게 진품 노차가 있으면 가격을 떠나 쉽게 팔지 못한다. 이유는 내 손을 떠난 노차를 그 가격에 되살 수도 없으며 다시 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제대로 숙성시켜 장기 보관한 보이차는 노차로서 진가를 발휘하지만 오래 묵었어도 보존 환경이 열악하여 습(濕)에 노출된 보이차는 가치가 없다”며 세월의 길이보다 세월의 질에 대해 강조하였다.
   
   호급차는 문헌에 있거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보이차를 제외하고 실존하는 보이차 중에서 가장 희소성이 높다. 호급차는 청 말부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인 1955년까지 만들어진 보이차(·푸얼차)로, 동창호(同昌號), 복원창호(福元昌號), 영춘호(迎春號)처럼 이름에 호(號)가 붙는다. 호가 붙는다고 해서 호급차로 부른다. 밀식재배하지 않은 고6대 차산의 우수한 모차(毛茶)를 원료로 사용했다. 이우(易武)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소량 생산된 병차를, 1편씩 종이로 개별 포장하지 않고 포장지 없는 병차 7편을 1통에 넣어 죽피 포장을 한 특징이 있다. ‘노차는 마실 수 있는 유일한 골동품’이라는 예찬도 있지만 순금보다 비싼 호급차는 마시기 위한 보이차라기보다 진귀한 우표와 화폐처럼 수집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세월이 갈수록 숙성되어 맛있어진다’며 고가에 거래되는 노차의 기준은 뭘까. 대만은 최소한 50년 이상 숙성된 보이차를 노차라 인정하고 중국은 30년만 되어도 귀한 노차로 대접한다. 상대적으로 중국 대륙에 노차가 귀하다는 것을 방증하듯 최근에는 10년이 채 안 된 보이차도 노차로 분류하여 판매한다. 보이차의 유일한 원산지인 중국보다 대만이 노차가 더 많은 이유는 1950년대 들어 호급차의 생산 중단과 핍박으로 차를 만들던 사람들이 일찌감치 보이차와 함께 홍콩과 대만으로 이주했던 탓이다. 1997년 영국의 홍콩 반환을 앞두고 불안감을 느낀 홍콩의 보이차 수장가들이 보유한 많은 양의 보이차가 대만을 필두로 말레이시아 등지로 옮겨간 것이 또 다른 이유다. 게다가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대다수의 중국인은 보이차를 즐겨 마시지 않았으며 중국 정부도 소비가 부진한 내수보다는 수출에 주력하였다.
   
   최근에는 홍콩과 대만으로 건너간 상당수의 보이차가 ‘모종의 작업’을 거쳐 중국으로 다시 들어와 생산연도보다 훨씬 오래된 노차로 비싸게 팔리고 있다. 중국의 최대 차 유통 시장인 광저우(廣州)의 팡촌(芳村)차 시장에서 만난 리샤오친(呂小勤) 세계차문화교류협회 부회장은 ‘그녀가 갖고 있지 않은 노차라면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한 노차 소장가다.
   
   월진월향(越陳越香·오래 묵힐수록 맛이 뛰어나다는 뜻)을 신봉하는 리샤오친 부회장은 보이차 업계에서 노차의 비중에 대하여 한마디로 “노차가 없다면 보이차산업의 부흥은 없었다. 향후 보이차 시장 확대를 위해서도 노차가 갖고 있는 상징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리샤오친 부회장은 “소비자가 스스로 마실 양보다 많은 보이차를 구매하게 하려면 보이차를 오래 저장하면 맛도 좋아지고, 보관을 잘하여 노차가 되면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른다는 기대치가 있어야 한다”는 보이차 업계의 영업 전략을 밝혔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노차를 사흘에 걸쳐 함께 시음하였는데, 시중에서 보기 힘든 진귀한 보이차를 마셔본다는 감흥에 비하여 정작 차 맛은 무미(無味)였다. 혹자는 보이차 맛의 최고 경지는 ‘무미’라 하기도 한다.
   
   보이차 사업과 무관한 전문가의 생각을 듣기 위하여 중국 광저우에서 윈난(雲南)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쿤밍(昆明)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징홍(景洪)공항으로 갔다. 왕윈강(汪雲剛) 박사를 만나기 위해 그가 근무하는 멍하이현(海縣)으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갔다. 왕 박사는 윈난성농업과학원차엽연구소(雲南省農業科學院茶葉硏究所)에 속한 시솽반나종합시험참((西雙版納綜合試驗站)의 책임자다. 그는 차를 연구하는 박사들을 지도하는 사람으로서 중국 정부로부터 연구 업적으로 여러 차례 상을 받은 보이차 분야의 전문가다.
   
   왕 박사가 보는 노차는 사뭇 달랐다. 그는 “지금은 상식처럼 되어버린, ‘보이차는 묵힐수록 진화(陳化)되어 맛과 향이 좋아진다’는 ‘월진월향’이라는 개념은 불과 수십 년 전에 대만 상인과 학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라며 “수천 년 동안 보이차를 만들어 마셔온 윈난의 소수민족은 물론이고 청나라 황실도 당해 연도에 만든 보이차를 마셨다”고 했다. 그는 “노차가 햇차보다 맛과 효능이 우월하다는 유의미한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다. 후(後)발효차인 보이차는 숙성을 필요로 하지만 개인이 수십 년 이상 오래 저장하는 것에는 회의적”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그의 판단은 ‘보이차는 오래될수록 좋은 차’라기보다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차’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보이차 상식
   
   또 다른 노차 인급차
   
   호급차 이후에 생산되어 노차로 대접받는 보이차는 1950년대부터 만들어진 인급차(印級茶)다. ‘중차패원차(中茶牌圓茶)’ 포장지 가운데 인쇄된 ‘茶’의 색상이 녹색은 녹인(綠印) 또는 남인(藍印), 붉은 것은 홍인(紅印), 황색은 황인(黃印)이라 한다. 1950년대 인급차의 연간 생산량은 고작 4032편에 불과하였다. 1972년 이후부터는 ‘운남칠자병차(雲南七子餠茶)’를 포장지 상단에 크게 인쇄한 병차를 생산했다. 이 차들은 7542, 7532, 7572 등 로또번호(lot number·批)로 차를 구별하였다.

서영수
   
   1956년 부산 태생. 유현목·이두용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운 뒤 1984년 영화감독으로 데뷔.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조예가 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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