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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호] 201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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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공계인을 행복하게! 게임으로 번 돈 이공계 위한 출판에 투자

이공계 전문출판 백일승 더하기북스 대표

박영철  차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이공계인들의 인생 전략을 제시하는 책 ‘바보야, 이제는 이공계야’(더하기북스)가 나왔다. 저자가 두 명인데 면모가 흥미롭다. 출판사 측에서 설명한 저자 소개에는 한국 1세대 IT(정보기술) 벤처 사업가 백일승 더하기북스 대표와 한국의 1세대 IT 유학파인 김재정 한양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적혀 있다. 공동저자 중 백일승 대표의 삶이 흥미로워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난 4월 22일 주간조선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백 대표는 경력이 좋다.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와 IBM 한국지사에서 17년간 근무했다. 부인과 함께 게임회사 조이시티(옛 제이씨엔터테인먼트)를 13년간 경영해 코스닥에 상장시켰고 지금은 이공계 전문출판사 대표로 있다. ‘바보야, 이제는 이공계야’는 백 대표가 출판사 사장으로 변신한 뒤 내놓은 첫 책이다.
   
   그는 1954년 부산 태생이다. 부친은 평양 출신의 피란민이었고 백 대표는 2남3녀의 장남이다. 백 대표는 고등학교 때 집안이 어려웠다. 부친이 국제시장에서 생필품을 팔았는데 화재가 두 번 나서 장사밑천을 다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문과 성향이었는데 부친의 뜻에 따라 고2 때 이과를 선택했다.
   
   그는 대학을 힘들게 들어갔다. 처음에 서울대 의대를 지원했으나 떨어지고 재수를 해서 한국외국어대를 갔다. 한국외국어대를 다니면서 다시 공부를 해서 서울대 조선공학과 75학번으로 들어갔다. 3수를 한 셈이다.
   
   대학생활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배 만드는 과가 적성이 안 맞았던 탓이다. 1979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군대를 갔다. 당시 공대생이면 대부분 병역특례로 갔으나 그는 공대가 싫어 병역특례를 거부하고 그냥 군대를 갔다.
   
   1981년 봄에 그는 삼성그룹 공채시험에 합격했으나 바로 사표를 냈다. 배 만드는 삼성중공업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마침 대우에서 신입사원을 뽑길래 다시 원서를 넣어 합격했다. 대우에서도 거제도 옥포조선소 근무를 명했고 그는 이번에도 바로 사표를 냈다. 인사 담당 임원이 그를 불러 이유를 묻더니 “서울에 가서 ‘선박무역’ 하면 되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선박’ 자가 들어있지만 ‘무역’ 자가 있어서 이번에는 응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하면서 운명을 바꾸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때는 우리 사회에 컴퓨터가 생소하던 시절이다. “집사람하고 사귈 때였어요. 집사람은 일본에서 컴퓨터를 1년 배워 돌아와서 영국계 석유회사 쉘에서 전산시스템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백 대표는 수작업으로 1주일가량 걸리는 이자계산을 컴퓨터도사인 애인의 도움을 받아 금방 해냈다. 그는 ‘컴퓨터가 세상을 변하게 만들겠네’ 하는 생각이 들어 대우를 1년도 안 다니고 그만뒀다.
   
   IBM 한국지사에 들어갔다. 컴퓨터를 배우려면 IBM이 제일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IBM에 17년 동안 다니면서 일을 많이 배우고 많이 했다. 초기에는 시청, 도청, 치안본부, 안기부(현 국정원) 등 관청과 현대차,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 컨설팅을 해주고 컴퓨터를 판매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수많은 프로젝트도 수행했다. 세계인의 축제인 서울올림픽을 총괄관리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했고, 우리나라 유수의 기업들에 그 당시로는 검증되지 않았던 거대한 근거리 통신망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설치하는 프로젝트도 실행했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IBM 한국지사 엔지니어링 솔루션 본부장까지 승진했다.
   
   2000년 2월 말 그는 IBM을 그만두고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 3월 게임회사로 방향을 바꿨다. 연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동갑내기 부인 김양신씨가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그는 부사장 겸 해외부문사장을 맡았다. 그해 6월에는 창투사 우리기술투자로부터 30억원이라는 거액을 펀딩받았다. “우리 집사람을 보고 투자한 겁니다. 당시 여자가 드물었고 여자는 거짓말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게임 개발은 녹록지 않았다. 30억원은 1년 만에 다 날렸다. “게임 개발을 두 번 실패했더니 그렇게 되더군요.” 이제는 생존이 문제가 됐다. 일본 유명 게임업체에 게임도 만들어주고 야후에 고스톱·포커게임도 만들어주는 등 닥치는 대로 외부 오더를 소화하면서 연명했다. 2006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JC차이나를 설립했다. 일본 유명 게임업체가 중국에 진출할 때 백 대표에게 온라인게임과 사이트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회사 사정은 어려웠지만 게임 개발은 포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2004년 대박이 터졌다. 3 대 3 농구게임인 ‘프리스타일’이 히트를 친 것이다. 총 5억원을 들여 개발한 이 게임은 3년 동안 600억원을 벌어다 줬고, 지금도 중국에서 돈을 벌어주고 있다. 2008년 5월에는 코스닥에도 상장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상장 직후부터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시작, 6개월 만에 8분의 1 토막이 난 것이다. 차기작이 안 나왔던 게 원인이었다.
   
   그는 모바일게임 개발로 타개책을 모색했다. 시대의 흐름이 모바일게임으로 바뀌는 것을 먼저 포착했던 것이다. 2011년 4월 드디어 히트작이 나왔다. 소셜게임의 일종인 ‘룰 더 스카이(rule the sky)’는 그해 모바일 스토어에서 가장 많은 방문자 수와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했다. 그해 10월 그는 부인과 함께 소유 중이던 지분 32.68% 중 약 절반인 16.34%를 넥슨코리아에 매각하고 이듬해 2월에는 그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6%를 추가로 매각해 게임회사 경영에서 손을 뗐다.
   
   그는 부인이 갖고 있는 지분 10%를 제외하고도 거액을 손에 쥔 벤처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평범한 대기업 직원에서 시작해 외국계 IT기업을 거쳐 게임회사 경영자로 숨 가쁘게 달려온 셈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공계 대중서적을 전문으로 펴내는 출판사를 차려 대표 겸 저자로 출발선상에 선 것이다. 편안하게 여생을 즐겨도 되는데 왜 그랬을까.
   
   그는 “이공계 출신을 보면 나처럼 적성이 문과 반, 이과 반인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이공계 출신들이 사회생활을 행복하게 하고 이공계 인재 플로(flow)를 제대로 흐르게 해보자는 생각에서 이공계 대중서적 전문출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풍부한 현장경험을 살려 이공계 출신으로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탁견도 많이 보인다. 그중 하나가 ‘新10만양병설’이다. 프로그래머들에게 병역특례를 줘서 ‘10만 사이버 부대’를 양성하자는 것이 요지다. “10만명의 정예 요원을 양성하면 우리나라의 기간망을 지키고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우리나라 모든 산업에서 IT기술의 효율성을 최대로 활용하게 하는 실질적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컴퓨터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컴퓨터를 다루기 위해서는 컴퓨터에 명령을 내려야 한다. 컴퓨터는 알아듣는 언어가 따로 있다. 그것을 컴퓨터 언어라고 한다. 컴퓨터 언어를 통해서 컴퓨터에 지시를 내리는 일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스마트한 장치에는 이 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 스마트폰, 자동차, 인터넷 검색, 온라인 게임 등에는 미리 만들어진 소프트웨어가 존재한다. 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하드코딩이다.
   
   하드코딩은 직접 컴퓨터에 지시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이다. 하드코딩 작업은 절대 쉽지 않다. 컴퓨터 언어를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단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도 실제로 사용하다 보면 수많은 결함(에러)이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결함을 찾아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3D업종으로 소문나 있다. 한때 공과대학 내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컴퓨터공학과가 이제는 최하위의 비인기학과로 전락해 버렸다. 프로그래밍을 구사할 줄 아는 인재도 자연히 줄어서 삼성전자나 LG전자에서도 소프트웨어 인력은 구하기 쉽지 않다.
   
   하드코딩 능력은 어떤 종류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더라도 필요하다. 온라인 게임은 물론 자동차산업이든 조그마한 제조업이든 스마트한 기능을 넣고자 하는 모든 분야에서는 하드코딩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다.
   
   그는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그토록 많은 IT 제품과 인터넷 서비스가 출현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봤다”고 말했다. 그때 나왔던 인터넷 관련 서비스들은 모두 세계 최고를 자랑했다. 공짜 전화통화가 가능하던 ‘다이얼패드’, 커뮤니티 사이트를 표방하고 나섰던 ‘프리챌’, 거의 세계 최초라 할 수 있는 한국형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문장으로 물어보면 무엇이든 찾아주던 검색엔진 ‘엠파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초등학교 동창생을 찾아주던 ‘아이러브스쿨(I love school)’까지…. 그 당시 우리나라는 우수한 컴퓨터 전공자들이 많았고, 그들은 직접 하드코딩이 가능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요즘은 어떤가. 이런 왕성한 활력은커녕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조차 가물에 콩 나듯 드물기만 하다.
   
   우리나라에 불어왔던 IT 붐, 정확히 말하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붐이 이제는 인도와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인도의 경우는 프로그래밍 사업이 완벽하게 국가의 기간산업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인도인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IT 업체를 주무르고 있습니다.”
   
   그는 “특례제도가 장기적으로 운용되면 우리는 전 국민의 하드 코더화를 목표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많은 사람이 영어를 하듯이 프로그래밍 언어에 능숙하다면, IT산업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창의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프트웨어 인력, 그것도 우수한 하드코딩 능력을 갖춘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은 100% 확실합니다. 지금도 소프트웨어 인력을 기다리는 일자리는 무수히 많아요. 다만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춘 인력이 없을 뿐입니다. 특례제도가 자리를 잡으면 우리나라의 우수 인력들을 이공계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인도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인도는 지난 20년간 수많은 사람이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으로 일자리를 찾았다. 1990년 74.5%였던 농촌인구가 2011년에는 68%로 줄었다.
   
   그의 주장 중 또 흥미로운 것으로 대입 수능을 활용한 이공계 활성화를 들 수 있다. 그는 수능에서 이과 수학과 과학을 쉽게 내야 이공계 기피현상을 타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이 이과 수학과 과학 과목이 점수가 안 나와서 이공계를 기피하고 인문계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차라리 문·이과 과목을 통폐합하든지 이과 과목을 쉽게 출제해야 합니다. 심도 있는 학습은 대학 가서 하면 됩니다. 수학을 못하는데 어떻게 대학 가서 이공계 공부를 할 수 있느냐고요? 나도 공대를 나왔지만 수학을 잘 못해도 공부하는 데 지장이 없어요.”
   
   그는 출판사 대표로 출발하는 지금부터가 인생 2막의 시작이라고 했다. 한국의 이공계를 살리고 이공계인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그는 점점 바빠질 것 같다. 이공계의 미래 설계를 위한 책을 펴내는 것은 물론 이공계 학생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공계 직장인과 학생들의 멘토가 될 수 있는 저자를 모십니다. 뜻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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