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視線)은 정면이 아니다. 저 멀리 위에 있는 곳을 향한다. 표정은 비교적 온화하다. 입가엔 엷은 미소가 있다. 그럼에도 얼굴은 단호해 보인다. 망설임이 없는 표정이다. 현대자동차그룹 홍보실이 지난 4월 11일 언론사에 배포한 정몽구 회장의 공식 얼굴 사진이다. 현대차는 두 장의 사진을 배포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왜 정몽구 회장의 얼굴 사진을 굳이 이것으로 골라서 보냈을까. 이 사진 속엔 정몽구 회장의 속마음이 담겨 있다. 현대기아차 소비자가, 아니 한국민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알아봐 주길 바란다는 은근한 기대와 욕망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정몽구 회장 사진은 솔직히 말하면 그리 세련되지 않다. 사진적으로 따져봤을 때도 그리 좋지 않다. ‘완벽한’ 인물 사진을 완성하기 위해선 몇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풍부한 표정,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광선, 인물의 개성을 더 부각시켜 줄 수 있는 배경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경제 리더인 정몽구 회장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부합하는 ‘더 좋은’ 사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사진은 그렇진 않았다. 이 사진엔 인물에 대한 집중도를 해칠 수도 있는 잡광(雜光)이 많고, 얼굴 위로 노란빛과 푸른빛, 카메라 플래시 빛까지 비쳐 다소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다. 얼굴의 검버섯과 잡티, 잔주름까지 고스란히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전문 사진가가 제대로 통제된 상황에서 완성한 사진처럼 보이진 않는다. 뭔가 우연하게 빚어진 인물 사진처럼 보인다. 정몽구 회장 또는 현대차 내 관계자들은 그런데도 이 사진을 왜 굳이 공식 보도자료 사진으로 골랐을까.

나는 그 이유를 이 사진의 무게감에서 찾고 싶다. 사진 속 정 회장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입은 꾹 다물고 있고, 표정은 단호하다. 그가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을 하려 하고 있고, 결단력 있게 회사를 이끌어가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잔주름, 안색 같은 부수적인 요소를 굳이 포토샵으로 보정하지 않은 것도 비슷한 이유로 보인다. 단순히 ‘젊고 예쁜’ 얼굴이 아닌, 남을 이끌어갈 수 있는 리더의 얼굴임을 사진으로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 현장에서 여기저기 터진 카메라 플래시 빛이 얼굴 위로 번져, 자연스럽게 보이는 효과까지 있다. 스튜디오에서 세팅해서 찍은 사진보다 훨씬 힘 있어 보인다. 현장에서 움직이는 경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진의 각도도 유의해서 볼 만하다. 정 회장의 콧구멍이 살짝 보이는데, 그건 그만큼 카메라 각도가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정 회장의 아래에서 허리나 무릎을 굽히고 그를 위로 올려보면서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이런 카메라 각도는 대개 사진 속 인물을 권위적으로 묘사하는 데 쓰인다. 정치인들은 10대가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듯 위에서 아래로 자신을 눌러서 ‘얼짱 각도’로 사진을 찍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개는 정면에서 혹은 약간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각도로 찍는다. 북한의 김정일·김정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진의 각도는 그 사진 속 주인공의 ‘힘’과 ‘권력’의 정도를 보여준다. 정 회장은 사진의 각도를 통해 자신의 권력의 크기를 과시한 셈이다.

정몽구 회장의 사진을 보다 보니 각종 선거용 포스터가 생각났다. 선거용 포스터 사진만큼 그 사진 속 인물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담아내는 사진도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포스터 사진만큼 ‘원하는 바’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사진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 문 후보는 정확하게 45도 방향으로 오른쪽 위를 응시하고 있다. 표정은 제법 밝은 편이지만, 입술은 꾹 다물고 있다. 시선을 멀리 빼는 건 이 주인공이 현재 나만의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겠다는 의지를 시선으로 보여준 것이다. 반면 입술을 꾹 다문 것은 현실에 대해선 불만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 후보가 현실을 개혁하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박근혜 대통령,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선거 포스터 사진은 문 후보와 달리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입은 살짝 열려 있으며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 사진이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임에도 채택된 건 당시 박 후보의 자신감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당 후보인 문재인씨와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여당 출신 대선 후보로서 안정을 강조했다. 세상을 개혁하기보단 안정시키고 제대로 이끌겠다는 여유와 자신만만함을 정면 시선 처리로 강조했다. 결국 한 장의 초상 사진엔 이렇게 주인공의 ‘의지’와 ‘목소리’가 담긴다. 사진만으로도 우리가 주인공의 지향점과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잠시 시선을 옮겨 휴대전화를 바라본다. 요즘 흔히들 즐겨 이용하는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채팅 서비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것들엔 대개 이용자에게 ‘프로필 사진’이란 걸 등록하도록 권한다. 친구들은 어떤 사진을 프로필에 등록했을까. 넘기다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어떤 이는 자신의 얼굴 중 가장 자신 있는 한쪽 부분만을 찍어서 올려놓았고, 어떤 이는 ‘얼짱 각도’로 자신의 얼굴을 ‘귀엽게’ 왜곡해서 올려놓았다. 결국 이 모든 사진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나를 이런 사람으로 봐달라’고.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면, 당신의 프로필 사진부터 다시 찾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 이미지를 윤색하고 포장한다. 사진 한 장은 때론 그 모든 것을 대변한다. 당신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결국 그 욕망의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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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우 영상미디어 부장·‘내겐 너무 쉬운 사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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