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역사 교과서의 오류를 조사한 재야 사학자 김병헌씨.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고교 역사 교과서의 오류를 조사한 재야 사학자 김병헌씨.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지난 4월 23일 동학혁명 관련자료인 ‘사발통문(沙鉢通文)’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신청했다. 현재 전주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보관돼 있는 사발통문에는 누가 동학혁명 주모자인지를 알지 못하도록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 간부들의 이름이 사발(원)형으로 둥글게 적혀 있다. 대부분의 고교 검정 국사 교과서나 일부 학자들의 논문은 이 사발통문을 ‘동학혁명과 관련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사료’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발통문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원사료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발통문의 필수적 요소인 격문 대신 당시 상황 소개나 선후책을 논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서울대 신용하 명예교수도 1993년 출간한 ‘동학과 갑오농민전쟁 연구’라는 책에서 “(이 문서는) 1893년 11월 당시의 사발통문 원문 자체가 아니며, 사발통문에 참가한 어떤 동학교도의 후일의 간단한 회고록의 일부를 필사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고 동국대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재야학자 김병헌(57)씨는 이 사발통문에 대해 “통문이라는 것은 일종의 통지문이므로 특정 집단이나 단체가 행동에 나서는 이유와 목적을 설명하고 군중을 독려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하지만 국사 교과서에 실린 사발통문은 격문이 빠져 있고 통문이 전해진 이후 상황을 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사발통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 문서는 국내 8개의 고교용 검정 국사 교과서 가운데 금성출판사와 교학사 단 두 곳을 제외하고 두산동아(동아출판), 리베르스쿨, 미래엔, 비상교육, 지학사, 천재교육 등 6곳에 ‘동학혁명의 사발통문’으로 소개돼 있다. 이 중 미래엔 측은 최근 김병헌씨에게 “통문이 아니라는 주장이 타당하기 때문에 다음 교과서 수정 때 이런 내용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고 한다. 특정 교과서 업체가 이런 의사를 김씨에게 밝힌 이유는 그동안 김씨가 교과서의 오류를 바로잡아 달라는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최근 두 달간 현행 고교 검정 국사 교과서 8종을 전수조사해 역사적 사실이나 번역에 대한 오류를 꼼꼼히 밝혀낸 후 이의 수정을 국사편찬위원회와 교과서 제작업체에 요구해 왔다.

김씨는 지학사와 리베르 국사 교과서에 실린 ‘동국진체’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두 국사 교과서에는 동국진체에 대해 ‘이광사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서체인 동국진체를 완성하였고’ ‘서예에서는 우리의 정서와 감성을 표현한 이광사의 필체가 동국진체라 불리었고’로 각각 기술돼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내용이라는 것이 김씨의 지적이다.

“한때 국정교과서에 ‘서예에서도 우리의 정서와 개성을 추구하는 단아한 글씨의 동국진체가 이광사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표현이 있었다. 동국진체라는 표현은 옥동 이서의 현손인 이시홍이 행장초(行狀草)에 실은 게 유일한 자료다. 이때 동국진체라는 표현을 한 건 후손이 선조를 칭송하기 위한 미사여구였다. 이것을 진경산수의 전문가인 최완수 선생과 일부 제자들이 오역해 ‘옥동 이서가 창안한 새로운 서체’라고 일부 잡지에 글을 실었고 결국 교과서에도 수록됐다.”

반면 근대의 대표적 한학자였던 임창순 선생은 ‘동국진체’에 대해 “글씨에는 진체(眞體)라는 말이 없다. 그럼 누구는 위체(僞體)나 가체(假體)를 쓴다는 말이냐. 동국진체라는 표현을 쓰는 건 글씨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옥동 이서는 초서의 대가로, 그가 해서에서는 내세울 만한 게 없어 새로운 서체를 만들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최근 국사편찬위원회도 동국진체에 대한 반론에 일정 부분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김씨가 제기한 동국진체 관련 문제제기에 대해 “(동국진체는) 정확한 근거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현재 교과서는 검인정 체제로 전환되고 해당 사항은 각 출판사와 집필진에 직접 요구해 처리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동국진체는 근거부족 등의 이유로 지학사와 리베르를 제외한 6개 국사 교과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연호, 기년, 기원이라는 단어도 국사 교과서에서 정확히 사용되지 않고 혼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연호는 왕이 나는 지금부터 이런 식의 정치를 하겠다고 던지는 일종의 화두를 말한다. ‘광무’라고 하면 ‘무를 빛내겠다’는 것으로 왕의 선언이 있고 난 이듬해부터 광무 1년으로 쓴다. 연호는 소급적용하지 않는다. 기년은 연도를 표시하는 기록방법이다. 조선의 기원을 1392년으로 한다면 이때가 개국기년이 된다. 갑오개혁이 있던 1894년은 개국기년으로 503년이다. 개국기년과 연호는 전혀 다른 것인데 혼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김씨는 “각 국사 교과서의 집필진은 보통 대학 교수 두어 명, 고교 교사 서너 명 정도로 구성된다. 이들이 담당하는 분야가 광범위하고 시간도 충분치 않기 때문에 1차 사료인 원문을 찾아볼 여유가 없다. 원문이 한문일 경우 제대로 해석을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호, 기년, 기원 같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용어를 혼돈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1876년 8월(고종 13년) 강화도 조약을 보완하기 위해 조인된 ‘조일수호조규 부록과 무역 규칙’에 대한 국사 교과서의 설명도 오류투성이라고 지적했다. 금성출판사와 리베르 간 국사 교과서는 ‘조선에서 일본 외교관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으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는 것이다. 관련 내용은 부속조약 제1조에 나오는데 실제 원문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각 항구에 주재하는 일본객 인민의 관리관은 조선국 연해에서 일본국 배가 파선하여 긴급할 경우 지방관에 보고하고 해당지역으로만 갈 수 있는 연로를 따라 통과할 수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등장한 균전론에 대한 국사 교과서의 설명도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균전론은 토지를 균등하게 나누자는 취지에서 반계 유형원 등 실학자들이 주장한 토지개혁안으로 구체적인 방법론이 한전론과 여전제, 정전제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사 교과서에는 한전론, 여전제, 정전제가 모두 균전론과 대등한 토지개혁안 중 하나로 묘사돼 있다.

통일신라시대 선종의 유래 시점에 관해서도 국사 교과서마다 차이가 컸다고 한다.

김병헌씨는 “굳이 국정교과서로 되돌아가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통일된 내용을 담은 국사 교과서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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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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