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 동네에 커피 향기가 가득하다. 새 커피집이 집 근처에 문을 열었다. 몸에 닿는 공기의 온도가 가을을 느끼게 해서인지 커피 향기에 저절로 발걸음이 멈칫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혹적인 냄새 중의 하나, 커피의 향기는 무엇일까?

고소하고 달콤한 커피, 날카로운 산미에 깔끔한 커피, 복합적이고 당돌한 느낌이 입에 꽉 차는 질감의 커피까지. 이 세상의 커피를 표현하는 맛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커피의 취향은 개인 차가 있지만, 나에게는 화려한 화원을 연상시키는 에티오피아 커피 향기가 가장 강렬하다. 에티오피아 스페셜티 커피의 경우 여성스러우면서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일을 머금은 꽃향기 같은 에티오피아 커피의 여운은 내게 첫사랑의 기억처럼 생생하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최초 발현지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토질의 영향으로 독특한 커피 원종들을 생산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서울경찰청 정문 옆에 위치한 ‘나무사이로’는 한국에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에티오피아 커피들을 공급하는 업체이다. 세계적 생두 공급업체인 나인티플러스와 협업한다. ‘나인티플러스’라는 이름은 커피 테이스팅 점수에서 90점 이상의 커피만 취급한다는 의미다. 에티오피아 스페셜티 커피 생두를 주로 공급한다.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서 생두만을 공급하는 업체로는 가장 유명하고 독보적이다. 전 세계의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들에게 제한된 분량만 공급한다. 한국에서는 ‘나무사이로’가 독점 공급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커피이기는 하지만, 강렬한 향기가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우리나라 스페셜티 커피업계 전체의 고민이다. 쓴맛이 커피 본연의 맛이 아니라 달콤하고 향기롭다는 사실이 전문가들만의 비밀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무사이로 매장은 오래된 한옥이다. 이전에는 지금 매장의 맞은편에 위치한 주상복합 건물에 있었는데, 상가 주인의 요구로 매장을 양도하고 지금의 장소로 이동했다. 결과적으로 분위기 있는 한옥 카페로 탈바꿈했다. 가장 세계적인 커피를 취급하면서 한국의 매력을 잘 살린 매장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전 세계의 에스프레소 머신 중 가장 희귀하면서 개성 있는 ‘슬레이어’가 눈에 들어온다. 온수공급기로는 가장 비싸고 정확한 온도 보정을 보이는 우버보일러까지 갖추고 있다. 그 옆에 있는 라마르조코의 중급 모델인 gb5가 초라해 보일 정도이다. 슬레이어 에스프레소 머신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나무사이로의 로스팅 공장에 있었는데, 광화문 매장이 재개장하면서 옮겨와 라마르조코와 함께 맹활약 중이다. 일반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이 정압9기압의 압력을 사용한다면, 슬레이어는 1~15기압의 압력을 수시로 변환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독특한 커피를 추출한다. 커피 머신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잔고장이 있고 가격이 비싸 일반 매장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매니아가 많은 ‘나무사이로’는 한옥으로 매장을 옮겼다.
매니아가 많은 ‘나무사이로’는 한옥으로 매장을 옮겼다.

나무사이로의 커피는 꽃향기와 과일 향기가 주도적인 나인티플러스 계열의 커피가 많지만, 독자적으로 수입한 중남미 계열의 커피들도 질감과 여운이 좋다. 아메리카노용 커피는 보편적인 블렌딩 커피를 사용하는데, ‘풍요로운 땅’ ‘딜쿠샤’ ‘러브레터’와 같이 서정적이고 재미있는 이름들이 많다. 실제로 대부분의 블렌딩 커피가 이름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운 커피들이다. 브라질, 콜롬비아, 과테말라, 케냐 커피 등을 블렌딩한 것으로 시즌에 따라 또는 생두의 질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여름철에는 더 상큼한 느낌의 커피가, 겨울철에는 진중하고 묵직한 보디가 좋아진다. 계절에 따른 사소한 차이를 제외하면 커피의 느낌은 비슷하다. 에스프레소는 고소하다. 아메리카노, 라테, 카푸치노 모두와 쉽게 어울린다.

블렌딩 커피들이 무난하다면, 나인티플러스 계열의 커피들은 슬레이어 머신으로 추출되거나 핸드드립으로 제공된다. 희귀한 커피인 경우 커피 원가가 판매가에 육박하는 경우도 많다. 추출은 핸드드립 혹은 에스프로 프레스(프렌치프레스 원리와 비슷하며, 커피의 성향을 잘 나타내고, 미분이 적어서 이상적인 추출 중 하나이다)로 한다.

추천커피로는 ‘파나마 나인티플러스 게이샤’ 커피. 전 세계 커피 미식가들의 입맛을 한순간에 바꾸어 놓은 커피다. 나인티플러스 농장에서 재배한 것이다. 재배지에 따라서 펄시, 줄리엣과 같은 이름으로 판매된다. 커피생두 가격 자체가 굉장히 고가이다. 일반 커피의 100배 이상이며, 같은 게이샤 커피 중에서도 비싸다. 원두가격이 100g에 4만원 정도에 판매되지만, 매장에서는 잔당 1만원가량에 마실 수 있다. 워낙 비싸고 희귀한 커피들이라 전국 바리스타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애호가들에게 대접했을 때 대부분 감탄사가 돌아오는 커피이다.

파나마 게이샤 커피와 더불어 유명한 커피는 네키세, 2012년 뉴욕의 ‘카페그럼피’라는 매장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 당시 뉴욕타임스 기사에 오를 만큼 화제가 된 커피이다. 나인티플러스 커피의 가장 대표적인 커피 중의 하나이다. 게이샤 커피와 구별이 어려울 만큼 꽃향기와 과일 향기가 주도적이지만, 여운이 더 길고 캐러멜 혹은 조청과 같은 단맛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나무사이로는 좌석이 넉넉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피를 취급하는 매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 나무사이로의 커피는 얼마 전 한국 최초로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커피업체 ‘어센션’에 정식으로 초대되었다. 순수한 커피 맛의 평가만으로 스페셜티 커피의 종주국인 미국에 진출했다는 것은 한국 커피업계로서는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 스페셜티 커피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이고 업계의 치열한 노력이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 196 (070)7590-0885

심재범

아시아나항공 선임사무장, 아시아나항공 바리스타 그룹장.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 큐그레이더. 호주관광청 인증 바리스타. 저서 ‘카페마실’ ‘스페셜티 커피 인 서울’

심재범 아시아나항공 바리스타 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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