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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호] 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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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보이차 이야기]고차수는 중국만의 것이 아니다 가치를 알고 두드리는 자의 것!

서영수  영화감독 

▲ 진미호차창의 추밍중 사장
운남진미호(雲南臻味號)차창은 200개가 넘는 보이차 가공차창이 모여 있는 중국 윈난성(雲南省) 멍하이현(海縣)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창으로 손꼽힌다.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진미호차창 현판식이 있던 지난 봄, 추밍중(邱明忠) 사장은 “기쁨보다 눈물이 앞선다”고 했다.
   
   추밍중 사장은 아직 마흔이 안 된 젊은 경영인이다. 그는 쓰촨성(四川省) 스팡에서 1974년 12월에 태어났다. 자원 입대 후 윈난에서 군(軍)복무를 하며 보이차에 눈을 떴다. 군에서 제대한 후에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2004년부터 전통 수공 보이차를 만드는 차창에 취업했다.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기술을 익히고 연마했다. 쉬는 날에는 차산을 돌아다니며 고차수(古茶樹) 차농들과 가족처럼 어울리며 인연을 쌓았다. 차농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이 1차 가공한 모차(毛茶)를 차창과 차상에게 파는 중개상을 하게 됐다. 이를 통해 추 사장은 좋은 보이차 원료에 대한 선구안을 키워갔다.
   
   하지만 그는 자체 생산이 없는 중간 판매의 한계를 느꼈다. 뜻이 맞는 젊은 친구들과 뭉쳐 2007년에 창업을 했다. 사실 2007년은 보이차업을 하는 이들에게는 악몽 같은 해였다. 보이차 가격 폭등과 폭락 사이에서 함께 시작한 동료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그는 “다른 길을 가게 된 창업동료들에 대한 인간적 안타까움과 오늘이 있기까지 극복해온 숱한 어려움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현판식 순간 웃음보다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2007년 설립한 새내기 회사지만 7년 만에 급성장하게 된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다. 보이차 유통시장에서 노차(老茶)의 가치는 모두 인정하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는 한 노차의 수량은 필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추 사장은 “이를 대체할 보이차의 공급대안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선택은 전통 수공기술의 복원이었다. 생태환경이 우수한 고수차를 원료로 확보해 차산마다 개성이 확실한 보이차로 만들어내는 것. 마침 추 사장은 윈난의 지리에 익숙하고 차농들과 유대도 좋았다. 고수차 원료를 필요한 만큼 선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계획경제 속에서 생산량 증가에만 초점을 맞춘 중국에서 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확량 증산과 대량생산을 위한 기계 기술만 발달했다. 맛과 질을 중시하는 전통 수공제작 기법은 거의 사멸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추 사장에게는 “세계 최고의 보이차를 만들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이에 평생을 보이차 생산과 연구에 헌신하며 ‘세계 보이차 10대 인물’로 존경받는 쩡윈롱(曾雲榮)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또 지역마다 성장환경이 다른 고차수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하여 윈난성 농업과학원차엽연구소의 왕윈강(汪雲剛) 박사로부터 수시로 조언을 구하며 차산을 함께 섭렵하고 다녔다.
   
▲ 윈난성 멍하이현의 진미호차창

   전통 수공기술로 만든 보이차를 가지고 각종 차 박람회와 투차(鬪茶)대회에도 출전했다. 차의 맛과 질을 겨루는 투차대회에서 진검승부를 벌였다. 이를 통해 ‘진미호’의 실력을 점점 인정받았다. 결국 자금사정이 넉넉지 못해 자체 차창을 갖지 못하고 남의 차창을 임시로 빌려 차를 생산해야 해 안타까움이 컸던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 ‘석가명차’의 최해철 대표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진미호에 투자하면서 생산량이 늘어난 것. 최 대표는 젊지만 성실하고 보이차에 대한 주관과 사업방향이 분명한 추 사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현재 석가명차는 한국에서 ‘진미호’ 총판을 맡아 10여곳의 1급 대리상과 순료 고수차 전파의 선봉에 서 있다.
   
   또 지난해부터는 ‘진미호’의 해외사업을 전담하는 미가무역(대표 김승배·황봉숙 부부)이 본격적으로 가세하여 ‘진미호’의 해외홍보와 수출을 전담하고 있다. 김승배·황봉숙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 덕에 일본과 미주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고차수로 만든 추 사장의 보이차는 중국 본토보다 대만과 한국에서 먼저 그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는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겨 한국도 자주 찾는다. 한국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바쁜 와중에도 차산 안내를 직접 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그가 직접 운전하는 차에 동승해 길이 험하기로 악명 높은 부랑산(布朗山)을 달렸다. 비포장도로를 거칠게 달리는 그의 차를 타면 말을 타고 달리는 기분이다. 쾌속질주를 즐기는 그이지만 길 위에서 어려움을 겪는 오토바이와 차량을 만나면 반드시 차를 세우고 내린다. 구난조치와 정비소에 연락을 해주거나 교통수단이 없어진 사람을 안전지대까지 태워 주는 그의 심성은 빡빡한 해외일정에 쫓기는 필자로서도 참 보기 좋았다.
   
   부랑산에서도 가장 오래된 고차수 다원이 있는 라오만아(老曼俄)에 진미호가 새로 건립한 초제소(初製所)가 완성돼 가동되고 있었다. 첨단설비에 친환경적이며 위생환경이 돋보이는 초제소다. “전통공법을 존중하여 품격 있는 기업문화로 100년 전통기업을 지향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차산에서 목격한 올봄 고차수 가격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넘어 투기세력의 매점매석이 두드러짐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추 사장은 “모차 가격이 너무 올라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이 좋은 보이차를 마시지 못할까봐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윈난의 고차수는 차산의 소수민족과 함께 수천 년을 살아오며 유구한 차의 역사를 써왔다. 현대 보이차산업은 이제 태동기에 있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생태환경이 훌륭한 고차수 차산이 많다. 녹색자원이 풍부한 윈난은 기회의 땅으로 세계인에게 열려 있다. 대만, 일본,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이 보이차산업에 이미 뛰어들고 있다. 윈난의 고차수는 중국만의 것이 아니다. 가치를 알고 두드리는 자의 것이다. 열정만 가지고 맨손으로 보이차산업에 뛰어들어 성공가도를 달리는 추밍중 사장을 바라보면서 생각나는 사심(私心)이 하나 있다. 한국의 기업인을 윈난의 차산에서 만나고 싶다.


   
서영수
   
   1956년 부산 태생. 유현목·이두용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운 뒤 1984년 영화감독으로 데뷔.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조예가 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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