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스발바르제도의 다산과학기지 주변에 가장 많은 꽃은 이끼장구채”라고 이유경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말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북극 지역의 식생·토양 연구를 위해 다니면서 이곳의 식물 도감을 펴냈다. ‘북극 툰드라에 피는 꽃’(지오북). 이 책임연구원 외 5명의 공동 저자는 극지연구소의 동료 정지영 박사와 이은주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 이규·한동욱 국립생태원 연구원, 황영심 지오북 대표 등 관련 전문가들이다. 필자들은 책 표지 사진으로 분홍빛 꽃잎의 이끼장구채를 골랐다.

지난 4월 14일 서울 광화문의 주간조선 사무실에서 만난 이유경 책임연구원은 “노르웨이에서 출장을 마치고 지난 주말에 귀국했다”고 했다. 극지연구소는 남극에서는 일반에 널리 알려진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를 운영하고, 북극에는 다산과학기지를 두고 있다. 해양수산부 산하기관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2003년부터 북극에 다닌다. “2011년 환북극 동토층 연구를 위해 이번 책 저자들이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의 다산과학기지로 향하던 중 마지막 경유지인 롱이어비엔에서 비행기가 하루 연착됐어요. 다음날까지 시간이 남아서 롱이어비엔 주변의 식생을 관찰했지요. 연구팀에 있던 양치식물 연구자인 황영심 대표가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이 이 책의 시작이었습니다.” 롱이어비엔에서 뜻밖의 시간을 갖지 않았더라면, 다산기지가 있는 뉘올레순에 바로 갔을 것이고, 다산기지에서는 짧은 기간에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느라 주변 식물에 두루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을 것.

‘북극 툰드라에 피는 꽃’에는 얼음과 추위를 이겨낸 108종 식물의 사진 600장과 설명이 실려 있다.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의 다산과학기지 외에도 캐나다 케임브리지베이, 미국 알래스카의 카운실, 덴마크령 그린란드 자켄버그에서 자라는 식물들이다. 저자들은 2011년부터 미래창조과학부의 극지 기초 원천 기술개발 사업의 일부인 환(環)북극 동토층 연구를 5년 일정으로 하고 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는 2003년, 2011년, 2012년 세 차례 방문했어요. 그린란드 자켄버그도 두 번 다녀왔고 캐나다, 알래스카는 한 번씩 다녀왔어요.”

북극 이끼장구채 ⓒphoto 지오북
북극 이끼장구채 ⓒphoto 지오북

다산기지는 2002년 설립됐다. 스발바르제도의 스피츠베르겐섬은 노르웨이 최북단이다. 노르웨이 북단해안에서 북쪽으로 약 650㎞ 떨어졌고, 북위 74~81도다. 우리는 북극에 기지를 설치한 12번째 국가다. 다산과학기지는 북극의 기후변화와 빙하, 생물종, 해류, 자원 연구를 한다. 다산과학기지에는 봄에는 대기팀, 여름에는 생태계 생물 연구팀, 가을·겨울에는 고층대기 연구팀이 때에 맞춰 방문한다. 우리나라는 북극권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북극 연구를 선도하지는 않으며 다른 나라에 비해 연구자 수도 적다. 중국의 경우 30여명이 상주한다. 우리나라는 상주하는 연구자는 없고 한 번에 10명 정도의 연구자들이 찾는다. “중국은 체류기간도 6개월 정도예요. 우리는 두 달 정도죠. 우리는 연구과제가 있어야만 다산기지에 갈 수 있어요. 밥값만 하루에 10만원이라 출장비가 부담스러워요. 그래도 우리나라는 최근 북극이사회나 북극과학위원회와 같은 조직에서 핵심적인 일을 맡고 있고 미국, 일본, 러시아, 노르웨이 등의 북극 연구 선진국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북극이사회 회원국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해내고 있어요.”

뉘올레손의 국제과학기지촌은 탄광사업을 하던 킹스베이라는 회사가 기지 건물들을 소유하고 관리한다. “1920년 체결된 스발바르조약으로 노르웨이 국민이 아니더라도 스발바르의 영토를 자국민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요. 상업활동도 할 수 있죠. 북극 연구활동을 하기에도 편해 노르웨이의 스발바르를 가장 많이 찾습니다.”

이 책임연구원은 “북극의 기후가 우리나라의 기후에 영향을 줍니다. 북극이 변하고 있어서 우리의 여름·겨울 기후가 변하고 있는 거죠. 우리의 미래 기후변화를 알기 위해서는 북극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며 북극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북극 연구에는 환경적인 어려움이 많다. “소유자가 없는 남극과는 달리 북극의 경우 소유권을 갖고 있는 나라가 있습니다. 연구를 위해서는 이 나라들의 협조를 받는 것이 우선이에요.” 북극 방문을 위해서는 3~4개월 전부터 원주민 단체나 해당 국가기관에 방문 목적, 활동 내용을 상세히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북극 담자리꽃나무 ⓒphoto 지오북
북극 담자리꽃나무 ⓒphoto 지오북

극지생활 자체의 어려움도 많았다. 그린란드나 스발바르에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지가 있지만 기지가 없는 알래스카와 케임브리지베이에서는 연구자들이 직접 먹고 입는 것을 모두 챙겨 다녀야 한다. “기지가 없는 곳에서는 용변 보는 것부터 물 마시는 것, 토양 샘플을 보관하는 것까지도 어렵고 모든 것을 우리보다 일찍 진출해 있던 나라들에 협조를 받아야 해요. 기지 체류 일정은 4~5주예요.” 하루 종일 추위에 떨며 딱딱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일하는 날도 다반사다. 보트가 없어서 현장에서 채취한 20㎏이 넘는 토양 샘플들을 등에 지고 숙소까지 한 시간, 두 시간씩 걸어오기도 했다. “그린란드에서 인터넷과 전화가 모두 끊어지면서 연락이 두절돼 남편이 굉장히 걱정을 한 적도 있어요.” 극지의 극성 모기들에 시달리는 것은 일상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극지에는 모기가 정말 많아요. 밥을 먹을 때도 서서 움직이면서 먹어야 해요. 극지 모기들은 순록과 사향소 같은 두꺼운 가죽을 뚫는 모기라 굉장히 강해요. 모기들이 많이 나오는 날에는 양봉장 모자를 쓰고 다니죠”라고 말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 분자세포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홍조류의 성(性)분화에 관련된 유전자를 찾는 연구를 했다. “홍조류를 연구하다 보니 해양생물을 연구하게 됐고 해양식물에 대한 연구가 박테리아 연구로 이어졌어요. 다산연구기지에서 새로운 미생물을 발견, 다산기지의 이름을 딴 ‘다사니아’라는 명칭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임연구원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북극과학위원회 실행위원을 맡고 있다. 북극과학위원회의 ‘육상’ ‘대기’ ‘해양’등 워킹 그룹을 지원하는 것이 실행위원의 역할이다.

‘북극 툰드라에 피는 꽃’에 나오는 예쁘고 친근한 꽃들을 통해 대중들이 북극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이 책임연구원의 바람이다. 책에 표기된 꽃들의 우리말 이름은 대부분 저자들이 작명한 것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관찰해서 연구 보고서를 쓰려고 하는데 최초로 하는 연구이다 보니 식물들의 우리말 이름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책임연구원은 “조만간 북극에 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을 출간하고 싶다. 현재 우리나라가 북극이사회 가입국가로서의 역할을 해내며 북극 연구에 기여를 하고 있는 만큼 북극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많아졌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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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근혜 인턴기자·연세대 국어국문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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