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글논어’를 펴낸 신창호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최근 ‘한글논어’를 펴낸 신창호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우리 언어로 우리 맥락 속에서 고전을 읽을 때, 고전은 살아 숨쉬게 된다.”

신창호(50)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가 ‘한글논어’를 펴냈다. ‘한글논어’는 제목처럼 한문으로 쓰여진 ‘논어’를 한글로만 온전히 풀어쓴 번역서다. 전체 500쪽에 육박하는 이 책의 본문에서 고유명사를 제외하곤 한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6월 18일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신 교수는 자국어를 통한 고전읽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에 사는 한국인의 눈으로 논어라는 텍스트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로만 읽어도 공자의 정신과 인(仁)이라는 보편적 사고를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왜 고전은 늘 한자로 적혀 있고 그 아래 별도로 풀이된 해제를 읽어야 하는가’ ‘영문 서적을 한글로 번역해 읽어도 작가의 문제의식이나 작품의 시대정신을 읽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논어도 한글로만 번역될 수 있지 않을까’. 이 같은 신 교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 ‘한글논어’라고 한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언어는 인간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입니다. 논어는 ‘한자 문화’라는 공간에 담겨 있지만, 한국인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은 한글이죠. 결국 논어라는 텍스트가 한글을 통할 때 한국인의 사유를 자유롭게 전개시킬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한글논어’에선 가능하면 시대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언어로 뜻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삶에 필요한 기예를 배우고 익혀라. 그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신 교수는 그 유명한 ‘논어’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이렇게 풀어썼다. 논어의 두 번째 구절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는 ‘자신을 알아주고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올 때, 이보다 반가운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로 풀이됐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이 얼마나 즐거운가’라는 기존의 직역에 비해 맥락의 이해를 돕는 표현이 눈에 띈다.

그는 이런 작업을 ‘논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라고 불렀다. 문화란 여러 세대에 걸쳐 공유돼야 하는 것으로, 현재의 시공간적 맥락을 고려한 현재의 언어로 전달될 때 보다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는 서양 고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시대는 이미 달라졌으며,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취향에 따라 2G폰을 사용하거나 아예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변화’ 자체를 거부하며 옛날 방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공자가 살아있었다면 스마트폰을 사용했을 겁니다. 공자는 현실주의자였으니까요.”

신 교수는 “논어는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책”이라고 말한다. 그중 하나가 ‘논어는 옛날 얘기’라는 편견이다. 그의 눈에 비친 공자는 ‘도덕 기준은 분명히 있는 극현실주의자’였다. 그가 본 논어는 죽어 있는 고전이 아닌 ‘살아 있는 실용서’였다. 그는 “유교는 현실의 학문으로서 그 자체가 실학”이라고 말한다. 삶을 살아가는 지침을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설명이었다.

공자가 그의 일상에서의 생활 자체를 대화록 형태로 그대로 담았기 때문에 논어엔 당시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오늘날과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과거의 패러다임을 참고해 현대에 응용하고 적용·원용하기에 매우 중요한 사유가 아닐까. 그는 “개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던 시대라도 인간의 보편성은 존재한다”며 “논어에 담긴 인생의 희로애락, 그리고 공자라는 동양 최고의 사유모델을 통해 나 자신을 비춰 보는 삶의 거울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논어를 둘러싼 또 다른 오해로 신 교수는 ‘체계가 없이 구성된 책’이라는 견해를 지적한다. 이같은 견해에 대한 반박의 근거로 그는 논어의 가장 마지막 구절을 지목한다.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면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사회의 도덕을 알지 못하면 세상에서 떳떳하게 행세할 수 없다. 자연의 질서와 사회의 도덕을 체득하여 적용하지 못하면 인생을 경영할 수 없다.’

첫 구절만큼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구절이지만 신 교수는 마지막 구절에 논어의 시스템이 집대성돼 있다고 한다.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나아가 사회의 도덕을 알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삶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랜 기간 논어를 공부하다 보니 결국 이 마지막 구절에 가닿더라”며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인간학’으로서 유학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인문학자이기도 한 그는 동양 고전이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외면받는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지난해 ‘인문학당’을 설립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주관했던 ‘길 위의 인문학’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인문정신의 활성화를 위해 뛰고 있다.

그는 인문학과 대중 간의 소통방식이 변해야 한다고 봤다. “인간의 삶과 사회법칙을 알게 해주는 게 유학이고, 나아가 인문학입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도 만들어졌지만 사실 인문학 자체가 위기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인문학과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작업이 없었던 것뿐입니다. 어쩌면 인문학자들이 자기만의 공부에 치우쳤던 거겠죠.” 일반인들에게 ‘논어와 같은 동양 고전은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갖게 한 데는 이런 소통 작업을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인문학자의 책임도 있다는 주장이다.

앞으로 그가 할 일은 많은 듯했다. 일단 논어 등 고전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유교 경전의 한글화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는 “논어와 함께 유학 사서(四書)로 불리는 ‘대학’ ‘맹자’ ‘중용’의 한글 작업을 평생 이어갈 것”이라며 “제 아들, 딸과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대화를 나누듯이 고전을 통해서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이루고 싶다”는 바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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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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